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VMH, 일본 데님 브랜드 캐피탈 지분 인수
업계서는 "이례적인 결정" 의견 나와

캐피탈, 한정된 사업 영역·생산량 제한 등
적극적인 사업 확장 어려운 문제 남아

LVMH는 왜 일본의 조그마한 패션 회사 '캐피탈'을 인수했을까
명품업계 최대 기업인 루이비통모에헤네시(LVMH)가 새해 벽두부터 움직이기 시작했다. 인수합병(M&A) 대상은 ‘일본 데님 브랜드’다. 스마일 로고로도 유명한 ‘캐피탈’이 그 주인공이다. 국내에서는 아이돌그룹 뉴진스가 자주 착용해 ‘민지 니트’, ‘해린 모자’ 등으로도 알려졌다.

업계에서는 이례적인 M&A라고 평가한다. LVMH가 탐내기에는 규모가 매우 작기 때문이다. 일본에서 운영되는 단 13개의 매장. 의도적으로 제한하는 판매량. 데님에 한정된 사업 영역. 이미지 관리를 위해 적극적으로 확대하지 않는 유통망. 캐피탈의 매출은 공개되지 않았으나 LVMH 전체 매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크지 않을 것으로 관측된다.

아이러니하게도 이런 점들이 LVMH의 인수를 결정짓는 핵심 요인이 됐다. LVMH는 마니아층이 확고한 ‘컬트 브랜드’ 확보에 집중하고 있다. 컬트 브랜드는 불황, 인플레이션(물가상승) 등과 상관없이 수요가 유지되는 명품만큼 많은 팬덤을 거느린다. 캐피탈 역시 고객이 자신의 정체성을 브랜드와 연결시킬 만큼 충성도가 높은 것으로 유명하다. LVMH가 ‘일본의 작고 소소한 브랜드’에 꽂힌 이유다. ◆ ‘캐피탈’이 뭐길래최근 LVMH가 엘캐터튼(L Catterton)을 통해 일본 데님 브랜드 캐피탈의 지분 대부분을 인수했다. 엘케터튼은 LVMH 산하의 사모펀드로 소비자 브랜드에 대한 투자를 주로 담당한다. 브랜드 인지도와 글로벌 확장 잠재력 등을 중점으로 따져 인수 여부를 결정한다.

독일의 패션 웹매거진 하이스노비어티와 패션 매거진 하입비스트 등은 “LVMH가 조용하게 캐피탈을 인수했다”며 “정확한 인수 시점과 지분 등은 발표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엘캐터튼에 따르면 캐피탈의 인수 시점은 지난해 말로 추정된다.

캐피탈은 1985년 설립된 일본의 데님 브랜드다. 일본 전통 무술인 가라테 사범으로 살아온 히라타 도시키오가 캐피탈의 설립자다. 1984년 존 아빌드센 감독이 제작한 영화 ‘가라테 키드’가 미국에서 인기를 얻으며 가라테에 대한 관심이 늘자 도시키오는 가족들과 함께 미국으로 건너가 가라테 사범으로 일하기 시작했다.

이때 도시키오가 접한 게 미국의 ‘데님’이었다. 미국의 3대 데님 브랜드로 꼽히는 리바이스, 랭글러, 리 등이 판매하는 빈티지 데님(새옷 느낌이 나지 않는 낡은 스타일)에 빠지기 시작했고 가라테로 번 돈은 모두 빈티지 데님을 사는 데 사용했다. 데님에 대한 지식이 쌓이자 도시키오는 직접 데님 사업을 시작하고 싶었고 아내의 고향인 일본 고지마로 돌아왔다. 고지마는 1960년대부터 데님을 생산해오던 프리미엄 데님의 거점으로 꼽혔기 때문이다.

1984년 고지마에서 제봉과 염색이 가능한 공장을 설립하고 이듬해 빈티지 데님을 판매하는 브랜드 ‘캐피탈’을 출시했다.

캐피탈의 영향력이 급격히 확대된 시점은 2000년 들어서다. 1990년대까지 캐피탈은 소규모 지역 매장에 불과했다. 2002년 도시키오의 아들 히라타 가즈히로가 합류하면서 상황은 달라졌다.

미국에서 미술을 전공한 가즈히로는 졸업 후 패션 회사 45RPM에서 의류 디자이너로 전문성을 쌓았고 아버지의 사업을 이어받기 위해 2002년 캐피탈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입사했다. 이전까지 캐피탈의 데님 기술이 미국의 데님을 복제하는 수준에 그쳤다면 가즈히로가 캐피탈에 들어온 이후 새로운 디자인이 접목됐다.

캐피탈은 천연 염료 사용, 새로운 패치워크 봉제 기술, 에도 시대 전통 공예 기법 적용 등을 통해 캐피탈만의 디자인을 선보이며 충성도 높은 팬덤을 확보하기 시작했고 인기가 높아지자 사업 카테고리를 신발, 액세서리 등으로 확대했다. 이후 사업 영역을 분리해 가즈히로는 현대 패션과 데님을 접목한 새로운 디자인 개발, 도시키오는 생산에만 집중했다.
LVMH는 왜 일본의 조그마한 패션 회사 '캐피탈'을 인수했을까
◆ LVMH ‘팬덤·확장성·사업 전망’ 봤다아들의 합류 이후 캐피탈은 모방에 그치던 일본 데님을 예술의 경지로 끌어올렸다는 평가를 받으면서 글로벌 시장에서 인기를 얻기 시작했다.

LVMH가 캐피탈에 관심을 보이기 시작한 시점은 10년도 전이다. 2013년 루이비통이 캐피탈과 협업한 컬렉션을 선보인 게 그 시작이다. 당시 루이비통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인 킴 존스는 루이비통 봄·여름 남성복 컬렉션을 만들기 위해 도시키오와 가즈히로를 만났다.

그러나 인수는 예상치 못했다는 의견이 다수다. 업계에서는 캐피탈의 한정된 사업 영역(데님 분야), 이미지와 품질 유지를 위한 생산량 제한, 유통 다변화에 소극적인 태도 등을 고수하는 점을 언급하며 LVMH가 캐피탈을 글로벌 규모로 키울 수 있을지 미지수라는 의견을 보이고 있다.

팬덤 반응도 부정적이다. 캐피탈의 창업자인 도시키오가 암투병 끝에 사망한 지 1년도 안 된 시점에 주인이 바뀌는 것에 대해 팬덤은 캐피탈의 정체성이 사라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브랜드 운영의 독립성이 훼손되면 캐피탈이 고수해온 ‘장인 정신’이 사라질 수 있다는 지적이다. 팬덤에서는 데님 브랜드 캐피탈이 아닌 그저 그런 ‘LVMH 브랜드 중 하나’가 될 수 있다는 시선이 있다.

사모펀드의 전략은 단 하나다. 매출 성장을 위해 브랜드를 확장하는 것. 그간 컬트 브랜드가 대형 기업에 인수된 이후 망가진 사례도 많다. 미국 스트리트 브랜드 슈프림이 대표적이다. 슈프림은 2020년 패션 대기업 VF코퍼레이션에 인수됐고 이후 희소성을 잃으면서 팬덤이 사라졌다.

주목할 점은 LVMH가 일본의 작은 브랜드에 관심을 가진 이유다. 캐피탈은 글로벌 시장을 타깃으로 사업을 공격적으로 확장해오지도 않았고 수익성을 개선하기 위해 판매량을 늘리지도 않는 회사로 유명하다. 캐피탈 인수로 LVMH의 수익성이 크게 개선되지 않을 것이라는 뜻이다.

LVMH가 캐피탈을 인수한 가장 큰 이유는 ‘안정적인 수익을 낼 수 있는 회사’이기 때문이다. 실제 LVMH는 최근 컬트 브랜드 확보에 집중하고 있다. 컬트는 고객과 브랜드 간 애착 관계가 완성돼 팬덤이 강력한 브랜드를 뜻한다. 미국의 오토바이 브랜드 할리데이비슨, 스위스 업사이클링 브랜드 프라이탁 등이 대표적이다. 캐피탈은 일본의 대표적인 컬트 브랜드로 유명하다.

LVMH가 독일 신발 브랜드 버켄스탁(2021년), 프랑스 컨템포러리 브랜드 아페쎄(2023년) 등을 인수한 것과 같은 맥락이다. 이들 브랜드 모두 글로벌 사업을 하는 것에 비해 매출 규모가 크지 않지만 각 카테고리에서는 영향력이 커 컬트 브랜드에 속한다. 당장은 LVMH 매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낮지만 충성도 높은 팬덤을 앞세워 사업을 안정적으로 확대할 수 있고 새로운 시장에 진출 시 실패 확률이 낮다는 이점이 있다.

또 캐피탈이 워크웨어(작업복) 브랜드로 존재감이 큰 것도 LVMH의 선택에 영향을 미쳤다. 패션업계에서는 캐피탈을 ‘전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일본 워크웨어 브랜드’라고 칭한다. 글로벌 워크웨어 시장은 해마다 커지고 있다. 글로벌 시장조사업체 인사이트파트너스에 따르면 세계 워크웨어 시장은 2022년 320억 달러(47조원)를 기록했는데 2030년 524억 달러(약 76조원)로 성장할 전망이다.

사업 방향성에 대해 LVMH 측과 창업자의 아들인 가즈히로의 의견이 일치했을 가능성도 크다. 가즈히로는 2019년 GQ와의 인터뷰에서 “나는 이미 만들어진 것이 아닌 새로운 것을 창조하려고 한다”며 “앞으로 100년을 위한 무언가를 하고 싶다”고 말했다. 캐피탈의 향후 사업은 LVMH 인수에 따라 이전과 크게 달라질 것으로 보인다.

업계에서는 “LVMH가 인수를 위해 내건 조건은 캐피탈이 40년간 쌓아온 사업의 지배권을 포기하기에 충분히 매력적이라고 보인다”고 평가하고 있다.

최수진 기자 jinny0618@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