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 머니 기고=홍동희 SC제일은행 투자전략상품부 차장] 글로벌 시장의 최근 흐름을 좌우하는 가장 큰 동인을 꼽자면 단연 ‘유동성’이다. 미국 연방준비제도(Fed, 연준)를 비롯한 각국 중앙은행의 막대한 유동성 공급이 주식시장을 비롯한 전반적인 자산 가격의 상승을 견인하고 있는 것이다.
유동성 파티에 참석하는 투자자들이 늘면서 단기적으로 과열 신호가 나타나고 있다. 하지만 투자자들의 견조한 심리는 향후 유동성 환경이 장기간 유지될 수 있다는 믿음에 기반하고 있다. 즉,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인해 연준의 초저금리 기조가 불가피할 것이며, 금융시장 내 패닉의 조짐이 보인다면 추가 정책이 이를 방어할 것이란 인식이 점점 더 강화되고 있는 것이다. 자산가격이 최소한 급격히 하락할 가능성이 낮다는 신뢰가 생긴다면, 그것만으로도 투자의 장벽은 크게 낮아질 수 있다.
유동성 파티 얼마나 지속될까
유동성 환경하에서는 향후 유의미한 시장의 변화도 유동성에 대한 시그널에서 찾아야 한다. 투자자들은 앞으로 유동성의 방향이 바뀔 만한 트리거는 어디에서 발생할지 혹은 지금의 풍부한 유동성 환경이 후퇴하거나 더 강화될 일은 없을지 등을 고민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이를 가늠하기 위해서는 연준의 정책을 주시해야 할 것이다.
미국 중앙은행인 연준은 글로벌 금융시장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그래서 시장참여자들의 관심이 집중돼 있는 정책기관이다. 연준의 미묘한 시그널만으로도 글로벌 자금의 흐름이 급격하게 뒤바뀔 수 있을 정도로 강력한 힘을 지니고 있다.
현재까지 연준은 투자자들의 믿음에 부응해 왔다. 연준은 금융시장 과열에 대한 부담보다는 실물경기 전반의 불확실성을 훨씬 더 크게 우려하며, 경제 회복세가 본궤도에 오르기 전까지 저금리 환경을 장기간 유지하겠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실제 2022년까지 금리 인상은 없을 것이라는 게 현재 연준 위원들의 입장이다.
꿈틀대는 인플레, 주요 이슈로 부상
다만 대규모로 풀린 유동성은 명목화폐 가치를 떨어트려 결국 인플레이션 압력으로 작용할 수 있다. 기대 인플레이션이 주요국의 경제활동 재개 및 재정부양책 등에 의해 높아지는 가운데, 금과 비트코인 등의 자산은 기존 화폐의 실효성에 관한 의구심과 함께 인플레 가능성을 선반영하며 강세를 보이고 있다.
따라서 인플레에 대한 논의가 시장의 핵심 이슈가 될 것으로 보인다. 지금은 연준의 저금리 기조에 대해 누구도 의심하지 않고 있으나, 경기가 점차 개선되고 물가 압력이 쌓여 갈 때 시장은 연준을 우려의 시선으로 바라보기 시작할 수 있다. 과거 사례에 따르면 미 연준의 통화정책 정상화 논의에 있어 물가가 선제적 시그널 역할을 해 왔기 때문이다. 물가 상승은 긴축에 대한 우려를 높여 시장금리의 상승 전환으로 이어지곤 했다.
새로운 계획을 준비하는 연준
다행스러운 점은 연준이 시장의 이러한 우려를 사전에 인식하고 있다는 것이다. 연준은 최근 몇 년간 통화정책에 대한 포괄적 검토를 진행해 왔으며, 새로운 정책 수단 도입에 대한 논의를 지속하고 있다. 이를 통해 현재 가장 가능성이 높은 안으로 평균물가목표제(average inflation targeting) 도입이 거론되고 있다. 이는 인플레가 연준의 목표치(2%)를 일정 수준 상회하는 것을 용인하고 평균 2%로 유지하는 정책이다. 따라서 연준이 이를 도입할 경우 향후 인플레가 나타나더라도 장기간 완화적 기조가 가능하다는 신호를 전달하며 시장을 안심시키는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유동성 환경은 기회 요인
결론적으로 올해 3월 급락한 이후 회자되고 있는 ‘연준에 맞서지 말라(Don’t fight the Fed)’란 격언은 여전히 유효하다. 코로나19, 미국 대선, 미·중 갈등과 같은 다양한 불확실성이 지속되고 있지만, 유동성 주도의 시장 분위기가 단기간에 바뀔 가능성은 크지 않아 보인다.
투자자 입장에서는 유동성 환경이 주는 기회를 굳이 외면할 필요가 없다. 금리가 제로 영역에 머무는 기간이 장기화하는 국면이라면, 저금리에 순응하기보다는 다양한 투자 수단을 활용해 이를 극복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과욕은 금물, ‘과유불급’ 관점 필요
단, 유동성 파티에 참석한 투자자들이 들뜬 마음으로 낙관론에만 취해 있는 것은 매우 위험하다. 과유불급(過猶不及) 관점을 항상 되새길 필요가 있다. 유동성에 힘입은 시장의 상승세가 유지될 수 있으나, 자산가격이 뜨거워질수록 이익을 실현하고자 하는 투자자들의 과민반응이 변동성을 확대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과도하게 풀린 유동성은 어딘가에 버블을 만들고, 통제되지 않은 버블은 결국 후유증으로 이어진다. 특히, 상위 계층에 편중돼 있는 자산의 특성상 자산가격이 상승할수록 소득의 불균형은 더욱 심화될 수밖에 없다. 정책당국 입장에서도 경기가 안정화되는 특정 시점에 시장 과열에 대한 우려를 불식시키기 위한 행보에 나설 수 있다. 각자 감당할 수 있는 적절한 위험과 그에 상응하는 기대수익을 추구하는 ‘중용의 미덕’이 투자자들에게 요구되는 시점이다.
[본 기사는 한경머니 제 184호(2020년 09월)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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