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윤섭 소장의 바로 이 작가 - 김덕용


[한경 머니 기고 = 김윤섭 한국미술경영연구소장·미술사 박사] 김덕용 작가는 주로 정겨운 추억들을 소환한다. 살결처럼 부드럽고 너그러운 감성을 지닌 그림이다. 그림 속 ‘옛날의 그 집’엔 또 어떤 사연들이 있었을까.


3월이다. “단발머리 소녀가, 웃으며 건네 준 한 장의 꽃봉투/ 새봄의 봉투를 열면, 그 애의 눈빛처럼, 가슴으로 쏟아져 오는 소망의 씨앗들…” 이해인 수녀의 시(詩) ‘3월에’처럼 드디어 희망 돋는 시즌이다. 꽃샘추위가 물러간 산자락에는 어김없이 긴 겨울잠에서 깨어난 노란 산수유꽃이 고개를 내민다. 성질 급한 산수유는 매화보다도 먼저 새봄을 알리며 꽃망울을 터뜨렸다. 김덕용 작가도 가지마다 소담한 노란 눈송이가 내려앉은 산수유의 흥취를 담았다.


김 작가는 주로 정겨운 추억들을 소환한다. 살결처럼 부드럽고 너그러운 감성을 지닌 그림이다. 기와집 너머에 활짝 핀 산수유꽃이나 매화는 마치 그 집 주인의 성품을 보여 주는 듯하다. 분명 꼿꼿하면서도 온화하고, 한없이 인자한 품성의 소유자일 것이다. 비슷한 사람이라고 성격까지 같은 순 없다. 어떤 면을 주목하는가에 따라 전혀 다른 느낌이다. 꽃을 강조할 때에 매화(梅花)라 부르고, 열매가 강조되면 매실나무라 부르는 격이다. 그림의 주인공이나 관람자의 감정까지 배려한 화면의 탁월한 연출력은 김 작가 작품의 경쟁력이다.


흔히 한 작가를 설명할 때 전공 여부를 먼저 따지게 된다. 서양화, 한국화(동양화), 조각, 공예 등. 미술대 재학 시절이나 작가 입문 이전에 어떤 장르에 중점을 두고 학습했나를 고려한 것이다. 그렇게 보면 김 작가는 장르나 전공 구분이 애매하다. 대학 시절엔 동양화를 전공했으니 한국화가, 나무판을 자유자재로 잘 다루니 목조각가, 단청 기법이나 자개까지 섭렵했다고 해서 공예가라고 부를 수도 없는 노릇이다. 굳이 구분하자면 ‘김덕용 장르’겠다. 장르를 넘나들고 융합하는 현대미술의 한 전형을 만들어 낸 셈이다.


수년 전부터는 나무판에 자개 재료를 접목해 큰 주목을 받고 있다. 자개는 일반 채색물감 재료에 비해 다루기가 수월치 않다. 판에 접착하는 것도 어렵지만, 자개의 아주 얇은 판을 결에 따라 가늘게 자른다든가, 잘린 자개 띠를 원하는 리듬감에 따라 배열하며 완성해 가는 과정은 더욱 힘들다. 수행하는 과정과 진배없다. 김 작가의 뭉뚝한 손끝은 어느새 세월의 굳은살이 자리한 지 오래다. 그 두께만큼 작품의 깊이감도 더해졌다. 그래서일까. 그의 작품은 유독 ‘세월의 맛’을 중요시한 것으로 여겨진다.


김 작가 작품의 첫인상은 친근함이다. 어딘지 모르게 익숙하고 편안하다. 처음엔 서서 보다가 조금 지나선 앉아서 보고, 나중엔 누워서 음미하고 싶어지는 그림이다. 아무래도 그 이유는 옛것을 활용했기 때문일 것이다. 재료에서 기법까지 온전히 전통에서 출발했다. 화면의 바탕은 아주 오랜 세월을 지낸 고재(古材) 판을 가공하거나, 폐가에서 나온 문틀을 재활용해 가공한다. 그 위에 표현된 이미지들은 전통 단청의 채색 기법을 기본으로 표현했고, 시각적인 포인트로 삼은 것은 나전(螺塡) 기법으로 연출된 것이다.


간혹 ‘김덕용앓이’라는 말을 듣게 된다. 말 그대로 ‘누군가를 그리워하는 감정으로 인해 감기를 앓듯 그 누군가에게 빠져든 감정’을 김 작가의 작품에서 느꼈다는 얘기다. 아무리 디지털미디어가 발달해 인공지능(AI)이 반 고흐 뺨치게 그림을 잘 그린다 해도 넘사벽은 있기 마련이다. AI도 따라하지 못하는 김덕용만의 미감(美感)이 지닌 비밀은 ‘정(情)’이다. 김 작가는 아주 먼 ‘그 옛날’ 어머니의 어머니 때부터 사용됐던 목가구의 감흥이 우리 시대에도 여전히 유효함을 증명하고 있기 때문이다. 단순히 온고지신(溫故知新), 법고창신(法古創新) 그 이상의 미학을 좇은 결과다.


그의 그림을 살펴보다 보면 ‘창문’의 새로움을 발견하게 된다. 창문은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을 대변하는 창구다. 창문은 초창기부터 줄곧 작품과 함께해 온 빼놓을 수 없는 중요한 키워드였다. 창문 앞에 서서 바라본 시점의 이동이 곧 작품의 변화 과정과 맥을 같이하고 있다. 가령 ‘자운영’ 시리즈가 창문 너머 아래를 바라본 시점이었다면 수평으로 바라본 것은 ‘산수유·매화·바다’ 소재의 작품들이었고, 최근에는 창문이란 틀 자체를 확장해 하늘 위와 우주 시리즈로 옮아 가고 있다.


“본질은 결국 하나다. 하지만 각자 바라보는 관점만을 진리로 믿고, 주장하는 것은 참으로 헛될 수밖에 없다. 똑같은 지리산이라도 보는 장소와 위치에 따라 다르게 보이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작품으로 특정한 메시지만을 전하려 고집하진 않는다.” 김 작가의 관심사는 전통과 현대, 구상과 추상, 현실과 이상, 낮과 밤, 빛과 어둠 등 서로 등을 맞댄 양분된 개념을 한 몸으로 포용한 ‘본질의 해석’에 있다. 그에 대한 조형적 접근의 일관성을 위해 ‘결의 감성’ 역시 중요하게 여긴다. 종이나 캔버스 화면이 아니라 나무판을 바탕으로 선택한 이유이기도 하다. 물론 표면을 태워서 원래 품고 있던 ‘나뭇결’을 되살린 것도 같은 맥락이다.


최근 작품에선 밤하늘로 표현 영역이 확장되고 있다. 정확하게는 ‘별들을 품고 있는 우주공간’이다. 특히 별보다 별빛을 드러내기 위해 부득이하게 밤하늘을 택한 것이다. 그곳엔 인간으로서 감히 짐작할 수도 없는 무궁무진한 상상의 에피소드가 잠들어 있다. 적어도 쏟아질 듯 촘촘한 별빛의 수만큼은 넘을 것이다. 김 작가는 이런 밤하늘의 깊은 질감과 정감의 표현을 극대화시키기 위해 특별한 재료를 가미하고 있다. 곱게 빻은 숯가루다. 이 가루를 밑판에 두텁게 바른 다음 잘게 쪼개거나 미세하게 가루를 낸 자개를 그 위에 붙인다. 그 조각들이 품었던 제 빛을 발하는 순간 작품도 완성된다.


빛, 결, 창문. 이 세 키워드는 ‘김덕용 장르’의 작품을 구성하는 핵심 요소다. 그중에 빛(자개)과 결(나무)은 재질 자체가 다르지만, 이미 내재돼 있던 미감이 김 작가의 작품에서 되살아났다는 점에서 공통점을 갖는다. 물론 적절하고 뛰어난 연출력의 결과다. 결국 그의 작품의 진수는 창문이란 개별적인 관점 혹은 시점을 매개로 빛과 결의 감성미학을 어떻게 만날 수 있는가 하는 점이 관건이겠다.


마침 다음 달부터 부산의 소울아트스페이스에서 스무 번째 개인전을 두 달간 가질 예정이다. 작품은 오래된 고재 나무판을 활용해 변형 비율이 많다. 따라서 작품가격 역시 획일화해 책정하긴 어렵다. 참고로 전시가격을 기준해서 대략 10호(53×45cm) 크기 600만 원을 시작으로, 변형 ‘112×112cm’ 정방형 크기는 2800만 원, ‘100×180cm’ 크기는 3400만~3500만 원, ‘122×200cm’는 4000만 원 선이다.


아티스트 김덕용은…



1961년생. 서울대 미술대 회화과 및 같은 대학원 동양화과 졸업했으며, 국내외에서 19회(서울, 부산, 나고야, 도쿄, 런던, 뉴욕 등)의 개인전을 가졌다. 또한 2020년 비상전(서울 이화익갤러리), 2019년 성남의 얼굴전: 집(경기 성남큐브미술관)·아부다비 아트페어(아부다비 UAE), 2018년 차경(경기 이천시립월전미술관), 2017년 안평대군의 비밀정원전(서울 자하미술관), 2015년 우리 옛 가구와 현대미술전(서울 이화익갤러리)·미인(美人): 아름다운 사람전(서울미술관), 2010년 한국 현대미술의 중심작가전(서울 갤러리현대), 2007년 아시안 위크(런던 27갤러리), 2003년 박수근을 기리는 작가들전(강원 양구 박수근미술관), 2000년 동아미술제 수상 작가 초대전(서울 일민미술관) 등을 비롯해 다수의 기획단체전에 초대됐다. 그의 작품은 국립현대미술관, 서울시립미술관, 박수근미술관, 경기도미술관, 외교통상부, 스위스 한국대사관, 그랜드인터콘티넨탈호텔, 대양상선, 제주 휘닉스아일랜드, 아부다비 관광문화청(ADTCA), 에미레이트 전략연구조사센터(ECSSR) 등 여러 곳에 소장돼 있다.


김윤섭 소장은…
김윤섭은 미술평론가로서 명지대 대학원에서 미술사 박사학위를 취득했고, 2019 안양국제공공예술프로젝트(APAP) 예술감독을 역임했다. 현재는 국립현대미술관 작품가격 평가위원, 정부미술은행 운영위원, 인천국제공항 문화예술자문위원, (사)한국미술시가감정협회 전문위원, 대한적십자사 문화나눔프로젝트 아트디렉터, 숙명여대 겸임교수, 계간조각 편집장, 2020 경주국제레지던시아트페스타 전시감독, 한국미술경영연구소장, (재)예술경영지원센터 이사 등으로 활동 중이다.



[본 기사는 한경머니 제 178호(2020년 03월)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