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 머니 = 정혜선 객원기자 | 사진 이승재 기자]미래를 준비하기 위해서는 그 시대를 살아갈 세대에 대해 알아야 할 필요가 있다. 우리가 1990년대생에 대해 알아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들에게 뭔가 특별한 것이 있는지 <90년생이 온다>의 저자 임홍택 작가를 만나 그의 견해를 들어봤다.
질문 하나. A씨는 거창하게 말하기보다는 줄임말이 편하고, 병맛 같은 재미와 솔직한 것을 좋아한다. 부당한 것을 부당하다고 스스럼없이 말해 가끔 버릇없다는 말을 듣곤 한다. 휴대전화 사용에 능하며 해외직구 따위는 어려운 일이 아니다. 그리고 공무원 시험을 준비 중이다. A씨는 과연 몇 년생일까. 정답은 1990년생이다. 임홍택 작가의 책 <90년생이 온다>에 나오는 90년생들의 대략적인 특징이다. 이 책은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해 여름 직원들에게 선물해 이슈가 되기도 했다.
이 책을 시작으로 90년생을 주제로 한 책들이 속속들이 나오기 시작했다. 이 책들이 의미가 있는 것은 X세대나 Y세대처럼 다른 나라에서 만든 세대 구분을 가져와 우리나라에 적용한 것이 아닌 우리나라만의 세대 구분이라는 점에 있다. 임 작가는 1980년대생부터 2000년대생을 아우르는 ‘밀레니얼 세대’라는 개념이 우리나라에는 맞지 않다고 판단돼 10년 단위로 세대를 구분 짓게 됐다고 설명했다.
80년대생인 임 작가가 90년대생에 대해 관심을 갖기 시작한 것은 대기업에서 신입사원 교육을 맡으면서다. 그때 처음 90년대생을 1대1이 아닌 대다수로 만났던 것이다. “신입사원 교육부서에서 일하면서 90년대생들과 처음 일을 하게 됐어요. 제가 신입사원일 때 선배들에게 배웠던 방식 그대로 그들에게 교육을 했는데 받아들이는 게 달랐습니다. 개개인의 특징이 아니라 전반적인 흐름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90년대생은 그들만의 ‘은어’가 있었다. 임 작가는 90년대생과 사적인 자리에서 대화를 나눌 때 ‘일코(일반인 코스프레)’나 ‘머글(영국 소설 <해리 포터> 시리즈에서 마법 능력이 없는 보통 인간을 이르는 말에서 나온 보통 사람이란 뜻)’. ‘덕밍아웃(자신이 어떤 분야에 깊이 빠져 있는 사람임을 밝히는 일)’과 같은 줄임말을 이해하지 못해 대화에 끼지 못했던 일화를 소개하기도 했다. 그렇게 90년대생과 생활하면서 다름을 느꼈고, 그들에 대한 연구 아닌 연구를 시작해 2014년에 책으로 펴냈다. 이후 4년간 묵혀 뒀던 책은 2018년 세상에 나와 관심을 받게 된다. 책이 출간되자마자 주목을 받은 점에 대해 임 작가는 시기가 좋았다고 말했다. “2018년은 그들이 사회 곳곳에서 자기의 역할을 해내고 있을 때다 보니 90년생에 대한 관심이 더 높았다고 봐요. 그리고 그들과 일을 하면서 저와 같은 생각을 했던 분들이 있었기에 이 책이 공감을 얻을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90년생이 온다>는 1부 90년대생의 출현, 2부 90년대생이 직원이 되었을 때, 3부 90년생이 소비자가 되었을 때 총 3부로 구성돼 있다. 임 작가는 이 책을 출간하고 “왜 90년생을 이해해야 하느냐”, “왜 90년생을 그렇게 일반화하느냐” 등의 항의를 많이 받았다고 한다. “악플도 관심이듯이 책을 읽고 의견을 주시는 것은 좋은 거 같습니다. 다만 이 책은 세대 간 갈등을 일으키기 위해 만든 책이 아니라는 점을 알아주셨으면 좋겠습니다(웃음).”
최근 90년생에 대한 책이 많이 쏟아지고 있습니다. 이 책을 쓴 이유가 무엇인가.
“90년생과 일을 하면서 세대 차이를 느꼈습니다. 80년생과는 다른 90년대생만의 ‘다름’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됐죠. ‘젊은 세대는 버릇이 없어’라는 편견을 갖지 않으려면 그들이 왜 그런 행동을 하고, 그런 행동들을 할 수밖에 없는지 알아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이 책을 통해 시대와 환경이 변했고 그에 따라 그 시대를 살아가는 주역인 90년대생의 사고방식이나 생활방식이 바뀌었다는 말을 하고 싶었습니다. 마케터였던 저의 눈에 그 변화는 주요했고, 기업들이 알 필요가 있다고 판단했죠. 그래서 이 책은 인문서가 아니라 경제경영서입니다.”
책 제목이 90년생인 이유는 단순히 그들에 대한 이야기를 썼기 때문인가요.
“책의 주제가 90년대생이기 때문에 거기에 맞춰 제목을 지은 것도 있지만, 흔히 말하는 ‘밀레니얼 세대’라는 말이 싫어서 90년생이라고 했습니다. 밀레니얼 세대는 1980년대부터 2000년대에 태어난 세대를 한데 묶어서 말하는데, 저는 그 개념이 우리나라 실정과는 맞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나라에서 70년대생은 외환위기를 경험했고, 80년대생은 글로벌 금융위기를 경험했다면, 90년생은 다른 경험을 한 세대인 거죠. 그래서 10년 단위로 세대를 나누게 됐습니다.”
지금까진 새로운 세대가 기성세대에 맞춰 왔던 거 같은데, 왜 90년대생만은 기성세대가 그들의 특징을 파악해야 하나요.
“많은 사람들이 크게 오해하는 부분인데, 이 책은 기성세대들에게 90년대생을 이해하라고 말하고 있지 않습니다. 그들을 안다는 것은 그들의 시대를 안다는 거죠. 야근에 대한 불만은 젊은 세대만이 가지고 있는 게 아닙니다. 누구나 있죠. 80년대생을 포함한 기성세대는 그 불만을 공론화할 수 없는 사회적 분위기 속에 살아 왔습니다. 불만을 말하면 한마디로 ‘찍히는’ 사회였죠. 사회에 진출한 90년대생이 많아지면서 아닌 것은 아니라고 말하는 목소리가 나오기 시작한 겁니다. 앞으로 90년대생은 계속 사회에 진출해 함께 일하는 동료가 될 겁니다. 책에서 ‘이해’라는 단어를 사용하긴 했지만 ‘인지’해야 한다는 개념에서 이해하라고 쓴 거죠. 이 책의 주요 타깃이 90년대생이 아니라 70~80년대생인 점도 그런 이유입니다.”
90년대생의 가장 큰 특징은 이른바 ‘공시족’이 많다는 겁니다. 책에서는 이에 대해 기회비용을 최소화하기 위한 합리적인 선택으로 표현하고 있는데, 한편으로는 꿈이 없는 세대로 여겨지기도 합니다.
“꿈에 대한 질문을 받으면 꼭 꿈을 가져야 한다는 강요처럼 들릴 때가 있습니다. ‘꿈을 꼭 가져야 하나’라는 의문과 함께 말이죠. 일전에 귀촌한 젊은 세대를 인터뷰한 다큐멘터리를 본 적이 있어요. 거기서 그들은 ‘일상’을 지키며 살고 싶다고 말하더라고요. 90년대생들이 바라는 게 그거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들이 열정이나 꿈이 없는 게 아니고 꿈보다는 하루하루의 생존이 먼저고, 꿈보다 자신의 감정을 지키고 싶어 하는 세대라는 게 제 판단입니다. 이 점은 90년대생이 다른 세대들과 뚜렷한 차이를 보이는 부분이기도 합니다.”
90년대생의 또 다른 특징은 간단함입니다. 대표적인 예가 줄임말 사용인데, 이를 두고 언어 파괴, 세대 간 소통 단절의 원인이라는 비판이 있습니다. 어떻게 생각하나요.
“줄임말은 이전부터 계속 사용돼 왔습니다. 80년대생인 저만 해도 ‘방가(반가워요)’, ‘샘(선생님)’ 등 줄임말을 썼는걸요. 90년대생은 스마트폰의 빠른 보급에 게임 문화가 더해지면서 줄임말이 다양해진 겁니다.
또 카카오톡의 등장으로 커뮤니케이션의 방식이 달라져 빠른 문자 입력과 적절한 이모티콘의 사용이 소통의 핵심이 돼 버린 거죠. 줄임말 사용은 시대의 흐름처럼 90년대생뿐 아니라 2000년대생도 사용하고 있습니다. 원래 줄임말은 또래집단이 사용하는 은어였는데, 사용 인구가 많아지고 전파를 타면서 확장돼 가고 있는 거죠. 기업에서 이것을 마케팅적으로 활용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한 편의점 프랜차이즈에서 초성체를 제품명에 반영한 ‘ㅇㄱㄹㅇ ㅂㅂㅂㄱ(이거레알 반박불가)’라는 케이크를 출시해 화제가 됐던 적도 있습니다. 당연히 90년대생, 2000년대생들 사이에서 반응이 좋았죠. 앞으로 이런 제품들이 더 나올 수밖에 없다고 봅니다.”
90년생의 특징을 읽어 나가면서 마음이 불편해지는 것을 느꼈습니다. 이 책을 읽으면서 ‘라떼는 말이야’ 심리가 발동되면 어쩔 수 없는 꼰대인가요.
“책을 보셨으니 알겠지만, 제가 책에 꼰대 테스트를 넣어 놨습니다. 테스트를 해 보면 한 개만 해당돼도 무조건 꼰대인 거죠. 이 테스트를 통해 저는 꼰대 문화를 꼬집고 싶었어요. 예전에 <유퀴즈>라는 TV 프로그램에 중학생이 나온 적이 있는데 ‘어른과 꼰대의 차이’를 묻는 질문에 ‘어른이 되면 무조건 꼰대’라고 대답을 했습니다. 그 말이 맞는 거 같아요. 젊은 세대는 충고나 조언, 참견을 바라는 게 아니라 참여를 원해요. ‘무조건 따르라’는 꼰대 선배가 아닌 멘토가 필요한 겁니다. 자신이 꼰대인지 멘토인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둘은 종이 한 장의 차이입니다.”
90년대생이 극장에서 영화를 보지 않는 가장 큰 이유가 2시간 동안 휴대전화를 꺼놓기 싫기 때문이라는 내용이 인상적이었습니다. 한 번도 그런 생각을 해 본 적이 없기 때문이죠. 극장 산업의 변화가 필요한 시점인 듯한데요.
“제가 이 부분에서 이야기하고 싶었던 것은 ‘앞으로 90년대생이 극장에 가지 않으니 극장이 망할 것이다’는 아닙니다. 90년대생도 극장에 갑니다. 다만 2시간 동안 울려대는 휴대전화를 볼 수 없는 그 환경을 불편해한다는 거죠. 이런 그들의 생활방식을 반영한 시장의 변화가 필요하다는 겁니다. 휴대전화에 비행기 모드가 있는 것처럼 극장 모드가 생겨나 어두운 영화관 안에서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지 않고도 휴대전화 화면을 볼 수 있는 기술이 필요하다는 겁니다. 이런 것을 개발해 적용하는 기업들의 제품이 더 잘 팔리는 시대가 올 수밖에 없다는 겁니다. 그런 의미에서 90년대생을 알 필요가 있다는 거죠.”
기업이 소비자인 90년대생을 사로잡기 위해 이들에 대해 공부하고 이들을 위한 제품을 내놓다 보면 기업 문화도 그들에게 맞춰 서서히 변화할까요.
“외부 고객과 내부 고객은 연결돼 있다고 생각합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위생문제가 중요할 때 한 택배 업체에서 일했던 직원이 그 회사의 위생 상태를 고발한 적이 있습니다. 최근에는 한 대학생이 자신의 아파트 경비원이 경비원 인건비 절약을 위한 경비원 급여 삭감 동의서를 경비원이 직접 들고 다니며 서명을 받는 세태에 대해 문제를 제시하는 글을 해당 아파트 게시판에 올린 적이 있습니다. 이처럼 90년대생은 겉과 속이 다른 것, 부당하고 느끼는 것에 대해 공론화하는 것을 어려워하지 않습니다. 너무나 자연스러운 거죠. 이런 그들의 생각은 기업에 정직함을 요구하는 것과 연결됩니다.
최근 파타고니아라는 패션 브랜드가 각광을 받고 있는데, 같은 이유죠. 파타고니아는 친환경 기업인데, 뼛속까지 친환경 기업이라는 것을 인정받으면서 비싼 가격임에도 불구하고 소비자들의 지갑을 열었죠. 이 회사 다녀 보니 앞뒤가 다르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되는 순간 직원에서 소비자 모드가 되는 겁니다. 반대일 경우에는 불매운동을 하게 되는 거죠. 앞으로 기업들이 변해야 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임홍택 작가는…
동국대 영문학을 전공, 카이스트 경영대학 정보경영 석사 졸업. CJ에 입사해 신입사원 입문교육과 영업전략, 마케팅 관련 일을 하다가 2018년 <90년생이 온다>를 출간. 이 책은 2018년, 2019년 다수의 매체에서 올해의 책으로 선정됐다. 현재 <관종의 조건> 출간을 앞두고 마지막 퇴고를 하고 있다.
[본 기사는 한경머니 제 187호(2020년 12월)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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