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고 한동안 K컬처는 활력이 떨어지는 듯했습니다. 하지만 작년 10월 한강 작가는 노벨문학상을 수상하며 새로운 장을 열었습니다. 12월 3일 계엄과 내란도 국민 스스로의 힘으로 넘어섰습니다. 짜놓은 각본처럼 K컬처도 다시 빛을 내기 시작합니다. 6월은 K컬처의 달이라고 해도 될 듯했습니다. 척박한 환경에서 제작된 한국 뮤지컬 ‘어쩌다 해피엔딩’이 미국에서 토니상을 수상한 것이 시작이었습니다. 이어 공개된 ‘오징어 게임3’는 넷플릭스의 모든 TV쇼 차트를 석권했습니다. 동시에 넷플릭스에 올라간 애니메이션 영화 ‘케이팝 데몬 헌터스’는 그야말로 세계적 열풍을 일으키고 있습니다. 이 시기 한국 주가는 다시 3000선을 넘어서며 2021년 7월 기록한 사상 최고치에 도전하고 있습니다. 묘한 기시감이 느껴집니다.
2021년과 2022년 K컬처에 대한 우려도 있었습니다. 기생충, 오징어 게임, BTS로 상징되는 그 시기가 K컬처의 정점이 아닐까 하는 우려였습니다. 일각에서는 “내부 시스템이 망가진 K컬처는 내리막을 걷고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하지만 그보다 더 설득력 있는 설명은 “수많은 ‘K’가 세계인들의 삶 속으로 들어갔기 때문에 이벤트가 두드러져 보이기 힘든 새로운 단계에 접어들었다”는 것이었습니다. 식품, 화장품, 패션 업체들의 글로벌 진출이 확대되고 한국을 찾는 외국인이 다양해진 것이 그 증거였습니다. 하지만 긴가민가했던 것도 사실이었습니다.
이런 우려를 한 방에 날려버린 작품이 ‘케이팝 데몬 헌터스’였습니다. K팝을 소재로 한국의 전통과 현대 문화적 요소를 빼곡히 집어넣은 애니메이션이 영화, 음악 모두 큰 성공을 거둠으로써 “K만 들어가면 돈이 된다”는 얘기까지 나오게 했습니다. 매기 강 감독은 이를 ‘코리아니즘’이라는 단어로 표현했습니다.
이 애니메이션을 계기로 확실히 달라진 것이 있다면 K컬처의 방향성입니다. 지금까지 K컬처는 세계를 향해 “사달라”, “봐달라”고 구애했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그들이 가져다 쓰기 시작했습니다. K컬처의 주체가, 담지자가 달라졌다는 표현도 틀리지 않을 듯합니다. “K컬처가 한국만의 것이 아니라 하나의 장르로서 세계인들이 K를 소비하는 추세”라는 평가는 적절해 보입니다. 아울러 소비의 대상이 K팝, 영화뿐 아니라 애니메이션에 등장하는 공간과 캐릭터, 상품 등으로 확대될 가능성도 보여줬습니다. 앞으로 수많은 새로운 기획이 탄생할 가능성을 열어준 측면도 있습니다.
그렇다고 K컬처가 미국과 영국 등 서구사회에서 주류가 됐다는 것은 아닙니다. 미국 내에서도 비주류 문화를 선택하는 데 주저하지 않는 서부에 K팝 팬들이 집중돼 있는 것만 봐도 알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 비주류에서 주류가 됐다는 것을 확인한 것이 ‘케이팝 데몬 헌터스’ 흥행의 또 다른 포인트 아닐까 합니다. 조금 늦었지만 ‘케이팝 데몬 헌터스’를 커버스토리로 다룬 이유입니다.
길게 보면 K컬처의 확산에는 행운도 따랐습니다. 할리우드 영화와 팝송으로 대변되는 미국 문화는 패권을 잃었고, 유럽 문화는 선뜻 다가서기 힘들었고, J팝과 망가 등 일본 문화는 시들해진 시기, 세계는 한동안 문화적 공백기였습니다. 이 공백을 K컬처는 독특한 매력으로 메꿔갔습니다. 때마침 급성장하던 유튜브와 넷플릭스라는 플랫폼은 K컬처의 도약대 역할을 했습니다.
성과는 항상 숙제도 남겨 줍니다. 플랫폼 없는 성장이 지속가능한 것인지, 국내 드라마와 영화 제작 시스템의 붕괴는 수습 가능한 것인지, K컬처의 주체가 다양해지면 고유성은 어떻게 유지할 것인지 등이 그것입니다.
정부가 K콘텐츠에 대한 지원을 아끼지 않겠다는 뜻을 밝힌 만큼 숙제의 일부라도 해결되길 기대해 봅니다. 원칙은 분명하겠지요. 예술 지원의 ‘팔길이 원칙’이 그것입니다. “지원하되 간섭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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