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 머니 = 김수정 기자]뮤지컬 데뷔 3년 만에 ‘뮤지컬 기대주’에서 ‘믿보배(믿고 보는 배우)’로 거듭나고 있는 이석훈(37)을 만났다. 명품 발라더에서 뮤지컬 배우, 그리고 이제는 한 가정의 남편과 아빠로서 끊임없이 멋지게 성장 중인 그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사진 C9엔터테인먼트·CJ ENM 제공
이석훈 “대사·노래 없는 장면도 디테일 표현 위해 최선”
이석훈이 자신의 뮤지컬 데뷔작 <킹키부츠>의 ‘찰리’ 역으로 다시 돌아왔다. 뮤지컬 <킹키부츠>는 파산 위기에 놓인 구두회사 사장 찰리 프라이스가 여장 남자이자 쇼걸인 롤라와 함께 여장 남자용 부츠인 킹키부츠를 만들어 회사를 다시 살리는 과정을 그린 작품이다. 2014년 CJ ENM이 전 세계 최초로 국내에 라이선스 공연을 선보이며 2016년과 2018년 잇따라 흥행한 뒤 이번이 네 번째로 맞는 시즌이다.

극 중 찰리는 얼떨결에 아버지에게서 물려받은 신발 공장을 운영하며 여장 남자인 롤라를 만나고 그에게서 세상과 맞서는 법을 배우는 인물로, 극의 중심 축을 맡고 있다. 3년 전 찰리 역으로 뮤지컬 무대에 처음 섰던 이석훈은 당시 안정적인 발성과 연기력, 그리고 흠잡을 곳 없는 보컬 실력으로 호평을 받았다. 이후 뮤지컬 <광화문 연가>, <웃는 남자> 등의 타이틀 롤을 거머쥐며 명실 공히 뮤지컬 배우로 발돋움한 그가 다시 만난 찰리는 어떻게 다가왔을까.

우선, 다시 <킹키부츠> 찰리를 만난 소감부터 말씀해 주세요.
“‘찰리’를 다시 만나게 돼 처음엔 그저 너무 좋았어요. 그런데 시간이 지날수록 부담을 느끼기도 해요. 아무래도 작품 자체가 찰리의 이야기를 담고 있기 때문에 찰리가 어떻게 스토리를 끌고 나가는지에 따라 그날의 공연 분위기가 결정될 만큼 중요한 역할이죠. 무대에서 소화해야 할 대사도 많고요.

무엇보다 평범한 캐릭터인 찰리를 에너지 있게 표현하기 위해선 연기, 노래, 춤 등 모든 면에서 상당한 실력이 필요해요. 그래서 더욱 노력하려고 합니다. 사실 처음 이 역을 맡았을 땐 지금처럼 찰리를 잘 알지도 못했던 것 같아요.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고 다시 찰리를 만나게 되니 ‘아, 내가 그때는 참 겁 없이 했구나’라는 생각도 들더라고요. 그래선지 지금은 이 어려운 작품을 어떻게 잘 표현할 수 있을지에 대한 부담도 커지고, 매회 무대에 오를 때마다 고민하는 것 같아요.”
이석훈 “대사·노래 없는 장면도 디테일 표현 위해 최선”
2018년 찰리와 지금의 찰리, 어떤 점이 달라졌고, 이번 시즌에 주안점을 둔 부분이 어떤 점인가요.
“앞서 말씀드렸듯이 2018년 시즌에는 지금처럼 찰리를 잘 알지 못했어요. 이해하지 못했거나 오롯이 몰입하지 못한 신(scene)들이 있었는데 지금은 그런 부분들에 디테일을 더해서 꽉 차게 연기를 하려고 해요. 심지어 제가 대사나 노래를 하지 않는 장면에서도 세세한 디테일을 놓치지 않고자 더 신경을 쓰죠. ‘무언가를 더 만들어 내야겠다’라는 느낌보다는 처음에 비해 3년이라는 시간이 지났으니, 그 시간 동안 저에게 뮤지컬의 개념이 좀 더 쌓이기도 했고, 자연스럽게 표현하려고 더 노력하고 있는 것 같아요.”

뮤지컬 배우로는 이제 3년 차가 되셨어요. 그 기간 동안 세 개의 대형 작품에 참여했는데 무대에 서면서 부담이 된 적은 없었나요.
“세 작품 다 같은 역할이 없었어요. 코믹한 ‘월하’라는 신부터 입이 찢어진 ‘그윈플렌’, 그리고 지금의 평범하고 어리숙한 찰리까지요.그런데 솔직히 세 역할 중 제겐 찰리가 가장 큰 부담이 돼요. <광화문 연가>의 ‘월하’라는 역할은 실제론 존재하지 않는 관념적인 캐릭터이기에 제가 만들어 갈 수 있었고, 캐릭터가 분명했기 때문에 표현하는 데 있어 좀 더 재밌고, 에너지 있게 표현하면 된다고 생각했어요.

<웃는 남자>의 ‘그윈플렌’도 연기를 하는 데 있어 큰 불편함은 없었습니다. 그런데 평범한 ‘찰리’는 작품을 이끌어 가지만 크게 눈에 띄지 않는 인물이죠. 하지만 평범하다고 아무것도 안 하게 되면 정말 아무것도 아니게 되는 역할이라 그 간극을 잘 조절해야 해요. 그래서 고민을 많이 했죠.”

뮤지컬 무대에 가수 출신 배우들이 늘어나고 있어요. 워낙 국내 뮤지컬계의 훌륭한 배우들이 많아서 가수들의 도전을 호락호락하게 보지만은 않죠. 뮤지컬 무대에 서기 위해 어떤 노력들을 하셨는지 궁금해요.
“제 첫 출발점이 가수이기에 색안경을 끼고 보시는 분들이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해요. 단, 그런 편견을 이기는 건 제가 해결해야 할 몫인 것이고, 잘하는 모습을 보여드리면 그 시간은 단축될 거라고 생각해요. 모든 예술이 그렇듯 뮤지컬도 정답이 없잖아요. 물론, 일부 차이점은 있죠. 단적으로 뮤지컬을 할 때는 가수로서의 창법과 달리 좀 더 관객들이 잘 들으실 수 있도록 소리를 모아서 내는 편이에요. 하지만 정말 중요한 건 노력인 것 같아요. ‘나 자신에게 전혀 부끄럽지 않다’라고 자신 있게 이야기할 수 있을 정도로 뮤지컬 배우로서 정말 많이 노력했던 것 같습니다.”
<킹키부츠>는 결국 성장에 대한 이야기잖아요. ‘나는 누구인가’,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에 대해 묻는 작품이죠. 살면서 이런 물음을 집중적으로 했던 시기가 언제였는지 궁금하고, 그것에 대한 답을 어떤 방식으로 찾고 있나요.
“이 질문은 늘 하고 있는 생각인 거 같아요. 처음 데뷔했을 때, 가수로서 입지를 다졌을 때, 결혼을 했을 때, 아이를 낳았을 때. 매번 ‘나는 누구지’, ‘어떻게 해야 하지’ 다 다르고 끊임없이 질문하는 것 같아요. 지금 제 나이가 서른일곱인데 ‘이게 다 온 걸까’라는 생각도 하고요. 출발은 멋있었던 것 같은데 어떻게 착륙을 해야 할지에 대해 항상 고민하고 있습니다. 식상할지 몰라도 그것에 대한 해답은 열심히 하는 것밖에 없다고 생각해요. 돈이나 성공을 따라가는 것이 아닌, 자신이 원하는 것을 진심으로 하다 보면 착륙 역시 굉장히 멋질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이상적이지만 그렇게 믿고 있어요.”
가수, 배우인 동시에 작가이기도 했죠. 2012년 출간한 저서 <그대로 꿈 그래도 쉼> 이후 집필 계획은 없으신가요. 요즘도 글쓰기를 종종 하시는지 궁금해요.
“사실 ‘책을 써야지’라고 생각은 한 적은 없어요. 저 책은 에세이였고, 당시 사진 찍는 걸 워낙 좋아해서 가능했던 것 같아요. 지금은 글쓰기를 하기보다는 읽는 것에 집중하고 있어요. 책을 좋아해요. 특히 소설이요. 책을 읽는 이유는, 시각적인 콘텐츠(영화나 드라마)는 제가 주인공이 되기보다는 주인공의 삶을 보죠. 책은 주인공이 될 수 있어요.

지금 나의 삶이 아니라 책을 읽는 동안 잠시나마 다른 삶을 살 수 있다는 점에서 굉장히 매력 있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저 책을 출간했을 당시엔 정말 겁이 없었던 것 같아요. 추진력도 굉장히 셌고요. 무언가를 하고 싶으면 바로 ‘고(go)!’ 하고 결과물을 내고, 또 도전할 게 있으면 바로 ‘고!’ 했던 식이었죠.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겁도, 고민도 많아졌죠. 전과 달리 물건 하나를 살 때에도 ‘이게 필요한가’ 고민하는 것 같아요. 겁이 생기면서 솔직히 방해되는 부분도 있어요.”
이석훈 “대사·노래 없는 장면도 디테일 표현 위해 최선”
인스타그램을 보면 여행과 사진도 무척 좋아하고, 예술적 영감을 얻기도 하시는 것 같아요. 요즘은 아들 사진이 더 자주 올라오는 것 같은데, 어떤가요.
“여행과 사진을 정말 좋아합니다. 요즘 아들 사진이 많이 올라오는 이유는 아무래도 제 삶이 변했기 때문이에요. 예전에는 여행이나 사진이 제 삶의 대부분을 차지했다면 지금은 나이에 맞게 잘 변해 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솔직히 말해 저는 발라드 가수이고, 아티스트니까 어느 정도의 숨김도 필요하겠지만.(웃음) 제 삶의 변화를 받아들이기로 했어요.”

혹시 추후에 자녀가 아빠와 같은 길을 걷겠다고 하면 어떤 조언을 해 주고 싶으세요.
“주원(아들)이가 같은 길을 걷겠다고 하면, 글쎄요. 일단 저를 만족시켜야 할 텐데요.(웃음) 조언을 해 주기보다는 아이가 무엇을 하고 싶어 할 때 적극적으로 도와주는 아빠가 되고 싶어요. 물질적이 아닌 정신적으로요. 요새 정신의 고통에 대해서 굉장히 깊게 생각하고 있는 편인데요. 최대한 도움을 줄 수 있는 아이의 서포터가 되고 싶습니다.”

유연하고 합리적인 사람이라는 느낌이 강해요. 본인이 생각하는 인간 이석훈은 어떤 사람이고, 무엇을 할 때 가장 행복한가요. 반대로 이것만은 절대 타협하지 못하겠다는 것들이 있다면 무엇이 있을까요.
“우선 칭찬으로 받아들이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저는 좋은 사람이 되려고 노력하는 사람인 동시에 완벽하지 않은데 완벽하고 싶어 하는 사람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완벽한 사람인 척하고 싶어 하는 사람이기도 해요.

무엇을 할 때 행복한지 사실 잘 모르겠어요. 최근에 <1cm의 다이빙>이라는 책을 읽고 있는데, 가까운 것에서부터 행복을 찾는 내용의 책입니다. 단락이 끝날 때마다 물음이 있는데 그 책에서 비슷한 질문이 있었어요. 쉽게 답을 못 내렸던 것 같아요. 아, 물론 지금 제가 행복하지 않은 것은 아닙니다. 사실 너무 좋아요. 특히, 주원이가 웃을 때, 한 손은 제 손을 잡고, 반대편 손은 아내 손을 잡고 저희의 중앙에 앉을 때가 있는데 그때 굉장히 행복해요.

반대로 절대 타협하지 못하겠는 건, 글쎄요. 저는 늘 열려 있는 편이에요. 그래서 저를 설득시키면 웬만한 것은 타협할 수 있어요. 단, 설득을 못 시킨다면 하지 않아요. 사실 인간 개개인은 다르기 마련이잖아요. 서로의 입장과 이야기를 들어보고, 충분히 이해가 되면 타협을 합니다. 그렇지만 전혀 이해가 되지 않거나 설득이 안 되면 그게 무엇이 됐든 끝까지 안 해요.”

바야흐로 성큼 가을이 다가왔어요. 코로나19 여파로 추석이든 황금연휴 등 방콕하실 분들이 많을 텐데 이럴 때 들어볼 만한 추천 노래나 책이 있다면요.
“노래는 <킹키부츠> 오리지널사운드트랙(OST)이요.(웃음) 책은 저는 주로 소설을 읽는 편인데, 최근 읽었던 더글라스 케네디의 <데드하트>를 추천해요. 오스트리아의 오즈 마을이 배경인데 코믹하면서도 추리소설이라 스릴도 있고 재밌었어요. 이 소설가의 작품이 술술 읽히는 편이라 좋아해요. 저처럼 책은 좋아하는데 금방 멈추는 분들이 편하게 스윽~ 읽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코로나19 사태에도 불구하고, 극장을 찾아주시는 팬들을 비롯해 오래된 팬들에게 감사의 말을 전하자면요.
“정말 감사하죠. 진짜 이 마음이 어떻게 전달될지 모르겠는데, 정말 진짜 정말로 너무나 감사합니다. 사실 이번 시즌 <킹키부츠> 첫 공연을 올리던 날, 공연 전 다같이 모여 파이팅콜을 할 때부터 배우들이 눈물을 머금고 있었어요. 이런 어려운 상황에도 찾아주시는 관객들 생각에 우는 배우들도 있었어요. 저도 울컥했지만 꾹 참았던 기억이 납니다. 말로는 표현이 안 됩니다.

당연한 것이지만 더 좋은 작품을 만들어 내기 위해서 더 열심히 하고 있어요. 저희 몫 이상의 최선을 다할 것입니다. 언제 공연을 멈춘다고 해도 이상하지 않을 상황이기에 ‘매 회가 마지막’이라는 생각으로 열심히 하고 있어요. 관객들도 저희와 같은 생각을 하시며 보러 와 주시는 거겠죠. 다시 한 번 너무나도 감사합니다.”

앞으로 계획(단기, 장기)과 꿈이 궁금합니다.
“뮤지컬 배우로서 이 작품을 마지막까지 후회 없이 잘 끝내는 것이 단기적인 목표예요. 그리고 장기적으로는 내년에는 또 어떤 작품을 만나게 될지 고민하고 준비하는 것이고요. 뮤지컬 배우로서 제 꿈은 상을 받으면 좋겠지만 궁극적인 목표는 아니에요. 어떤 작품을 하더라도 ‘수고했다’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사람. 늘 그랬으면 좋겠어요. 저 자신에게 수고했다고 솔직하게 이야기해 줄 수 있고, 그것을 저 스스로 부끄럽지 않게 온전히 받아들일 수 있는 사람이길 바라요.”

‘나에게 뮤지컬이란 000이다.’ 한 마디로 정의하자면.
“어려운 질문이네요. 딱 한 마디로 정의내리긴 어렵지만, 저에게 뮤지컬이란 이런 것 같아요. 너무 힘이 드는데, 그걸 잊고 또 제가 하고 있는 것. 공연을 하면서도 가끔 ‘내가 이걸 왜 하고 있지’라는 생각을 하는데, 어느새 또 잊고 다음 작품을 하게 되고, 뮤지컬 공연을 보러 가는 매력이 있어요. 뮤지컬이 행복하지만은 않아요. 제가 받아들이기엔 너무 벅차요. 그렇지만 또 하고 있는 제 모습을 보면 좋고 행복한 일이겠죠.”

[본 기사는 한경머니 제 185호(2020년 10월)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