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EO interview

이성동 얼킨 대표 “예술의 재활용, 소비자와 간극 줄여”

[한경 머니 = 정혜선 객원기자 | 사진 서범세 기자] 버려지는 그림들을 세상에 하나뿐인 제품으로 재탄생시키는 업사이클링 패션 브랜드 얼킨. 패션 스타트업인 얼킨은 부침이 있는 업사이클링 시장에서 자신의 철학을 지키며 천천히 앞으로 나아가고 있다.


서울 용산구 원효로의 한 골목에 들어서면 하얀색 천막이 2층 테라스를 감싸고 있는 그야말로 예술을 하는 사람이 살 법한 단독주택이 보인다. 업사이클링(up-cycling) 패션 브랜드 얼킨(ul:kin)의 사옥이다.


얼킨은 이미 사용됐거나 버려진 물건에 새로운 가치를 부여해 새로운 제품으로 재탄생시키는 업사이클링 브랜드에 걸맞게 사옥 역시 단독주택을 자신들의 이미지에 맞게 꾸며 사옥으로 사용하고 있었다. 주로 사무실로 사용되는 1층을 지나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 벽면에는 다양한 캔버스 그림들이, 2층에는 얼킨에서 만든 옷과 가방들이 진열돼 있었다. 그곳에서 얼킨의 디자이너이자 대표인 이성동 대표를 만났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에 대한 영향이 없는지 묻는 질문으로 인터뷰를 시작했다. 코로나19 팬데믹(세계적 대유행) 이후 자연스러운 안부인사가 돼 버렸다. “올해 코로나19로 패션위크가 열리지 않거나 온라인으로 진행돼 오롯이 경영에만 신경 쓸 수 있는 시간이 생겼어요. 덕분에 사업 다각화를 통해 코로나19 이전보다 매출이 2배 정도 올랐습니다.”


얼킨의 사업은 컬렉션 라인, 소비자 제품 라인, 플랫폼 라인 등 크게 세 분야로 나뉘어져 있는데, 최근 소비자 제품 라인이 다양해진 덕분에 매출이 증가했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이 대표는 60만 원을 투자해 4개월 만에 1억6000만 원을 번 일화를 소개했다. “남자의 경우 여름에 티셔츠만 입었을 때 유두가 드러나는 게 싫어 가려 주는 상품을 만들어 팔았는데 반응이 너무 좋았어요. 지난 6월에 판매를 시작해 4개월 만에 1억6000만 원을 벌었죠.”


이렇게 제품을 만들어 판매할 때도 얼킨만의 철칙이 있다. 만든 제품이 얼킨의 브랜드 철학과 맞지 않을 때는 얼킨의 상표를 과감히 떼고 하위브랜드를 만들어 판매한다. 그렇게 만들어진 하위브랜드만 여러 개다. 물론 실패하는 경우도 있다.


“저희는 패션 스타트업이라 더 많은 실험을 하려고 해요. 아이디어가 있으면 바로 제품화하고, 이 제품이 상품성이 있는지는 플랫폼 와디즈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올려 소비자들의 반응을 보죠. 반응이 좋지 않을 때는 제품화하지 않고, 실패 이유에 대해 직원들과 함께 이야기를 나눕니다. 그러다 보면 문제점을 찾게 되고 그 문제점을 개선하기 위한 방법을 찾게 되죠.” 이 대표는 이 과정이 너무 즐겁다고 했다. 도전을 했을 때 성공을 하면 좋지만, 실패를 통해서도 배울 게 많다는 것이다.


버려진 그림에서 아이디어 얻어 업사이클링 시작


이 대표는 2014년 대학 동기 세 명과 얼킨을 만들었다. 한양대에서 의류학을 전공했던 그는 주변에 미술을 전공하는 친구들이 많았다고 한다. 하루는 친구의 졸업작품 전시회에 갔다가 습작들과 수업시간에 그린 그림들이 버려진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버려진 그림들을 본 순간 이 그림들을 활용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번뜩 들었어요.” 생각은 곧 행동으로 이어졌다. 친한 작가들과 교수님들을 통해 버려질 그림들을 받아 상품화할 방법을 찾았다. 그림을 떼어낸 캔버스는 다시 작가에게 돌려줬다.


그림을 작품의 손상 없이 제품화하는 일은 쉽지 않았다. 그림 위를 얇게 코팅하는 기술을 개발하는 데만 꼬박 6개월이 넘게 걸렸다. “악어가죽으로 제품을 만들 때 가죽이 꺾이면 무늬에 손상이 가 코팅을 하는데 거기서 아이디어를 착안해 방법을 찾아냈죠.” 기술을 개발하기까지 많은 시행착오를 겪으면서 작가들의 작품이 계속 필요했는데, 이 대표는 그때 작가들의 어려운 작업 환경을 알게 됐다고 한다. 그때부터 작품을 준 작가들에게 새 캔버스를 사서 주기 시작했다.


소득이 딱히 있지도 않은 상황에서 새 캔버스를 작가들에게 주는 게 힘들지는 않았는지 묻자, “저희는 작가들의 작품이 제품의 원료이다 보니까 원단을 살 필요가 없잖아요. 원단을 살 돈으로 작가들에게 캔버스를 사 준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힘들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어요.” 얼킨의 이른바 ‘재능 순환’은 이렇게 시작됐다. 얼킨은 작가들의 그림으로 새로운 제품을 만들고 거기서 얻은 수익의 일부를 직간접적으로 작가들에게 돌려준다. 새 캔버스나 재료를 제공하거나 주기적으로 협업 전시를 열어 작품의 유통과 판매를 지원하는 방식이다.


제품을 만들어 가면서 얼킨의 철학도 생겼다. 예술과 소비자의 간극을 줄여 보겠다는 것이다. 사명 얼킨 역시 우리말 ‘얽히고설키다’처럼 예술과 소비자가 뒤섞일 만큼 친근해지길 바라는 마음에 만들어졌다. “저는 사명의 기준이 명확했어요. 일단은 두 글자여야 하고, ‘재능순환’이라는 저희 철학이 담긴 글자여야 했죠. 무엇보다 다른 기업에서 사용하지 않아 인터넷 검색창에 검색했을 때 나오지 않아야 했어요. 그런 면에서 ‘얼킨’은 부사 느낌이 나면서 검색어를 걸지 않아도 인터넷에 검색했을 때 저희가 맨 처음에 나올 거 같아 결정했어요.”


얼킨 제품의 특징은 세상에 하나밖에 없다는 것이다. 하나의 디자인으로 수천 개의 옷을 찍어 내는 기존 패션 브랜드와 달리 하나의 그림으로 오직 하나의 제품만을 만들기 때문이다. 이런 얼킨의 매력을 먼저 알아본 것은 SNS상에서 영향을 펼치고 있는 인플루언서(influencer)들이었다. 그들이 얼킨의 제품을 착용한 사진을 SNS에 올리면서 얼킨이 조금씩 알려졌다고 한다. 협찬을 하지 않았는데 유명 연예인이 제품을 착용하는 경우도 있었다.


“저희는 운이 좋게 광고를 하지 않았는데도 찾아주는 분들이 있어 처음 시장에 안착하는 데 어려움이 없었어요. 정말 감사하게 생각하는 부분이에요.” 얼킨 제품이 알려지면서 태국에서 표절 브랜드가 나왔지만, 이 대표는 딱히 제재할 생각을 하지 않았다고 한다. “각 나라별로 저희처럼 예술을 대중화하려는 브랜드가 나와 주면 전반적인 예술 환경이 나아질 수 있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크게 개의치 않았습니다.”


업사이클링 패션 대중화를 위한 새로운 도전

이성동 얼킨 대표 “예술의 재활용, 소비자와 간극 줄여”
대중화에 성공했느냐는 질문에는 “아직 멀었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패션잡지 보그코리아에도 여러 번 실리고, 매년 서울 패션위크에 참석하고 초청받아 뉴욕 패션위크에도 진출했지만, 예술 하는 사람들만 알 뿐 소비자들에게는 아직 잘 알려지지 않았다고 생각해요.” 업사이클링 패션 브랜드가 쉽게 대중화되지 못하는 이유가 다른 브랜드 대비 높은 가격 때문은 아닌지 이 대표에게 물었다.


실제로 이날 그가 인터뷰 당시 입은 재킷은 밀리터리룩과 1990년대 바람막이를 재해석한 얼킨 제품으로 온라인에서 40만 원이 넘는 가격에 판매되고 있다. 제품 생산 과정이 다르기 때문에 가격이 높은 것은 어쩔 수 없다고 이 대표는 설명했다. “대량 생산하는 일반 패션 브랜드와 달리 업사이클링 제품은 하나하나 수작업으로 만든 경우가 많아 비쌀 수밖에 없어요. 그래서 업사이클링 패션 브랜드를 이용하는 고객들을 보면 가치소비에 대한 생각을 가지고 있는 경우가 많아요. 옷을 사면서 환경까지 챙긴다는 거죠.”


미세먼지, 기후변화 등으로 환경문제에 대한 관심이 높아져서인지 가치소비를 하는 20~30대가 많아진 것을 피부로 느낀다고 이 대표는 말했다. “가끔 팝업스토어를 여는데 일부러 찾아와 구매하는 분들이 꾸준히 늘어나더라고요. 제가 업사이클링 제품을 판매하고 있지만, 그분들을 볼 때마다 소비에 대한 개념이 깨어 있는 분들이 많다는 사실에 놀랄 때가 있어요.”


소비자들의 인식이 바뀌길 바라기만 해서는 업사이클링 패션 브랜드의 대중화를 기대하기는 어렵다. 그런 면에서 얼킨의 대중화는 이 대표의 숙제다. 이 숙제를 풀기 위해 얼킨은 지금 새로운 도전을 준비 중이다. 얼킨에서 활용하는 작가들의 그림을 다른 브랜드의 제품에 적용해 구매할 수 있는 플랫폼(애플리케이션)을 11월 말 출시를 목표로 준비 중이다.


“저희가 소셜 임팩트(사회의 빈 곳을 채워 긍정적인 영향력을 만들어 내는 것)를 만들어 내는 회사인데, 점검해 보니 실제 매출에서 3%만이 소셜 임팩트가 발생하고 있더라고요. 생각보다 너무 적어서 놀랐어요. 그래서 소셜 임팩트를 더 낼 수 있는 방법을 찾다가 생각해 낸 게 플랫폼 사업이에요. 앞으로는 이 플랫폼이 얼킨의 메인 사업이 될 겁니다.” 이 대표는 이 플랫폼에 대해 디지털화된 음원을 구매하는 것과 같은 원리라고 설명했다. 우리가 음원을 구매해 듣는 것처럼 디지털화된 그림을 얼킨의 플랫폼에서 구매해 원하는 브랜드의 제품에 이 그림을 얹히는 방식이다. 이전에는 없던 새로운 구매 방식이기에 소비자들의 반응이 무척 궁금해진다.



[본 기사는 한경머니 제 186호(2020년 11월)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