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C 관리역이 스타트업과 함께하는 법

'내 뒤에 공은 없다'는 신념으로 현 한국 축구의 수비를 책임지는 김민재 선수처럼 스타트업계 든든한 풀백을 자처하는 'VC관리역' 연합뉴스)
'내 뒤에 공은 없다'는 신념으로 현 한국 축구의 수비를 책임지는 김민재 선수처럼 스타트업계 든든한 풀백을 자처하는 'VC관리역' 연합뉴스)
“런웨이가 얼마 안남았는데 다른 방법이 없을까요?”

투자한 지 1년이 지난 한 패밀리 대표님께서 나에게 이런 질문을 하셨다. 보통 후속 투자 연결은 투자팀에 문의하는 게 어떻겠냐고 답할 수 있었지만, 나에게 질문한 거라면 뭔가 절박한 사정이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먼저 회사의 현황을 파악해야 했다. 현재 남아있는 현금이 얼마인지, 매출 발생 시점은 언제인지, 다음 투자 라운드는 언제로 예상하는지를 확인했다.

바로 펀딩을 진행할 수 있는 상황은 아니었기에 다른 방법이 필요했다. 먼저, 이 회사에 적합한 정부지원사업을 알아봤다. 이곳은 이미 팁스(TIPS)를 진행하고 있었기에, 추가로 참여할 수 있는 지원사업을 검토했다.

또 기업은행이나 신용보증기금 등 스타트업을 대상으로 저금리 대출 상품을 제공하는 기관의 정보를 전달하기도 했다. 해당 패밀리는 자신들에게 가장 적절한 지원을 받게 되었고 현재도 사업을 안정적으로 꾸리고 있다.

이 외에도 행정적인 이슈도 자주 마주하게 된다. 예를 들어, 주주총회를 어떻게 개최해야 하는지, 법인 등기는 어떻게 처리해야 하는지 등의 질문을 많이 받는다. 내가 맡은 펀드는 결성된 지 얼마 되지 않아 이제 막 투자를 집행하는 단계다. 따라서 투자 과정에서 스타트업 대표를 직접 만나고 인사를 나누는 일이 잦다. 투자금 납입을 돕고, 투자 이후 필요한 서류를 정리하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패밀리와의 접점이 많아진 이유다.

이 과정에서 대표들의 고민과 질문을 자주 접하게 되는데, 내가 얼마나 적극적으로 돕느냐에 따라 패밀리뿐만 아니라 카카오벤처스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음을 실감한다.
카카오벤처스 동료들과 함께 워크샵에서(사진=본인제공)
카카오벤처스 동료들과 함께 워크샵에서(사진=본인제공)
이렇게 패밀리의 성장을 돕는 한편, 투자자와의 약속이 잘 지켜지는지 점검하는 컴플라이언스 역할도 맡고 있다.

VC 관리팀의 주요 업무 중 하나는 분기별로 패밀리의 재무자료를 취합하는 것이다. 단순한 반복 업무처럼 보일 수 있지만, 사후 관리 측면에서 중요한 단서를 발견할 수 있는 과정이다.

예를 들어, 재무제표를 통해 회사의 유동성이 충분한지, 현재 자금으로 얼마나 버틸 수 있는지, 차입 규모는 얼마나 되는지, 투자금을 적절하게 사용하고 있는지를 진단할 수 있다. 특히, 투자금이 적절하게 사용되고 있는지 확인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데, 투자자들은 인건비나 개발비 등 성장에 필요한 곳에 투자금이 사용되길 기대하지, 대표의 개인적인 용도나 사업과 무관한 지출에 사용되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 물론, 보다 정밀한 확인을 위해서는 실사가 필요하지만 재무제표만으로도 큰 그림을 파악할 수 있다.

법인등기부등본도 중요한 자료 중 하나다. 자본금 변동 내역이나 이사 변경 등 주요 경영 사항을 확인할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이런 사항들이 투자자와 사전에 논의되었는지가 핵심이다. 대부분의 스타트업 투자계약서에는 유상증자, 스톡옵션 부여 및 행사, 이사 선임 등에 대해 투자자의 사전 동의를 받도록 규정되어 있다.

간혹 이를 간과하고 진행하는 대표들이 있다. 관리팀에서 이러한 변동 사항을 발견하면 계약 내용을 다시 한 번 상기시켜 드릴 수 있고, 반복될 경우 리스크 요소(Red Flag)로 인식해 추가 조치를 고려하기도 한다.

스타트업의 성장 과정에서 법률적, 재무적 사항들은 단순한 절차가 아니라 지속적인 관리와 협의가 필요한 요소다. 패밀리가 사업 운영에 집중할 수 있도록 필요한 정보를 제공하고, 투자자와의 원활한 커뮤니케이션을 돕는 것도 관리팀의 중요한 역할이다. 결국, 사후 관리는 단순한 감시가 아니라 스타트업과 투자자가 함께 성공할 수 있도록 돕는 과정이다.

물론, 모든 패밀리가 원활하게 재무자료를 제공하는 것은 아니다. 회사 사정상 분기별 재무제표 작성이 부담스럽다는 이유로 양해를 구하는 경우는 그래도 이해할 수 있지만 갑자기 연락이 두절되는 경우는 당황스럽기 그지없다. 이런 상황에서는 단순히 포기하는 것이 아니라, 담당 심사역에게 사항을 공유해 더욱 주의 깊게 회사 상황을 살펴볼 수 있도록 조치하는 것이 관리역의 역할이다.

혹시 이 글을 읽는 스타트업 CEO가 있다면, 투자사가 재무자료를 요청하는 것을 단순한 번거로움으로 여기지 않았으면 한다. 회계를 잘 모르거나, 아직 재무팀이 없는 곳이라면 더욱 부담으로 다가올 수 있다. 하지만 오히려 그런 회사일수록 투자금 사용 과정에서 실수가 발생할 가능성이 높고, 런웨이 관리도 어려워질 수 있다. 재무자료 제출을 투자사의 도움을 받는 과정 중 하나로 생각하는 것이 오히려 좋겠다.

VC 관리역은 프론트(Front)가 아닌 백(Back)에서 일한다. 하지만 단순한 지원 역할이 아닌, 스타트업과 함께 뛰는 플레이어이기도 하다.

이화영 님은 인생 100세 시대에 재미없는 일을 평생 하고 싶지 않아 재밌는 일을 찾던 중 스타트업의 젊고 활기찬 기운에 매료돼 2020년 카카오벤처스에 입사했다. 한 손엔 따스한 사랑을, 다른 한 손엔 탄탄한 실력을 가지고 직장 생활을 하는 것이 목표이며, 요즘은 어떻게 하면 더 똑똑하게 일할 수 있을지 고민 중이다.

강홍민 기자 kh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