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임스 최 주한 호주 대사

[한경 머니 = 이동찬 기자 | 사진 이승재 기자] 피는 물보다 진하다고 했다. 가족은 끈끈한 혈연관계가 기반이라고 믿어 왔다. 하지만 시대가 변한 만큼, 가족에 대한 정의 역시 변하고 있다. 어찌 보면 우리나라는 그 과도기적 상태다. 앞선 경험을 한 호주는 어떤 변화를 겪어 왔을까.


동거 커플, 미혼모, 이혼과 재혼. 이 단어들을 들었을 때 우리는 거부감 없이 받아들일 수 있을까. 우리나라는 전통적인 가족이라는 테두리에서 벗어나길 두려워했다. 어쩌면 정상과 비정상으로 나누며, 차별과 편견, 혐오를 자행해 왔을지도 모를 일이다.

호주는 ‘미혼모의 천국’이라고 불릴 정도로 싱글맘과 싱글대디에 대한 정책적 지원이 잘 갖춰진 국가다. 2년 이상 동거한 커플들은 사실혼관계(de facto relationship)로 부부와 법적으로 동등한 권리와 의무를 지닐 자격을 갖춘다. 심지어 결혼과 혈연으로 엮이지 않더라도 같은 목표를 지닌 이들도 가족으로 인정하자는 이들도 있다. 비(非)유럽 국가 중에서 ‘느슨한 연대’를 가장 잘 보여 주는 나라가 아닐까 싶었다. 물론, 호주도 처음부터 다양한 가족을 인정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국가적 차원의 시스템이 뒷받침됐을 것이다. 제임스 최 주한 호주 대사를 만나 자세히 묻고 싶어졌다. 서울 출생의 교포인 그에게 한국과 호주, 두 나라에 대해 누구보다 더 정확히 들을 수 있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대사님은 어떤 점이 한국인들을 느슨한 연대로 끌어들인다고 보시나요.
“한국에서 가족이라는 개념이 변화하고 있음을 보여 주는 하나의 단면이라고 생각합니다. 한국뿐만 아니라 선진 민주사회 모두 겪고 있는 현상이기도 하고요. 호주 역시 결혼하는 연령층이 점점 높아지고 있고, 이혼율이 증가하고 있으며, 핵가족과 1인 가구의 수도 늘어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자녀도 적게 낳고 있습니다. 전통적인 개념의 가족에 대한 애착이 줄어들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반대로 호주의 경우 조부모가 손자손녀를 봐 주는 대가족 형태가 늘어나는 추세입니다. 또한 20~30대 자녀들이 다시 부모와 살게 되는 부메랑 세대도 증가하고 있습니다. 한국도 다양한 요인들이 작용을 해서 가족이라는 개념이 변하는 데 영향을 끼친다고 생각합니다. 가장 큰 요인 중 하나는 인구의 약 30%를 차지하는 1인 가구라고 할 수 있겠죠.”


호주 사람들이 생각하는 가족과 한국 사람들이 생각하는 가족에 차이점이 있나요.
“한국과 비교했을 때, 호주는 다른 형태의 가족을 이해하는 데 있어서 더 앞서가는 측면이 있습니다. 한국은 아직까지도 이혼 가정, 단독가구, 미혼모에 대해 약간의 편견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호주에도 이런 부정적 인식이 아예 없는 건 아니지만, 다양한 형태의 가족에 대해선 더 잘 수용하는 편입니다. 동거하는 커플이 사실혼관계임을 입증받으면 법적으로 결혼한 커플처럼 ‘가정법’, ‘부동산법’, ‘연기금법’ 등을 통해 인정받고 있습니다. 사실혼관계의 자녀들도 사회보장제도에 의해 보호받고 있고요. 또한 이혼했던 부부가 재혼을 통해 각자 서로의 자녀들과 함께 사는 혼합 가족(blended family)이나 미혼모 및 미혼부 같은 경우 역시 완전한 가족으로 여기고 있습니다. 한 설문조사를 예시로 들어 볼게요. 2018년 호주의 비정부기구(NGO) 중 하나인 릴레이션십스 오스트레일리아(Relationships Australia, RA)가 어떠한 형태까지 가족으로 인정하는지에 대한 서베이를 실시한 적이 있었습니다. 응답자의 35%는 부모와 자녀로 구성된 핵가족만 가족으로 인정한 반면, 65%는 대가족, 혼합 가족, 미혼모 및 미혼부뿐만 아니라 동거 커플이나 심지어 연인관계가 아니더라도 한 가지 목표를 가지고 장기적으로 한 집에서 사는 가구의 형태까지 가족으로 인정하고 있었습니다.”


1인 가구 혹은 동거 가구 비율은 어떻습니까.
“전체 가구의 24%가 1인 가구입니다. 한국과 마찬가지로 1인 가구가 증가세에 있습니다. 2026년이 되면 핵가족을 이루는 인구수보다 혼자 사는 인구수가 더 많을 것으로 예측하고 있습니다. 호주에는 ‘느슨한 연대’라는 단어는 없고, 앞서 말씀드렸듯 사회적으로 가족에 대한 인식이 좀 더 개방돼 있습니다. 한국은 아내나 남편, 부부라는 표현으로 결혼관계의 커플을 표현하잖아요. 호주는 파트너나 동반자(spouse)라는 단어를 더 많이 사용합니다.”


호주의 결혼율도 궁금합니다.
“1970년에는 결혼 건수가 11만6066건을 기록한 데 비해 2017년에는 11만2954건이었습니다. 수치상으로 큰 차이는 없어 보이지만, 그 기간 동안 인구가 2배로 늘어난 것을 고려했을 때, 결혼율이 많이 줄어든 건 사실이죠. 이유는 결혼 전 동거를 하는 경우가 증가했기 때문입니다. 1975년 기준으로, 결혼 전에 동거하는 커플의 비율은 16%였는데, 2017년에는 81%까지 늘어나 동거에 대한 편견이나 부정적 인식이 많이 개선됐음을 보여 줍니다. 이혼율이 낮아지고 있다는 것 또한 이를 뒷받침합니다. 이혼 건수로 봤을 때 1976년에는 6만3230건이고, 2017년 기준으로는 4만32건입니다. 역시 그 기간 동안 인구가 증가한 것을 생각하면, 이혼율도 상당히 떨어진 셈입니다.”


경제적 이유로 결혼을 포기하는 경우가 많은가요.
“물론, 경제적 이유도 있어요. 호주도 주택가격이 높은 편이기 때문에 동거를 하는 경우 같이 비용을 부담해 집을 렌트하거나 부모와 같이 사는 경우도 있습니다. 결혼식 비용도 만만치 않고요. 하지만 호주는 결혼을 꼭 해야 한다는 사회적 압박이 존재하지 않습니다. 결혼을 하고 가정을 꾸리는 것 외에도 다양한 옵션들이 존재하죠. 사회적이나 법률적으로 봤을 때, 결혼한 커플과 동거하는 커플에 차이가 없기 때문에 결혼을 여러 기회 중 하나로 선택하는 것입니다. 반면 한국은 결혼에 대한 사회적인 압박이 상대적으로 심한데,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청년들에게 그 짐을 오롯이 지우는 것 같아요.”


한국의 저출산 문제가 나날이 심각해지고 있습니다. 호주의 출산율은 어떤가요.
“저출산 문제가 한국 정부의 입장에서 가장 큰 정책적 도전 과제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현재 출산율이 0.9%로 알고 있는데, 호주는 1.8%입니다. 상대적으로 높은 편이지만 인구 대체율인 2.1%에 미치지는 못하는 수준이죠. 호주에서도 출산 장려 정책을 펼치고 있는데, 대략 7~8년 전, 아동수당(baby bonus) 정책이 큰 인기였습니다. 이 정책 하나 때문은 아니겠지만, 출산율 증가에 영향을 미쳤다고 봅니다. 육아와 관련된 정부의 지원들, 특히 유급 육아휴직이나 출산 후 업무에 복귀해 경력단절을 없애는 정책들이 마련돼 있기 때문이죠. 호주도 다른 국가들과 마찬가지로 출산율이 낮아지고 있는 건 사실입니다. 다만 관대한 이민정책이 호주의 인구를 젊게 만들고 있고 인구가 성장하는 원동력을 제공하고 있습니다. 현재 2500만 명의 인구가 2026년이 되면 4000만 명이 될 것으로 예상합니다.”


미혼모나 미혼부, 동거 커플을 위한 제도가 있나요.
“미혼모나 미혼부를 위한 세제 혜택, 육아와 주거 및 법률적인 비용을 지원하는 제도가 잘 갖춰져 있습니다. 혼자서 아이를 양육하는 것에 대한 압박감이 크다는 것을 정부가 제대로 파악하고 있는 것입니다. 동거 커플을 지원하는 사회적 제도가 따로 구비돼 있는 것은 아니지만, 법률적으로도 그들을 하나의 가정으로서 완전히 인정하고 있습니다. 파트너가 사망했을 때 상대방에게 연기금 혜택이 상속되는 등 부부와 동일한 권리를 인정합니다. 법률상 결혼 유무와 상관없이 동거 커플에 대한 차별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이들을 지원하는 제도가 실현된 이후 출산율에 변화가 있었는지 궁금합니다.
“굉장히 어려운 질문입니다.(웃음) 호주의 출산율은 다른 선진국에 비해 상대적으로 항상 높은 수준을 유지해 왔어요. 여러 가지 복합적인 원인이 있기 때문에 정확히 인과관계를 밝히기는 어려울 것 같습니다. 아마 유연한 이민정책과 가족을 수용하는 개방적인 사고방식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겠죠. 또한 출산과 육아를 지원하는 정책이 잘 갖춰져 있어 여성이 경력단절 없이 일과 가정에 모두 충실할 수 있도록 돕는 것도 출산율에 일조했다고 생각합니다.”


한국은 점점 비혼자가 늘어나고, 출산율도 떨어지고 있습니다. 어떤 움직임이 필요할까요.
“호주와 한국이 처한 상황이 다르기 때문에 주한 호주 대사로서 대답하기 조심스러운 부분이 있습니다. 하지만 관찰자 시점에서 답하자면, 한국은 청년층의 목소리에 조금 더 귀를 기울어야 하지 않나 생각합니다. 특히 젊은 여성들에게요. ‘느슨한 연대’라는 주제 자체가 젊은 층이 앞으로 어떤 삶을 살기를 원하느냐에 대한 근본적인 변화를 이끌어 낼 수 있는 고민을 던진다고 생각합니다. 젊은 층들이 ‘헬조선’, ‘N포세대’라고 불만을 표시하고 있는데 왜 이런 표현이 생겨나게 됐는지 파악해야 한다는 것이죠. 명문대 진학을 중시하는 정형화된 교육 시스템, 양성평등과 같은 젠더 이슈, 주거 문제와 같은 복합적인 요인들이 있을 겁니다. 호주에도 이런 문제가 없는 건 아니지만, 한국에서 더 두드러지게 나타난다는 건 틀림없는 사실입니다.”


대사님이 생각하시는 가족은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외교관으로서 한 가지 배운 것이 있다면, 가족의 의미는 문화에 따라 달라질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북유럽에서 부임했을 당시, 그곳 사람들이 생각하는 가정에 대한 사고방식은 호주보다 더 진보적이었습니다. 반면, 미국 사람들은 결혼이나 가정을 꾸리는 것에 대해 보수적인 사고를 가졌었죠. 아프리카에서 일했을 때, 그곳은 서구 사회와는 완전히 다른 대가족의 개념을 갖고 있었습니다. 가족은 한 사회를 구성하는 최소한의 단위임에는 변함이 없지만 그 정의를 내리는 건 국가와 문화에 따라 다르다는 것이죠. 한국 또한 지속적으로 경제가 발전하고 있고, 문화가 변하고 있고, 글로벌 사회에 편입됐기 때문에 가구와 가족의 형태가 변화하는 건 어쩌면 당연한 일일지도 모릅니다.”



[본 기사는 한경머니 제 178호(2020년 03월)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