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 머니=정채희 기자 l 참고 도서 <여행의 미래>] ‘특별여행주의보.’ 세계 전 지역에 빨간불이 켜졌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의 장기화로 각 국가들이 문을 걸어 잠그면서 하늘길이 막히고, 여행길도 막혔다. 여행이 삶의 낙이 된 현대인들에게는 청천벽력과 같은 소식이다. 포스트 코로나 시대, 여행의 미래는 어디로 향할 것인가.

[big story] 위기의 여름휴가, 김 부장의 선택은


“김 부장 올해는 어디 간대?” 김 부장의 여름휴가는 언제나 화제다. 매해 새로운 여행지를 찾는 김 부장은 여행적금을 따로 들어 관리할 만큼 여행이 삶의 중심인 사람이다. 김 부장의 여름휴가 일정을 피해 휴가 일정을 짜야 했던 부원들에게는 그의 소식이 남 일이 아닐 터. “여름휴가, 말도 마. 올해 휴가로 해외여행 못 간다고 계속 히스테리야. 지난해에 짜 두었던 일정도 다 취소됐대.”

지난해 겨울부터 준비했던 김 부장의 여름휴가가 엎질러졌다. 노모를 모시고 스페인을 간다고 했던가. 지난 5월 코로나19가 주춤해 취소를 하지 않고 기다렸지만, 설레는 마음도 잠시 전 세계를 강타한 전염병의 확산세에 눈물을 머금고 위약금을 냈다고 했다. 최근 회사 분위기가 급속도로 냉각된 연유도 그 때문인가. 아, 김 부장의 여행은, 또 나의 여행은 어찌된단 말인가. 올해는, 그리고 또 내년은….

[big story] 위기의 여름휴가, 김 부장의 선택은

빗장 풀려도 요원한 하늘길

세계 전 지역에 빨간불이 켜졌다. 코로나19로 인한 ‘특별여행주의보’의 발령이다. 특별여행주의보는 단기적으로 긴급한 위험에 대해 발령되는 여행경보제도다. 발령 대상 국가의 위험 수준에 따라 1~4단계로 구분되는 단계별 여행경보의 2단계(여행자제) 이상, 3단계(철수권고) 이하에 해당하며 여행 예정자에게는 여행 취소 또는 연기를, 체류자에게는 신변 안전에 특별히 유의할 것을 요구하는 수준이다.

당초 외교부는 지난 3월 23일 특별여행주의보를 발령하며 그 기간을 4월 23일로 못 박았으나, 코로나19의 확산세가 좀처럼 줄어들지 않자 발령 기간을 7월 19일까지 연장했다. 특별여행주의보가 전 세계에 내려진 것은 여행경보제도가 시작된 2004년 이래 처음이다. 정부는 또한, 2주간의 자가격리 지침도 내놨다. ‘감염병의 예방 및 관리에 관한 법률’에 따라 모든 입국자는 입국일로부터 만 14일이 되는 날의 12시까지 자가격리를 필수로 하고, 이를 거부할 시 1년 이하의 징역 또는 1000만 원 이하의 벌금을 부과한다고 공표했다.

한국만의 과장된 정책이 아니다. 코로나19가 전 세계를 강타하면서 출입문을 걸어 잠근 나라만 6월 22일 기준으로 139개 국가·지역에 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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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교부에 따르면 아시아태평양, 미주, 유럽, 중동, 아프리카의 139개 국가·지역이 입국금지 조치를 유지하고 있으며, 9개 국가·지역은 격리 조치를 단행 중이다. 국가 및 지역마다 격리 조치의 방법이 다른데, 미국 하와이의 경우 7월 31일까지 공항에 도착하는 모든 승객을 대상으로 14일간 자가격리가 필수다. 거주자는 자택, 방문객은 호텔에서 자부담으로 14일간 격리돼야 한다. 즉, 방문객이라면 하와이에서의 2주간 격리 이후 국내에서 다시 2주 격리까지 무려 4주를 ‘격리’에 쓸 수 있어야 해외여행이 가능하다는 얘기다.

입국금지와 자가격리가 아니더라도 34개의 국가·지역은 검역 강화를 추진 중이다. 이들 국가는 자가격리를 권고하거나 사증 발급을 중단하는 등 까다로운 절차로 사실상 문을 걸어 잠갔다.

반면 코로나19의 위협이 사라지지 않았지만, 조기 개방에 나선 나라들도 있다. 6월 22일 기준으로 사이프러스(4월 20일), 세르비아(5월 22일), 몬테네그로(5월 30일), 터키(6월 11일) 등 유럽 3개국과 아프리카 탄자니아(5월 20일) 1개국 등 총 5개국이 입국제한을 해제했다. 이들 국가의 코로나19 확진자(사망자) 수는 6월 21일 오전 9시 기준으로 몬테네그로 355명(9명), 탄자니아 509명(21명), 세르비아 1만2709명(259명), 터키 18만6493명(4927명) 순이다.

5개국에 이어 빗장 풀기에 나서는 국가는 점차 늘어날 전망이다. 미국 CNBC에 따르면 유럽은 오는 7월 1일부터 유럽 이외 국가의 방문객 입국을 일부 허용할 계획이다. 유럽연합(EU)의 외교수장 격인 조셉 보렐 외교안보정책 고위 대표는 “여행 제한을 단계적, 부분적으로 완화할 것”이라며 “코로나19 위험도가 낮은 나라부터 입국을 받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아시아의 경우에는 아직 대부분의 국가가 입국 허용 일정을 공개하지 않았지만, 인도네시아 발리 등은 오는 10월 개방할 방침인 것으로 알려졌다.
2000~2020년 전 세계 해외여행 규모UNWTO는 올해 7월부터 각국이 입국제한 조치를 해제하는 최상의 시나리오를 그려봐도, 올해 해외여행 규모는 2019년(14억6200만 명) 대비 58.3% 감소한 6억1000만 명 수준에 그칠 것이라고 전망했다. 20년 전인 1990년대 후반으로 회귀한 수준이다.
2000~2020년 전 세계 해외여행 규모UNWTO는 올해 7월부터 각국이 입국제한 조치를 해제하는 최상의 시나리오를 그려봐도, 올해 해외여행 규모는 2019년(14억6200만 명) 대비 58.3% 감소한 6억1000만 명 수준에 그칠 것이라고 전망했다. 20년 전인 1990년대 후반으로 회귀한 수준이다.


“한국인, 안전에 더 민감”


하지만 유럽을 중심으로 한 입국제한 해제가 전 세계적으로 확장될지는 미지수다. 여전히 코로나19 팬데믹(세계적 대유행)이 진행 중인 데다 하늘길이 막힌 곳도 대부분이다.

유엔 세계관광기구(UNWTO) 전문가집단을 비롯해 국내 여행업 전문가들은 조심스럽게 이르면 올 하반기를 시작으로 늦어도 내년 하반기에는 여행이 차차 회복기에 돌입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오형수 K트래블아카데미 대표는 “7월 조기 개방에 나선 유럽 여행지에서 대규모 감염이 발생하지 않는 한 올 하반기부터 비즈니스 여행자를 시작으로 여행객이 점차 늘어날 것”이라며 “유럽의 경과를 예의주시하고 있다”고 말했다. 박영운 비단길여행사 대표는 “(여행 관련) 예약금이 이미 현지에 지불된 경우 업계 관행상 1년까지 유예가 가능하다”며 “올 초 지불된 예약금 문제로 내년 상반기에는 여행이 정상화될 가능성이 높지만 관건은 코로나19의 지속 여부와 여행객의 ‘심리’에 달려 있다”고 말했다.

당장 눈앞의 문제는 성큼 다가온 여름휴가다. 7말8초. 극성수기가 기다리고 있지만, 장소는커녕 일정조차 잡지 못한 이들이 태반이다. 여행업 전문가들은 올해 여름휴가 선택지에 해외여행은 없다고 단언한다. 여행 후 2주간의 자가격리를 할 시간적 여유가 있어도 코로나19가 종식되거나, 백신이 개발되지 않는 한 전염병 예방의 모범국가로 떠오른 한국보다 안전한 나라를 찾기가 요원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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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 수요를 보여 주는 국제항공편의 검색량도 이를 입증한다. 여행기업 스카이스캐너가 지난 5월 한 달간 아시아태평양 6개국(한국, 일본, 대만, 중국, 뉴질랜드, 호주)을 대상으로 국제항공편 검색량을 분석한 결과, 한국인의 국제항공편 검색량은 하락세를 보인 반면, 뉴질랜드를 제외한 나머지 4개국의 검색량은 증가세를 보인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인 여행객이 다른 해외 여행객과 비교해 안전에 더 민감한 성향을 가진 것으로 풀이된다.

국내 설문조사 결과에서도 한국인의 안전 성향을 보여 주는 사례가 또 있었다. 한국관광공사가 지난 5월 7일부터 17일까지 진행한 설문조사 결과, 국민 10명 중 7명은 코로나19로 인한 ‘생활 속 거리 두기 기간’에는 여행을 가지 않는 편이 낫다고 생각했다. 전체 응답자 1만9529명 중 30.1%가 ‘코로나19 예방 수칙만 잘 지킨다면 여행을 가도 괜찮다’고 답한 반면 69.9%는 ‘여행을 가지 않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답한 것이다. 국내 여행의 재개 희망 시기 또한 여름휴가철이 지난 ‘9월 이후’를 선택한 비율이 33.9%로 가장 높았다. ‘6월 중후반’과 ‘7월’, ‘8월’을 선택한 비율은 각각 12.7%, 13.6%, 10.3%에 그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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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C→AC, 여행의 미래

여행 수요가 최저치로 떨어지면서 여행의 미래를 걱정하는 이들도 크게 늘었다. 코로나19 팬데믹의 장기화로 항공, 여행사, 숙박 등 여행 관련 업종이 속수무책으로 쓰러지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 CNBC에 따르면 코로나19로 인한 미국의 관광업계 손실이 무려 240억 달러(약 28조 원)에 이를 것으로 추정되며, 이는 2003년 사스 때의 손실보다 약 7배 큰 규모다. 국내 역시 상황은 마찬가지. 국내 최대 규모 여행사인 하나투어가 여행 자회사를 포함한 15개 자회사의 구조조정에 나섰으며, 국제선 운항이 막힌 항공사들은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적자를 막기 위해 인력 구조조정에 나섰다.

한국을 비롯해 전 세계적으로 여행업의 ‘부도’, ‘파산’ 뉴스가 쏟아지자 일각에서는 앞으로의 여행은 부자들의 전유물이 될 것이란 우려마저 쏟아낸다. 여행 가격을 낮추는 데 일조했던 저가 항공사(LCC)가 사라지고, 단체 패키지여행이 없어지면서 비행, 숙박 등 여행 관련 제반비용이 크게 뛸 것이란 시각이다.

“코로나19 발생 이전의 세상은 이제 다시 오지 않는다”고 했던가. 여행은 어떨까. 이르면 하반기, 늦으면 내년 하반기 코로나19를 극복한 이후 여행의 세상은 어떻게 달라질까. 변하지 않는 사실은 사람들은 코로나19를 겪는 지금도 여행을 꿈꾸고, 준비하고, 그리워한다는 것이다.

<여행의 미래>를 쓴 김다영 히치하이커 대표는 “코로나19는 단지 여행업계에 거대한 손실을 입힌 악재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업계의 구조와 체질에 근본적인 변화를 일으킬 전환점이 되고 있다”며 “코로나19 사태 이후 여행 소비의 방향과 목적은 분명히 달라질 것이다”라고 말했다.

다시 꿈꾸고, 준비하고, 그리워하자. 우리는 끝끝내 여행을 쟁취할 것이다. 포스트 코로나 시대, 새로운 여행, 그리고 새로운 여행자의 탄생을 위하여.


[본 기사는 한경머니 제 182호(2020년 07월)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