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 머니 기고 = 배인구 법무법인로고스 변호사]결혼한 부부가 후일 아이를 갖기 위해 남편의 정자를 보관하던 중 남편이 사망한 이후에 그 정자를 이용해 아이를 낳았다면 이 경우 죽은 남편을 아이의 아빠로 인정할 수 있을까.
최근 방송인 사유리 씨의 비혼 출산이 굉장히 많은 사회의 관심을 받았습니다. 우리나라에서는 비혼 여성이 정자를 기증받아 아이를 낳을 수 없었다는 말에 한국에서 비혼 여성이 기증받은 정자로 아이를 낳는 것은 과연 법이 금지하는 것인지 여부가 이슈가 됐죠.

우리의 ‘생명윤리 및 안전에 관한 법률’ 제24조(배아의 생성 등에 관한 동의) 제1항은 “배아생성의료기관은 배아를 생성하기 위하여 난자 또는 정자를 채취할 때에는 다음 각 호의 사항에 대하여 난자 기증자, 정자 기증자, 체외수정 시술대상자 및 해당 기증자·시술대상자의 배우자가 있는 경우 그 배우자(이하 동의권자라 한다)의 서면동의를 받아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아이가 태어나려면 엄마와 아빠가 꼭 존재해야 한다고 굳게 믿는 기성세대들은 부부 사이에서만 보조생식술에 의한 자녀 출산을 허용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이런 생각의 옳고 그름이 아니라 이 아이의 법적인 존재에 관심을 가졌습니다.

대법원은 “생모와 자녀 사이의 친자관계는 자연의 혈연으로 정해지므로, 생모의 인지나 출생신고를 기다리지 않고 자녀의 출생으로 당연히 법률상의 친자관계가 생기고, 반드시 호적부의 기재나 법원의 친생자관계존재확인판결로써만 이를 인정해야 한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대법원 2018. 6. 19. 선고 2018다1049 판결)”고 판시한 바 있습니다. 그러니 사유리 씨가 출산한 아이는 법적으로 그의 친자입니다. 그가 사망한다면 1순위 상속인이 됩니다.
그런데 만약 결혼한 부부가 후일 아이를 갖기 위해 남편의 정자를 보관하고 있었는데 남편이 사망한 이후에 그 정자를 이용해 아이를 낳았다면 이 경우 죽은 남편을 아이의 아빠로 인정할 수 있을까요.

물론 남편 사후에 태어난 남편의 아이, 이른바 유복자도 우리 민법에선 남편의 자녀로 인정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경우에는 모두 남편이 생존했을 때 이미 포태된 아이를 의미합니다.

남편 사후에 비로소 포태된 아이를 민법은 전혀 예상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생명윤리 및 안전에 관한 법률’ 제23조는 사망한 사람의 난자 또는 정자로 수정하는 행위를 금지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법이 금지하고 있다고 해서 출산한 어머니를 법률상 어머니가 아니라고 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실제로 몇 해 전에 이런 사례가 우리나라에도 있었습니다.

여성 A씨는 B씨와 혼인해 시험관아기시술을 통해 첫째아이 C를 출산했습니다. 이후 남편 B씨는 암투병을 하게 됐는데 둘째아이를 갖기 원했습니다. 이에 B씨의 정액을 채취해 냉동보관하면서 다시 시험관시술을 준비했는데 그 사이 B씨가 사망했고, 그 이후 A씨는 냉동보관 돼 있던 B씨의 정자를 이용해 둘째아이 D를 출산했습니다.

A씨는 아이의 아빠를 B씨로 기재해 출생신고를 했지만 관할구청은 아빠가 사망한 후 300일이 지나 아이가 태어났으므로 출생신고를 수리하지 않았고, 이에 A씨가 검사를 상대로 아이가 사망한 B씨의 친생자임을 주장하는 인지청구의 소를 제기했습니다.

유전자 검사 결과 당연히 둘째아이 D와 B씨 사이에는 부계라는 점이 입증됐습니다. 이 경우 아이의 엄마가 A씨라는 점은 당연합니다. 그런데 아이의 아빠가 B씨라고 아무런 고민 없이 인정해 주어야 할 것인가요. 위 사례에서는 B씨의 상속인은 A씨와 첫째아이 C입니다. 둘째아이 D가 B씨의 자녀로 인정되면 상속인은 A씨와 C, D가 될 것입니다.

만약 C가 없는 상태에서 A씨가 B씨 사후에 D를 출산했다면 상속 문제는 미묘해집니다. A씨는 B씨의 부모와 공동으로 상속인이 되는 상태였는데 사후에 D를 출산해 B씨의 자녀로 인지되면, 인지의 소급효로 인해 B씨의 상속인은 A씨와 D가 되는 거죠.
우리 법원은 이처럼 상속인이 직계존속과 배우자의 공동상속에서 직계비속과 배우자의 공동상속으로 바뀌는 것도 아니고, 이 사안의 이해관계자들인 B씨의 직계존속 역시 B씨가 둘째 자녀 갖기를 염원했던 점, B씨의 정자를 이용해 출산한 점 등을 인정해 아이가 B씨의 자녀임을 인지하는 판결을 했습니다. 이 사안에서 가장 구체적인 정의가 무엇인지 확인해 준 것이겠죠.

하지만 배우자 사후에 언제까지 냉동정자를 이용해 자녀를 포태할 것을 용인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물론 우리 법은 사망한 사람의 정자를 이용하는 것을 금지하고 있으므로 의료기관이 남편이 사망했다는 사실을 알면서 보조생식시술을 할 리 없겠지만, 시험관시술을 하는 과정에서 남편이 사망했고, 다음 시험관수술이 예정돼 있었는데 사망 사실을 의료기관에 알리지 않아 남편의 사망 사실을 모른 의료기관으로부터 시술을 받는 것은 가능한 일입니다.

사실 이런 사례는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세계 각국에서 벌써 문제가 됐고, 가까운 일본에서는 우리나라와 반대의 결론을 내렸습니다.

일본 최고재판소는 “현행 민법이 사후포태자와 사망한 부 사이의 친자관계를 상정하지 않은 것이 명백한 점, 부는 포태전에 사망했기 때문에 부가 사후포태자의 친권자가 될 여지가 없고, 사후포태자도 부로부터 감호, 양육, 부양을 받을 수 없으며, 사후포태자는 부의 상속인으로 될 수도 없다. 법적 친자관계에 관한 문제는 근본적으로 사망한 자의 보존 정자를 이용하는 인공생식에 관한 생명윤리, 태어난 자녀의 복지, 친자관계나 친족관계를 형성하게 되는 관계자의 의식, 이에 관한 사회 일반의 통념 등 다각적인 관점에서 검토가 필요하므로 입법에 의해 해결돼야 할 문제다”고 판시했습니다.

저는 태어난 아이의 입장에서는 비록 이미 사망한 아버지로부터 양육과 부양을 받을 수는 없더라도 아버지로 인지할 수 있다는 가능성이 있는 것과 없는 것은 큰 차이이고 자녀의 복리를 고려한다면 일본 최고재판소의 판시와는 달리 친자관계가 인정되는 것이 자녀의 복리에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우리나라의 판결에 찬성합니다. 하지만 이런 문제는 일본 최고재판소가 지적하는 바와 같이 근본적으로는 입법에 의해 해결돼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2019년 대법원이 아내가 혼인 중 남편이 아닌 제3자의 정자를 제공받아 인공수정으로 임신한 자녀를 출산한 경우, 출생한 자녀가 남편의 자녀로 추정되는지 여부에 관해 전원합의체를 열어 판결을 한 것도 입법의 불비에서 벌어진 일입니다.

그로부터 1년이 지났지만 아직도 과학의 발전을 법은 쫓아가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제라도 배우자 사후 냉동정자와 난자를 이용한 사후포태를 인정할 것인지, 인정한다면 배우자 사후 어느 정도의 기간(예를 들어 1년)만을 인정하고 그 외에는 인정하지 않을 것인지, 그 경우에 자녀의 법적 지위는 어떠한지에 대해 사회적으로 함의를 모아야 할 것입니다.”

[본 기사는 한경머니 제 188호(2021년 01월)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