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주서 약 만든다고?”…실험 넘어 생산 나서는 제약사들
우주가 글로벌 제약·바이오 기업들의 새로운 생산기지로 떠오르고 있다. 그동안 국제우주정거장(ISS)에서 의약품 개발을 위한 연구·실험에 머물렀던 기업들이 이제는 민간 우주 인프라를 활용한 상업 생산 준비에 나서면서다.

17일(현지시간)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글로벌 제약·바이오 기업들은 미세중력 환경을 활용한 의약품 연구와 제조 체계 구축에 속도를 내고 있다. 중력 영향이 거의 없는 우주에서는 세포와 입자가 균일하게 분포해 지상보다 정교한 단백질 결정화와 생체물질 제조가 가능하다.

제약업계는 수년간 우주에서 연구 성과를 축적해왔다. 미국 제약사 머크(MSD)는 ISS에서 진행한 단백질 결정화 연구 결과를 면역항암제 ‘키트루다’의 피하주사(SC) 제형 개발에 활용했다. 바이오기업 람다비전은 미세중력에서 단백질과 고분자를 쌓아 올려 인공망막을 만드는 기술을 개발 중이다. ISS에서 9차례 실험을 마쳤으며 2028년 임상시험 진입을 목표로 하고 있다.

인체 조직 및 장기 재현 연구도 진행 중이다. 아욱실리움 바이오테크놀로지스는 ISS에서 간과 신장, 연골 세포를 포함한 조직 구조물을 만드는 실험에 성공했다. 지상에서는 중력 때문에 입체 형태를 유지하기 어렵지만 우주에서는 보다 정교한 생체 조직 출력이 가능하다는 점에 주목한 결과다.

그동안 우주의약 분야의 한계는 생산 여건이었다. ISS는 공장이 아닌 연구시설인 탓에 공간과 우주비행사의 작업시간이 제한적이었다. 실험물 회수 일정 역시 독자적으로 잡기 어려워 대량 생산이나 반복 실험이 쉽지 않았다.

그러나 2030년 ISS의 운영 종료를 앞두고 판도가 바뀌고 있다. 미 항공우주국(NASA)은 저궤도 연구를 민간이 운영하는 우주정거장으로 이전하고 필요한 서비스를 구매하는 방식으로 전환할 계획이다. 이에 따라 액시엄스페이스, 스타랩, 배스트 등 민간 우주정거장 개발사가 등장했고 바르다스페이스는 우주에서 물질을 가공해 지구로 회수하는 무인 캡슐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민간 인프라가 확충되면 제약사는 생산 일정과 실험 횟수를 자체적으로 조절할 수 있게 된다. 연구 결과물을 정기적으로 지구에 운송하는 물류망까지 갖춰질 경우 우주는 실제 의약품 생산기지 역할을 수행할 전망이다.

다만 상업화를 위해 해결해야 할 과제도 남아 있다. 우주에서 제조된 의약품을 평가할 허가·품질관리 기준이 아직 미비하기 때문이다. 미국 식품의약국(FDA)과 NASA가 협력체계를 구축했으나 별도의 규제 절차는 아직 마련되지 않았으며 영국 등 일부 국가만 관련 규제 지침 제정에 착수한 상태다.

맥스 하오트 배스트 최고경영자(CEO)는 “우주 의약품 생산에서 명확한 규제 절차가 마련되지 않은 점이 운송 문제보다 더 장기적인 걸림돌이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한국 역시 우주의약 관련 연구에 속도를 내고 있다. 국내 우주의약 기업 스페이스린텍은 ISS에서 단백질 결정화 실험을 마친 데 이어 큐브위성을 활용한 후속 연구를 추진 중이다. 정부도 2030년까지 우주 제조와 지구 회수 전 과정을 실증하는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김세은 인턴기자 senii@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