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대형 증권사들은 녹색채권 주선에서 벗어나 직접 투자와 전환금융, 탄소배출권 사업, 금융배출량 관리로 녹색금융의 범위가 확대되는 추세를 보이고 있다.
[금융, 산업의 녹색전환 이끈다]
국내 대형 증권사들의 녹색금융 경쟁이 자본조달 주선에서 직접투자와 기후 리스크 관리로 확장되고 있다. 기업의 녹색채권 발행을 돕고 재생에너지 사업의 자금조달을 주선하는 데서 더 나아가 자기자본과 펀드를 활용해 친환경 사업에 투자하고 투자 포트폴리오에서 발생하는 탄소배출량까지 관리하는 흐름이 나타나고 있다.
미래에셋증권과 한국투자증권, NH투자증권, KB증권, 신한투자증권이 최근 발간한 <2025 지속가능경영보고서>를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증권사의 녹색금융은 녹색·지속가능채권의 발행과 인수, 재생에너지와 친환경 인프라 금융, 자기자본·펀드를 통한 투자, 금융배출량과 기후위험 관리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증권사는 은행처럼 기업에 장기대출을 공급하기보다 기업과 투자자를 자본시장에서 연결하는 데 강점이 있다. 회사채 발행과 프로젝트 금융, 펀드 조성, 자기자본 투자를 결합해 대규모 녹색사업의 자금구조를 설계할 수 있다. 최근 보고서에 나타난 변화는 녹색금융을 투자은행(IB) 사업의 일부가 아닌 중장기 성장 분야로 다루는 증권사가 늘어난 배경이다.
다만 회사별 실적을 단순 비교하기는 어렵다. 일부 증권사는 녹색채권과 사회적채권을 합친 ESG 채권 실적을 공개하고, 일부는 자기자본 투자와 고객 대상 금융상품 판매까지 지속가능금융에 포함한다. 녹색채권뿐 아니라 사회적 채권과 ESG(환경·사회·지배구조) 펀드, 고객 판매상품까지 포함하는 회사가 있는 반면 채권 인수나 친환경 프로젝트파이낸싱(PF)만 별도로 집계하는 회사도 있다.
5대 증권사, 녹색채권 넘어 전환금융·탄소시장으로
국내 대형 증권사들은 녹색채권 발행과 친환경 프로젝트 금융을 넘어 전환금융, 탄소배출권, 금융배출량 관리로 녹색금융의 범위를 넓히고 있다.
미래에셋증권은 기업금융과 투자·운용, 개인고객 금융상품을 하나의 지속가능금융 체계로 관리한다. 2025년 말 실적은 48조1000억 원으로, 2030년까지 80조 원을 공급한다는 목표를 세웠다. 금융배출량 관리와 전환금융, 재생에너지 금융주선을 중장기 과제로 추진하고 있다.
한국투자증권은 채권 인수와 구조화금융 역량을 활용한 자금조달 지원에 초점을 맞췄다. 2025년 ESG 채권 인수액은 1조8590억 원으로 집계됐으며, 친환경 산업뿐 아니라 고탄소 업종의 감축 투자를 지원하기 위한 전환금융 체계도 구축하고 있다.
NH투자증권은 탄소금융과 기후위험 관리에서 차별화를 꾀하고 있다. 2025년 탄소배출권 위탁매매 시스템을 도입하고 기후테크 기업의 해외 진출 지원에 나섰다. 이와 함께 금융배출량과 투자 포트폴리오의 물리적·전환 위험을 시나리오별로 분석하고 있다.
KB증권은 ESG 채권 인수와 유동화증권 발행 주관, 탄소배출권 시장조성을 병행한다. 2025년 지속가능금융 채권 인수와 유동화증권 발행 주관 실적은 1조4364억 원이다. 녹색채권뿐 아니라 감축목표 달성 여부에 따라 금융조건이 달라지는 지속가능연계채권도 주요 사업으로 확대하고 있다.
신한투자증권은 친환경 펀드와 프로젝트금융, 기업대출, 녹색채권 투자를 함께 운영하고 있다. 2025년 친환경 금융 지원액은 7140억 원으로, 자체 녹색여신 관리지침을 마련해 대출 전 적합성 심사와 실행 후 자금 사용 점검을 연계했다. 금융배출량 감축과 환경·사회 위험 심사도 병행하고 있다.
녹색채권에서 ‘자본시장 전환 플랫폼’으로 부각
증권사의 보고서에 따르면 초기 ESG 금융은 녹색채권을 얼마나 많이 발행하고 인수했는지가 핵심 지표였다. 최근에는 재생에너지와 자원순환 인프라의 사업성을 분석하고, 자기자본과 펀드 자금을 투입하며, 투자 이후의 환경성과와 기후리스크를 관리하는 역량이 중요해지고 있다.
증권사별로는 차이도 뚜렷하다. 미래에셋증권은 기업금융과 투자·운용, 개인 금융상품을 포괄하는 지속가능금융 체계를 구축하고 중장기 공급 목표를 제시했다. 한국투자증권과 KB증권은 회사채 시장의 강점을 활용해 녹색·지속가능채권 발행을 지원한다.
NH투자증권은 기후테크처럼 위험이 높은 성장 분야에 자본을 공급하고 기후 시나리오와 금융배출량 관리를 결합하는 방향이 두드러진다. 신한투자증권은 그룹의 넷제로 전략과 환경·사회 리스크 관리체계를 자본시장 투자와 연결하고 있다.
향후 사업 범위는 전환금융으로 더 넓어질 것으로 보인다. 한국투자증권은 전환금융 프레임워크를 구축하고 있으며 미래에셋증권도 전환금융 확대를 2030년 핵심과제에 포함했다. 신한투자증권은 녹색·전환 금융 지원을 위한 녹색여신 기준을 마련했다.
공시의 비교 가능성은 여전히 과제로 지목된다. 미래에셋증권의 48조1000억 원에는 기업금융과 운용, 고객 판매상품이 포함되지만 한국투자증권의 1조8590억 원은 ESG 채권 인수액이다. KB증권의 1조4364억 원에는 ESG 채권 인수와 자산유동화증권 발행 주관 실적이 포함되고 신한투자증권의 7140억 원은 친환경 펀드와 PF, 기업대출, 녹색채권 투자를 합산한 수치다.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현재 배출량이 많은 기업에 자금을 공급하는 만큼 전환금융은 그린워싱 위험도 크다”며 “기업이 명확한 감축목표와 투자계획을 제시했는지, 목표가 국가 탄소중립 경로와 부합하는지, 조달한 자금을 실제 감축사업에 사용했는지 등을 반드시 확인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미경 기자 esit917@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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