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 머니 기고 = 윤대현 서울대학교병원 강남센터 정신의학과 교수]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로 사람을 만나지 못하니 더 스트레스 받는다는 사람들이 많다. 따뜻한 만남은 최고의 힐링 활동이다. 그 활동이 제약되니 스트레스가 풀리지 못하고 결국 외로움마저 깊이 느끼게 된다.

왜 사람은 외로움을 느끼는 것일까. 내 환경이 외롭기 때문에 외로움을 느끼는 것일까. 그것으로는 ‘군중 속의 고독’이란 말을 설명하긴 어려울 것 같다. 외로움은 환경적 결핍에 기인한 이차적인 감정 반응이기도 하지만 사람의 본능과 연결돼 있다.


생존을 위해서는 다음 세대를 만들기 위한 성적 본능도 중요하지만 사회적 유대감을 형성하도록 하는 힘, 외로움도 우리 유전자 안에 본능적 느낌으로 내재돼 있는 것이다. 외롭지 않다면 사회적 관계를 열심히 만들지 않을 것이다. 인간이 발달시킨 사회와 문화는 이 관계망 속에서 이루어진 것이다. 사회적 유대감을 향한 외로움이 없었다면 인간이 문화적 특성을 가지기 어려웠을 것이다.


상황이 외롭기 때문에 외롭기도 하지만 외로움은 사람이 가지고 태어나는 본능적 감정이기도 한 것이다. 타고나기를 더 외로운 사람이 있을까. 외로움에 대한 연구를 보면 ‘그렇다’다. 어떤 특성의 유전적 경향을 알기 위해 하는 연구가 쌍생아연구인데 유전자가 완전히 동일한 쌍둥이를 일란성 쌍생아라 한다. 일란성 쌍생아를 대상으로 한 외로움 연구에서 유전적 경향이 48% 거의 반에 이른다는 연구 보고가 있다. 외로움에 대한 유전적 영향이 반이라는 것이다. 즉, 타고나기를 외로움을 잘 타게 태어난 사람은 같은 환경에서도 더 외로움을 느낀다는 것이다.


인간에겐 자신의 생존만을 위해 달려가는 이기적 유전자가 분명 존재한다. 그러나 이기적 유전자만 존재했다면 오히려 인류 전체에 위기가 찾아오지 않았을까 싶다. 사회적 유대감을 강렬히 원하는 외로움의 유전자가 함께 있기에 경쟁과 협동이 서로 균형을 이루어 인류의 존재감을 두텁게 하고 있다고 생각된다.


그리스 철학자 에피크로스는 인간 쾌락의 3요소로 우정, 자유, 사색을 이야기했다고 한다. 자유와 사색이 독립된 개체로서 자신의 내면을 살펴보는 여유라면 우정은 타인과의 따뜻한 관계다. 우정에는 기본적으로 이타적인 관심이 포함돼 있다. 상대방의 아픔이 내 아픔으로 여겨지는 것이 우정의 근간이 되는 공감 소통이라 생각된다.


여러 연구가 행복과 관련된 첫째 요인이 진실한 우정, 즉 솔직히 내 마음을 터놓고 위로받을 수 있는 타인, 친구가 얼마나 존재하는가라고 이야기한다. 친구가 없어 외롭다 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만날 친구가 없다기보단 나를 위로해 주는 한 사람이 없다는 이야기겠다.


좋은 관계, 우정을 만드는 일은 생존 이상으로 뇌의 행복감을 위해 우선시해야 할 일이라 생각된다. 코로나19로 직접 만나기 어렵더라고 소셜미디어 등 여러 방법으로 따뜻한 소통을 하는 것이 요즘 같은 극도의 스트레스 상황에선 더 필요하다. 언택트 우정도 충분히 따뜻함을 공유할 수 있다.


그런데 만남에도 적정한 거리가 필수적이다. 엘런 맥팔레인 케임브리지대 인류학 교수의 글을 소개한다. “우정은 존중과 예의에 기초합니다. 그 존중과 예의는 밀접함에 근거하지만 동시에 일정한 거리를 두어야 합니다. 이때 거리 두기는 타인의 개별적 주체성, 이를테면 개별적인 욕구와 필요, 그리고 그 사람의 사회적 공간을 인정한다는 뜻입니다. 어떤 사람이 자신의 목적을 위해 나의 시간과 공간, 욕망을 강제로 침범한다면 그것은 육체적 학대 못지않은 심각한 폭력입니다. 그만큼 개인을 둘러싸고 있는 사회적 공간은 대단히 중요합니다.”


“너 저 친구와 가깝니?”란 질문을 우리는 종종 한다. 둘 사이의 친밀도, 우정의 정도가 궁금할 때 던지는 질문이다. 우정이 생기기 위해서는 마음의 거리가 가까워져야 한다. 서로에 대한 지식도 늘고 마음 상태에 대해서도 공유하게 된다. 친구와의 의사소통에 있어서 최고의 형태는 침묵이라고도 한다.


우정이 깊어지면 말하지 않아도 상대방의 마음이 느껴질 정도로 상대방과 마음의 거리가 가까워진다. 이렇게 마음의 거리가 가까워지면 실제 물리적 거리도 가까워진다. 만나는 횟수도 늘어나고 취미나 여러 활동 등도 함께하게 된다. 비밀이 없고 거의 모든 것을 함께하는 단짝 친구의 우정을 갖게 되는 것이다.


외로운 인생에 이런 단짝 친구를 갖는다는 것은 큰 행복인데 아무리 가까운 단짝 친구라도 우정에 위기가 찾아오게 된다. 내 자유가 상대방에 의해 침범을 받는다는 느낌이 들 때다. 두 사람이 아무리 가깝고 잘 맞는다고 해도 모든 것이 일치될 수는 없다. ‘우리는 하나다’라는 느낌에 따뜻함을 느끼지만, 그러나 여전히 우리는 다른 사람인 것도 인정해야 할 사실이다.


그래서 우정이 유지되는 데 적절한 공간이 두 사람 사이에 어느 정도는 필요하다. 완벽한 우정을 추구하는 사람들 중에 친구 관계를 유지하는 데에 어려움을 호소하는 경우가 있다. 나는 100의 우정을 주었는데 상대방은 80만을 주어 섭섭하다. 그래서 100을 요구했더니 떠나가 버렸다는 내용이다.


완벽한 우정을 추구한다는 것은 그만큼 외로움도 더 크게 느낀다는 것인데 그러다 보니 적절한 공간을 유지하는 데 어려움을 느낄 수 있다. 그러나 좋은 우정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친밀함과 더불어 상대방의 자유를 존중해 적정 거리를 만들어 주는 것이 반드시 필요하다.


요즘 외로움과 더불어 관계가 너무 밀집돼 힘들다는 고민도 동시에 많다. 예를 들어 온 가족이 너무 한 공간에 오랜 시간 있다 보니 오히려 스트레스라고 이야기한다. 관계라는 것이 어렵다. 내 가족이 문제가 있어 꼭 갈등이 생기는 것은 아니다. 사람은 모여 있게 되면 자유의 느낌이 쪼그라들어 힘들 수 있다. 가족 구성원에게 주말에 잠시라도 자유의 시간을 갖도록 배려하는 것이 필요하다.


[본 기사는 한경머니 제 185호(2020년 10월)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