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니스 포커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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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연자가 이렇게 질문하자 무대 위를 거닐던 로봇이 소리가 들리는 방향으로 몸을 돌려 움직이기 시작했다. 이후 시연자에게 다가가더니 “전극 제조 공정 중 코팅장비입니다”라고 대답하며 궁금증을 단번에 해결해줬다. 이뿐만이 아니었다. 연이어 로봇은 “2차전지 전극 코팅장비는 배터리의 양극과 음극을 만드는 배터리의 핵심설비”라고도 부연하는 등 장비에 대한 상세한 설명도 덧붙였다. 사람의 말을 알아듣고 척척 설명해내는 것이 오랫동안 현장을 지켜온 베테랑 엔지니어가 안내하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켰다.
이 로봇은 제조 인공지능(AI) 전문기업 시즐(SIZL)이 자체 개발 중인 제조 피지컬 AI다. 시즐은 9월 3일 서울 소공동 롯데호텔 서울에서 한국후지쯔가 개최한 ‘마스커컨트롤 코리아 유저 그룹 2026(MasterControl Korea User Group 2026)’에 참여해 자체 개발 중인 제조 현장용 AI 코파일럿(Copilot) 로봇을 시연했다. 이번 행사는 제약 및 바이오 산업 등 품질 규제와 데이터 신뢰성이 매우 엄격하게 요구되는 환경에서 AI를 실제 제조 현장에 어떻게 적용할 것인지가 핵심 주제였다.
박경주 한국후지쯔 대표이사는 “기업의 디지털전환은 데이터를 시스템에 축적하는 단계를 넘어 AI가 데이터를 이해하고 실제 업무와 연결하는 방향으로 진화하고 있다”며 이번 행사의 취지를 설명했다.
고령화 위기 빠진 중소 제조업
시즐은 이 자리에서 단순히 제조 데이터를 보여주거나 분석하는 수준을 넘어 작업장의 실시간 상황을 종합적으로 인식하고 AI의 판단을 로봇의 자율 이동과 작업 수행으로 연결하는 제조 로봇을 무대에서 직접 시연했다. 청중들도 여기에 큰 관심을 보였다.
시즐의 로봇은 작업자가 업무를 지시하면 내부에 탑재된 AI가 사용자의 의도를 이해하는 것이 특징이다. 필요한 제조 데이터를 조회한 뒤 작업장의 실시간 상황을 확인하고 필요할 경우 로봇의 실제 이동까지 이어지는 구조다.
예컨대 작업자가 음성으로 새로운 프레스 장비의 위치 저장을 지시하면 로봇은 비전(Vision)과 라이다(LiDAR) 센서를 통해 작업공간을 파악한다. 그리고 자율주행으로 해당 장비 앞까지 정확히 이동한다. 아울러 이동 후에는 해당 장비의 세부 사항과 진척률은 물론 생산 품질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주변 온도와 습도를 사물인터넷(IoT) 센서를 통해 수집·분석해준다.
이날 시연에서도 작업자는 별도의 메뉴나 로봇 조작기를 사용하지 않고 로봇과 자연어로 대화하며 로봇을 작동시켰다.
시연자가 “작업이 언제 끝날 예정이야”라고 묻자 로봇은 “현재 진행 진척도로 보면 2주 후 제작이 완료될 예정입니다”라고 답했다.
시즐에 따르면 이 로봇의 경우 제조운영관리(MOM) 등 제조 시스템과 연동해 해당 공정 정보를 확인해 답변한다.
“이 작업장의 환경 상태를 확인해줘”라고 요청하면 Wi-Fi로 연결된 현장 센서와 시스템 데이터를 통해 작업환경 정보를 확인한다. 또 “프레스 설비 앞으로 이동해줘”라고 명령하면 로봇은 작업장 내 자신의 위치와 목적지를 인식하고 지정된 설비 위치까지 자율주행한다.
중요한 것은 이들 기능이 서로 독립된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시즐은 자연어를 제조 현장의 통합 인터페이스로 활용해 MES와 설비 데이터, IoT 센서, AI 에이전트 등 로봇의 이동 기능을 하나의 흐름으로 연결했다.
시즐 관계자는 “기존 생성형 AI가 화면 안에서 정보를 검색하고 답변하는 데 머물렀다면 시즐의 제조 로봇은 기업 내부 데이터와 물리적 작업공간을 동시에 이해하고 실제 행동까지 연결하는 AI를 지향한다”고 말했다.
시즐은 이 로봇을 활용해 인력 고령화와 구인난으로 몸살을 앓고 있는 국내 중소 제조업 현장에 새로운 혁신을 불러일으키겠다는 청사진을 내놨다.
전통적인 제조업 현장은 오랜 경험을 가진 숙련공의 감각에 의존하는 경우가 많다. 기계가 작동하는 미세한 소리나 진동만으로도 윤활유의 잔량이나 장비의 이상 유무를 잡아내는 식이다.
그러나 최근 현장 인력의 고령화가 급격히 진행되고 신규 인력 유입이 끊기면서 이들이 가진 독보적인 노하우가 단절될 처지에 놓였다. 이는 곧 중소기업의 생산성 악화와 제조업 전반의 경쟁력 저하로 이어질 수 있다.
시즐은 이러한 현장의 위기를 AI 기술로 정면돌파하겠다는 각오다. 시즐의 제조 로봇은 숙련공이 가진 오랜 경험과 직감을 데이터화하여 AI로 검증하고 체계화하는 역할을 한다.
물론 현장에 기술을 도입하는 과정이 순탄한 것은 아니다. 평생 몸으로 일을 배워온 현장 노동자들은 기술 도입 초기, 자신들의 일자리가 위협받거나 업무 방식이 바뀐다는 점에 거부감을 느끼고 반발할 수도 있다.
이에 대해 시즐 관계자는 “우리의 AI 기술은 현장 노동자를 대체하기 위한 것이 아니다”며 “오히려 이들이 평생 쌓아온 귀중한 노하우를 기록하고 강화하여 기업의 강력한 디지털자산으로 만들어주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기술이 인간의 일자리를 빼앗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능력을 보조하고 고도화하는 ‘상생형 AI’라는 설명이다.
시즐이 개발 중인 로봇은 현재 제조현장에 투입될 채비를 마친 상황이다. 시즐에 따르면 여러 제약사 및 관계 회사와 해당 로봇을 투입하기 위한 기술검증(PoC)을 준비하고 있다. 아울러 해외 기업들에도 러브콜을 받는 상황인 것으로 전해진다. 향후 제조업 외 산업으로도 기술 적용 범위를 넓힌다는 목표도 세웠다. 스마트팜과 스마트시티 등 다양한 영역에서 활용 가능성을 검토 중이다.
인터뷰-이지현 시즐 대표
모든 준비 마쳤다…내년 목표는 ‘기술특례상장’
어떻게 시즐이라는 회사를 만들게 됐나.
“제조업의 생산성과 경쟁력을 높이는 스마트팩토리를 더 많은 제조 현장에 보급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창업을 고민했을 당시 많은 제조기업이 노후 설비와 부족한 데이터 환경 때문에 스마트팩토리를 도입하지 못하는 현실을 현장에서 직접 봤다. 값비싼 설비를 모두 교체하는 방식이 아니라 기존 설비를 연결해 공장을 더 똑똑하게 만드는 방법이 필요하다고 생각했고 그것이 시즐 창업의 출발점이었다.”
어려움도 많았을 것 같다.
“초창기엔 기업들에 ‘비싼 기계를 새로 사지 마시고 낡은 기계의 뇌만 AI로 바꿔 쓰시라’고 설득했다. 노후 설비에 컨트롤러를 연결해 데이터를 직접 수집하고 제어하는 기술부터 만들며 제조 현장의 데이터 기반을 하나씩 구축해 나갔다. 그 과정에서 데이터를 수집하고 연결하는 것만으로는 현장의 인력 부족과 생산성 문제를 해결하기 어렵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래서 제조 데이터를 기반으로 스스로 판단하는 AI 에이전트 기술을 개발하게 됐고 지금은 그 기술을 실제 현장에서 실행하는 피지컬 AI와 휴머노이드로 발전시키고 있다.”
시즐만이 가진 강점은.
“제조 현장의 데이터를 AI가 활용할 수 있는 형태로 자동 연결하고, 실시간으로 이해하며, 실제 실행까지 이어지는 전 과정을 자체 기술로 구현한다는 점이다. 시즐은 고비용 시스템 대신 현장 설비의 PLC 데이터를 직접 연결·수집하여 제조 AI의 기반이 되는 데이터 인프라를 구축했다. 이를 기반으로 독자적인 거대언어모델(LLM)과 지식 그래프를 결합해 AI가 스스로 공정 오류를 진단하고 대안을 제안하는 시스템을 완성했다. 이처럼 소프트웨어를 넘어 로봇과 유기적으로 상호작용하는 피지컬 AI 기술 우위를 바탕으로 최근 산업통상부,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중소벤처기업부 등 국가 산업을 총괄하는 정부 3대 핵심 부처의 대형 국책 사업을 연이어 석권하기도 했다.”
앞으로의 계획이 궁금하다.
“올해는 시즐의 피지컬 AI가 연구 단계를 넘어 실제 산업 현장에서 실증된 의미 있는 한 해였다. 2차전지 공정과 전라남도 실증 사업, 한국후지쯔 세미나 등을 통해 다양한 제조 환경에서 기술을 선보였고 이제는 이를 상용화하고 더 많은 산업 현장으로 확산하는 것이 다음 목표다. 내년에는 차세대 VLA(Vision-Language-Action) 모델을 적용한 피지컬 AI 고도화를 위한 실증 사업을 추진하며 기술 경쟁력을 한 단계 더 끌어올릴 계획이다. 이러한 탄탄한 실적과 검증된 기술력을 토대로 성공적인 기술특례상장(IPO)을 달성할 수 있도록 차분하고 흔들림 없이 사업을 전개해 나갈 것이다.”
김정우 기자 enyou@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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