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 머니 기고 = 최성민 경희대 통합의료인문학연구단 연구교수]인문학의 힘은 시대정신으로부터 나온다. 문학 텍스트를 통해 현재의 문제를 인식하고, 연대함으로써 더 나은 사회를 모색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과연, 지금 우리 사회를 지배하고 있는 화병바이러스의 사회문화적 배경은 무엇이고, 어떻게 해결해 나가야 할까. 사진 한국경제DB

[special]“사회문화적 상흔 화병, 공감과 연대 절실”

화병(火病)은 한국 문화를 배경으로 형성된 질병이다. 1994년 국제적으로 통용되는 정신질환 진단 및 통계편람(Diagnostic and Statistical Manual of Mental Disorders)의 4판, 즉 DSM-Ⅳ에서는 ‘화병’을 한국어 발음대로 ‘Hwa-byung’이라고 표기해 등재한 바 있다.


2013년의 개정판 DSM-Ⅴ에서는 문화결합증후군의 분류가 대폭 줄어들면서 화병이 다시 삭제됐지만, 하나의 문화적 질병으로 보는 시각이 사라진 것은 아니며, ‘화병’이라는 질병의 요인이나 증상이 소멸된 것은 더욱 아니었다.

인문학 속 화병의 변천사

화병을 ‘울화병’이라고도 하는데, 억울한 감정이 발산되거나 풀어지지 못한 채 답답한 기운이 누적돼 열감이나 통증으로 이어지는 경우를 말한다. 의학적 분석이나 통계에서 화병은 주로 ‘여성의 질병’으로 파악된다. 특히 누적된 억압이 증상으로 발현되는 시기인 40~50대 여성에게 많이 나타나는 질병으로 인식됐다. 남성 지배적 사회에서 사회적 활동이 제한됐고, 가정 내에서는 시집살이를 겪어야 했던 한국의 여성들에게 화병은 익숙하고 흔한 질병이었다.


그러나 <조선왕조실록>에서 보면, 남성 그중에서도 왕조 권력의 최정점에 있던 임금들도 화병을 호소하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 임진왜란을 겪은 선조, 세자 시절부터 폐위 위협에 시달렸던 선조의 아들 광해군, 아버지의 죽음을 겪었던 정조 등이 화병을 앓았던 것으로 기록돼 있다. 누적된 억압과 스트레스는 누구에게나 화병을 안길 수 있었던 것이다.


민간의 설화나 <조선왕조실록>에서도 흔히 발견되던 화병이라는 단어는 개화기 이후에는 쓰임이 크게 줄어들기 시작한다. 여전히 사회적으로 억압돼 있었던 여성들이 겪던 심리적 질병이 언급되고, 국권 강탈과 식민의 역사를 목도한 지식인들의 울화가 표현되곤 했지만, 구체적으로 ‘화병’이라는 질병이 언급되는 경우는 많지 않았다. 아무래도 서구의 영향을 받아 근대적 의료 체계가 도입되면서 화병은 점차 과거 시대의 질병으로 취급된 것으로도 보인다.


근대 전환기 이후, 화병이라는 표현이 줄어들었을 뿐 화병이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시집살이와 가정 폭력에 시달리는 여성들의 현실도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다만 며느리들의 전유물이었던 화병이 대중문화 속 시어머니들에게도 나타나게 됐다. TV 드라마에서 아들의 결혼 상대에 불만을 품은 어머니가 머리에 흰 띠를 두르고 자리에 누워 있는 장면은 현대적 화병을 상징하는 장면이 됐다.


시선을 가정 밖으로 돌리면 화병은 사회적 변화에 따라 다양한 유형으로 나타난다. 일제강점기와 광복, 분단, 그리고 한국전쟁으로 이어지는 흐름 속에서 불가피했던 감정적 충격과 심리적 상처들은 화병으로 이어지곤 했다. 소위 전후(戰後) 소설의 대표작인 이범선의 소설 <오발탄>(1959년)에는 분단과 전쟁 과정에서 상처 입은 한 가정의 모습이 적나라하게 드러나 있다. 주인공 철호의 어머니는 해방이 됐다면서도 38선을 넘어 집으로 돌아갈 수 없다는 사실을 납득하지 못한다.


나라는 찾았다면서, 집을 찾지 못한다는 것은 정말 알 수 없는 일이었다. 철호의 어머니는 매일같이 “가자, 가자”를 외치지만, 고향으로 돌아갈 수 없자 결국 미쳐 버리고 만다. 철호의 남동생 영호는 사회에 대한 불만을 일탈적 행위로 표출하고, 여동생 명숙은 생계를 위해 몸을 팔게 된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철호의 아내는 아이를 낳다가 죽음에 이른다. 누적된 울화를 풀어 낼 길 없던 철호는 치과에 찾아가 의사의 만류에도 어금니를 몽땅 뽑아 버린다. 그리고 그 후유증으로 입에서 피를 흘리며 세상을 떠난다.


철호를 태웠던 택시기사는 “어쩌다 오발탄 같은 손님이 걸렸어”라고 투덜거린다. 그들 누구의 잘못도 아니고, 또 누군가가 그들을 겨냥한 탄환의 상흔(傷痕)도 아니었다. 사회적 비극이 개인의 불운에 겹쳐진 결과일 뿐이었다. 그러한 현실 속에서 철호가 자신으로부터 뽑아내고 싶었던 것은 어금니가 아니라 울화였을 것이다. 무리한 발치 때문이었지만, 결국 철호는 화병으로 인해 피를 토하며 죽음에 이른 것이다.


<오발탄>을 둘러싼 울화는 거기에서 끝나지 않았다. 이 소설은 유현목 감독에 의해 영화화돼 1961년 4월에 개봉했다. 그러나 개봉 한 달 뒤 5·16이 일어나자 상영금지 조치를 당했다. 전쟁 이후의 아픔을 호소하는 것조차 사회적 악영향을 심어 주는 공산주의 홍보로 내몰리는 것이 당시의 현실이었다. 20세기 한국 영화 최고의 작품 중 하나로 손꼽히는 유현목 감독의 영화 <오발탄>의 운명 역시 한동안 울화를 벗어나기 힘들었다.


한국 현대문학사에서 중요한 이정표로 각광받는 조세희의 연작소설집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은 1970년대에 대한 문학적 증언으로도 평가받을 만하다. 열심히 일해도 가난을 벗어날 길이 없던 난장이 가족은 재개발로 인해 삶의 터전까지 잃게 된다. 난장이 아버지는 점점 쇠약해지고 목소리도 잃어 갔다. 욕망이 서로 부딪히는 도시 공간에서 그들이 삶을 버텨내기란 쉽지 않았다.


화병의 가장 빠른 치유책은 억울함과 분노가 누적되기 전에 그 고통에 공감하고 연대하는 것이다. 그러나 욕망과 경쟁을 삶의 원리로 받아들인 산업 사회에서 ‘난장이들’과 한편이 되기를 선언하는 일은 결코 쉽지 않다. 난장이 아버지를 벽돌 공장 굴뚝 속으로 떨어뜨린 원인 역시, 그들 가족을 덮친 울화였을 것이다.


유독 화병 관련 기사가 많았던 해는 1988년이었다. 1961년부터 이어진 군사독재는 1987년

6월 항쟁을 계기로 끝을 맺게 됐다. 피 흘려 쟁취한 대통령직선제였건만, 그해 연말 대통령 선거 결과는 다시 여당 후보 노태우 대통령의 당선이었다. 그나마 1988년 4월 13대 총선 결과로 ‘여소야대’ 국회가 구성되면서 군사독재 시절에 억눌려 있던 화병의 증언이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special]“사회문화적 상흔 화병, 공감과 연대 절실”

[1987년의 6월 항쟁은 전국적으로 연인원 500만 명 이상이 참가해 20여 일 동안 전개한 반독재민주화 투쟁이었다. 사진 = 한국경제 DB]

[special]“사회문화적 상흔 화병, 공감과 연대 절실”

[ 대통령 탄핵을 위해 광화문 광장에 다시 모인 시민들. 사진 = 한국경제DB]

1987년 민주화 항쟁의 도화선이 됐던 고(故) 박종철 군의 아버지 박정기 씨는 1988년 1월 13일자 동아일보 인터뷰를 통해 이렇게 증언한 바 있다. “세월이 약이라더니 오히려 병”이라며, 아들을 잃은 슬픔에 더해, “그 사건 이후 자행되는 이 정권의 추태를 보다 못해 울화병까지 생겼다”는 것이다. 물고문으로 대학생을 사망에 이르게 하고도, 반성은커녕 은폐와 조작 시도만 이어지고, 사과와 위로 대신 공권력의 감시와 협박이 계속되는 상황에 화병이 나지 않는 것이 이상할 지경이었을 것이다.


1980년 광주 민주화 운동 당시, 전남 경무국장이었던 안병하 씨의 사연 역시 시대적 상황이 만들어 낸 화병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육사 8기생이었던 안 씨는 5·16 이후 경찰에 투신했는데, 광주 항쟁이 발생하자 시위대를 향해 강경하게 대응하라는 명령을 거부하고, 오히려 우발적 사고를 막기 위해 공권력을 자제시켰다.


결국 그는 직위 해제돼 보안사로 끌려가 고문을 당했고 경찰직에서도 쫓겨나게 됐다. 1988년 7월의 한 신문 기사에서 그는 “그 이후 화병을 앓다가 고혈압과 만성부전증까지 겪고 있다”(1988년 7월 29일 한겨레)고 증언했다. 이 기사가 나오고 두 달여 뒤, 안 전 국장은 결국 세상을 떠났다.

화병, 현 시대상 담겨

한강의 소설 <소년이 온다>에는 광주에서 죽은 아들 동호를 떠올리는 어머니가 ‘봄이 오면 미치고, 여름이면 숨을 쉬기 어렵고, 가을에는 겨우 숨을 쉬다가, 겨울에는 온몸이 얼어붙는다’며, 슬픔과 고통에 몸부림치는 장면이 나온다.


자식을 억울하게 떠나보낸 것도 슬픈데, 여전히 반복되는 왜곡과 폄하까지 겹칠 때 상처는 새로 돋아나는 것이다. 몸과 얼굴이 화끈거리고, 호흡이 가빠지면서 분노의 감정에 휩싸이다가, 다시 무기력감과 우울증이 덮쳐 오는 전형적인 화병의 증상은 군사독재 시절의 피해자들과 가족들에게 흔히 나타나는 후유증이었다.


조선의 봉건적 사회 구조도, 일제강점기도, 전쟁도, 군사독재의 억압도 모두 오래전 일이 돼 버린 지금은 화병의 요인이 줄어들었을까. 화병 환자는 오히려 늘어나는 추세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의 자료에 따르면, 화병에 따른 연간 보험급여 비용은 2013년 약 12억5000만 원에서 2017년에는 20억 원으로 늘어났고, 2019년에는 약 26억 원에 달했다.


화병의 환자 수 역시 증가 추세에 있다. 특히 주목되는 것은 10대와 20대 젊은 세대의 화병 진단이 늘어나고 있는 것이다. 20대 화병 환자 수는 2013년 709명에서 2017년 1449명으로

2배 이상 늘어났다(2018년 10월 8일자 SBS).


젊은 사람들 중에서도 남성 화병 환자가 많아지는 추세다. 여전히 여성의 비율이 높긴 하지만, 2019년 건강보험심사평가원 통계에 따르면 나이가 젊을수록 남성의 비율이 높다. 40대의 경우는 남성에 비해 여성 환자가 3배 정도 되지만, 10대는 남녀 비율이 거의 엇비슷하다.


젊은이들, 특히 젊은 남성들의 화병 비율이 왜 크게 늘어났을까. 학업, 취업, 군입대에 대한 스트레스와 무관하지 않을 것이라는 추정은 충분히 합리적이다. 최근에 부각되고 있는 소위 여혐, 남혐, 성별 간 혐오 갈등 양상도 무관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노인들의 경우에도 여전히 화병은 현재 진행형 질병이다. 과거의 전통과 관습에 익숙해 있는 노인층일수록 빠른 사회 변화는 감당하기 힘든 환경일 것이다. 경제적 현실도 노인들에게 치명적인 부분이다. 2015년 기준 한국의 노인 빈곤율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의 4배인 49.6%에 달한다.


2017년 소위 촛불정국 이후, 변화된 정치적 현실은 상당수의 노년층에게 또 다른 박탈감을 안겨 주었을 것이다. 대중문화나 문학 작품 속에서 ‘노인’은 더 이상 세상을 오래 살았기에 지식과 경험을 후손에게 전달해 줄 수 있는 ‘현명한 노인’의 모습이 아니다. 급변하는 디지털 환경에 의해 노인들은 모든 것에 어리숙한 존재가 돼 가고 있다.


현재의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상황도 사회적 갈등을 증폭시키고 화병을 키울 우려가 크다. 지난 2015년 메르스 유행 때, 소위 슈퍼전파자 논란으로 인해 여혐, 남혐 이슈가 증폭된 기억이 반복될 가능성도 있다. 감염에 대한 공포와 불안은 우울증과 분노 감정을 자극시키고 있다.


그러나 지난 2~3월 대구·경북 지역의 코로나19 대유행을 극복할 수 있었던 힘은 지역, 세대, 종교에 대한 혐오나 분노가 아니라, 공동체적 희생과 헌신, 그리고 지역 간 협력과 연대에 있었다. ‘화병’이 사회문화적 질병이라면 우리의 목표는 사회문화적 갈등을 줄이기 위한 노력이 돼야 한다. 물론 쉽지 않은 일이지만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 ‘공감’과 ‘연대’라는 사실은 오히려 더 분명해지고 있다.


최성민 교수는…

문학평론가이자 경희대 통합의료인문학연구단 연구교수. 서강대 국어국문학과를 나와 동 대학원에서 <서사 텍스트와 매체의 관계 연구>로 문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문학의 매체를 확장해 게임, 웹툰, 영화, 드라마 등을 폭넓게 연구해 왔다. 현재는 문학과 대중문화 콘텐츠를 통해 의료인문학 연구 범위를 확장하려는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저서로는 <다매체 시대의 문학이론과 비평>, <근대 서사텍스트와 미디어 테크놀로지>, <화병의 인문학> 등이 있다.


[본 기사는 한경머니 제 187호(2020년 12월)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