[비즈니스 포커스]
트럼프 시대 주목받는 1980년대생 리더. 그래픽=송영 기자
트럼프 시대 주목받는 1980년대생 리더. 그래픽=송영 기자
트럼프 시대 주목받는 1980년대생 리더. 그래픽=송영 기자
트럼프 시대 주목받는 1980년대생 리더. 그래픽=송영 기자
비상계엄과 그로 인한 탄핵 정국 속에서 외교·통상 공백에 대한 우려가 커지는 가운데 연말 인사에서 1980년대생 밀레니얼 세대들이 경영 일선에 전진배치됐다. 80년대생들은 ‘트럼프 2기’ 출범에 따른 글로벌 정세와 통상 질서의 판도 변화라는 거대한 과제를 마주하게 됐다.

트럼프가 콕 찍은 K조선, 김동관·정기선 리더십 부각

주요 그룹은 최근 연말 인사를 통해 80년대생 오너 3~4세를 경영 전면에 배치해 트럼프 2기 대비에 나섰다. HD현대 최대주주인 정몽준 아산재단 이사장의 장남 정기선 HD현대 수석부회장(1982년생)은 부회장 승진 1년 만에 수석부회장 자리에 올랐다.

최근 미국 상원의 마크 켈리 의원 등이 중국의 해양굴기를 견제하고 동맹국과 협력해 자국 조선업 경쟁력을 강화하는 법안인 ‘미국의 번영과 안보를 위한 조선업과 항만시설법(미국 선박법)’을 발의했는데 이 법안이 통과되면 한국 조선업계에 새로운 사업 기회가 될 전망이다.

트럼프 당선인은 당선 직후 윤석열 대통령과의 통화에서 한국 조선업계에 협력을 요청한 바 있다. 이에 따라 미 해군 MRO(유지·보수·정비) 시장에 공들여온 정기선 HD현대 수석부회장과 김동관 한화그룹 부회장이 트럼프 취임식에 초대받을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다.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의 장남 신유열 롯데지주 부사장(1986년생)은 전무 승진 1년 만에 부사장으로 승진했다. 신 부사장은 유통·화학 동반 부진 속 롯데그룹의 새 먹거리로 바이오 사업을 키우고 있다.

롯데그룹은 60대 이상 임원 80%를 교체한 연말 인사에서 유일하게 롯데바이오로직스만 외부 영입 인사로 제임스 박 대표를 선임했다. 신 부사장은 새로운 진용을 꾸려 바이오 위탁개발생산(CDMO) 등 신사업을 성공적으로 안착시키고 글로벌 시장 개척에 힘쓸 것으로 보인다.

글로벌 시장 개척 나선 최윤정·신유열

승진은 아니지만 역할 확대로 그룹 내 영향력이 더욱 커진 오너 경영인도 있다. 최태원 SK그룹 회장의 장녀 최윤정 SK바이오팜 사업개발본부장(부사장·1989년생)은 SK(주) 성장지원담당을 겸직해 미래성장사업 발굴 임무를 맡게 됐다.

바이오 산업은 트럼프 정부의 약가 인하 정책, 유럽연합(EU)·미국의 교체처방 장려 등으로 바이오시밀러 분야 기업의 글로벌 진출 기회가 늘어날 것으로 전망된다. 최 부사장은 SK바이오팜의 신성장동력인 방사성의약품(RPT) 개발에 속도를 높여 2027년까지 글로벌 시장 주도권을 잡겠다는 목표다.

SK가(家) 3세인 최성환 SK네트웍스 사업총괄 사장(1981년생)은 인공지능(AI) 컴퍼니 전환을 주도하며 미국 실리콘밸리에 AI 스타트업 ‘피닉스랩’을 설립하고 AI 분야에 투자를 이어가고 있다. 최 사장은 2024년 12월 방한한 공화당 소속 케빈 스팃 미국 오클라호마 주지사와 회동하는 등 미국에서 새로운 사업 기회도 모색 중이다.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의 장남 김동관 부회장(1983년생)은 한화임팩트 투자부문 대표 역할이 추가됐다. 그간 (주)한화 전략부문, 한화솔루션 전략부문, 한화에어로스페이스 전략부문 대표이사를 맡고 있던 김 부회장이 기존 방산·에너지·항공우주·조선해양에 이어 미래 먹거리 발굴을 맡는 한화임팩트 투자부문 대표까지 맡아 그룹 내 영향력이 한층 확대됐다.

김 부회장이 한화오션의 기타비상무이사로 경영 전반과 글로벌 전략을 총지휘하고 있는 가운데 한화그룹은 미국 상선·방산시장 진출을 위한 미국 필리조선소 인수를 마쳤다. 트럼프 2기에서 해양방산 리더십도 주목받을 전망이다.

구자열 LS 이사회 의장의 장남인 구동휘 LS MnM 대표(1982년생)는 연말 인사에서 최고경영자(CEO)로 선임됐다. 2차전지 양극재 EVBM 프로젝트를 추진하며 LS그룹 ‘비전 2030’의 핵심 신사업인 배·전·반(배터리·전기차·반도체) 중 배터리 소재 분야를 주도적으로 이끄는 임무가 맡겨졌다.

구본준 LX그룹 회장의 장남 구형모 LX MDI 사장(1987년생)은 부사장에서 사장으로 승진했다. 2014년 LG전자에서 커리어를 시작한 구 사장은 10년 만에 사장으로 초고속 승진했다. 구 사장은 급변하는 경영 환경에서 시장 대응력 확보를 위한 계열사별 경영 컨설팅으로 사업 경쟁력 강화를 이끌고 있다. 김윤 삼양홀딩스 회장의 장남 김건호 사장(1983년생)은 그룹 내 화학2그룹 부문장을 맡으며 경영 보폭을 확대했다.

HR기업 커리어케어 윤승연 부사장은 “오너 일가의 신사업 리드는 미래 먹거리 확대 미션을 통해 그룹의 성장동력을 확보함과 동시에 그들의 경영능력을 확실히 보여줄 수 있는 기회”라며 “새로운 사업은 그룹의 지원과 의지가 강하지 않으면 추진 동력을 잃기 쉬워 오너가의 신사업 추진이 다른 전문경영인의 추진보다 지속력이 담보되는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은 국익보다 개인적 친분과 즉흥적 반응에 좌우되는 의사결정으로 정책 방향을 가늠하기가 쉽지 않다. 국가적 리더십 공백 상황에서 개별 기업과 기업인의 대응 역량은 더 중요해졌다.

80년대생 오너 경영인들은 2025년 어느 때보다 험난한 파고를 넘어야 할 것으로 보인다. 윤 부사장은 “트럼프 2기에서는 대미 교섭능력을 발휘해 카운터파트 역할을 수행하며 난제를 풀어나가는 철저한 실리 추구형 리더가 주목받을 전망”이라고 했다.

기존 방식으론 혁신 어려워…임원도 젊은 피로

3~4세 오너 경영인들의 임원 및 고위직 승진 속도는 세대가 지날수록 빨라지고 있다. 기업분석연구소 리더스인덱스에 따르면 국내 100대 그룹 오너 경영인들의 부회장·회장 등 고위직 승진 속도가 부모세대보다 30%가량 짧아졌다.

3세들은 평균 29.6세에 입사해 임원 승진까지 3.8년이 소요됐다. 4세들은 평균 28.8세에 입사해 7년을 보내고 임원으로 승진했다. 임원에서 부회장까지 가는 기간은 3세대는 평균 12.9년, 4세대는 평균 10.4년으로 2년 이상 빨라졌다.

80년대생 오너 경영인의 빠른 등판으로 임원 연령도 갈수록 낮아지는 추세다. 주요 그룹이 신사업으로 AI·로봇·신소재 등 첨단·디지털 기술을 낙점한 만큼 미국 등 해외 유학파로 글로벌 역량을 갖추고 첨단기술에 대한 이해도가 높은 80년대생 임원들로 세대교체가 한창이다. 주요 그룹 연말 인사에선 80년대생 임원 발탁이 잇따랐다.

삼성전자에선 80년대생 임원들이 메모리와 온디바이스 AI 등 주요 사업을 맡고 있다. 김태수 삼성리서치 시큐리티&프라이버시팀 상무, 배범희 모바일경험(MX) 개발실 상무, 고현목 삼성리서치 글로벌 AI센터 전무가 대표적이다. SK그룹에서는 이동훈 SK하이닉스 낸드개발 담당 부사장을 포함해 80년대생 임원이 5명이다. 현대차그룹의 80년대생 임원은 6명으로 2023년 5명에서 2024년 1명 늘었다.

LG그룹은 2023년 인사에서 5명의 80년대생 임원을 새로 선임한 데 이어 2024년에도 4명의 신규 임원을 임명했다. 이문태 LG AI연구원 어드밴스드 ML 랩장(수석연구위원), 이진식 엑사원 랩장(수석연구위원), 조현철 LG유플러스 상무 등이 80년대생 신규 임원이다. LG생활건강에서는 1984년생인 이홍주 상무가 최연소 승진자로 이름을 올렸다.

LG그룹 내 80년대생 임원 수는 17명으로 구광모 회장이 미래 먹거리로 점찍은 ABC(AI·바이오·클린테크) 분야에서 새로운 비즈니스 기회를 모색 중이다. CJ그룹은 2025년 인사에서 80년대생 임원 12명을 선임했다.

윤 부사장은 “AI의 등장과 산업구조 재편 등의 급격한 변화로 인해 기존의 정해진 사고틀을 가진 사람들은 혁신을 추구하는 데 어려움이 있다. 혁신을 원하는 기업이 외부에서 임원을 스카우트해오는 이유”라며 “새로운 변화를 가져오기 위해 오랫동안 익숙한 환경에 있던 경영진이 아닌 새로운 시각을 가진 젊은 임원들을 기용하려는 움직임은 자연스러운 현상”이라고 말했다.



안옥희 기자 ahnoh05@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