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ist 김윤섭 박사의 바로 이 작가 유충목

유리방울, 허상 너머 이데아를 비추다

2019 오산시립미술관 전시 장면.


[한경 머니 기고 = 김윤섭 아이프 아트매니지먼트 대표·미술사 박사] 물방울이 아니다. 유리방울이다. 영롱한 빛의 눈물을 모은 듯 신비로운 느낌이다. 유충목 작가의 유리 작품은 빛이 생명이다.


유충목 작가의 작품은 전체가 온전히 유리 재질로만 만들어졌다. 특히 최근 작품에선 유리 물방울들을 유리거울 표면에 붙였다. 실상과 허상의 경계를 절묘하게 보여 준다. 가만히 보고 있으면 실재와 가상의 그림자가 서로 교차하며 새로운 시계(視界)를 만들어 낸다. 이 지점부터 유 작가 작품의 감상은 시작된다.


거울에 유리구슬을 붙인 그의 신작이 지닌 매력은 ‘2차원에서 인다라망(因陀羅網) 시현의 가능성을 시험하고 있다’는 점이다. 흔히 인다라망은 ‘부처가 세상 곳곳에 머물고 있음을 상징하는 말’로 쓰인다. 경계의 한계성을 초월한 상태를 말한다. 거울 표면으로 생긴 2차원의 경계면을 사이로 3차원적 둥근 유리구슬이 마주하며 서로를 비추고 있는 형국이다.


이러한 유 작가 작품의 특징은 플라톤의 이데아(idea) 개념과도 비교될 만하다. 플라톤의 이데아는 ‘보이는 현실세계의 너머에 있는 어떤 존재의 본래적인 원형’에 관한 정의다. 우리 인간의 감각으로 느끼는 모든 것은 허상(虛像)에 불과하며, 볼 수 없는 이데아가 곧 진리라는 것이다. 예를 들어 정물화는 모델로 삼은 기물이 없으면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가정이기도 하다. 물론 정물화가 있어야 원형을 재현할 수 있다는 상호관계성도 있다. 이렇듯 그는 유리물방울을 통해 사유(思惟)의 세계에 머물렀던 이데아에 관한 가정을 쉽고 간결하게 보여 준다.


“말이나 글로 다 표현할 수 없는 것들을 시각적 요소로써 깊이 있게 전달하고 싶습니다. 때로는 금기시되는 이야기도 있고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무한함 같은 것일 수도 있겠습니다. 그런 면에서 작품 제목을 정할 때 매우 신중한 편입니다. 작품 제목은 작가의 내면적 철학과 주제의식을 담고 있기 때문입니다. 물론 제목은 보는 이에게 불필요한 선입견이나 편견을 만들어 내기도 합니다. 그런 우려를 넘어 작업의 이유와 이야기를 함축해 작품의 완성도를 높이고자 노력합니다.”


실제로 작품 제목들을 보면 (형성 과정이나 형성물), (변모 혹은 변이), (돌연변이 별이나 별의 변형), (정체성의 흔적) 등 몇 가지 패턴으로 나뉜다. 이 중에 최근 신작에 붙인 작품 제목 에선 유리물방울을 통해 (생명 혹은 그 무엇이) 처음 형성되는 과정을 보여 주고 싶은 의도가 엿보인다. 또한 이나 등은 별이란 상징성을 ‘변이’라는 개념으로 재해석한 형상들을 만들어 낸 것이다. 반면 시리즈는 기성품의 유리관에 자신만의 표식(정체성)을 감쪽같이 각인시켰다.


지금까지 유 작가의 유리 작업의 시그니처(signature) 별의 형상을 재해석한 것이 시리즈다. 시그니처는 ‘남과 다른 나의 고유성’이다. 작가에게 ‘누구도 대체하지 못할 나만의 개별성’은 곧 생명력이나 마찬가지다. 어렸을 적 밤하늘의 무수한 별들을 보며 자신의 미래를 상상했다는 유 작가는 그만의 별에 소망을 담았다. 매일 밤 같은 하늘의 별들이지만, 매번 다른 밝기와 모습을 보여 주는 것을 ‘변이’의 형식으로 구현한 것이다.


누구에게나 ‘나만의 별’을 품고 살아간다. 항상 변함없이 그 자리에서 빛나고 있는 별을 바라보며 ‘10년, 20년 후의 내 모습’을 그려보지 않은 이가 없을 것이다. 삶의 환경이 변함에 따라 굳게 다졌던 계획들도 변하기 마련이다. 하지만 가슴 깊이 묻어 둔 별은 하늘의 그것처럼 변하지 않는다고 믿는다. 그것은 나의 정체성이며, 진정한 자아이고, 나만의 이데아다. 유 작가는 그것을 수천, 수만 년이 지나도 불변하는 유리 재질로 표현함으로써 신념을 대신하고 있다.


“유리는 움직입니다. 이것이 유리에 대한 강렬한 첫인상이었습니다. 단단하고 깨지기 쉬운 재료라고만 인식했던 고정관념은 섭씨 1000도가 넘는 온도에서 녹아내렸습니다. 1000도 이상의 불은 눈과 호흡기를 통해 심장까지 금방 녹여 버릴 듯이 강한 열을 내뿜습니다. 마치 생명력을 가진 듯 요동치는 고온의 유리를 서서히 길들여 가며 새로운 영롱함의 생명을 만들어 냅니다. 그 어떤 재질보다 차갑지만 동시에 더없이 뜨거운 열기를 품었던 양면성은 우리 인간과도 많이 닮았다고 생각합니다.”

유리방울, 허상 너머 이데아를 비추다

Fomation, 유리 & 거울, 73×61cm(세부), 2020년


유 작가의 손길과 호흡을 거친 유리가 남달리 다가오는 이유는 그 안에 이야기가 담겼기 때문이다. 그에게 작업은 소통의 도구다. 주어진 환경과 상황을 작업 속에 메시지로 담아낸다. 그 과정에서 최소한의 간소한 형태에 차별화된 화려함과 이미지의 조형성을 만들어 냈다. 평면(회화)과 달리 입체는 보는 방향과 높낮이에 따라 다르게 보이기 마련이다. 특히 유리 재질 특성상 시선을 투과시키는 투명성이 더해져 더욱 다채로운 감흥을 불러일으킨다. 그는 일련의 특성들을 인생의 여정에 빗대어 작품을 설명하곤 한다.


인생에 숙명이 있다면 그에게 숙명은 유리 전공의 선택일 것이다. 서울미술고등학교를 우수 실기 장학생으로 졸업한 후, 국내에서 유일하게 유리전공학과가 있는 남서울대에 진학한다. 대학생활에서의 유리 전공은 수어지교(水魚之交)가 따로 없었다. 대학 3학년에 이미 미국 유리 산업과 유리예술 분야를 대표하는 코닝사에서 주관한 ‘세계 신진 유리작가 100인’에 선정됐다.


같은 해 미국에서 격년으로 치러지는 유리예술협회(Glass Art Society) 주관의 ‘국제유리예술학회 선정 작가’로 전시와 함께 장학금을 받았다. 세계적인 유리예술 거장들이 설립한 시애틀 유리예술학교(Philchuck Glass School)에서 준 장학금과 국제워크숍의 참여 기회였다. 이러한 이력 덕분에 대학 졸업 직후 미국 뉴욕의 ‘칼슨글라스 웍스(Carlson Glass Works)’에 디자이너 겸 스튜디오 테크니션으로 스카우트돼 7년간 근무했다.


그 후 독립해 뉴욕, 시애틀, 필라델피아, 뉴저지 등지에서 수차례 개인전과 기획단체전에 초대되며 왕성한 작가 활동을 이어갔다. 하지만 이에 만족하지 않고 영국 무대로 옮겨 선더랜드대학원에 진학한다. 여기서도 그의 존재감은 빛이 났다. 또 한 번 더 그의 열정은 석사과정 최우수 장학생 수석 졸업이란 영예를 안았다. 석사과정 중에도 동양인 최초로 영국 선더랜드 소재 ‘내셔널 글라스 센터(National Glass Centre)’에서 유리공예 시연자 겸 디자이너로 활동했다.


10년의 해외 생활을 성공적으로 마치고 돌아온 유 작가는 현재 한국 현대미술가의 최대 산실 중 한 곳인 장흥가나아뜰리에 초대작가로 입주해 있다. 앞으로는 한국의 현대미술이 소재보다 작가적 철학에 더 큰 비중을 두게 될 것이다. 유 작가도 그런 점을 감안해 지금까지의 제작 방식을 넘어 ‘변화하는 주거 문화와 소비시장을 고려한 새로운 작업 준비’를 과제로 삼았다고 전한다. 그의 전시 가격은 평면·부조일 경우 10호(53×45.5cm) 크기가 150만 원 전후, 입체는 사방 60cm 기준 400만 원 선이라고 한다.


유리방울, 허상 너머 이데아를 비추다


김윤섭 소장은…
김윤섭 대표는 미술평론가로서 명지대 대학원에서 미술사 박사학위를 취득했고, 2019 안양국제공공예술프로젝트(APAP) 예술감독을 역임했다. 현재는 국립현대미술관 작품가격 평가위원, 정부미술은행 운영위원, 인천국제공항 문화예술자문위원, (사)한국미술시가감정협회 전문위원, 대한적십자사 문화나눔프로젝트 아트디렉터, 숙명여자대학교 겸임교수, 2020 경주국제레지던시아트페스타 전시감독, 아이프(AIF) 아트매니지먼트 대표, (재)예술경영지원센터 이사, 서울시 미래유산보존위원회 위원 등으로 활동 중이다.




[본 기사는 한경머니 제 186호(2020년 11월)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