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IT 기업들 앞 다퉈 ‘인도 러시’

[한경 머니 기고=이장훈 국제문제 애널리스트 | 사진 한국경제DB]미국의 정보기술(IT) 기업들이 최근 중국과의 국경 분쟁으로 반중 정서가 확산되고 있는 인도에 대규모 투자 등을 단행해 주목을 받고 있다. 특히 인도는 인구 13억8000만 명에 달하는 거대한 시장일 뿐 아니라 성장 잠재력이 크고 IT 인력도 많다는 점에서 기대감을 높이고 있다.

무케시 암바니(63) 인도 릴라이언스 그룹 회장은 아시아 최고 부자다. 암바니 회장은 블룸버그 억만장자지수에서 전 세계 8위 부자에 올라 있다. 재산은 815억 달러로 추정된다. 릴라이언스 그룹은 정유와 천연가스 같은 에너지, 화학, 철강, 바이오, 제약, 유통 등 다양한 분야에서 사업을 벌이는 인도 최대 기업이다.

암바니 회장의 아버지 디루바이가 26세였던 1958년 단돈 5만 루피(84만 원)의 종잣돈으로 설립한 무역회사에서 시작해 영역을 확대하며 지금의 거대 기업으로 발전했다. 암바니 회장은 서부 구자라트주를 본거지로 하고 있는 상인계급을 뜻하는 ‘바니아’ 출신이다. 구자라트주는 나렌드라 모디 총리의 고향이기도 하다.

암바니 회장은 2016년 9월 릴라이언스 지오라는 통신회사를 설립하고, 이동통신 시장에도 진출했다. 릴라이언스 지오는 3개월간 음성통화 요금을 받지 않는 등 공격적인 마케팅으로 시장을 휩쓸었다. 릴라이언스 지오는 이렇게 급성장을 거듭한 끝에 지난해 중반에는 기존의 보다폰 아이디어, 바르티 에어텔 등을 제치고 가입자 기준 인도 최대 통신사로 자리매김했다. 현재 가입자 수는 3억9000만 명에 달한다.

암바니 회장은 2019년 10월 디지털 서비스회사인 지오플랫폼을 설립하고, 이 회사 산하에 이동통신사 릴라이언스 지오와 전자상거래 플랫폼 지오마트, 음악 스트리밍 서비스 지오 자븐, 무선통신장비 제조업체 래디시스 등 5개 사를 두는 등 그룹 체제를 개편했다. 그의 야심은 지오플랫폼으로 ‘디지털 제국(digital empire)’을 만들겠다는 것이다. 미디어, 엔터테인먼트, 전자상거래, 교육, 블록체인, 금융 등 인도의 모든 디지털 분야를 손에 넣겠다는 것이다. 이 때문인지 몰라도 미국의 IT 기업들과 최고경영자(CEO)들이 최근 들어 암바니 회장과 밀접한 관계를 맺기 위해 적극 나서고 있다.

암바니 회장과 친분이 두터운 미국 IT 기업 CEO로는 구글의 순다르 피차이를 들 수 있다. 피차이 CEO는 미국에서 가장 성공한 기업가 가운데 한 명이다. 인도 타밀나두주에서 태어난 그는 부친이 전기기술자였지만 집안 사정이 넉넉한 편이 아니어서 대학에 들어가기 전까지 컴퓨터를 만져 본 적이 없었다. 그가 대학에 입학한 것은 어렸을 때부터 주변 모든 사람의 전화번호를 외우는 등 신동이라는 얘기를 들을 정도로 뛰어난 암기력을 보였기 때문이다. 인도공과대 카라그푸르 캠퍼스에 입학한 그는 컴퓨터와 무관한 야금공학을 공부했지만, 컴퓨터를 처음 접하고 독학으로 체스 프로그램을 만들 만큼 컴퓨터공학에 푹 빠졌다. 미국으로 유학 간 그는 스탠퍼드대에서 재료공학 석사과정을 이수하고 반도체 제작 장비를 만드는 회사에 엔지니어로 취직했다.

이후 미국 펜실베이니아대 와튼스쿨에서 경영학 석사를 마치고 매킨지컨설팅그룹에서 반도체 관련 컨설팅을 진행하다가 2004년 구글에 합류했다. 그는 인터넷 브라우저 크롬과 모바일 운영체제(OS)인 안드로이드, 구글 드라이브, 구글 맵 개발을 주도하는 등 고속 승진을 거듭한 끝에 2015년 구글 CEO가 됐다. 지난해 12월부터 구글 모기업 알파벳의 CEO도 겸하고 있는 그는 그동안 컴퓨터와 인터넷이 없던 자신의 유년 시절을 생각해 인도의 디지털 인프라 개선에 관심을 가져왔다.
美 IT 기업들 앞 다퉈 ‘인도 러시’

◆글로벌 큰손, 지오플랫폼에 대규모 투자

구글의 모회사인 알파벳은 지난 7월 지오플랫폼에 40억 달러를 투자해 지분 7.73%를 인수했다. 페이스북, 퀄컴, 인텔도 지오플랫폼에 60억 달러를 투자해 지분 25.2%를 매입했다. 또 실버레이크, 비스타, 제너럴애틀란틱, KKR 등 미국 사모펀드와 사우디아라비아 국부펀드, 아부다비투자청 등 글로벌 큰손들도 지오플랫폼에 투자했다. 지오플랫폼은 13곳에 지분 33%를 매각해 202억 달러의 투자금을 모았다. 인도의 스타트업 전체가 지난해 전체 투자받은 금액이 145억 달러인 것을 감안하면 엄청난 규모다. 이 때문에 지오플랫폼의 가치는 679억 달러에서 1000억 달러로 치솟았다. 지오플랫폼은 내년 미국 증시 상장을 목표로 하고 있다.

미국 IT 기업들이 이처럼 인도에 대규모 투자를 하는 이유는 무엇보다 인구가 13억8000만 명에 달하는 거대한 시장일 뿐 아니라 성장 잠재력이 크고 IT 인력도 많기 때문이다. 미국과 유럽연합(EU)의 인터넷 보급률은 85%인 반면, 인도는 34%에 불과하다. 중국(65%)과 비교해도 상당히 낮다. 그만큼 큰 기회가 있는 시장이라고 볼 수 있다. 또한 중국 정부가 외국 기업들을 심하게 규제하면서 자국 산업 보호를 우선시하는 반면, 인도 정부는 규제가 거의 없을 뿐만 아니라 외국 기업들의 투자에 상당한 혜택까지 제공하고 있기 때문이다.

가장 중요한 이유는 미국 IT 기업들이 자국과 기술 패권 다툼을 벌이는 중국에 등을 돌리고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미국 IT 기업들은 갈수록 중국에서 사업하는 것이 어려워지고 있다. 이런 가운데 인도 정부가 최근 국경지대인 라다크 지역에서 벌어진 자국군과 중국군과의 유혈 분쟁을 계기로 반중(反中) 노선을 분명히 추진하는 점도 영향을 미쳤다고 볼 수 있다.

실제로 인도군와 중국군은 지난 9월 7일 히말라야 산맥 라다크 지역 국경지대인 판공호수 남쪽에 있는 레장 라 산길에서 총격전을 벌였다. 양국군이 국경지대에서 산발적으로 충돌을 벌여 왔지만, 총격전을 벌인 것은 1975년 이후 45년 만에 처음이다. 양국은 1996년 사실상 국경선인 실질통제선(LAC) 2㎞ 이내에서 총기를 휴대하지 않고 사용하지 않는다는 협정을 맺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양국이 이를 어기고 총격전을 벌인 것도 24년 만이다.

중국 인민해방군 서부전구 장수이리 대변인은 “인도군이 불법으로 LAC를 넘어와 판공호수의 중국군 기지 부근에서 경고 사격을 가해 왔다”면서 “이는 심각한 군사 도발이자 비열한 행위”라고 비난했다. 인도 국방부도 “인도군은 LAC를 넘어가거나 총기 사용 등 과격한 공격 수단을 쓰지 않았다”면서 “인도군 전방 진지 중 한 곳에 근접하려 시도한 것은 중국군이고, 중국군이 먼저 경고 사격을 했다”고 반박했다.

양국군은 최근 들어 국경지역에서 전력을 대폭 강화하는 등 첨예하게 대립해 왔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지난 8월 28∼29일 베이징에서 열린 제7차 공산당 티베트 업무 좌담회에서 당·정·군 지도자들에게 “티베트 국경 방어를 강화하고 국경 안보를 확보해 항구적인 평화를 보장해야 한다”면서 국경 지역에 배치된 군 전력을 강화하라고 지시했었다. 이에 따라 중국군은 최신예 스텔스 전투기인 젠(J)-20을 인도 국경에서 불과 320㎞ 떨어진 허톈 공군기지에 배치했다. 중국군이 젠-20을 배치한 것은 인도와의 국경 분쟁에서 절대 양보하지 않겠다는 단호한 의지를 보여 주기 위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중국군은 또 허텐 공군기지에 각종 전투기들은 물론 훙(H)-6 전략폭격기 3대와 윈(Y)-20 수송기 1대 등을 배치했다.

모디 인도 총리는 7월 3일 라다크 지역 군부대를 시찰하고 장병들에게 연설을 통해 “누군가 팽창주의를 고집한다면 세계 평화에 위험을 초래할 것”이라면서 “팽창주의자들이 패배하거나 소멸한 사례는 역사가 증명한다”며 중국을 겨냥해 경고 메시지를 보냈다. 인도군은 모디 총리의 지시에 따라 각 전방 공군기지에 주력 전투기 SU-30MKI를 비롯해 프랑스산 라팔 전투기, 공격용 헬기인 아파치 등을 전진 배치했다. 인도군은 또 국경 인근에 T-90 탱크를 투입하고 러시아제 견착식 지대공 미사일을 갖춘 부대를 라다크 지역 동쪽에 추가 배치하는 등 중국군의 공세에 맞대응하겠다는 의지를 보이고 있다.

특히 인도에선 중국과의 국경 분쟁에서 자국군 병사들이 사망하자 국민들은 물론 정부의 반중 정서가 그 어느 때보다 고조되고 있다. 인도군 병사 20명은 지난 6월 15일 라다크 지역에서 중국군 병사들과 육박전을 벌인 끝에 쇠못이 박힌 몽둥이 등으로 얻어맞아 숨졌다. 이 때문에 인도 국민들은 뉴델리를 비롯해 전국적으로 대규모 반중 시위를 벌이기도 했다. 반중 시위대는 시 주석의 얼굴 사진, 중국 국기인 오성홍기를 비롯해 중국산 전자제품을 불태우기도 했다.

전인도무역협회(CAIT) 등 민간단체들이 주도하는 중국산 제품 불매운동이 크게 확산하고 있다. 게다가 인도 민간단체들은 중국산 제품 불매운동까지 벌이고 있다. 인도 민간단체들은 중국산을 인도산으로 대체할 수 있는 제품 3000여 개를 제시하고, 2021년까지 중국산 제품 수입 규모에서 130억 달러(약 15조5600억 원)를 줄이는 게 목표라고 밝히기도 했다. 인도의 2018∼2019 회계연도 대중(對中) 무역적자 규모는 536억 달러(약 64조1600억 원)에 달한다.

인도 정부는 지난 6월 틱톡과 위챗 등 59개, 지난 7월 바이두 등 47개, 지난 9월 알리페이와 텐센트 모바일 게임 등 118개 중국산 애플리케이션들을 인도의 주권과 안보에 위협이 된다는 이유로 지금까지 모두 세 차례에 걸쳐 사용을 금지하는 등 보복조치를 내렸다. 특히 인도 정부는 5세대(5G) 이동통신 네트워크 구축 사업에서 세계 최대 통신장비업체인 중국의 화웨이와 ZTE의 입찰을 제한하기로 했다. 인도 정부는 또 국영 통신사 BSNL과 MTNL에 중국산 장비를 사용하지 말라는 지침을 내렸다.

중국 IT 기업들과 스마트폰 제조업체들이 불매운동 등의 여파로 인도 시장에서 상당히 고전하고 있다. 시장조사업체 IDC에 따르면 삼성전자는 지난 1분기 인도 스마트폰 시장에서 중국의 샤오미와 비보에 이어 점유율 3위였지만, 2분기에 1위에 올랐다. 이처럼 반중 정서와 중국산 제품 불매운동이 갈수록 심화되자 미국 IT 기업들은 이 틈을 노려 인도에 적극적으로 진출하고 있다.

닐 샤 카운터포인터 리서치 연구원은 “미국 IT 기업들은 반중 정서 덕분에 인도 시장 진출을 확대하고 있다”고 밝혔다. 특히 애플의 최대 위탁생산업체인 대만 폭스콘은 인도 남부에 있는 아이폰 공장의 확장에 10억 달러를 투입할 계획이다. 이에 따라 폭스콘이 인도에서 생산하는 아이폰은 400억 달러(약 47조8760억 원) 규모가 될 것으로 보인다. 이는 폭스콘의 중국 전체 생산 규모의 20%에 해당한다. 폭스콘은 “인도 생산시설 확장은 생산기지의 탈(脫)중국을 모색하던 애플의 강력한 요청에 따라 이뤄진 것”이라고 밝혔다. 구글도 앞으로 5~7년간 100억 달러(약 12조 원) 규모의 ‘인도 디지털화 펀드’를 조성해 맞춤형 IT 제품 및 서비스 개발, 중소상인의 디지털 전환, 인공지능(AI) 관련 분야 등에 투자할 계획이다.

인도 정부는 미국 IT 기업들의 대규모 투자를 적극 환영하고 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로 지난 2분기 경제성장률이 –23.9%를 기록하는 등 경제 악화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인도 정부로선 미국 IT 기업들의 진출이 반가울 수밖에 없다. 미국 IT 기업들의 ‘인도 러시’는 미·중의 패권 다툼이 본격화할수록 앞으로 더욱 크게 늘어날 것이 분명하다.


[본 기사는 한경머니 제 185호(2020년 10월)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