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 한국경제 최고의 리더 - 글로벌혁신경영 부문
김 회장의 삶은 일본에서 기업을 키우면서도 늘 조국을 향해 있었다. 부친의 타계로 가업인 건설·부동산 사업을 물려받은 그는 25세에 종업원 200명 규모의 중견기업으로 회사를 키워냈다. 이에 안주하지 않고 1980년대 선제적으로 실리콘밸리에 진출해 IT 기업을 설립하며 사업 지평을 넓혔다. 성공의 열매는 고스란히 조국으로 향했다. 1988년 서울올림픽 개최를 앞두고 30대 청년 사업가로서 5000만엔을 쾌척했고 초기 신한은행 설립 자금 지원 등 한국 경제 발전의 숨은 조력자 역할을 묵묵히 수행했다.
그의 리더십이 가장 빛나는 영역은 수면 아래서 쉼 없이 이어온 ‘민간 외교’다. 2002년 한·일 월드컵을 앞두고 부산과 후쿠오카를 잇는 해저 광케이블 부설을 주도한 일화가 대표적이다. 그는 2년간 일본 규슈전력과 한국 KT, NTT 등을 끈질기게 설득해 200억엔 규모의 합작 인프라를 탄생시켰다. 1999년부터는 간사이 경제동우회 방한단을 기획해 한·일 기업인과 정치인, 외교 전문가들의 만남을 주선해 왔으며 9월 초에도 어김없이 제23회 방한단 기획을 이끌었다.
그의 헌신은 경제를 넘어 학술과 문화로 뻗어가고 있다. 와세다대와 전남대의 ‘화해학 포럼’을 성사시키며 과거사 치유의 학술적 기반을 마련했고 그 공로로 2024년 전남대 명예박사 학위를 받았다. 지난해 풍산그룹 류진 회장과 의기투합해 영친왕비 이방자 여사를 조명한 오페라 ‘라스트 퀸’ 서울 공연을 성사시킨데 이어 지난 7월 도쿄 긴자에서 개선 공연까지 성공적으로 마쳤다. 조국을 찾았던 소년의 진심이 지난해 3월 서울대 총동창회 관악대상 수상이라는 영예로 돌아온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팔순의 김 회장이 지금 간절히 부르짖는 시대적 화두는 ‘한·일 경제연대’다. 미국 보호주의와 중국의 맹추격, 저출산·고령화라는 동병상련의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양국이 뭉쳐야 한다는 것이다. 한국과 일본의 경제 규모를 합치면 GDP 6조달러, 2억 명의 내수 시장을 가진 세계 4위 경제권이 탄생한다. 에너지 공동 구매부터 반도체, 인공지능(AI) 첨단기술 협력까지 평생을 바쳐 한·일 양국의 거리를 좁혀온 김덕길 회장의 불타는 집념은 이제 굳건한 경제 동맹이라는 더 큰 미래를 향해 뜨겁게 뛰고 있다.
이홍표 기자 hawlli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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