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FE • house & story 내 집으로 들어온 바우하우스 ②


[한경 머니 기고 = 문혜원 객원기자│사진 HPIX·금호미술관 제공] 바우하우스가 현대 디자인에 미친 영향은 한두 마디로 정의하기 어려울 정도다. 독일의 조형 학교였던 바우하우스는 단 14년의 짧은 역사에도 불구하고 현대 생활에 미친 파급력은 광범위하기 때문이다.


이번 호는 바우하우스가 현대 생활에 미친 영향을 소개한다. 폐교된 이후 미국과 유럽 전역에 흩어진 바우하우스 제자들이 현대 디자인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어떻게 명맥을 이어오고 있는지 살펴보고자 한다. 올해 1월부터 연재를 진행해 온 ‘이야기가 있는 집’은 이번 호를 끝으로 이야기를 맺는다.

바우하우스와 현대 생활 전시 전경
바우하우스와 현대 생활 전시 전경
“바우하우스는 살아 있으며, 변화에 열려 있습니다. 과거에도 그랬고, 100년 후에도 마찬가지일 겁니다.” 독일의 디자인 그룹 텍타(TECTA)는 현재까지 가장 많은 바우하우스 디자인 라이선스를 보유하고 있는 브랜드다. 텍타는 바우하우스를 계승해야 할 문화유산으로 여기고 마르셀 브로이어를 비롯해 발터 글우피스, 루드비히 미스 반데어로에의 오리지널 디자인 가구를 생산하는 데 주력하고 있다.


특히 올해는 바우하우스 개교 100주년을 맞아 ‘바우하우스 나우하우스’란 주제로 젊은 디자이너와 협업한 제품을 다양하게 선보였다. 그 첫 주인공은 F51N 암체어다. 발터 그로우피스의 F51 홀링달 암체어를 리뉴얼한 F51N 암체어는 다양한 색감의 패브릭을 덧입힌 것이 특징. 디자이너 카트린 그레일링이 패브릭디자이너 라프 시몬스, 크바드랏과 협업해 만든 패브릭으로 시트와 등받이 부분을 만들었고, 나무 프레임에는 옻을 칠했으며 좌석과 팔걸이를 비슷한 색상으로 맞추었다. 바우하우스 시대의 명작을 현대 디자이너와 결합해 새로운 아이템으로 재창조시킨 것이다.

발터 그로피우스의 홀링달 암체어 F51을 ‘바우하우스 나우하우스’ 전시를 기념해 리뉴얼한 F51N 체어.
발터 그로피우스의 홀링달 암체어 F51을 ‘바우하우스 나우하우스’ 전시를 기념해 리뉴얼한 F51N 체어.
또 K10N 테이블은 독일의 디자이너 토비아스 그로스가 바우하우스 디자이너였던 에리히 브란델의 M10 테이블(1924년)을 더 작고 화려하게 재탄생시켰다. 정방형의 M10 테이블은 사면의 상판을 들어올리면 십자가 모양으로 확장되는데, 토비아스 그로스는 여기에 투톤으로 색을 입히면서 경쾌함을 더했다. 차분한 올리브, 레드, 블루까지 3가지 컬러를 메인으로 활용했으며 가장자리는 산뜻한 파스텔 색조로 포인트를 줬다.


현재 텍타에서 생산하는 마르셀 브로이어의 D4 체어는 바실리 체어보다 작으면서 접을 수 있는 디자인으로 제작됐다. 텍타는 이번 프로젝트에서 다양한 컬러의 가죽과 패브릭으로 시대를 초월한 디자인의 아름다움을 선보였다.


텍타는 바우하우스의 오리지널 디자인은 물론, 이를 새롭게 해석한 제품을 다양하게 선보이고 있다. 그 예가 바로 텍타의 사이드 테이블. 가구 디자인에 무거운 원목 대신 속이 텅 빈 강철관(tubular steel)을 사용한 것은 모더니즘과 바우하우스 스타일을 상징한다는 의미를 갖고 있다. 텍타의 제품들은 국내에서는 에이치픽스(HPIX)에서 판매 중이다.


미국의 디자인 그룹 놀(Knoll)은 마르셀 브로이어의 체스카 체어와 바르셀로나 체어 등의 판권을 가지고 있으며 이를 새롭게 재해석한 제품들을 선보이고 있다.


바우하우스가 나치의 탄압으로 문을 닫자 그 중심 인물들은 동독과 서독으로 뿔뿔이 흩어졌고, 바우하우스의 마지막 교장이었던 미스 반데어로에는 미국으로 떠났다. 그리고 그는 시카고 일리노이공과대의 교수가 돼 플로렌스 슈스트 놀을 제자로 만난다. 플로렌스 슈스트 놀은 에로 사리덴, 발터 그로우피스, 마르셀 브로이어 등의 수하에서 공부했고 놀을 모던 디자인 브랜드로 성장시켰다.


놀은 1·2세대 모더니즘 디자이너들의 제품에만 한정되지 않고 현대의 작가들과 다양한 시도를 통해 모더니즘과 바우하우스의 정통성을 계승하고 있다. ‘좋은 디자인은 좋은 비즈니스를 이끌어낸다’는 철학으로 현재의 놀을 이끌어내고 있다.


형태는 기능을 따른다


영국의 디자이너인 재스퍼 모리슨은 바우하우스의 철학을 현대적이고 세련된 방식으로 해석한 작품으로 유명하다. 모리슨이 활동하던 1980년대 후반에는 기존의 기능적인 디자인 트렌드가 한계에 봉착하던 시기였다. 화려하고 과장된 스타일이 범람하던 분위기 속에서 모리슨은 다시 모더니즘을 부각하는 디자인을 세상에 내놨다. 군더더기 없고 절제되며 단순한 디자인은 업계의 주목을 끌고 이탈리아 가구 브랜드인 카펠리니를 비롯해 비트라, 알레시, 무지 등 세계적인 디자인 브랜드와 왕성한 협업을 펼치고 있다. 그의 작업은 광범위한 분야에 걸쳐 이뤄지고 있다. 가구는 물론, 소품, 식기, 전자제품까지 다양한 것. 국내에서는 삼성전자와 협업해 휴대전화와 냉장고 디자인에 참여하기도 했다.


독일의 세계적인 산업디자이너 디터 람스는 바우하우스가 폐교한 지 1년 전인 1932년에 태어났다. 바우하우스에서 수학한 적은 없지만 그는 정식 디자인 교육 이후 바우하우스에 몰두했다고 한다. 그 이후 ‘Less is more(적은 것이 더 낫다)’는 그의 디자인 명제를 수립한다. 람스는 독일의 전자제품 회사인 브라운에 입사해 무수한 업적을 남긴다.


애플의 디자이너 조나단 아이브가 디자인의 원천이라고까지 밝힐 만큼 람스의 디자인은 현대에도 간결하고 직관적인 디자인으로 정평이 나 있다. 1961년에 그는 브라운의 수석 디자이너가 되는데, 이때부터 브라운사의 제품들은 람스의 지휘하에 완전히 탈바꿈하게 된다. 레코드플레이어 SK4는 현재 중고시장에서도 고가에 거래될 만큼 시간을 초월한 디자인으로 사랑받고 있다. 이밖에 선풍기, 커피포트, 헤어드라이어, 오디오, 전자계산기 등 람스의 제품은 기능에 대한 뛰어난 해석, 어떤 실내에도 어울릴 만한 정갈한 형태, 그리고 그 안에 녹아 있는 아름다운 비례미 등은 다른 어떤 제품과도 차별화됐고 소비자들의 눈과 마음을 사로잡았다.


일본의 가구 회사인 가리모쿠는 바우하우스의 모더니즘 디자인과 덴마크의 장인가구를 절충한 형태의 디자인을 선보였다. 특히 가리모쿠 60시리즈는 1960년대 디자인을 복원시키려는 프로젝트로 2002년 부활해 지금까지 사랑받고 있는 디자인이다. 군더더기 없이 차분한 디자인의 소파와 테이블은 일본을 넘어 한국과 전 세계의 사랑을 받는 비결이 되고 있다.

마르셀 브로이어가 1926년 디자인한 접이식 강철관 라운지 체어인 D4 체어는 색상이 다양하게 리뉴얼 됐다.
마르셀 브로이어가 1926년 디자인한 접이식 강철관 라운지 체어인 D4 체어는 색상이 다양하게 리뉴얼 됐다.
바우하우스가 궁금한 당신을 위한 전시


올해는 바우하우스 개교 100주년을 맞는 만큼 전 세계 각지에서 바우하우스에 대한 전시가 끊이지 않고 있다. 국내에서도 바우하우스의 정신이 담긴 전시가 줄을 이었는데, 지난 10월에 막을 내린 광주비엔날레에서도 바우하우스 전시는 호평을 받았다. 연말은 물론 내년 초까지 이어지는 전시가 있다.


금호미술관에서는 내년 2월까지 ‘바우하우스와 현대 생활’이라는 주제로 마르셀 브로이어, 루드비히 미스 반데어로에 등 바우하우스 디자이너들과 루이지 콜라니, 찰스와 레이 임스 등 유럽과 미국의 국제적 디자이너들의 오리지널 디자인 120여 점을 소개한다.



[본 기사는 한경머니 제 175호(2019년 12월)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