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 머니 = 김수정 기자]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의 장기화로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전 세계가 신음하고 있다. 여기에 코로나19의 확산만큼 화병바이러스의 감염도 날로 심각해지는 상황에서 지금 우리 사회 필요한 진짜 백신은 무엇일까.

#1. 콜센터 직원 박미희(가명, 40) 씨는 코로나19 사태 이후 극심한 감정노동에 시달리고 있다. 가령, 과거에도 배송 지연이나 오류를 이유로 막무가내로 욕을 퍼붓는 항의 전화를 받긴 했지만 코로나19 이후 그 빈도와 강도가 더욱 세졌다는 것. 박 씨는 “아무리 사과를 해도 받아주기는커녕 굴욕감을 느낄 때까지 몰아붙이려는 사람들이 있다”면서 “이런 일들이 지속될수록 나 역시 감정 조절이 어려워 고통스럽다”고 말했다.

#2. 자영업자 60대 오진명(가명) 씨는 요즘 부쩍 자괴감이 많이 든다. 가족들의 사소한 실수에도 고함을 지르거나 욕을 하고, 분이 풀리지 않으면 물건을 집어 던지기도 한다. 시간이 지나면 자신이 심했다는 생각을 하지만 매순간 자신을 통제하지 못한 채 후회하고, 좌절하고 있다. 오 씨는 “코로나19로 인해 빚더미에 앉게 생겼다. 스트레스로 불면증도 심해지고, 술에 의존하는 경우가 늘고 있다”며 “평생 뭐든 무던히 참고만 살았는데, 이제는 왜 이렇게 화가 나는지 모르겠다”고 푸념했다.

#3. 올해 세계 곳곳에서 아시아인들을 향한 인종차별주의 사례가 빈번히 발생하고 있다. 프랑스에서 연구교수로 일하는 37세의 베트남계 여성은 지난 10월 27일 저녁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마주친 한 커플이 자신에게 “중국으로 돌아가서 개나 먹으라”고 소리치며 침을 뱉고 주먹까지 휘둘렀다고 밝혔고, 같은 달 29일엔 아시아계 대학생이 친구와 탁구를 치다가 이유 없이 두 명의 청년에게 폭행을 당하기도 했다.

[special]‘코로나 레드’ 이기는 진짜 백신은

코로나19로 그간 우리 모두에게 당연하게 주어진 것들에 제약이 걸리고, 상실됐다. 수많은 사람들이 일자리를 잃고, 생계를 위협받고 있으며 끝이 보이지 않는 코로나19의 위협에 불안감도 높아지는 상황이다. 11월 18일 통계청이 발표한 ‘2020년 사회조사 결과’에 따르면 우리 사회의 가장 큰 불안 요인으로 ‘신종 질병’을 선택한 응답이 32.8%로 꼽혔다. 이어서 ‘경제적 위험’(14.9%), ‘범죄’(13.2%), ‘국가 안보’(11.3%)가 그 뒤를 이었다.


특히, 신종 질병으로 응답한 비중은 2년 전 2.9%에서 32.8%로 무려 29.9%포인트나 급증했다. 불과 2년 전까지만 해도 10개 조사항목 중 가장 응답자가 적었지만 이번에는 압도적으로 응답자가 많았다.


경제적 위험 역시 2년 전 12.8%로 네 번째 불안 요인으로 나타났지만 이번에는 2.1%포인트 증가하며 두 번째를 기록했다. 이는 코로나19 이후 경기 침체로 생활고에 대한 걱정이 커졌기 때문으로 보인다. 또한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20~30대 우울증 진료 건수는 17만771건으로 지난해 상반기 14만223건보다 21.8% 증가했다.


이처럼 코로나19 장기화로 인한 불안과 좌절감이 우리나라는 물론, 전 세계 곳곳을 침투하면서 ‘분노’ 혹은 ‘화병’ 관련 사건사고도 급증하고 있다. 과거에는 스트레스를 받거나 화가 나면 운동을 하거나 사람들을 만나 대화하는 방식 등으로 풀 수 있었지만, 코로나19가 유행하면서 이런 통로가 막히면서 화를 제대로 통제하지 못하는 상황이 됐기 때문이다.


이 같은 코로나19로 인한 화병을 ‘코로나 레드’로 부른다. 몇 달 전 대중교통에서 마스크 착용을 두고 폭행 시비가 붙은 일이 코로나 레드의 대표적인 사례다.


올해 광복절 대규모 집회 이후 코로나19 확진자가 폭증하면서 시민들의 분노와 공포심도 가파르게 상승했다는 연구 결과도 주목할 만하다. 서울대 보건대학원 유명순 교수 연구팀(코로나19 기획연구단)에 따르면, 8월 25~28일 연구팀이 진행한 ‘코로나19와 사회적 건강’ 설문조사에서 ‘코로나19 뉴스에서 어떤 감정을 가장 크게 느끼는가’라는 질문에 ‘불안’이라고 답한 비율이 47.5%로 가장 높게 나타났고, ‘분노’와 ‘공포’가 그 뒤를 이었다.


특이할 점은 ‘불안’ 심리는 8월 초 대비 15.2%포인트 줄어든 반면, ‘분노’와 ‘공포’ 심리는 2배 이상 높아졌다는 것이다. 한 달 새 ‘분노’는 11.5%에서 25.3%로 2.2배, ‘공포’는 5.4%에서 15.2%로 2.81배 높아진 것이다.


이에 대해 유명순 교수는 “코로나19 사태가 7개월을 훌쩍 넘기며 국민 거의 모두가 일상의 자유로움이 제약을 받고 박탈당하는 경험을 했다”며 “이런 경험들이 누적되면 정신건강 문제로 이어질 수 있다는 학자들의 경고가 있는 만큼 실질적인 심리방역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화병, 진짜 원인은 ‘이것

통상 울화와 분노, 억울함과 원망, 서운함과 배신감 등은 부정적 감정을 오랫동안 마음속에 눌러놓고 제대로 표현하지 못할 때 생기는 정신과 질환으로 분류한다.


그중 화병은 우리나라에서 독특하게 나타나는 문화 관련 증후군(culture-bound syndrome) 중 하나로 우울감, 식욕 저하, 불면증 같은 우울 증상에 호흡 곤란이나 가슴 두근거림, 몸 전체의 통증, 명치에 뭔가 걸려 있는 듯한 신체 증상이 함께 나타난다. 억눌린 감정이나 무의식적 갈등이 신체 증상으로 변화돼 나타난 것이다.


화병은 악화와 완화를 반복하며 장기간 지속되는 경우가 많은데, 정신과에서 제대로 치료하지 않고 방치하면 나중에는 치료가 더 어려워진다는 게 전문가들의 중론이다.


김병수정신건강의학과의원의 김병수 원장은 화병의 원인에 대해 이렇게 설명했다.

“화병 환자 중에는 감정표현불능증(alexithy- mia)을 갖고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오랫동안 감정을 억압하고 살아서 그것을 언어로 적절하게 표현하지 못하는 것이지요. 부정적 감정을 밖으로 드러내는 것 자체를 두려하기도 합니다. ‘괜히 화낸다고 해 봐야 남편하고 싸움만 더 하게 된다’, ‘시어머니가 되레 더 화를 낼 거다’ 하면서요. 혹은 ‘나는 힘든 것 없다. 다 내려놓아서 마음에 담아 둔 것이 없다’라고 자기감정을 방어하고 합리화합니다.

하지만 억눌린 감정에 의한 신체 반응까지 통제하지 못합니다. 그래서 억눌린 감정이 몸으로 자꾸 표출되는 거죠. 두 팔로 물속으로 공을 꾹꾹 쑤셔 놓고 있다가 어느 순간 힘이 빠지면 물속에 있던 공이 물 밖으로 툭 하고 튀어나오는 것처럼, 더 이상 감정을 억누를 수 없는 상황이 되면 화병이 생깁니다.”


그렇다면 코로나 레드 등 나날이 심각해지는 화병바이러스를 차단하기 위해서는 어떤 노력들이 필요할까. 김 원장은 “모든 감정은 그 나름의 생기는 이유와 목적이 있다”며 “일단, 내게 왜 그런 감정이 생기는지, 그 감정이 무엇을 원하는지를 알아차리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자신의 감정을 직면하는 걸 무서워하거나 억누르지 말아야 한다”고 조언했다.


이 밖에도 평소 주변 사람들에게 자신의 감정을 적절히 표현하고, 감정을 객관화하고 통제할 수 있는 일기를 쓰는 것도 도움이 된다. 증상이 호전되지 않는다면 전문적인 치료를 받는 것도 좋다.


화병 극복에 도움이 되는 습관

솔직해지기

사람들은 정직한 사람에 대해서는 관용과 배려를 해 주려고 한다. 따라서 분노의 감정에 대해서도 숨기거나 억압하지 말고 자신 있고 솔직하게 표현하는 것이 좋다. 말로 하기가 두렵다면 글로 해 보는 것도 좋고, 1대1로 전하기가 두렵다면 가족이 함께하는 자리에서 자연스럽게 털어놓는 것도 방법이다. 다만, 자신이 원하는 상황이나 답변이 상대방으로부터 오지 않는다고 해서 다시 분노의 늪에 빠지는 것은 경계할 것. 이조차 두렵다면 상담사에게 전문적인 도움을 받아 보는 게 좋다.

수시로 물 마시기

화를 다스리는 데 물만큼 좋은 것이 없다. 물론 우리 몸의 70% 이상인 물로 인해 생성되는 아세틸콜린을 빠르게 체외로 배설시키며 75%가 물인 뇌신경을 진정시킨다. 또한 92%가 물로 구성된 혈관의 긴장을 이완시키는 데도 도움을 준다. 이제 피부는 물론 순간순간 치솟는 화를 다스리기 위해 하루 8~10컵의 물을 마시도록 하자.


명상하기

마음의 고통에서 벗어나 아무런 왜곡 없는 순수한 마음의 상태로 돌아가는 것을 초월(transcendence)이라 하며, 이를 실천하려는 것이 명상(meditation)이다. 그중 생활 속 누구나 손쉽게 따라 할 수 있는 만트라 명상을 추천한다. 우선, 등은 수직으로 세우되 편안한 자세를 취해 조용히 앉고, 마음의 안정을 위해 조용히 눈을 감는다. 근육을 이완하며 자연스럽게 무릎 위에 손을 올려놓는다. 자연스럽게 호흡하며 숨을 내쉴 때마다 만트라를 반복하며 읊조린다. 한 번에 20분 정도, 하루에 두 차례 정도 실천하면 도움이 된다.


[본 기사는 한경머니 제 187호(2020년 12월)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