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SMIC 제재…中 ‘반도체 굴기’ 막힐까
[한경 머니 기고=이장훈 국제문제 애널리스트 | 사진 한국경제DB]미국이 중국 최대의 반도체 기업 SMIC에 대한 제재에 나서며, 오는 2025년까지 반도체 자급률을 70%로 높이겠다는 중국의 야심 찬 ‘반도체 굴기’가 흔들리고 있다. 과연 중국은 미국의 정밀 타격을 피해 반도체 패권의 꿈을 지킬 수 있을까.

SMIC(Semiconductor Manufacturing International Corporation, 中芯國際)는 중국 최대의 반도체 기업으로, 파운드리(foundry, 위탁생산) 전문 업체다. 파운드리는 설계를 하지 않고 반도체 설계 전문 업체가 주문한 대로 팹(fab: fabrication의 줄임말)에서 반도체만 생산하는 것을 말한다. 반도체업계에서 팹은 공장을 의미하는데, 공장 없이 설계만 전문으로 하는 기업은 팹리스(fabless)라고 부른다.

SMIC는 올해 2분기 기준으로 시장점유율 4.8%를 기록하면서 반도체 파운드리 분야에서 대만 TSMC(51.5%), 한국 삼성전자(18.8%), 미국 글로벌파운드리(7.0%), 대만 UMC(7.0%)에 이어 세계 5위를 차지했다.

SMIC는 대만 출신이자 ‘중국 반도체의 아버지’라는 평가를 받는 장루징(張汝京) 박사가 2000년 중국 상하이에서 만든 기업이다. 대만대 기계공학과를 나와 미국에서 석사와 박사학위를 받은 후 미국 반도체 기업 텍사스인스트루먼트(TI)에서 20년간 근무한 장 박사는 대만으로 돌아와 스다(世大)반도체를 설립했다. 하지만 TI에서 함께 일했던 장중머우(張忠謀)가 창업한 TSMC가 스다반도체를 인수하자 장 박사는 상하이에서 SMIC를 설립했다.

당시 대만 정부는 대만인의 중국 반도체 산업 투자를 엄격히 제한했다. 대만 정부는 2005년 장 박사가 중국에 불법 투자를 했다는 이유로 벌금을 부과하고 여권 말소 조치와 함께 중국에서 철수할 것을 명령했다. 장 박사는 이에 불복하고 대만 국적도 포기했다. 이런 우여곡절 끝에 장 박사는 SMIC 성장의 기반을 닦았다. 이후 장 박사가 최고경영자(CEO)에서 물러나고 SMIC는 중국 정부가 반도체 산업 육성 차원에서 국영 통신 기업과 국영펀드를 동원해 지분을 매입하면서 사실상 ‘홍색기업(국영기업)’이 됐다.

중국 정부는 2025년까지 반도체 자급률을 70%까지 끌어올리겠다는 ‘반도체 굴기(우뚝 일어섬)’ 정책의 일환으로 SMIC를 전폭적으로 지원해 왔다. 게다가 지난해부터 미국 정부의 압박을 받아 온 세계 1위이자 중국 최대 통신장비 업체인 화웨이가 TSMC에 의존해 온 반도체 제조 물량을 올 들어 SMIC에 몰아줬다.

특히 SMIC는 지난 7월 ‘중국의 나스닥’으로 불리는 상하이증권거래소 커촹반(科創板, 과학혁신판)에 상장해 462억8000만 위안(8조 원)을 모았다. SMIC가 끌어들인 자금은 2010년 7월 상장한 중국농업은행(11조8000억 원)에 이어 중국 기업공개(IPO) 사상 두 번째 규모다. 이에 힘입은 SMIC는 지난 8월 베이징 경제기술개발구 관리위원회와 공동으로 합작법인을 설립해 베이징에 2개의 라인을 만들어 28나노미터(nm: 1㎚는 100만 분의 1㎜) 이하 공정을 적용한 제품을 12인치 웨이퍼 기준으로 월 10만 장 생산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하는 등 새롭게 도약하겠다는 의지를 보였다.

중국 정부도 SMIC의 이런 계획을 적극 후원했다. 중국 정부가 15년 이상 반도체 사업을 한 기업 중에서 회로선폭(회로 간 거리)이 28㎚이나 그 이상의 공정을 도입한 기업에 최대 10년 동안 법인세를 면제해 주겠다는 조치를 발표했는데, 이에 해당하는 기업은 SMIC와 2위인 화홍(華虹)반도체뿐이기 때문이었다.
중국 정부가 이처럼 SMIC를 키우기 위해 공을 들이자 미국 정부가 찬물을 끼얹었다. 미국 상무부 공업안보국은 10월 4일 수출통제조례(EAR) 규정에 근거해 자국 반도체 기술과 장비 업체들에 공문을 보내 SMIC와 자회사들에 대한 수출은 사전 허가를 받아야 한다고 통보했다. 이에 따라 SMIC는 미국에서 반도체 생산 장비, 재료, 소프트웨어 등을 구입하기가 어려워진다.

어플라이드 머티리얼스, 램 리서치, KLA 등 미국의 반도체 장비 기업들은 앞으로 SMIC에 기술과 제품을 수출하려면 미 상무부의 허가 절차를 거쳐야 한다. 현재 SMIC는 장비의 절반가량을 미국에 의존하고 있어 미국의 수출이 중단되면 생산에 차질이 불가피하다. 미 상무부는 SMIC 제품이 군사적 목적으로 전용될 가능성이 있다고 제재 이유를 밝혔다. 수출통제조례는 “중국, 러시아, 베네수엘라 등 특정 국가에 최종적으로 군사 용도로 활용될 제품의 수출을 제한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SMIC는 “중국군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으며 어떠한 군사용 제품도 만들지 않는다”고 반박했지만 소용이 없었다.
중국 최대 반도체 업체 SMIC 상하이 본사 로비에 있는 ‘특허의 벽’. SMIC가 취득한 1만여 개의 기술 특허가 벽에 빽빽이 걸려 있다.
중국 최대 반도체 업체 SMIC 상하이 본사 로비에 있는 ‘특허의 벽’. SMIC가 취득한 1만여 개의 기술 특허가 벽에 빽빽이 걸려 있다.

◆미·중 기술 냉전의 핵심 ‘반도체’

미국 정부가 SMIC를 제재한 것은 두 가지 이유 때문이다. 무엇보다 화웨이 죽이기 작전에 완전히 못을 박겠다는 것이다. 화웨이는 애플리케이션 프로세서(AP) 분야 등에서 SMIC와의 협력을 강화할 계획을 추진해 왔다. SMIC는 최첨단 통신칩을 제조하는 데는 한계가 있지만 중저가용 제품은 충분히 생산할 수 있다. 이런 움직임에 미국 정부가 쐐기를 박으려 하는 것이다.

또 다른 이유는 중국 파운드리 산업을 주저앉히려는 것이다. 글로벌 반도체 산업의 무게중심이 인텔 등 종합 반도체 기업에서 엔비디아, 퀄컴 등 팹리스로 옮겨 가면서 파운드리의 중요성이 커지고 있다. 실제로 전 세계적으로 인공지능(AI), 사물인터넷(IoT), 로봇 등 첨단 테크 산업이 발전하면서 각양각색의 맞춤형 반도체 수요가 높아지고 있고, 이를 만들어 주는 파운드리 시장도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

시장조사 업체 옴디아에 따르면, 2018년 618억3600만 달러 규모였던 파운드리 시장은 연평균 9.5%씩 성장해 2024년엔 944억100만 달러에 달할 것으로 전망된다. 특히 올해 파운드리 시장 성장률은 13.5%로, 전체 반도체 시장 성장률(4.9%)의 2.8배에 달한다. 따라서 미국 정부의 의도는 아예 SMIC가 성장하지 못하도록 싹부터 자르려는 것이라고 분석할 수 있다.

국제 반도체 전문가들은 이번 미국 정부의 조치가 SMIC의 현재보다 미래를 겨냥했다고 보고 있다. 소재·부품은 대체할 수 있지만 장비는 힘들기 때문이다. 반도체 생산은 미국 장비가 없으면 사실상 어렵다. 지금 운용하는 라인은 가동할 수 있지만 추가 라인을 구축하기는 쉽지 않다. SMIC는 올해 12인치 공정을 본격화할 계획이었지만 장비를 도입하지 못하면 공정 전환은 불가능하다.

미국 정부의 이번 조치는 화웨이에 대한 3단계 제재 중 1단계와 유사해 향후 SMIC에 대한 제재가 2·3단계로 강화될 가능성이 높다. 미국 정부는 2019년 5월 제1단계로 자국 반도체 기업들에 화웨이에 대한 수출 승인을 받도록 했다. 미국 정부는 이어 2단계로 지난 5월 자국 반도체 소프트웨어 및 장비를 활용하는 기업들이 화웨이의 설계로 생산된 제품을 수출하려면 사전 승인을 받아야 한다는 행정명령을 내렸다. 당시 조치는 화웨이가 자회사인 하이실리콘이 설계해 TSMC에 맡겨 생산하는 것을 금지한 것이었다.

이후 화웨이가 계열사를 통해 대만의 미디어텍 등에서 기존에 만들어진 AP 등을 대량 구매하는 방법으로 미국 정부가 내린 제재 조치의 빈틈을 빠져 나오자 미국 정부는 아예 가장 강력한 카드를 꺼내들었다. 미국 상무부는 지난 9월 15일부터 외국 반도체 업체라도 자국의 소프트웨어와 기술·장비를 이용해 생산한 모든 종류의 반도체를 미국 정부의 승인 없이 화웨이와 계열사에 판매할 수 없다는 조치를 내렸다. 이에 따라 삼성전자, SK하이닉스 등 한국을 비롯해 모든 외국 반도체 기업들이 화웨이에 수출하는 것을 중단했다. 이번 SMIC에 대한 미국 정부의 제재 조치도 화웨이처럼 단계적으로 강화될 수가 있다.

미국 정부의 이번 조치에 따라 삼성전자를 비롯해 다른 파운드리 업체들이 상당한 이득을 볼 것이 분명하다. 대만의 시장조사 업체인 트렌드포스는 10월 5일 보고서에서 “SMIC에 주문을 해 왔던 외국 업체들은 리스크를 완화하기 위해 앞으로 삼성전자와 글로벌파운드리, 대만의 파운드리 업체인 TSMC와 UMC 등으로 수입처를 옮길 것이다”고 전망했다.

이에 따라 기술력에 비해 파운드리 시장에서 점유율은 낮은 삼성전자엔 호재가 될 것으로 보인다. SMIC는 화웨이(매출 비중 18.7%), 퀄컴(8.6%), 브로드컴(7.5%) 등을 고객사로 뒀다. 이 중에서 미국 회사인 퀄컴과 브로드컴의 물량이 삼성전자와 대만 기업들에 넘어갈 것으로 보인다.

삼성전자는 지난 1년간 IBM, 엔비디아, 바이두, 퀄컴 등 대형 고객의 주문을 수주했다. 삼성전자는 또 경기도 평택에 극자외선(EUV) 공정 기반 파운드리 라인도 구축하고 있다. 아직은 파운드리 시장 1위인 대만 TSMC와의 점유율 격차가 크지만, TSMC를 견제하고 대체할 수 있는 곳은 삼성전자다. 전 세계에서 5nm 이하 미세 공정이 가능한 곳은 TSMC와 삼성전자 2곳뿐이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삼성전자와 TSMC가 파운드리 시장에서 1위 자리를 놓고 앞으로 치열하게 경쟁할 것이란 전망이 나오고 있다.

미국 정부가 SMIC에 제재 조치를 내리면서 2025년까지 반도체 자급률을 70%로 높인다는 중국 정부의 반도체 굴기 계획은 상당한 차질을 빚을 수밖에 없다. 따라서 미국 정부의 SMIC에 대한 제재 조치는 중국 반도체 산업의 급소를 정밀 타격하는 셈이라고 볼 수 있다. 이에 따라 정보기술(IT) 분야를 비롯한 중국 산업 전반이 타격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 미국 정부의 제재 조치로 중국의 2024년 반도체 자급률은 20.7%가 될 전망이다. 중국은 세계 반도체 매출의 30% 이상을 차지하는 반도체 최대 수입국이다. 2019년 수입액은 무려 3055억 달러에 달했다. 중국으로선 반도체를 자체 생산하는 것이 무엇보다 가장 긴요한 과제라고 볼 수 있다.

중국 정부는 그동안 반도체 산업을 발전시키기 위해 막대한 자금을 투자해 왔다. 2014년 반도체 전용 펀드인 ‘국영 반도체 산업 투자 기금’을 설립해 매년 300억~600억 위안 규모의 자금을 반도체 기업에 쏟아 부었다. 2019년까지 누적 투자액은 1400억 위안에 달한다.

상하이, 베이징 등 중국 지방정부도 자체 펀드를 설립해 반도체 기업에 자금을 지원하고 있다. 중국 정부는 이와 함께 반도체 기술력 향상을 위해 인재를 육성하는 데도 적극 나서고 있다. 장 전 SMIC CEO도 “중국의 최대 약점은 단기간 내 반도체 인력 풀이 부족하다는 것”이라면서 “중국이 젊은 인력을 키운다면 충분히 미국과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중국 집적회로 산업 인재 백서에 따르면 2020년 전후 중국 반도체 인재 수요는 72만 명이다. 하지만 현재까지 인재는 40만 명에 불과하다. 특히 고급 인력이 더욱 부족하다. 중국 정부는 고급 인력을 육성하기 위해 각 대학의 반도체학과 등급을 ‘1급 학과’로 격상시켰다. 1급 학과로 지정되면 연구비 예산도 늘고, 학생모집 정원수도 증가한다. 교수 역량, 연구실험 설비 수준도 높아진다. 산하엔 반도체 시스템, 패키징, 소재, 설계, 초미세전자공학 등 별도 세부 전공을 만들어 전문 인력을 배양하는 데도 도움이 된다. 중국 기업들도 대만, 한국 등 각국에서 전문 기술 인력을 유치하는 데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중국 과학기술전략정세학회 천징(陳經) 연구원은 “반도체는 미·중 기술 냉전의 핵심”이라면서 “미국으로부터의 반도체 독립은 핵폭탄을 만드는 것만큼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중국이 반도체 굴기에 실패한다면 미국과의 기술 패권 경쟁에서 패배할 것이 분명하다.

[본 기사는 한경머니 제 186호(2020년 11월)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