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 머니 기고=배정원 행복한성문화센터 대표·성전문가·보건학 박사·유튜브 ‘배정원TV’]마치 감전이 된 것처럼 짜릿하게 다시 사랑을 할 수 있을까. 누군가는 욕정을 채우기 위해 또 누구는 자신이 특별하고 멋진 사람이라는 것을 다시 발견하기 위해 바람을 피운다. 그렇다면 ‘바람의 끝’, ‘썸’은 ‘썸’으로 상처 없이 끝맺을 수 있을까.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의 사회적 거리 두기를 실천하다 보니 자연환경은 조금이나마 회복되는 것처럼 보인다. 하늘은 더없이 파랗고 구름은 솜사탕처럼 가볍다. 공기는 맑고 청량해서 어디든 발길 닿는 곳으로 떠나고 싶어 온통 마음이 들썩댄다. 초록색이 선명했던 나뭇잎들은 이제 하나둘 노랗고 붉은 단풍 옷으로 갈아입을 채비를 하고 있다.
소슬한 가을바람에 마지막 잎새처럼 한들한들 떨어져 길가에 구르는 낙엽들을 보며 중년 남녀들은 ‘아, 뜨겁게 연애 한번 해 봤으면 좋겠다’며 아쉬운 한숨을 내쉰다. 젊은 날 그렇게 가슴을 설레게 하고 온몸이 감전된 듯 짜릿하게 하며, 심장을 뛰게 하던 ‘사랑의 감정’을 나누고, 불길이 사위어 가는 모닥불에 새로운 장작을 던져 넣은 것처럼 나를 뜨거운 ‘사랑의 불길’ 속으로 밀어 넣어 줄 아름다운 누군가가 어딘가에 있을 거라는 희망을 품어 보기도 한다.
그래서 이맘때 노래방에 가면 최백호의 ‘낭만에 대하여’나 나훈아의 ‘갈무리’를 부르며 ‘내가 왜 이러는지 몰라’를 목청껏 부르는 중년 남성들이 많아진다.
“나이가 들고 가을이 깊어 가니 나도 뜨겁게 연애 한번 하고 싶네요. 옛날 첫사랑 그녀도 생각나고….”
“이대로 시들어 버리긴 너무 아깝잖아요? 사랑 한번 다시 해 봤으면….”
싱글인 사람이야 ‘옆구리가 시려워’ 누군가를 찾는다고 하지만 짝이 멀쩡히 있는 남자도 ‘뒤늦은 사랑타령’을 하는 것을 보면 사람들에겐 ‘바람의 유전자’가 내재하는 것이 분명하다.
진화심리학자들은 현세의 사람들이 남녀를 막론하고, 가장 바람둥이였던 이의 후손일 거라고 말한다. 오랜 옛날부터 일부일처제를 기본으로 살아 왔던 사람들이었지만, 다른 여자들과 밀회를 즐겼던 남자들은 더 많은 유전자를 퍼뜨렸고, 다른 남자와 몰래 바람을 핀 여자들은 아이를 기르는 데 더 부가적인 자원을 획득해서, 유전자가 더 훌륭한 아이를 더 건강하게 키울 수가 있었을 테다.
또 원래의 배우자를 떠나 다른 사람을 만난 사람들은 더 다양한 아이들을 낳을 수 있었을 것이고 이렇게 열정적인(?) 사람들의 자녀들은 더 많이 살아남아 도취와 애착, 그리고 장기적인 편안한 관계에 초조해하는 유전적인 특성을 남겼을 거라는 거다. 수만 년 전에는 짝을 만나고 헤어지기가 더 쉽고 잦은 일이었을 게다. 그래서 사람의 ‘바람기’는 인류의 조상들이 짝을 이루고 아이를 낳고, 헤어지고 다시 다른 짝을 찾기를 반복하며 발달된 생리적인 요소에서 비롯됐을 거라고 주장하는 인류학자들이 적지 않다.
◆바람꾼들에 대한 몇 가지 조언
노버트 비솝(Norbert Bischof)이라는 동물행동학자는 “동물들은 과도한 안전성을 확보하면, 자기가 애착하던 대상에게서 물러서는 반응을 보인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하기도 했다. 이런 반응을 그는 ‘싫증반응(surfeit response)’이라고 불렀는데, 동물뿐 아니라 사람들 역시 얼마간의 시간이 지나면, 장기적인 편안한 짝에게 싫증을 느끼고 좋아하는 마음이 사라지는 현상이 생긴다는 것이다.
‘마누라성 발기부전’을 이야기하며 “가족 간 섹스는 피해야 한다”고 말하는 건 남자들만이 아니다. 여자들 역시 오래되고 익숙한 관계에서 성욕을 잃기가 쉽다는 연구가 꽤 있는 걸 보면 남녀 공히 내재된 바람기와 싸우거나 협상하는 것이 인간의 성인지도 모르겠다. 이런 내재된 ‘바람기’와 ‘싫증반응’이 바람을 부르는 것이다.
바람을 잘 피우는 사람들은 특성이 있다. 생리적으로 뇌 속 효소 중 하나인 모노아민옥시다제(MAO)의 수치가 낮은 사람들은 사교적이며, 술을 많이 마시고, 마약을 탐닉하거나, 자동차 질주를 즐기고, 록 콘서트와 술집, 유흥업소에서 흥분된 기분을 느끼고 싶어 한다고 한다. 또 적극적이고 다양한 성생활을 추구하기도 한다. 즉, 스릴을 추구하는 성향을 가진 사람들이 바람을 피울 확률이 많다는 것이다.
바람을 피우는 이유도 다양해서 사랑 때문에, 욕정을 채우기 위해서, 결혼생활에 부족한 점을 메우려고, 배우자와 헤어질 구실을 만들기 위해, 관심을 끌기 위해서, 자신이 특별하고 멋진 사람이라는 것을 확인받기 위해 바람을 피운다. 또 매력적이거나 이해받는다는 느낌을 받고 싶어서, 많은 대화를 나누며 친하게 지낼 사람이 필요해서, 단순히 섹스를 원해서 간통을 하기도 한다. 이 밖에도 배우자에게 복수하기 위해서, 완전한 사랑을 찾기 위해서, 자신이 아직 젊다는 것을 확인하기 위해서 마지막일지도 모르는 사랑을 갈구한다는 사람들도 있다.
익숙해진 상대가 아닌 낯선 사람과 사랑에 빠진다는 것은 정말 흥분된 일이 아닐 수 없다. 자신에게 사라져 버린 줄 알았던 연애 감정도 다시 살아나고, 세상이 생동감을 갖고 반짝거리며, 자존감이 높아진다. 갑자기 자신이 매력을 갖춘 능력자처럼 생각되고, 나를 세상의 중심으로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만으로 세상을 다 가진 것 같다. 게다가 새로 시작된 섹스는 신비하고, 나를 다시 젊음의 생기로 넘치게 하고, 상대의 만족은 자신감을 불어넣는다.
이런 신나는 세월을 잠시나마 구가하는 당신을 실망시키고 싶지는 않지만, 이렇게 황홀한 시기는 결국 끝나게 돼 있다. 관계가 깊어질수록 더 이상 그녀에게 설레지 않고, 이런 아슬아슬한 스릴의 만남이 불안해진다. 뜨거운 열정으로 끝없이 계속될 것 같던 그녀와의 밀회는 점점 자신의 위치와 책임을 요구하는 그녀의 보챔으로 흔들리기 시작한다.
바람의 끝은 참으로 비루하다. 일단 신뢰와 사랑으로 구축했던 가정이 불안해지고, 배우자가 알게 되면 이혼이나 망신을 당하고, 모른다 해도 거짓말은 쌓여 가고, 죄의식은 깊어진다. 간통죄가 없어졌다고 간통이 옳은 일이 된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또 상대가 바람을 피운 것을 알게 된 배우자가 겪을 고통은 너무나 크다. 그때부터 지옥이 시작된다. 한 번의 바람이 가정을 깨지는 않을지라도 사람의 마음에 회복하지 못할 흉터를 남긴다.
상담의 장에서 만나는 수많은 바람꾼(?)들에게 필자가 조언하는 것은 “인생은 단순한 것이 좋다”는 말이다. 인생의 관계가 복잡해지고, 특히 혼외 남녀관계가 얽히고설켜서 행복한 결말을 거의 못 보았다. 어느 한쪽은 정리해야 한다. 두 마음으로 살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다. 아니면 어느 쪽도 온전하지 않은 사랑을 감수하면서 살아야 하든지.
오스카 와일드도 말하지 않았던가. “인생에 두 가지 큰 비극, 하나는 사랑하는 사람을 잃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사랑하는 사람을 얻는 것”이라고.
[본 기사는 한경머니 제 186호(2020년 11월)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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