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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이와의 공감 소통법

[한경 머니 기고 = 윤대현 서울대학교병원 강남센터 정신의학과 교수] 실의에 빠진 친구나 가족을 어떤 말로 위로하면 좋을까. 효과적인 위로 소통에 대한 질문을 자주 받는다. 위로 소통의 알파와 오메가는 공감이다. 그런데 가끔은 공감을 가지고 접근하는 데도 상대방이 위로가 아닌 짜증을 내는 경우를 경험하기도 한다. 어떤 경우가 있을까.


달변가에게서 위로를 더 받는 것은 아니다. 내성적이고 말수가 적거나 둔탁해도 무언가 눈빛에서 따뜻한 느낌이 전달되면 공감 에너지가 눈과 눈을 통해 내 심장에서 상대방의 심장으로 전달되며 위로를 전달할 수 있다. 우선 누군가를 위로하고자 고민을 하는 것 자체가 이미 마음의 자세 9할은 준비된 것이라 할 수 있다.


70세 여성이 외로움을 호소한다. 희생적으로 엄마와 아내로서 살아왔건만 가족들이 알아주지 않는다는 것이다. 참다못해 속마음을 가족에게 이야기해도 “갑자기 왜 그러느냐”는 반응에 더 외로워진다는 것이다. 그래서 가족은 포기하고 친구들에게서 위로를 받고자 했지만 진정한 친구가 아무도 없는 자신을 발견하곤 헛살았다는 생각마저 든다고 한다. 친구에게 기대하는 진정성이 어떤 것인지 여쭈니 “내가 원하는 대답을 해 주는 친구가 없다”고 답한다. “너무 힘들겠다”라는 따뜻한 위로의 말을 듣고 싶은데 “그만하면 됐지. 만족하고 살라”고 이야기한다는 것이다. 진정성의 사전적 의미가 진실하고 참된 성질이니 그 친구도 나름 공감의 자세로 진정성 있게 소통한 것 같은데, 듣는 이는 진짜로 느껴지지 않은 셈이다.


답정너 소통이 정답일까
소통이 어려운 이유는 2명이 대화를 해도 사실은 4명이 엮여 있기 때문이다. 눈에 보이는 너와 나와 함께 각자의 마음이 또 존재하다 보니 복잡해진다. 내 마음을 내가 모르는 경우도 많으니 상대방의 마음은 더 어렵다. 예를 들면 아내가 “얼굴에 기미가 늘어난 것 같지 않냐”고 질문한다. 남편은 이전에 기미가 어느 정도였는지 기억장치에서 꺼내어 현재의 기미 정도와 비교한다. 상당한 노력이 들어가는 인지 활동이지만 아내를 위해 최선을 다해 정확한 답변을 해야 한다. 드디어 측정과 계산이 끝나 “20% 정도 늘어난 것 같아”라고 답변한다. 이렇게 열심히 진정성 있게 대답했는데 결과는 참담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칭찬을 들어야 하는데 “내가 그렇게 늙어 보여”라고 욕을 먹게 된다. 남편은 논리적 소통을 한 것인데 논리와 다른 감정이 마음에 있기 때문에 이런 일들이 벌어진다.


같은 질문에 남편이 공감 소통을 했다면 “여보는 기미가 늘고 나는 흰 머리가 늘고 우리 서로 아끼며 삽시다”란 대답이 가능할 것이다. 이 정도만 해도 아내의 반응은 나쁘지 않다. 그런데 공감 소통을 넘어 ‘답정너(답은 정해져 있어 너는 대답만 하면 돼)’ 소통을 한다면 아내의 질문에 즉각적으로 “무슨 기미는, 어떻게 당신은 더 젊고 예뻐져”라고 답해야 한다. “말도 안 돼”라는 아내의 답변이 돌아올 수 있지만 얼굴은 기분 좋게 웃고 있을 가능성이 크다.


논리적 소통을 주로 하는 것 같지만 마음이 존재하기에 의외로 우회적인 답정너 소통을 하는 경우가 많다. “시간 되면 내려오거라” 하는 시어머니의 말을 논리적으로 받아들여 내려가지 않았다가 꾸중을 들은 며느리가 불평한다. “그러실 거면 차라리 바빠도 내려오라고 말씀하시면 좋지 않았냐”고 말이다. 그러나 내려오라고 해서 내려오면 마음에 만족감이 덜하다. 그래서 우리 마음은 답은 정해 놓은 채 우회적인 화법을 선호하는 경우가 많다. “오늘 저녁 시간 있어?”란 상사의 말도 대체로 시간을 내라는 이야기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답정너 소통이 많은 것은 표면적으로는 정보 교환이나 논리적 결정을 위해 소통을 하는 것 같아도 인정과 사랑을 받고 싶은 마음의 욕구가 동시에 소통의 동기가 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답정너 소통에 잘 응대하는 사람들이 인기가 많다. 어찌 보면 상당히 에너지가 많이 들어가는 작업이다. 상대방의 논리적 질문 속에 숨어 있는 감성적 부분을 잘 찾아내어 상대방이 원하는 대답을 해주어야 하기 때문이다.


가족이나 지인들과 서로 마음을 나누고 행복해지기 위해 만난 자리라면 상대방의 답정너 소통에 잘 응대해 주는 것이 애정이고 위로가 아닐까 싶다. 가뜩이나 직선적인 소통에 지친 친구이고 가족인데 서로 훈훈한 덕담을 하며 위로하는 것은 지친 서로의 마음에 따뜻한 감성 에너지를 채워 줄 수 있다. 하지만 정확한 정보와 결정이 필요한 자리에 답정너 소통만 가득하다면 이건 문제일 것이다.


아부(阿附)도 일종의 과도한 답정너 소통이라 볼 수 있다. 아부는 달콤한 것이기에 마약처럼 중독되기 쉽다. 높은 자리에 오르고자 하는 욕구에는 많은 사람으로부터 칭찬받고픈 마음이 존재한다. 중요한 자리에 오른 리더에게 주변에서 주는 칭송은 그간 고생했던 자기 삶의 보상처럼 느껴지고 쾌감을 준다. 그래서 훌륭한 리더가 되는 것이 쉽지 않다. 그런 달콤한 아부에서 벗어나 일에 있어선 정확한 정보와 권고에 직면할 수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사랑하는 이와의 공감 소통법
그렇다고 답정너 소통이 공감 소통의 최고 솔루션이란 이야기는 아니다. 균형이 필요하다. 동시에 2가지 생각과 감정을 갖는 양가감정은 옳지 않아 보이지만 아주 정상적인 우리 마음의 현상이다. 자녀가 공부하기 싫다고 짜증을 낸다고 해서 아이 마음이 100% 싫은 것은 아닌 것을 안다. 공부를 해야 하는 게 반, 하기 싫은 게 반이다. 그런데 하라고 잔소리를 하니 하기 싫은 쪽이 퍽 튀어나오는 것이다.


정답이 보이더라도 내가 아끼는 사람이라면 소통에 있어 돌아가는 여유를 갖는 것이 애정 표현의 한 방법이 아닐까 싶다. ‘공부하기 싫지. 아빠도 너무 싫었어~ㅎㅎㅎ’라며 말이다.


[본 기사는 한경머니 제 177호(2020년 02월)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