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 머니=정채희 기자 l 참고 도서 <테크노 사피엔스>·<수퍼컨슈머>·<인공지능의 현재와 미래>]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발생 이전의 세상은 이제 다시 오지 않는다.”


권준욱 중앙방역대책본부 부본부장이 2020년 4월 11일 ‘코로나19 대응 정례 브리핑’에서 한 말이다. 전과 다른 세상은 이제 곧 익숙한 세상이 될 것이다. 팬데믹(세계적 대유행) 이후 보다 가속화될 인도어 라이프. 우리 사회의 달라진 풍경 5가지.


[big story] 포스트 코로나, 달라질 풍경 5가지

(사진) 2020년 4월 5일 서울 강남의 한 예식장에서 열린 온라인 웨딩마치. 가족 및 친지들과 생중계 영상으로 축하를 나누고 있다. /KT 제공


◆사이버 웨딩마치


올 4월 5일 오후 5시. 서울 강남의 한 예식장에서 특별한 결혼식이 열렸다. 코로나19 감염 위험으로 대구 지역 내 친지를 초대할 수 없었던 신랑신부가 ‘온라인 결혼식’을 치른 것이다. 이날 결혼식은 하객 없이 조촐하게 치러졌지만 웃음꽃이 끊이질 않았다. 결혼식 현장이 실시간 유튜브를 통해 생중계되며 신랑과 신부가 양가 친척, 지인들과 축하 메시지를 실시간으로 나눴기 때문이다.


비단 한국만의 일이 아니다. 카자흐스탄, 아르헨티나 등 코로나19로 사회적 격리가 진행 중인 국가에서 온라인 웨딩마치가 다발적으로 이뤄지고 있다. 온라인 웨딩을 진행한 아르헨티나의 신부 쿠키노는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사람들이 결혼식을 지켜보고 축복해 주는 것이다”라며 400명이 유튜브를 통해 지켜본 결혼식에 큰 의미를 부여했다. 온라인 웨딩을 지켜본 이들 역시 “코로나 시대의 사랑”이라고 부르며 응원의 목소리가 뜨겁다.


전문가들은 비대면의 일상화가 진행되면 향후 온라인 웨딩마치가 보다 대중화될 것이라고 전망한다. 개인의 가치를 중시하는 이들이 늘면서 스몰웨딩과 비공개 웨딩이 일상화되고 있는 것처럼 온라인 웨딩 또한 팬데믹을 기점으로 그 수요가 점차 늘어날 것이라는 분석이다. 웨딩업체 한 관계자는 “결혼식을 고민하는 예비부부들의 주요 고민거리가 결혼식 비용, 하객 수, 교통난, 식장 위치 등”이라며 “온라인 웨딩은 이 모든 것을 합리적으로 해결할 수 있어 실시간 영상에 거부감이 없는 젊은 층을 중심으로 큰 인기를 구가할 수 있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실제 국내에서는 코로나19 사태 전인 지난해 이미 온라인 웨딩 전문 업체가 등장해 ‘온라인 스트리밍 결혼식’의 현실화를 알렸다. 이 회사는 사전에 배부된 모바일 청첩장에 신혼부부들이 필요로 하는 혼수를 전시하는 형식으로 축의금을 받는 등 오직 비대면으로 가능한 결혼식을 꿈꾼다.


[big story] 포스트 코로나, 달라질 풍경 5가지

(사진) 수협중앙회 관계자들이 지난 3월 25일 서울 영등포구 노량진수산시장에서 차에 탄 채 물건을 구입할 수 있는 ‘드라이브 스루’(drive through) 판매 방식을 도입, 수산물을 판매하고 있다./ 수협중앙회 제공


◆드라이브 스루


“상품 트렁크에다 실을까요?” 커피나 햄버거를 위해 존재했던 드라이브 스루가 진화 중이다. 국내에서 코로나19 확진 여부를 알기 위해 차에 탄 채 안전하게 검진할 수 있는 선별진료소로 드라이브 스루를 이용한 뒤부터 다양한 분야에 동일한 방식이 적용되기 시작했다. 코로나19 여파로 판로가 막혀 위기를 맞은 업종에서 소위 ‘한국식(K)-드라이브 스루’를 채택하기 시작했는데, 편의성과 효율성 측면에서 생산자와 소비자 모두를 사로잡으며 나날이 영역을 확장하고 있다.


특히 많은 사람들이 이용하는 공공장소일수록 드라이브 스루가 환영을 받고 있다. 도서관의 경우 홈페이지에서 대출할 책을 사전예약 한 후 차에서 책을 받아가는 새로운 도서 대출 서비스를 채택했으며, 농수산물 판로가 막힌 지방자치단체와 지역 농가는 드라이브 스루 방식으로 제품을 저렴하게 구입할 수 있도록 농수산물 장터를 연다. 아이들이 주로 사용하는 장난감 대여 서비스 역시 사전예약 후 자동차로 방문 수령할 수 있도록 하는 업체가 나날이 늘고 있다.


바이러스가 종식된 이후에도 드라이브 스루 방식은 서비스 영역을 지속 확대할 전망이다. 개인의 사생활을 중시하는 이들이 늘면서 대면 접촉을 최소화한 비대면 서비스가 각광받는 것은 당연지사. 유동인구가 많고 주차 공간이 협소한 도심 지역을 중심으로 편의성을 강화한 드라이브 스루가 보편화될 날이 머지않았다.


자율주행자동차 시대는 드라이브 스루의 혁신을 보다 더 앞당길 전망이다. 차 안에서 생활하는 시간이 늘면서 모빌리티는 쇼핑과 엔터테인먼트 등 생활이 가능한 제2의 거실로 변모한다. 이미 차 안에서 새로운 서비스로 가치를 창출하는 승객경제 시대에 대응하기 위해 자동차업계는 차량 내외부에서 즐길 수 있는 콘텐츠를 개발하는 데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일본의 자동차 제조업체인 혼다는 2019년 국제전자제품박람회(CES)에서 차량 내 예약, 결제 서비스인 드림드라이브를 공개했는데, 레스토랑 예약, 공연 티켓 구매, 유료 주차장이나 주유소에서의 결제를 차량 내에서 할 수 있다. 도로와 자동차의 활용성은 앞으로 지속 확장될 전망이다.


[big story] 포스트 코로나, 달라질 풍경 5가지

(사진) 현대자동차 면접관들이 지원자에게 화상면접을 통해 채용 절차를 진행하고 있다./현대차 제공


◆디지털 노마드족


어쩐지 ‘남 일’ 같았던 스마트 워크가 시대적 부름에 의해 더 급격하게, 빠른 진폭으로 우리 사회에 스며들고 있다. 재택근무는 스마트 워크의 한 형태로 대기업을 중심으로 도입됐지만 생산성에 의문을 제기하는 이들이 많아 보편화에는 성공하지 못한 상태였다.


하지만 전 세계가 겪어 보지 못한 팬데믹 이후 다수의 기업이 재택근무를 도입하며 일상적인 근무 형태의 하나로 자리 잡게 될지 관심이 높아졌다.


시장 조사업체인 오픈서베이가 지난 3월 31일 전국 20∼59세 직장인 1000명을 대상으로 직장생활 현황 및 만족도를 조사한 결과 재택근무에 ‘만족한다’고 답한 응답률이 74.5%로 높게 나타났다. ‘만족하지 못한다’는 응답자는 25.5%에 그쳤다. 업무 효율성 측면에서는 응답자의 35.4%가 재택근무가 업무 집중 향상에 ‘도움이 된다’고 생각하는 것으로 조사됐으나, 응답자의 52.1%는 재택근무와 업무 집중도 향상과는 ‘별다른 상관관계가 없다’고 답했다. ‘도움이 안 된다’는 답변은 12.5%에 불과했다.


기업의 채용 면접도 180도 바뀌었다. 2020년의 취업 트렌드는 모니터의 카메라 렌즈를 보고 진행하는 화상면접, 사람과의 대화 없이 지원자와 컴퓨터 간 치러지는 인공지능(AI) 면접 등 언택트(untact) 채용이 될 전망이다.


취업포털 사이트 잡코리아에 따르면 최근 기업들은 화상면접, 유튜브 채용박람회 등을 통한 언택트 채용 방식을 속속 도입하고 있다. 라인플러스, 이스트소프트, 우아한형제들 등 정보기술(IT)기업을 필두로 모든 채용 과정에 온라인 심층 역량검사를 도입했다.


잡코리아 관계자는 “기업에서는 채용 절차의 디지털화를 통해 시공간 제약의 한계를 넘어 채용 업무의 효율성을 높이고 기존 인사 절차의 기회비용을 절감하는 이점이 있다”며 “비대면 면접에 대한 인식이 개선되면서 언택트 채용을 진행하는 기업이 늘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그는 “취업준비생 또한 자신이 원하는 기업에 간편하게 지원할 수 있어 취업 과정에서 발생하는 기회비용을 최소화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프리랜서가 주도하는 ‘긱 이코노미’로의 전환도 보다 빠르게 우리 사회에 전파될 전망이다. 과거 일자리는 직장, 직무 등 물리적 공간을 중심으로 하루 종일 일하는 근무 형태로 운영됐다. 그러나 재택근무, 원격근무가 가능해지면서 앞으로는 일자리가 세분화돼 프로젝트나 업무에 따라 일자리를 공유하는 긱 이코노미 방식이 빠르게 확산될 전망이다. 물리적 공간, 시간의 한계를 벗어난 진정한 ‘디지털 노마드(nomad) 족’의 탄생이다.


◆방구석 공연 전시


‘210만 명.’ 지난 4월 18일 방탄소년단(BTS)의 콘서트를 영상으로 보기 위해 스트리밍 서비스에 접속한 동시 접속자 수다. 방탄소년단은 코로나19 여파로 취소된 월드투어의 아쉬움을 달래기 위해 지난 18~19일 유튜브 공식 채널 <방탄TV>를 통해 기존 콘서트와 팬미팅 실황을 담은 ‘방에서 즐기는 방탄소년단 콘서트’를 공개했다. 이날 눈에 띈 것은 실시간으로 색이 바뀌는 응원봉이었다. 팬들은 블루투스를 이용해 전 세계 응원봉을 연동, 방 안에서도 응원을 즐겼다. 신기술이 안방 1열에서도 콘서트장에 앉아 있는 듯한 경험을 제공한 것이다.


방구석 1열의 즐거움이 어디 방탄소년단의 팬클럽 아미에게만 국한됐을까. 모든 문화 플랫폼에 있어 시공간은 날이 갈수록 무의미해질 것이다. 오감 처리 기술에 대한 발전은 이미 빠른 속도로 진행되고 있다.


현재 가장 높은 수준으로 구현된 것은 시각이다. 트루 가상현실(VR) 기술은 경기장이나 공연장에 여러 대의 트루 VR 장비를 설치하고 데이터를 서버에 전송한 뒤 취합하면 지금의 단순한 장소 이동을 넘어서 다양한 위치와 각도를 선택해 관람할 수 있도록 돕는다. 현재의 관람자가 좋은 좌석을 선점하기 위해 사전예매에 시간과 비용을 쓴 것과 달리, 누구나 방 안에서 뷰가 좋은 자리를 선점할 수 있다는 뜻이다.


둘째, ‘360도 파노라마 기술’이다. 흡사 영화 <매트릭스>의 명장면인 네오가 총알을 피하는 장면처럼 공간에 설치된 시스템을 활용해 우리가 물리적으로 볼 수 없는 장면을 체험할 수 있다. 사각지대가 없는 360도 파노라마 샷이 실시간 생중계되기 위해서는 수십여 대의 고화질(HD) 카메라와 영상 데이터를 처리할 수 있는 기술을 필요로 한다. 이는 전적으로 데이터와 연산 능력이 이룩해 낸 엄청난 혁신인데, 이를 경험할 날이 머지않았다.


이미 지난 ‘2018 평창 동계올림픽’은 VR 기술과 360도 파노라마 기술을 시험대에 올림으로써 머지않은 미래를 예언했다. 이제 2022년 베이징 동계올림픽 때보다 고도화된 방구석 중계가 가능할 것으로 예상된다. 청각 역시 오디오 기술의 발달로 급격한 발전을 이루어 가고 있다. 극장에서는 돌비 아트모스 등을 활용해 실감나는 음향을 구현했으며, 개인 음향 기기에서는 오디오 증강현실(AR) 등 신기술이 개발되고 있다. 촉감 또한 다각도에서의 개발이 진행 중이다.


[big story] 포스트 코로나, 달라질 풍경 5가지

(사진) 개인의 취향이 반영된 삼후종합건설의 퍼즐주택. 반려동물을 위한 맞춤 설계가 특징./ 퍼즐주택 제공


◆스마트 홈


“미래의 집은 단순히 집 이상의 역할을 하며, 사람이 원하는 모든 것을 갖추게 될 것이다.” 미래학자로 유명한 토머스 프레이 다빈치연구소장의 말이다. 코로나19 팬데믹 이후로 우리는 ‘집’의 소중함을 깨달았다. 삶의 터전으로서 쉼터 역할을 하는 것 이상으로, 집에 머무는 시간이 길어졌기 때문이다.


쇼핑 플랫폼인 SSG닷컴에 따르면 지난 2월 1일부터 4월 12일까지 약 2개월간 ‘홈테인먼트’ 관련 상품 매출이 직전 2달 대비 100% 늘었다. ‘홈테인먼트’는 ‘집(home)’과 즐거움, 오락 등을 뜻하는 ‘엔터테인먼트(entertainment)’의 합성어로 외부 활동을 최소화하고 집에서 여가시간을 보내고 즐기는 트렌드를 뜻한다. 특히 ‘홈인테리어’ 관련 매출은 40% 이상 늘며 성장세다.


개인의 취향에 맞춰 주거 패러다임에도 변화가 나타나고 있다. 예컨대 삼후종합건설은 ‘퍼즐주택·퍼즐하우스’라는 독특한 콘셉트를 국내에 도입했다. 공사 시작 단계에서부터 세입자의 의사를 반영해 소비자의 라이프스타일에 맞춘 구조에 인테리어를 더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똑똑한 집에 대한 관심도 크게 늘었다. 12년 전 개봉한 영화 <아이언맨>에서 주인공의 AI 비서인 자비스가 사물인터넷(IoT) 기술을 통해 주인공의 집을 관리하는 모습은 스마트 홈의 미래를 보여 줬다. 그러나 우리에게 스마트 홈은 이미 다가온 현실이다. 날씨, 기온 등 주변 환경에 대한 정보를 제공할 뿐 아니라 집 상태를 최상으로 유지하고, 집에 문제가 발생할 경우 이를 주인에게 알리고 조치할 수 있다.


개개인의 라이프스타일에 맞추어진 융·복합 서비스, 첨단 기술이 적용된 스마트 홈은 점차 보편화될 것이다. 여기에 에너지를 생산해서 주고받는 스마트 그리드, 쓰레기를 직접 해결하고 생활용수를 정수해 재활용하는 친환경 시스템 등이 더해지면 각각의 집들이 스마트 도시와 연계돼 우리에게 더 편리하고 편안한 쉼터 그 이상의 가치를 제공할 전망이다.



[본 기사는 한경머니 제 180호(2020년 05월)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