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 머니=정채희 기자 | 사진 이승재 기자] 한국형 요괴 콘텐츠의 가능성에 희망을 건 사람이 있다.


한계 없는 ‘덕질’로 화제를 모은 독립출판인 고성배 씨다. 그가 사람들이 쓸모없다고 생각하는 ‘요괴’에 관심을 가졌다. 그의 손을 거쳐 재탄생한 총 218종의 한국형 요괴, 그 뒷 이야기를 들었다.


국내 최초로 한국 요괴를 정리해 화제를 모은 이가 있다. 덕질 장려 잡지 더 쿠(The Kooh) 를 펴낸 독립출판인이자 <한국요괴도감>의 저자인 고성배 씨다.

[special] 고성배 더쿠 편집장 “한국 요괴 정리…K콘텐츠에 활용되기를”


고 씨는 일본 퇴마 만화를 보며 ‘왜 우리나라의 괴물을 정리한 책은 없을까’라는 의문을 갖다가 직접 고대부터 현대까지의 괴물들을 수집해 정리했다. <삼국유사>, <삼국사기> 등의 고문헌과 다양한 민담을 통해 총 218종의 한국 요괴를 도감에 실었다. 문헌에 나온 기록에 따라 직접 삽화를 그리고, 무명의 요괴에는 이름도 붙였다.


그렇게 출간한 독립출판물은 독자들에게 폭발적인 반응을 받으며 화제가 됐고, 이후 다양한 괴물·요괴 콘텐츠가 소개되는 데 도화선이 되기도 했다. 그는 자신의 요괴 도감을 통해 소설이나 드라마, 보드게임과 같은 2차 요괴 콘텐츠가 나오기를 희망한다. 일본이나 중국, 서양물의 요괴가 아닌 한국 요괴에 다양한 서사와 캐릭터가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요괴 덕후’ 고성배 씨를 만났다.


[special] 고성배 더쿠 편집장 “한국 요괴 정리…K콘텐츠에 활용되기를”


국내 최초로 요괴 관련 책을 냈다.


“일본 콘텐츠를 보면 요괴나 괴물에 대한 정리가 잘 돼 있다. ‘백귀’라고 해서 인간 외에도 많은 존재가 있다는 것을 자랑스럽게 여기는 듯하다. 우리나라에도 요괴가 얼마나 있을까 생각해 보니 처녀귀신, 도깨비 정도가 생각이 났다. 그런데 문헌을 찾아보니 생각보다 훨씬 많은 종류의 요괴가 있었다. 일본이 자랑하는 요괴들 또한 한국과 중국의 요괴에서 차용한 것이 많았다. 우리나라 요괴들을 모아 소개하면 재미있겠다 싶어 <한국요괴도감>을 제작하게 됐다.”

한국 요괴와 동양 요괴를 조명했는데 차이가 있었는지 궁금하다.


“우리나라 요괴의 경우 인간에게 해를 끼치는 존재가 많이 없다. 불특정다수에게 위해를 가하는 다른 나라의 요괴들과 달리, 한국 요괴들의 특징은 대개 인간이 되고 싶어 하거나 인간의 삶을 열망하고 인간과 함께 하기를 원한다. 또 직접 해를 끼치거나 불특정다수에게 공격을 가하는 일도 거의 없다. 요괴이지만, 굉장히 인간적이다. 모두가 아는 <장화홍련전>만 봐도 원한이 서린 누군가를 직접 처단하는 게 아니라 고을 원님을 통해 벌을 내리게 하는 방식을 취한다. 다른 나라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사례다.”


일본의 경우는 어떤가.


“일본 요괴는 기본적으로 악한 기운이 강하다. 한국과 중국 요괴를 따오거나 차용한 경우가 많은데, 대개 요괴의 성격이 인간에게 해를 끼치는 등 악하게 변했다. 화장실을 훔쳐보거나 성적으로 기괴한 요괴들이 많아서 작업을 하는 기분이 썩 좋지 못했다.”


중국 요괴는 어떤가.


“중국의 경우 땅이 넓은 만큼 요괴들이 굉장히 다양하다. 용, 기린 등 동물들을 많이 차용하는 편이다. 영험한 동물을 빌려 마치 정말 있었던 개체나 종족, 짐승처럼 표현하는 경우가 많았다. 문헌에 1~2줄로 적힌 요괴들까지 포함하면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아서 도감에 올릴 요괴 콘텐츠를 가려내는 게 쉽지 않았다.”

[special] 고성배 더쿠 편집장 “한국 요괴 정리…K콘텐츠에 활용되기를”
(사진) 고성배 씨가 그린 한국 요괴 ‘강철이’


국내에만 218여 종, 동양 요괴 278종의 요괴를 작업했다. 가장 기억나는 요괴가 있다면.


“한·중·일 요괴 중 국내 요괴들이 순진하고 어설픈 면이 있어 좋아하는 편이다. 특히 ‘불가사리’란 요괴를 좋아한다. 생각보다 모르는 분들이 많은데 우리나라 대표가 될 만한 요괴다. 주로 밥풀에서 탄생하는 괴물인데 철(쇠붙이)을 먹으면 몸집이 점점 커지고, 불에도 타지 않는다. 코끼리의 코, 곰의 몸통, 소의 눈, 바늘과 같은 갈기, 호랑이의 꼬리를 가지고 있다고 알려져 있는데 생김새나 특징이 참 재미있다. ‘강철이’라는 요괴는 소나 말처럼 네발 달린 짐승인데 바람과 비, 우박을 몰고 다니는 우리나라 특유의 요괴로, 지나가기만 해도 흉년이 들었다고 한다. ‘강철이 가는 곳에는 가을도 봄과 같다’는 속담이나, ‘이게 다 강철이(깡철이) 때문이다’라는 표현 등이 여기서 나왔다. 불가사리나 강철이와 같은 요괴들은 우리가 잘 몰랐지만 특색 있고 형체가 딱 그려지는 요괴이기에 어쩌면 귀신보다도 더 재미있는 콘텐츠다.”

[special] 고성배 더쿠 편집장 “한국 요괴 정리…K콘텐츠에 활용되기를”

(사진) 고성배 씨가 그린 한국 요괴 ‘불가사리’


일본에서는 요괴 콘텐츠화가 꽤 진전됐다.


“다양한 요괴 콘텐츠가 있다. 특히 돗토리현의 한 마을은 귀신이나 요괴를 바탕으로 한 테마 빌리지로 만들었는데 이를 보려는 관광객이 많다. ‘누가 오겠어?’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생각보다 요괴에 대한 관심이 높다. 한국에서도 최근 이와 같은 시도들이 진행 중이고, 앞으로 더욱 많아지기를 바라고 있다.”


한국 요괴 콘텐츠의 가능성은 어떻게 생각하는가.


“책을 만든 진짜 이유도 거기에 있다. 국내 요괴를 잘 정리해 두면 창작자들이 콘텐츠 요소로 시도하려는 움직임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게임, 증강현실(AR) 등 분야는 다양하다. ‘포켓몬스터’처럼 국내 요괴들의 성향을 나누고 분류해 게임을 만들 수도 있다. 커피숍도 요괴 콘셉트를 가미해 만들 수 있다.”



[본 기사는 한경머니 제 184호(2020년 09월)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