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의 해’, 세계 경제 변화는

[한경 머니 기고=한상춘 한국경제 논설위원 겸 한국경제TV 해설위원 | 사진 한국경제DB]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은 전 세계 모든 분야에 커다란 변화를 주었다. 경제 분야도 예외는 아니다. 현재 각국은 지금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 대비해 서둘러 경제정책을 수정해 나가고 있다.

2020년. 세계 경제가 ‘코로나19’란 뜻하지 않았던 사태를 맞아 절망과 불안으로 점철된 어두운 터널을 헤매는 중이다. 코로나19는 ‘BC(Before Corona)’에서 ‘AD(After Disease)’로 비유될 만큼 모든 분야에서 커다란 변화를 몰고 오고 있다.

바이러스 전염병의 본질적인 특성에 따라 경제 분야에서 가장 먼저 닥친 변화는 ‘세계화의 퇴조’다. 세계화의 속도가 둔화된다는 의미의 ‘슬로벌라이제이션’을 넘어 ‘탈세계화’라는 용어가 나올 정도다. 백신이 나오기까지 바이러스 전염병에 대처하는 유일한 길은 사회적 거리 두기로 사람의 이동이 제한되면 상품과 자본의 이동까지 제한되기 때문이다.

세계화의 퇴조 움직임은 앞으로도 지속될 것으로 예상된다. 코로나19 사태로 ‘효율성(기업 차원에서는 이윤 극대화)’을 중시하는 세계화에서 안정성과 사회적 가치의 중요성을 깨닫는 계기가 됐기 때문이다. 각국은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 닥칠 변화를 감안해 글로벌 전략 등 모든 경제정책을 수정해 나가고 있다.

반면에 자급자족 성향이 더 강해지는 추세다. 트럼프 정부 출범 이후 ‘범세계주의’보다 ‘보호주의’가 힘을 얻어 가는 상황에서 코로나19 사태를 계기로 수출보다 내수, 오프쇼오링보다 리쇼오링, 아웃소싱보다 인소싱이 강조되기 시작했다. 정치적으로도 자국의 이익을 최우선하는 극우주의 세력이 날로 커지고 있다.

주력 산업도 커다란 변화가 일고 있다.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알파 라이징 업종’의 부상이다. ‘알파 라이징 업종’이란 현존하는 기업 이외라는 관점에서 ‘알파(α)’가, 코로나19 사태 이후 더 떠오른다는 의미에서 ‘라이징(rising)’이 붙은 용어다. 클라우드, 온디멘드, 리모트, 온라인 스트리밍, 5세대(5G) 이동통신, 인공지능(AI)과 함께 바이오 업종이 대표적이다.

코로나19 사태 이후 ‘케이(K)’자형 경기가 심해지면서 중산층이 무너짐에 따라 빈곤층을 대상으로 한 비즈니스, 즉 BOP(Bottom of the Pyramid) 업종이 부상하는 것도 눈여겨봐야 할 변화다. BOP 계층은 세계 인구(74억 명)의 72%인 50억 명에 이를 만큼 많은 데다 평균소비성향(소득 대비 소비비율)이 높아 시장규모도 10조 달러가 넘는 거대 시장으로 성장하고 있다.

올해처럼 세계 경기의 앞날을 예측하기가 어려운 때도 없었다.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인 사이먼 쿠츠네츠가 국민소득 통계를 개발했던 1937년 이후 경기에 대한 전망이 올해처럼 엇갈리는 적이 없다. 코로나19 사태 직후 경기 앞날과 관련해 아이(I)자형, 엘(L)자형, 더블유(W)자형, 유(U)자형, 브이(V)자형에 이어 나이키형에 이르기까지 모든 형태의 예측 시각이 나왔다.

지난 2월 중순 코로나19가 국제사회에 알려지기 시작한 이후 세계 증시가 한순간에 무너지자 누니엘 루비니 미국 뉴욕대 교수는 1930년대 대공황보다 더 어려울 것이라는 I자형의 극단적인 비관론을 제시했다. 반면 벤 버냉키 전 미국 연방준비제도(Fed) 의장은 코로나19 백신 개발이라는 조건을 달았긴 했지만 조기에 회복할 것이라는 V자형으로 반박했다.

세계적인 석학 간에 경기 앞날을 보는 시각이 엇갈리게 만든 것은 코로나19가 갖고 있는 독특한 특성 때문이다. 코로나19는 발병 원인과 시기, 진행 방향, 그리고 치료제와 백신 개발 등 그 어느 하나 확실하지 않았다. 하이먼 민스크 리스크 이론에서 ‘아무도 모른다’ 위험은 투자자를 비롯한 경제주체들이 대응하기가 가장 어렵다고 보고 있다.

각국 경기는 경제활동 재개 시기에 따라 순차적으로 달랐다. 가장 빨리 지난 4월 들어서자마자 재개한 중국 경제는 1분기에 성장률이 -6.8%까지 추락한 이후 2분기 3.2%, 3분기에는 4.9%로 V자형 반등에 성공했다. 국제통화기금(IMF)을 비롯한 대부분 예측기관은 올해 유일하게 플러스 성장률을 기록할 것으로 내다봤다.

경제활동 재기 시기가 가장 늦었던 미국 경제는 1분기 -5% 역성장한 데 이어 2분기에는 -31.4%로 I자형으로 추락했다. 2분기 성장률을 놓고 본다면 대공황 때보다 더 낮은 수준이다. 3분기에는 33.1%로 반등했지만 2분기 급락에 따른 ‘기저효과’로 지속 성장 가능 여부에 있어서는 의심하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중요한 것은 올해 4분기 이후에는 어떻게 될 것인가 하는 점이다. 지난 3월 1차 논쟁 때와 마찬가지로 2차 논쟁 때도 두 가지 시각이 팽팽히 맞서고 있다. 3분기에는 기저효과 등으로 잠시 회복세를 보였지만 4분기 이후부터는 다시 침체될 것이라는 W자형과 2분기를 저점으로 회복세가 지속될 것이라는 U자형 시각이다.

1차 논쟁 때와 다른 것은 극단적인 비관론인 I자형과 L자형 시각이 사라졌다는 점이다. 2차 논쟁 때 비관론인 W자형의 근거로 삼는 코로나19가 2차 대감염이 발생하더라도 1차 대감염 때보다 학습효과로 크게 당황하지 않으면서 거리 두기 등이 일상화됐다. 경제 재봉쇄도 쉽지 않다. 코로나19 백신 개발 시기도 1차 대감염 때보다 다가왔기 때문이다.
‘코로나의 해’, 세계 경제 변화는
‘코로나의 해’, 세계 경제 변화는
◆고용 창출 없는 경기 회복 가능성은

경기 부진과 함께 재택근무 등 고용 행태 변화로 직장에서 실업자뿐만 아니라 완전히 쫓겨난 영구 실업자가 급증한 것도 또 다른 변화다. 미국만 하더라도 영구 실업자가 380만 명에 이르고 3분기 이후 경기가 회복세를 보이는 데도 좀처럼 줄어들지 않고 있다. 영국, 프랑스, 일본, 한국 등도 마찬가지다. 고용시장에 구조적 변화가 일어남에 따라 각국 중앙은행의 통화정책 잣대도 흐트러지고 있다. Fed의 양대 목표의 이론적 근거가 되는 물가상승률과 실업률 간 음(-)의 관계를 보여 주는 필립스 곡선이 금융위기 이전에는 비교적 안정적으로 유지됐으나, 코로나19 사태 이후에는 양(+)의 관계로 바뀌거나 평탄해졌다.

Fed는 내부적으로 고용시장의 개선 여부를 파악할 때 ‘베버리지 곡선’을 중시한다. 이 곡선은 일반적으로 경기가 호전될 경우 기업의 구직 활동이 증가하고, 이에 따라 실업률이 하락하는 점을 착안해 구인율과 실업률 간 음의 관계를 있음을 도식화한 것으로 필립스 곡선과 다른 점은 고용시장만을 대상으로 한 이론이다.
피터 다이아몬드 매사추세츠공과대(MIT) 교수 등이 분석한 자료에 따르면 금융위기 이전까지 우하향 하던 베버리지 곡선이 위기 이후에는 우상향 해 미국 노동시장에 구조적인 변화가 있었다고 주장했다. 금융위기를 거치면서 미국 기업들이 경기가 회복되더라도 명확하지 않으면 고용을 늘리는 것을 가능한 억제한 것이 주요인이다.

예측기관들은 코로나19 사태가 극복된다 하더라도 1990년대 후반 신경제 시대보다 ‘더 거친 고용 창출 없는 경기 회복(more harsh jobless recovery)’이 될 것으로 보고 있다. 오히려 영구 실업자가 주축이 된 극좌파 세력이 확산되면서 2011년 뉴욕 폭동 사태처럼 민주주의와 자본주의 체제가 중대한 국면에 봉착할 수 있다.
경기와 고용 부진 속에서도 세계 주가가 크게 오른 것도 올 한 해를 정리하면서 빼놓을 수 없는 현상이다. 지난 3월 중순 이후 다우존스산업평균지수는 55%, 나스닥지수는 무려 70% 이상 급등했다. 세계 평균 주가 상승률도 50%에 달한다. 같은 기간 중 한국의 코스피 지수는 70%, 특히 코스닥 지수는 100%가 넘어 세계에서 가장 많이 올랐다.

주가가 너무 오름에 따라 주가수익비율(PER), 주가순자산비율(PBR) 등 전통적인 주가평가지표로는 이러한 현상이 도저히 설명되지 않는다. 미국 상장기업의 PER는 25배로 적정 수준인 16배를 훨씬 뛰어넘는 고평가가 됐다. 한국 바이오 종목의 PER는 평균 200배가 넘는다. 이론적으로 주가는 내려가야 하지만 이에 아랑곳하지 않고 오르고 있는 추세다.
‘코로나의 해’, 세계 경제 변화는
‘코로나의 해’, 세계 경제 변화는
전통적인 주가평가지표로 설명되지 않음에 따라 주가무형자산비율(Price Patent Ratio, PPR)과 꿈 대비 주가 비율(Price to Dream Ratio, PDR) 등 새로운 평가지표도 나왔다. PPR와 PDR는 지금 당장 경기와 실적이 뒤따라 주지 않더라도 미래에 수익으로 연결될 수 있는 무형자산이 높게 평가되면 주가가 오를 수 있다는 점에 착안해 만든 지표다.

세계 경기와 주가가 따로 논 것은 코로나19 사태를 맞아 각국 중앙은행이 금융위기 당시보다 더 큰 초(超)금융완화 정책을 펼치기 때문이다. 선봉장 역할을 섰던 미국 중앙은행인 Fed는 지난 3월 초 1913년 설립 이후 두 번째로 열렸던 임시회의 이후 가 보지 않는 길을 가고 있다. 코로나19 사태가 끝날 때까지 정크본드 등 매입 대상을 가리지 않고 무제한 달러화를 공급하겠다는 방침이다. 중앙은행의 고유 기능인 최종 대부자 역할을 포기한 셈이다.

기준금리도 ‘빅 스텝’ 방식으로 한꺼번에 크게 내렸다. Fed는 제로(0) 수준으로 환원했고 코로나19 사태 이전부터 마이너스 금리정책을 추진해 온 유럽중앙은행(ECB)과 일본은행(BOJ)은 그 폭을 더 깊게 가져가는 방안을 놓고 고민했다. 중국 인민은행도 기준금리에 해당하는 1년 만기 대출금리를 비롯해 모든 정책성 금리를 내렸다. 한국은행도 두 차례에 걸쳐 각각 0.5%포인트씩 1%포인트 인하했다.

기축통화국인 미국이 ‘제로금리’와 양적완화를 통해 달러화 공급이 많을 경우 가장 우려되는 것은 ‘트리핀 딜레마’로 이를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 하는 점이다. 트리핀 딜레마란 미국은 경상수지 적자를 통해 달러화를 공급해야 하지만 이 상황이 지속되면 달러 가치가 떨어져 기축통화 지위를 유지할 수 없게 된다는 벨기에 경제학자 로버트 트리핀의 주장이다.

코로나19 사태 이후 가장 안전하다는 달러화가 강세가 될 것이라는 예상과 달리 하락한 것도 올해 세계 경제를 점검하면서 짚고 넘어가야 할 문제다. 지난 3월 중순 이후 주요 통화에 대한 달러 가치를 나타내는 달러인덱스는 ‘103’대에서 ‘92∼93’대로, 원·달러 환율은 1285원에서 1110원대로 폭락했다. 세계 최대 헤지펀드 운용자인 래이 달리오는 달러화가 휴지조각이 될 것이라는 극단적인 비관론까지 내놨다.

기축통화로 달러화 위상이 흔들림에 따라 중국을 비롯한 미국 이외의 다른 국가는 브레턴우즈 체제를 유지하기 위해 어쩔 수 없이 부담했던 과다 달러화 보유 구속으로부터 벗어나려는 탈(脫)달러화 움직임이 빨라졌다. 디지털 콘택트 시대가 도래함에 따라 각국의 디지털 통화 도입도 앞당겨졌다. 중국은 디지털 위안화를 도입했고, 일본도 디지털 엔화를 도입할 방침을 확정했다. 국제통화질서에 일대 지각변동을 초래할 새로운 움직임이다.

코로나19 사태로 경제 분야뿐만 아니라 세계 권력 구도에도 커다란 변화가 일어났다. ‘발병 진원지’라는 오명을 극복하고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2차 방역, 경제활동 재개 등을 신속하게 결정해 정치적 입지가 재강화됐다. 지난 10월 말에 폐막된 19기 5중 전회(19기 중앙위원회 5차 전체회의)를 계기로 ‘쌍순환 전략’과 ‘홍색 공급망 전략’을 추진해 중국 중심의 ‘팍스 시니카’ 구상을 앞당겨 실현하겠다고 선언했다.

반면에 도쿄 올림픽 성공, 대통령 연임 등과 같은 자신의 이익만을 위해 코로나19 사태에 미숙하게 대응하거나 악용했던 아베 신조 전 일본 총리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권력이 교체되거나 교체될 운명에 놓여 있다.
‘코로나 해’라는 별칭이 붙을 만큼 그 어느 해보다 다사다난했던 ‘경자년’이 마무리되고 있다. 신축년인 2021년에는 세계 경제와 국제금융시장이 어떻게 전개될지 올 한 해를 정리하면서 벌써부터 궁금해진다.

[본 기사는 한경머니 제 187호(2020년 12월)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