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돈의 부동산]
한 달간의 카오스… ‘강·서·송·용’은 어떻게 토지거래허가구역이 됐나[혼돈의 부동산①]
1월 14일 “토지거래허가구역 지정 해제를 적극 검토 중입니다.”
2월 12일 “잠실, 삼성, 대치, 청담을 토지거래허가구역 지정 해제하겠습니다.”
3월 10일 “집값이 과도하게 오르면 토지거래허가구역 재지정을 검토하겠습니다.”
3월 19일 “강남 등 지역의 투기적 거래가 증가해 허가구역을 재지정하겠습니다.”


최근 2개월여간 오세훈 시장은 부동산 시장을 뒤흔들었다. 느닷없는 토지거래구역 해제로 투기에 불을 붙이더니 한 달 만에 이를 철회하며 사과했다. 대통령 선거를 겨냥한 야심찬 정책이었지만 그 결과는 오히려 역효과만 불러왔다. 손바닥 뒤집는 듯 정책을 변경하는 무능함을 보여줬을 뿐 아니라 규제 대상은 오히려 확대되는 결과로 이어졌다. 당초 토지거래허가구역은 강남3구 일부 아파트였지만 3월 24일부터는 강남·서초·잠실 전체 아파트와 용산 소재 아파트까지 확대됐다. 시장은 혼란에 빠졌다.

2022년 하반기 이후 급격히 쌓여간 미분양과 중견 건설사들의 잇따른 법정관리 신청, 경기침체에도 연초부터 오르던 강남 집값은 ‘강남 불패론’을 강화하며 최근 들어 상승폭을 키워갔다. 기세등등한 강남의 상승세가 도미노처럼 서울 내 인근 지역으로 퍼졌다.
서울시의 지난 결정이 최근 서울 아파트 가격 오름세를 불러온 결정적인 원인이었는지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하다. 다만 최근 서울 지역 아파트 가격 상승에 불쏘시개 역할을 한 것은 분명하다. ‘부동산 연착륙’이라는 정부의 오랜 정책 목표와 어긋나자 정부가 나서 불을 끈 것이라는 평가도 있다. 지난해 10월부터 기준금리 인하가 이어지는 가운데 가계대출 관리와 지방 미분양 해소에 공을 들였던 정부로서는 과도한 유동성이 서울 아파트로만 집중되는 것을 지켜보고만 있을 수 없었다는 얘기다.

오 시장이 토지거래허가구역 해제라는 중요한 정책을 결정할 때 정부 관련 부처와 제대로 협의도 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독단적이며 온탕·냉탕을 오가는 정책 결정은 시장에 불안과 혼란을 초래했다는 비판에 직면하고 있다. ‘정책 일관성’이라는 가치가 불과 몇 주 만에 뒤집힌 탓이다. 한 치 앞을 내다보기 힘든 정책 결정의 혼돈 속에 가장 큰 자산을 걸어야 하는 시장 참가자들은 분개하고 있다. 오 시장의 대선 행보 가운데 하나였다면 독이 된 것도 분명하다. ‘갈팡질팡’ 정책, 일관성 놓쳐
한 달간의 카오스… ‘강·서·송·용’은 어떻게 토지거래허가구역이 됐나[혼돈의 부동산①]
총 14.4㎢에 달하는 잠·삼·대·청의 토지거래허가구역 재지정 여부는 시장의 주목을 받아왔다. 서울시는 1년씩 총 4번에 걸쳐 이들 지역에 대한 지정을 연장했다. 지난해 6월에는 다시 올해 6월 22일까지 1년간 토지거래허가구역을 연장했는데 이 기간을 채우면 5년째가 되는 것이었다.

게다가 서울시는 지난해 아파트 외에 다세대, 오피스텔에 대한 규제는 해제한 상태였다. 이 같은 규제완화 기조가 이어진다면 아예 구역 연장이 되지 않으리라는 기대감이 컸다. 토지거래허가구역에 묶이면 실수요자만 아파트를 매수할 수 있고 전월세를 끼고 집을 사는 일명 ‘갭투자’가 불가하다. 따라서 구역 지정 해제 시 투자수요가 진입하며 거래가 활성화되는 측면이 있다.
그런데 오 시장은 6월이 한참 남은 지난 2월에 지정 해제를 결정했다. 앞서 군불도 땠다. 1월 14일 열린 ‘규제풀어 민생살리기 대토론회’에서 토지거래허가구역을 해제해 달라는 한 시민의 요청에 오 시장은 “토지거래허가제는 재산권 행사를 임시로 막아놓은 것”이라며 “해제를 적극 검토하고 있다”고 답변했다.

서울시는 곧 14개 재건축 아파트를 제외한 잠·삼·대·청 지역의 토지허가구역 지정을 해제했다. 이전 두세 달간 부동산 거래량과 시세가 안정화에 접어드는 추세라는 점도 바탕이 됐다. 서울시는 시민 의견에 신속하게 대응하는 동시에 시민들의 재산권을 보호하고 부동산 활력이 제고될 것으로 기대된다고 밝혔다.

이런 움직임에 대해 오 시장이 대권을 겨냥해 발 빠르게 움직였다는 분석이 나왔다. 기존 토지거래허가제 해당 지역들은 모두 여당 지지층이 두꺼운 곳이므로 ‘집토끼’들을 겨냥한 규제완화책을 썼다는 것이다. 단기간에 여론의 주목을 받는 데도 성공했다. 한 정치권 관계자는 “오 시장이 당내 조직은 부족한 편이지만 여러모로 유력한 대권주자인 것은 맞다”며 “(오 시장이) 전 국민이 주목할 만한 부동산 정책에 공을 들여온 것도 사실”이라고 말했다.

서울시 관계자는 “토지거래허가구역 해제가 대선과 관련된 결정이라고 하기에는 강남 표만 미칠 수 있어 영향이 제한적”이라며 “예상치 못한 집값 상승으로 인해 정부와 충분히 협의해 다시 규제에 나선 것”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집값 상승을 예상하지 못했다는 말은 부적절하다. 예상하지 못했다면 오 시장과 정책 관련자들이 무능한 것이고 알고도 했다면 무모한 결정이라고 할 수 있다. ‘지방 살리기’ 나선 정부 ‘당혹’
한 달간의 카오스… ‘강·서·송·용’은 어떻게 토지거래허가구역이 됐나[혼돈의 부동산①]
지난 토지거래허가구역 해제 이후 서울 집값 상승폭은 커졌다. 한국부동산원이 18일 발표한 ‘3월 둘째주(10일 기준) 전국 아파트가격 동향’에 따르면 서울 아파트 매매가격은 0.20% 올랐다. 이는 2월 둘째주 0.02%에서 2월 셋째주 0.06%, 2월 넷째주 0.11%, 3월 첫째주에는 0.14%로 계속 상승 곡선을 그렸다.
지정 해제 구역이 포함된 송파구와 강남구의 아파트 가격이 가장 가파르게 올랐다. 이 기간 송파구는 0.72%로 서울시 내 자치구 중 가장 큰 오름폭을 기록했고 강남구와 서초구가 각각 0.69%, 0.62%로 그 뒤를 이었다. 이는 7년 만에 가장 크게 상승한 것이었다. 이런 속도는 연간으로 환산하면 40~50% 상승이 가능한 수준이다.

가격 상승은 이 지역에 그치지 않았다. 토지거래허가제가 적용되지 않던 서초구나 ‘마·용·성’(마포·용산·성동), 경기도 과천 등 다른 선호지역에서도 아파트 가격이 크게 올랐다. “허가 구역 지정 해제 자체가 시장에 잘못된 신호를 준 것”이라는 분석이다. 정부에 따르면 올해 1월까지만 해도 35.2%로 서울 전체와 비슷했던 강남지역의 갭투자 비율은 한 달 만에 43.6%로 올랐다. 거래량도 대폭 증가하며 상승세가 인근 지역으로 전염됐다.
당황한 정부와 서울시는 즉각 진화에 나섰다. 지정 해제 당사자인 오 시장은 3월 10일 노후 공공임대주택 품질개선 단지를 방문한 현장에서 “약간의 가격 상승은 예상했다”면서도 “집값 상승이 과도하면 다시 규제하는 것도 검토하겠다”고 말했다. 사흘 뒤 박상우 국토교통부 장관이 “토지거래허가구역 해제가 집값 상승 기폭제가 된 측면이 있다”고 발언하며 오 시장을 직격했다. 사태가 이렇게 되자 서울시도 현장 단속에 나섰다. ‘설마’라는 일각의 반응에도 강남권 토지거래허가구역 재지정은 점차 기정사실화하기 시작했다.
한 달간의 카오스… ‘강·서·송·용’은 어떻게 토지거래허가구역이 됐나[혼돈의 부동산①]
강남과 인근 지역 집값이 기세 좋게 올랐지만 지방은 오히려 더 차가워지고 있다. 오랜 미분양이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부실의 뇌관으로 작용하고 있다. 주춤하던 전국 아파트 미분양 물량은 최근 들어 다시 증가하고 있다. 특히 ‘악성 미분양’이라 불리는 준공 후 미분양이 올해 1월 기준 2만2872가구로 11년 만에 최대치를 찍었다. 그중 80%가 지방에 쌓여 있는 상태에서 평택 등 경기도 외곽까지 미분양 현상이 확산하는 추세다.

부동산 경기와 함께 불황을 맞이한 경매시장에선 강남권 아파트에만 응찰자가 집중되고 있다. 지지옥션에 따르면 올해 2월 법원 경매에서 강남구 청담동 상지리츠빌카일룸이 최고 낙찰가, 송파구 가락동 ‘헬리오시티’가 최다 응찰자 수를 기록한 가운데 강원, 전남 등 지방 비(非)광역시의 낙찰률은 하락세를 보였다.
이처럼 지방 분양시장 침체로 신동아건설, 삼부토건, 대우조선해양건설, 벽산엔지니어링 등 유명 건설사가 연달아 기업회생신청에 나섰다. 높아진 금리, 지방 경기침체도 문제지만 주택구매 여력이 있는 지방 투자자들도 ‘똘똘한 한 채’인 서울 아파트에만 관심을 보이고 있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정부는 지방 미분양에 한해 규제를 점차 풀고 있었다. 수도권에는 공급을 늘리겠다는 시그널을 끊임없이 보냈다. 서울 아파트 대기수요가 당장 매수에 나서지 않도록 시간을 벌고 가격 상승을 억제하기 위해서였다.

지난해 1월 10일(1·10 대책) 국토부는 ‘국민 주거안정을 위한 주택공급 확대 및 건설경기 보완방안’을 통해 지방 준공 후 미분양 주택을 매수하면 취득·양도·종부세 산정 시 주택 수에서 제외하는 대책을 발표했다. 같은 해 8·8 대책에선 수도권 그린벨트를 대폭 풀고 재건축·재개발 사업 속도를 높이는 ‘패스트트랙’ 시행 계획을 밝혔다. 비상계엄 사태 이후인 올해 2·19 대책에는 한국토지주택공사(LH)가 지방 미분양 주택 3000채를 직접 사들이도록 하는 방침이 포함됐다.

토지거래허가구역을 확대 지정하기로 한 이번 3·19 대책에는 지방 미분양 주택 매입을 위한 전담조직을 신설하고 매입 공고를 21일 낸다는 방안도 담겼다. 이에 더해 정부·여당은 지방 부동산을 살리기 위해 다주택자 중과세 완화를 검토하던 중이었다. 다음 결정, 6개월 뒤
오세훈 서울시장, 박상우 국토교통부 장관이 19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주택시장 안정화 방안 브리핑을 마치고 인사하고 있다. 사진=최혁 기자
오세훈 서울시장, 박상우 국토교통부 장관이 19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주택시장 안정화 방안 브리핑을 마치고 인사하고 있다. 사진=최혁 기자
정부가 토지거래허가제 강화뿐 아니라 조정대상지역, 투기과열지구를 재지정할 수 있다고 나서면서 거래량은 다소 진정될 가능성이 크다.
그럼에도 논란의 불씨는 여전히 남아 있다. 이번 토지거래허가구역 지정 기간은 3월 24일부터 6개월에 불과하다. 헌법재판소의 대통령 탄핵심판 선고를 앞둔 ‘리더십 공백’ 상태에서 공을 미래로 넘긴 것이다. 정책이 지속되지 않고 번복되는 과정을 목격한 시장 참가자들이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움직일 수 있다.

이은형 대한건설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정책은 일관되고 예측 가능해야 하는데 지금처럼 단기에 번복되는 것은 바람직하지 못하다”며 “이번에 5년간 적용되었던 토허제가 해제되면서 가격이 변동되는 것을 수요자들이 봤으니 ‘다음에도 그러겠지’라는 심리가 생길 수 있다”고 분석했다.

장소희 신한투자증권 수석연구원은 “정책의 변동성이 커지며 수요자들이 더 강력한 규제책 전에 사자는 막차 심리가 인근 지역(마포·성동·강동 등)에 대한 풍선효과로 나타날 것”이라고 전망했다. 갭투자 수요가 막히는 지역이 확대되면서 전월세 공급이 감소하는 현상 또한 임대차 시장의 불안을 부추길 수 있다.
강영훈 부동산스터디 대표는 “그동안 규제에 의해 억눌린 대기수요가 매수로 인해 어느 정도 해소돼야 강남 집값 상승의 불씨가 잡힐 것으로 예측했으나 강남권 토지거래허가구역 해제 후 거래량 증가 추세를 보면 이 같은 잠재수요가 대체 얼마나 있는지를 파악하기가 어렵다”고 설명했다. 강 대표는 “결국 6개월 뒤 시장이 어떻게 변할지 모르는 상황에서 정책 기조는 또 달라질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전망했다.‘투기 잡는다’ 토지거래허가구역의 정체는?
토지거래허가구역은 투기가 성행하거나 지가가 급격히 상승할 가능성이 높아 토지거래를 허가받도록 하는 지역을 뜻한다. 대지권을 포함한 아파트, 상가 등 구분 부동산 거래 또한 적용 대상이 된다. 적용 대상이 된 아파트는 소유주가 실거주하고 상가 등은 실사용해야 한다.

1978년 도입된 뒤 ‘국토의 계획 및 이용에 관한 법률’에 바탕을 두던 토지거래허가제도는 2017년 ‘부동산 거래신고 등에 관한 법률’ 제정과 함께 해당 법에 근거를 두게 됐다. 부동산거래법 10조에 따르면 토지거래허가구역은 국토교통부 장관이나 시도지사가 지정한다. 허가 대상 구역이 2개 이상 시도에 걸쳐 있으면 국토부 장관이, 한 개 지역에만 포함되면 서울시장이 지정하게 된다. 즉 이번 강남3구·용산에 대한 토지거래허가구역 지정은 서울시가 맡는다.

또 주택은 사실상 실거주용으로 이용하려는 경우에 한 해 시장, 구청장, 군수로부터 허가를 받을 수 있다. 개인이 거래한 뒤 계약 신고만 하면 되는 일반적인 형태와는 달리 까다롭다. 부동산 거래법 12조는 자치단체장은 ‘자기의 거주용 주택용지로 이용하려는 경우’ 등 토지이용목적을 확인한 뒤 거래를 허가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를 위해 매수인은 거래를 허가받을 때 토지거래 허가 신청서와 매매계약서 사본, 토지이용계획서(토지를 어떻게 이용할 것인지 구체적으로 명시), 자금조달계획서, 인감증명서 등을 제출한다. 또 사용목적(주택은 2년 이상 거주)을 어기면 이행강제금이 부과된다.

지정 기간은 5년 이내이며 서울시에서는 1년간 지정한 뒤 재지정하는 방식으로 규제를 이어왔다. 현재 허가 주체는 각 자치구청이다. 이처럼 지정기간이 끝나는 지역을 다시 지정하려면 중앙도시계획위원회 또는 시도별 도시계획위원회의 심의를 받아야 한다. 강남3구·용산 소재 아파트 총 2200여 단지 40만 호에 대해서도 서울시 도시계획위원회 의결을 거쳤다. 결국 도계위를 통해 언제든 구역 지정을 연장할 수 있다는 뜻이다.

통상 땅투기꾼들이 몰리는 신도시 개발예정지 일대에 지정되던 토지거래허가구역은 2020년 문재인 정부의 6·17 대책을 통해 서울 집값을 잡는 규제책으로 등장했다. 잠·삼·대·청은 당시 처음으로 토지거래허가구역으로 지정됐다. 2018년 고(故) 박원순 전 시장이 강남구 삼성동 글로벌비즈니스센터, 송파구 잠실동 종합운동장을 중심으로 한 ‘국제교류복합지구 개발 계획’을 밝히면서 시세 상승 압력이 높아진 지역이라는 이유였다.
2021년 임기를 시작한 오세훈 시장은 신속통합기획을 통해 재개발·재건축 사업을 촉진하는 한편 투기수요 차단을 위해 압구정, 목동, 여의도 아파트지구와 성수전략정비구역 등을 토지거래허가구역으로 지정했다. 오 시장은 지난해 정부의 ‘8·8 주택공급 확대방안’에 발맞춰 그린벨트 해제를 발표하는 자리에서 “토지거래허가구역 확대에 대해 깊이 검토하고 있다”면서 강남3구 및 용산에 대한 지정 확대를 이미 시사한 바 있다. 서울시는 8월 7일 도계위를 열어 서울 그린벨트 125.16㎢를 토지거래허가구역으로 지정했다.


민보름 기자 brmi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