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 머니 = 배현정 기자 | 참고 자료 <건축과 도시공간>·<공간혁명>] 뉴노멀(new normal)의 문턱에서 어떤 공간을 계획해야 할까.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은 도시의 풍경을 바꾸고 있다. 감염, 격리, 거리 두기로 파생된 포스트 코로나 시대는 예전과는 다른 공간의 변화와 역설적 성찰을 요구하고 있다.

사회적 거리 두기를 적용한 텐트형 교실.
사회적 거리 두기를 적용한 텐트형 교실.

안전거리를 시각화한 지오토(Giotto) 광장의 바닥패턴.
안전거리를 시각화한 지오토(Giotto) 광장의 바닥패턴.

최근 영국의 한 건축 스튜디오는 안전한 교육공간을 위해 텐트 형태에서 착안한 교실을 제안했다. 각각의 텐트형 교실은 사회적 거리 두기 지침에 따라 학교 운동장 또는 야외에 설치하며, 교실 내부는 2m 간격으로 책상을 배치해 학생들이 일정한 거리를 확보할 수 있도록 했다.
이탈리아에선 광장 바닥에 패턴을 설치한 프로젝트가 관심을 모았다. 피렌체 인근의 마을 광장에 설치된 흰색 바닥 패턴은 사람들 사이에 유지해야 할 최소한의 안전거리로 설정된 1.8m를 기준으로 삼고, 해당 크기의 사각형을 격자무늬로 배열했다.


건축도시공간연구소가 최근 펴낸 계간지 <건축과 도시공간>에는 이러한 코로나19 확산을 막는 공간 디자인이 제안됐다. 코로나19로 전 세계 건축가들이 감염병의 시대를 헤쳐 나갈 수 있는 다양한 실험을 하고 있다. 안전이 근간이다. 이를 바탕으로 사회현상과 공간을 잇는 성찰이 활발하다. 감염병과 이상기후 등이 일상을 위협하는 현실에서 현대의 공간은 어떻게 진화할까.


공간의 재해석, ‘자연’으로 연결


유승현 서울대 보건대학원 교수는 ‘활동적인 도시 생활환경을 다시 생각하기’ 보고서를 통해 “코로나19의 경험이 도시공간에서 생활 면면마다 바라보는 관점의 변화를 일으켰다”고 시선 전환을 강조했다. 이를테면 그동안은 도심 근린에 일터와 쉼터, 생활편의시설, 흥미로운 상점가나 문화거리를 복합적으로 구성하면 한정된 도시공간을 다목적으로 활용하면서 사람들의 신체 활동과 사회적 교류의 유도를 기대할 수 있었다. 하지만 감염병의 대유행 속에서는 오히려 사람들의 밀집과 접촉을 차단해야 할 공간이 됐다는 설명이다.


그렇다면 포스트 코로나 시대, 공간에서 가장 주목할 변화는 무엇일까. ‘치유의 건축가’로 불리는 마이클 머피는 “좋은 공간은 치유의 힘이 있다”며 ‘자연과의 연결’을 주목했다. 자연이 보이는 병실에 머무르는 환자가 빠르게 건강을 회복한다는 것이다.


생활공간의 가장 기본인 집 역시 자연을 통해 공기 정화와 환기에 대한 요구는 커진다. 건축가들이 ‘테라스’를 다시 주목하는 이유다. 그동안 실내공간을 확장하기 위해 사라져 가던 발코니와 일부 주택에만 적용되던 테라스의 활용은 코로나19 이후 다양한 아이디어로 논의되고 있다.


유현준 홍익대 건축도시대학 교수는 최근 심포지엄에서 “야외 테라스는 현재 분양 면적에 포함되지 않는데, 테라스 구조 건축물의 활성화를 위해 용적률과 건폐율 등 관련법을 손봐야 한다”고 했다.


공공시설에서는 ‘공원’의 가치가 더 소중해졌다. 서울연구원이 이동통신사 빅데이터를 분석해 보니 코로나19 사태 이후 공원과 녹지 등 시민들의 야외 공간 이용률이 51% 정도 증가한 것으로 나왔다.


전문가들은 감염병 대유행을 겪은 도시민에게 공원은 좋은 편의시설 이상의 의미를 갖게 됐다고 강조한다. 유승현 교수는 “도시 생활권과 자연 녹지로의 연결이나 접근성을 형평성에 입각해서 확보하는 것은 여전히, 더욱 중요해진 도시 건강의 과제다”라고 진단했다. 특히 건강위기 재난의 충격과 회복 부담을 더 크게 경험하는 사회적 약자를 고려하는 공간 조성에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는 지적이다. 공원이나 도로 등 공공인프라는 정치력이 강한 상위 집단의 거주지부터 조성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통계청에 따르면 2018년 서울의 자치구별 1인당 생활권 공원 면적은 서울 종로구가 18.7㎡인 데 반해 금천구는 1.6㎡에 불과했다.

[big story] 공간의 변신, ‘안전’을 넘어 ‘치유’로

‘탈도시화’ 이뤄지나


미국 최대 온라인 부동산 플랫폼 질로우(Zillow)의 리치 바튼 최고경영자(CEO)는 최근 실적발표회에서 “수백만 명에 달하는 미국인들이 코로나19 이후 이사를 고려하고 있다”고 밝혔다. 코로나19로 미국 부동산 시장 판도가 완전히 뒤바뀌고 있다며 “이전보다 덜 북적이는 곳, 재택근무 하기에 더 나은 곳을 선호하는 현상이 뚜렷하다”고 주장했다.


미국 여론조사기관 해리스폴이 지난 4월 말 미국인 약 20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서는 “도시 거주자들의 39%가 인구밀도가 낮은 교외 지역으로 이사할 생각이 있다”는 응답이 나왔다. 코로나19는 기존 고밀 도시의 환경이 감염병에 취약한 구조라는 민낯을 드러냈다. 정보기술(IT)이 바탕이 된 재택근무와 온라인수업의 확산도 도시 중심 생활에 대한 의구심과 균열을 낳고 있다.


지속적으로 팽창하던 1000만 도시 서울도 멈춰 섰다. 김인희 서울연구원 도시공간연구실장은 최근 ‘포스트 코로나 시대 서울의 정책’ 토론회에서 “코로나19 사태는 도시가 주는 고밀도와 집적이라는 장점을 포기하고 저밀도 전원도시로 갈 것이냐는 고민을 던져 주고 있다”고 화두를 제시했다.


서울 인구는 1948년 정부 수립 무렵 127만 명에서 1970년 500만 명을 넘어섰다. 1987년에는 ‘1000만 시대’를 열었다. 하지만 코로나19 이후 서울의 팽창성은 뒷걸음쳤다.


서울시와 KT가 공공빅데이터와 통신데이터를 이용해 서울 생활인구 변화를 분석한 결과, 서울 생활인구는 코로나19 첫 확진자 발생 이전(1월 19일)보다 전체적으로 줄어들었다. 지난 1월 1130만 명을 웃돌던 서울 생활인구는 지난 3월 이후 1100만 명 아래로 내려왔다. 특히 대표적 상업지역의 흔들림이 컸다. 경기도 가라앉았다. 지난 2~5월 서울 대표 상업지구인 삼성1동, 서교동, 신촌동, 명동 등 주요 상업지구의 매출이 1000억 원 이상 감소했다.


연구진은 향후 서울이 대도시로서의 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해 다핵 도시 공간구조로 전환할 필요성이 있다고 봤다. 코로나19 사태는 ‘하나의 중심’에서 다핵으로 인구밀도를 분산시키는 양상으로 나아갈 것으로 예측됐다.


서울은 1990년 도시기본계획이 처음 수립된 이후 20년 넘게 단핵 위계 중심 체계인 ‘1도심·5부도심·11지역중심’ 체계를 이어왔다. 하지만 2013년부터 강남, 여의도, 영등포 등 3도심과 7광역중심, 12지역중심으로 재편하는 ‘2030 서울 플랜’으로 재편해 왔다.


김인희 도시공간연구실장은 “감염병이 발발했을 때 집을 포함해 5분 거리의 생활권 내에서 일반적인 생활을 할 수 있어야 한다”고 밝혔다. 도보로 접근 가능한 자족형 근린생활권은 시민들이 비대면 사회에 유연하게 대처할 수 있게 해 준다는 설명이다.


스마트 도시, 물류 중심 공간으로 재편

[big story] 공간의 변신, ‘안전’을 넘어 ‘치유’로
코로나19 이후 언택트 사회로 나아가면서 도시는 더욱 밀집될 것이라는 주장도 있다. 유현준 교수는 “우리나라가 K방역으로 주목받은 데는 고밀도 아파트 생활로 물류의 이동에 유리하다는 측면도 있다”고 했다. 윤주선 홍익대 건축도시대학원 교수는 “스마트 도시로 나아가면서 24시간 활동이 이뤄지는 초고층 공간과 더불어 전원생활을 추구하는 에코시티 형태의 자족형 마을 문화가 동시에 발전할 것이다”라고 내다봤다.


언택트 확산은 온·오프라인 소비의 양극화로 이어지고 있다. 코로나19로 지난 3월 백화점 소매판매액(1조6960억 원)은 전년 동월 대비 -36.8%로 크게 감소했으나, 온라인 쇼핑은 지속 성장 중이다. 윤 교수는 “3기 신도시의 경우 기존 신도시와 도시 계획에서 큰 틀은 동일하나, 상업시설 공간의 비율이 줄어들 것이다”라고 했다. 향후 스마트 도시로 나아가면 업무시설, 상업시설, 학교시설은 점점 줄어드는 대신 마을(공동체)의 중심에 물류센터가 자리하는 행태로 재편될 것이라고 예측했다.


mini interview



김홍일 동국대 건축공학과 교수
“코로나 이후 탈(脫)중심의 세계로 변화”

[big story] 공간의 변신, ‘안전’을 넘어 ‘치유’로
김홍일 동국대 공과대학 건축공학과 교수는 코로나19 이후 탈(脫)중심의 세계로 변화고 있다고 주장한다. 현재의 학교, 병원, 종교시설, 병원 등 대규모로 인원을 모으는 구조는 중심과 주변부로 나뉘던 모더니즘 시대의 건축물이라는 지적이다.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 공간의 가장 큰 변화는 무엇일까요.
“모더니즘 시대 건축의 핵심이 집중화·거대화였습니다. 한 공간에 많은 사람을 모으고, 그 중심부가 존재했죠. 산업화 시대 공장 생산으로 도시 집중화가 이뤄졌습니다. 그런데 코로나19로 인해 많은 사람들이 이러한 도시 집중화에 의문을 가지게 됐습니다. 불교 이론으론 화엄세계라고 합니다. 그 어떤 개체이든 고유한 가치가 있다는 것이죠. 그동안 이러한 집중화에 의문을 표하는 시각이 있었는데, 코로나19로 촉발된 변화가 정보기술(IT)과 만나 더욱 가속도를 얻게 됐습니다. 그동안 많은 회사에서 재택근무는 좀처럼 시도하기 어려웠는데, 코로나19로 인해 실제 경험해 보니 장점도 느낀 겁니다. 재택근무가 활성화되면서 사무실은 기존처럼 큰 공간을 필요로 하지 않을 겁니다. 학교 시설도 마찬가지입니다. 향후 학령인구가 줄어 학교시설도 빈 공간이 늘어날 텐데 이러한 공간에 대한 고민이 필요한 시점입니다.”


도심의 인구가 분산되면, 전원도시가 활성화되는 것인가요.
“기존에는 전원주택 하면 불편하다는 면이 많았어요. 은퇴 후 전원주택에서 살겠다고 하면, 도시의 주부들은 극구 반대했죠. 그런데 건축 기술의 발달로 이제는 전원주택도 아파트처럼 지을 수 있어요. 정원 등 가꾸기가 부담스럽다면, 굳이 꽃나무를 심는 마당을 가꿀 필요가 없어요. 자연에 둘러싸인 전원주택에선 꼭 내 집 마당에 자연을 둘 필요가 오히려 적습니다. 향후에는 도시의 인프라에서 소외되는 현상도 앞으로는 개선됩니다. 자율주행자동차로 거리의 제약이 줄어들고, 이동의 자유가 획기적으로 개선될 것입니다. 우리나라는 IT 강국입니다. 자율주행차가 다니려면 5세대(5G)망이 깔려야 하는데, 전 세계에서 가장 앞선 기술로 예상보다 빠른 스마트 도시의 미래를 곧 구현할 것입니다.”


집의 모습은 어떻게 달라질까요.
“코로나19 이후 집이 대형화할 것이라는 시각도 있는데, 저는 1인 가구가 늘어 소형화 추세는 계속될 것이라고 봅니다. 다만 1인 점유 공간은 1.5배 정도로 늘어날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발코니입니다. 내외부를 이어주며, 경계가 없어지는 방향으로 나아가는 거죠. 이는 건축학적으로 의미가 각별합니다. 그동안 건축의 역사는 벽체와의 싸움이었어요. 돌을 쌓아 집을 짓던 시기에는 어떻게 구멍을 많이 뚫어 내부로 빛을 들여오느냐가 관건이었어요. 이후 철근콘크리트 건축물로 바뀌면서 이번에는 뚫린 창을 어떻게 막느냐가 관심사가 됐죠. 그런데 코로나19로 내외부의 연결이 주목받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경계’의 역사였다면, 이제는 ‘소통’의 시대가 다시 시작되는 거죠. 코로나19로 인한 단절은 거대화된 모임으로부터의 거리 두기인 반면, 오히려 자연과 주변의 소통하는 계기가 되고 있습니다. 공원도 대형화가 아닌, 집 주변 소규모 공원의 활성화가 중요해졌습니다.”



[본 기사는 한경머니 제 184호(2020년 09월)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