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QUEUR STORY

세계적으로 가장 많이 마시는 증류주(spirit)라면 흔히 위스키(whisky)를 떠올리기 쉽다. 물론 지난 수백 년에 걸쳐 다양한 위스키들이 전 세계인들의 입맛을 사로잡은 건 사실이다. 하지만 양으로만 따진다면 러시아를 대표하는 보드카(vodka)가 최고의 판매량을 자랑한다.
세계에서 가장 많이 팔리는 증류주 보드카의 매력
올해 5월 영국의 세계적인 주류 전문 잡지인 드링크 인터내셔널(Drink International)에서 발표한 자료에 의하면 작년 한 해 세계에서 가장 많이 판매된 증류주 중 스미노프 보드카(Smirnoff Vodka)가 9리터 기준으로 2580만 상자(2억3220만 리터)로 3위를 차지했다. 이 조사에서 1위와 4위는 대한민국 대표 증류주인 두 개의 소주 브랜드가 각각 차지했다.

또한 2012년 9월 전 세계 주류 리서치 기관인 영국 국제주류시장연구소(IWSR)에 따르면 2011년 전 세계 슈퍼 프리미엄급 이상의 증류주 시장에서는 단연 보드카가 1위로 약 25%를 차지해 가장 많은 판매량을 보였다.

이처럼 세계인들이 사랑하는 보드카는 러시아어로 ‘물’을 뜻하는 ‘보다(voda)’에서 유래했다. 폴란드 사람들은 ‘우다(woda)’라고 부른다. 러시아인과 폴란드인들은 보드카를 ‘생명의 물’로 여겼던 것이다. 스코틀랜드인들이 위스키를 ‘생명의 물(aqua vita)’로 여겼던 것처럼 말이다.
세계에서 가장 많이 팔리는 증류주 보드카의 매력
보드카의 유래

초창기 보드카는 약용으로 음용됐으며 화약의 원료로도 사용됐다. 문헌에는 9세기 말 러시아에서 보드카를 처음 만들었다고 돼 있으나 폴란드인들은 이보다 이른 8세기 자국에서 유래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일반적으로는 그 당시 폴란드에서 증류했던 것은 보드카가 아닌 와인을 증류한 브랜디라고 추측하며, 폴란드에서 만든 초창기 보드카는 11세기 약용으로 음용된 것을 시초로 본다. 그 후 14세기 보드카는 러시아를 대표하는 ‘국민 술’로 자리 매김하며, 16세 중반에는 폴란드와 핀란드에서도 각 나라를 대표하는 술로 자리 잡게 된다.

지금의 보드카가 있기까지 큰 역할을 한 사람은 19세기 중엽 러시아의 증류업자인 피오트르 스미르노프(Piotr Smirnov)다. 러시아 귀족들을 대상으로 좋은 품질의 보드카를 공급하고자 한 그는 숯 여과 과정을 도입해 순수하고 맑은 보드카를 만드는 데 성공했다. 품질과 맛을 인정받은 그의 보드카는 러시아 상류층에 보급됐고 러시아 황실과 귀족의 공식 술로 선정되기에 이른다. 이 공로로 그는 귀족 작위까지 받았다.

20세기 초 러시아의 사회적인 폐해로 1917년 10월 볼셰비키 혁명이 일어나게 되면서 피오트르의 대를 이어 왕실에 공식적으로 술을 공급하던 블라디미르 스미르노프(Vladimir Smirnov)는 재산이 국가에 강제 몰수된다. 죽을 고비를 넘기며 러시아를 탈출한 그는 프랑스로 망명해 파리에 정착한다. 자신의 성 Smirnov를 프랑스 표기법에 따라 Smirnoff로 변경한 그는 러시아 귀족들의 전유물이던 스미노프 보드카(Smirnoff Vodka)를 세상에 내놓게 된다.
세계에서 가장 많이 팔리는 증류주 보드카의 매력
보드카의 전파

블라디미르는 1920년에는 터키 이스탄불에, 1925년에는 파리에 양조장을 설립하고 보드카를 생산했다. 그러나 당시 프랑스에서는 보드카가 그리 인기를 얻지 못했다. 이에 그는 새로운 시장을 찾아 미국으로 진출했다. 미국에서 1933년 금주법 폐지 후 칵테일 문화가 유행하면서 보드카는 ‘화이트 위스키(white whiskey)’라는 이름으로 큰 성공을 거뒀다.

스미노프 보드카는 미국 사업 초기 라임과 진저 맥주를 혼합한 ‘모스크바 뮬(Moscow Mule)’ 칵테일을 처음 선보이면서 브랜드를 알렸고, 1960년대 들어서 스크루 드라이버(Screwdriver)와 블러디 메리(Bloody Mary) 칵테일이 크게 인기를 끌면서 스미노프는 전 세계인들의 입맛을 사로잡는 대표적인 보드카 브랜드로 성장했다.

스미노프 보드카의 엄청난 성공을 발판으로 유럽의 다양한 보드카들이 미국에 진출하면서 보드카 전성시대를 맞게 된다. 대표적인 브랜드로 창의적인 광고로 유명한 스웨덴의 앱솔루트(Absolut), 핀란드의 핀란디아(Finlandia), 정통 러시아 보드카 스톨리치아(Stolichnaya) 등이 있다. 차별화된 제조 방법과 원료를 이용해 만든 프리미엄 보드카로는 프랑스 그레이 구스(Grey Goose), 폴란드 벨베디어(Belvedere), 그리고 아이슬란드의 뜨거운 지열을 이용해 단식 증류기로 소량 생산하는 레이카(Reyka) 등이 유명하다.

보드카는 감자나 곡물을 발효시켜 연속 증류한 후 원액을 물에 희석시킨 뒤 자작나무 숯으로 여과한다. 이런 과정을 거쳐 무색, 무미, 무취의 보드카가 만들어진다. 이런 여과 과정을 거치기 때문에 보드카 재료로 사용한 물질의 특성이 거의 남아 있지 않은 순수한 주정에 가까운 무색, 무미, 무취의 술인 보드카가 탄생한다.

이러한 특징으로 보드카는 칵테일을 만들 때 베이스로 많이 사용하고, 개인의 취향에 따라 다양한 칵테일을 즐길 수 있다. 이처럼 보드카의 매력은 가장 맛없는 술을 이용해 정말 맛있는 술을 만들 수 있다는 데 있다.
스크루 드라이버.
스크루 드라이버.
보드카 베이스의 대표적인 칵테일인 스크루 드라이버는 얼음을 가득 채운 잔에 보드카와 오렌지 주스를 1대2 비율로 만든 칵테일이다. 그 밖에 블랙 러시안, 섹스 온 더 비치, 그리고 블러디 메리 등이 보드카를 베이스로 한 칵테일이다. 특히 블러디 메리는 보드카에 토마토 주스와 레몬주스를 섞어서 만든 칵테일로, 유럽 사람들은 과음 후 해장용으로 애용한다. 러시아나 폴란드 사람들은 스트레이트로 주로 마시며, 한 손에는 보드카, 다른 한 손에는 콜라를 들고 즐기기도 한다.
블러디 메리.
블러디 메리.
보드카의 고향인 러시아에는 ‘4000km가 못되면 먼 거리가 아니고, 영하 40도가 아니면 추위가 아니며, 40도 이하는 술도 아니다’라는 속담이 전해 내려온다. 속담이 얘기하듯이 추운 지역의 러시아인들은 알코올 도수가 높은 보드카를 마시며 기나긴 겨울 추위를 이겨낸다.

자유화의 영웅인 고르바초프가 보드카 금주를 실현시키려다 실각됐다는 얘기가 있을 정도로 보드카는 러시아인들에게 가장 사랑받는 술이다. 러시아의 초대 대통령인 보리스 옐친은 통일 독일 방문 시 보드카를 과음해 예정에도 없는 연설을 하는가 하면, 아일랜드 방문 시에는 과음으로 정상회담이 연기됐을 정도로 광적인 보드카 애호가로 알려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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