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경제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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첨단 무기체계의 도입이 늘어나면서 우리 군의 정비 체계는 근본적인 변화를 요구받고 있다. 한때는 고장이 발생하면 단순 부품을 교체하고, 주기적인 창정비를 통해 장비를 되살리는 방식으로 충분했다. 그러나 이제 육·해·공군이 운용하는 무기체계는 전자화·다기능화되어 모듈 단위로 교체해야 하고, 단순 복구를 넘어 성능 개량까지 포함하는 정비가 불가피하다. 문제는 이 같은 변화 속에서 군 자체 인력만으로는 한계가 뚜렷하다는 점이다. 바로 이 점에서 MRO(maintenance, repair, overhaul)와 민간의 적극적 참여가 중요한 해법으로 떠오르고 있다.

현재 해군 정비 지출의 절반 가까이가 외주로 이루어지고 있으며, 공군은 항공기 정비에서 해외 원제작사에 크게 의존한다. 육군 역시 방대한 기동장비를 유지하는 데 여전히 병력 중심의 정비에 의존하고 있어 전문성이 부족하다. 결국 전군 공통의 현실은 ‘민간 없이는 지속 가능한 정비가 어렵다’는 사실이다. 방산 수출이 늘어나는 상황에서 해외 고객국은 구매 이후의 후속 군수지원까지 요구한다. 따라서 MRO는 단순한 지원 개념을 넘어 국가 방위력과 방산 경쟁력의 핵심 요소로 자리 잡고 있다. 정책의 흐름을 짚어보면 더욱 분명하다. 이명박 정부는 항공 MRO 산업 기반 조성에 나섰고, 박근혜 정부는 지자체 중심의 MRO 클러스터를 추진했으나 지속성 부족으로 한계를 드러냈다. 문재인 정부에서는 국정과제 속에 MRO 민간 활성화가 명시되었고, 윤석열 정부 들어서는 ‘K-방산’ 수출 확대에 따라 후속 군수지원 문제가 본격적으로 떠올랐다. 즉 정책의 초점은 산업 기반에서 민간 참여, 그리고 수출 연계로 점차 발전해 온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실은 녹록지 않다. 첫째, 표준화 부재다. 군별·장비별로 상이한 절차와 기술 문서 체계는 신규 업체의 진입을 어렵게 하고, 정비 품질의 일관성을 떨어뜨린다. 둘째, 해외 의존이다. 공군 항공기나 해군 함정 정비의 상당 부분은 해외 원제작사에 맡겨지고 있으며, 그 결과 비용은 상승하고 소요 기간은 늘어난다. 셋째, 민간의 기술력 부족이다. 해외 정비품 국내 전환 제도의 성과를 보면 승인된 품목의 절반 이상이 실패했는데 가장 큰 이유가 업체의 기술적 역량 부족이었다. 넷째, 경제성 문제다. 신품 대비 65%를 초과하는 정비비용은 국내 전환을 불가능하게 만들고, 초기 투자비와 기술개발비가 과도해 업체들이 중도에 포기하는 사례가 속출했다.

이 난제를 돌파하기 위해서는 다음의 네 가지 해법이 필요하다. 첫째, 정비 체계의 표준화다. 부품 호환성과 절차 매뉴얼을 표준화하면 신규 업체의 참여가 쉬워지고 품질 관리가 가능해진다. 미 해군 NAVSEA의 3-M 시스템은 좋은 벤치마킹 대상이다. 둘째, 성과 기반 군수지원(PBL) 협력 네트워크다. 대기업과 중소기업이 성과 목표를 공유하고 보상 체계를 운영하는 구조를 도입하면 단순 하도급이 아니라 동반성장형 생태계가 만들어진다. 셋째, 경제성 확보를 위한 제도 개선이다. VE(Value Engineering) 제도를 통해 비용 절감액을 기업과 공유하고, NRCs(비반복 비용) 완화와 CPIF(성과연동형 비용보상) 계약 방식을 통해 초기 진입 장벽을 낮춰야 한다. 넷째, 기술력 향상 지원체계다. 기술 자문, 정비 데이터 공유, 표준화된 교육훈련 플랫폼은 민간의 역량을 키우고, 장기적으로는 AI 기반 예지 정비로 발전할 수 있다.

우리 군의 정비 문제는 단순한 행정이나 기술적 문제가 아니다. 인구 절벽으로 인해 정비 인력은 줄어드는 반면, 첨단 무기체계는 늘어나고 있다. 동시에 방산 수출은 후속 지원 역량을 전제로 해야 지속가능하다. 이 모든 요인이 맞물린 지금, 민군 협력형 MRO 체계 구축은 더 이상 선택이 아닌 필수다. 표준화, 협력 네트워크, 제도 개선, 기술 지원이라는 네 축이 조화롭게 작동할 때 전군의 MRO는 민간과 함께 발전하며 글로벌 수준의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다. 이것이 ‘K-방산’이 일시적 유행을 넘어 지속가능한 산업으로 자리 잡는 길이다.

김홍유 경희대 교수(한국방위산업협회 정책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