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리적 허기와 마음 비만

Enjoy [한경 머니 기고 = 윤대현 서울대학교병원 강남센터 정신의학과 교수]


연말 송년 회식 1차에 삼겹살에 소주 한 잔 기울이고 남은 동료들과 2차에 통닭과 맥주로 배가 빵빵해진 귀갓길, 불현듯 찾아오는 외로움과 삶의 무게에 홀로 포차에 앉아 우동 한 그릇으로 마음의 허기를 채운다. 여기에 신체적 허기는 없다. 심리적 허기만이 있을 뿐이다.


사람이 살이 찐다는 것은 몸이 필요한 에너지보다 더 섭취하고 있어 잉여에너지가 지방 등으로 축적되기 때문이다. 그럼 왜 몸이 필요한 것보다 더 먹고 있는 것일까. 몸이 느끼는 신체적 허기에 추가로 마음이 힘들 때 찾아오는 심리적 허기를 음식으로 채우고 있기 때문이다. 내가 좋아하는 달달한 음식이 일종의 마약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다. 실제 ‘음식중독’이란 용어가 있다. 우리를 괴롭히는 비만의 상당 부분은 마음에서 찾아오는 ‘마음비만’인 셈이다.


열심히 직장 생활을 한 연륜의 나이테인 듯 늘어나는 뱃살, 빼기가 쉽지 않다. 왜 식욕 조절은 그토록 어려운가. 그것은 식욕 조절은 감성의 뇌가 담당하고 있기 때문이요, 우리가 느끼는 허기의 최소 4분의 1, 때론 반 이상이 심리적 허기, 즉 정서적 허기(emotional hunger)이기 때문이다. 마음이 고파서 먹는다는 이야기다. 몸이 고파서 먹는 걸로는 살이 찔 이유가 없다. 몸이 필요한 만큼의 에너지만을 원하기 때문이다. 플러스알파(+α)는 정서적 허기 때문이다. 정서적 허기로 인한 에너지 섭취는 과잉이기에 고스란히 우리 배와 허벅지의 지방 저장 창고에 차곡차곡 쌓이게 된다.


식욕 조절 중추는 감성 시스템 안에 존재한다. 조물주가 왜 이렇게 만들어 놓았는지 알 길이 없으나 신체적 허기가 채워지면 스위치가 켜지는 포만감 시스템의 작동만으로는 먹는 행동이 중지되지 않는다. 뇌의 즐거움을 담당하는 보상 시스템이 같이 만족돼야 멈춘다. 배는 부르나 마음이 허전하면 그만큼 폭식을 하게 된다. 일시적인 만족은 오나 곧 후회가 되고 본질적인 심리적 허기를 채울 수 없기에 중독을 통한 내성은 심각해진다. 점점 더 많이 먹어야 마음의 허기를 채울 수 있는 것이다. 성인병의 최대 적인 복부 비만은 보상받지 못한 슬픔의 합병증인 것이다.

심리적 허기와 마음 비만


스트레스 받을 때 먹으면 더 살찐다


바쁜 일상으로 뇌가 지쳤을 때나 사람 관계로 짜증이 났을 때 마구 무언가를 먹고 싶은, 그야말로 음식을 다 흡입하고픈 욕구가 뇌에서 정신없이 요동치는 것을 느끼게 된다. 앞에서 이야기한 것처럼 삶의 스트레스가 엉뚱하게 식욕 중추를 건드려 식욕을 증가시키기 때문이다. 무언가 맛있는 것을 먹으면 뇌에 쾌감이 느껴지는 것을 우리 뇌가 경험상 알고 있어, 뇌가 피곤하거나 짜증이 났을 때, 먹고픈 욕구를 올려 음식을 먹을 때 발생하는 쾌감으로 부정적인 감정들을 내몰려고 하는 것이다. 먹는 것을 항우울제처럼 사용하는 것인데 문제는 과도한 칼로리 섭취로 체중 증가를 만드는 것이다.


이런 현상이 일어나는 이유는 스트레스 받은 뇌는 현재 상황을 위기 상황으로 인식해 에너지를 지방으로 축적하려는 노력을 하기 때문이다. 열 받아서 뇌한테 쾌감을 주려고 음식을 먹었는데 열 받은 뇌는 미래의 전투를 준비하기 위해 에너지 소비량을 줄이고 배에 지방을 축적한다는 이야기다. 그래서 스트레스를 받을 때 무언가를 먹고 싶다면 칼로리는 적으면서 스트레스는 해소될 만한 나만의 무기를 구비해야 한다. 예를 들어 오이 같은 것이다. 아드득 깨물어 먹으며 스트레스를 푸는 것이다. 유치해 보이지만 효과가 있다.


다이어트 스트레스


다이어트에 대한 스트레스가 상당하다. 다이어트가 쉽게 되지 않아서도 힘들지만 나름 성공했는데 마음이 더 어두워져 사람도 만나지 않고 우울증까지 찾아오는 경우도 있다. 실제 다이어트 성공이 심리적 스트레스를 상당히 일으킨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 영국 칼리지대에서 50세 이상 200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체중 감량에 성공한 사람들이 슬픔, 외로움, 무기력감, 정서불안을 2배 가까이 더 느끼는 것으로 나타났다. 우울 증상도 더 흔하게 나타났는데, 그만큼 먹고 싶은 것을 참고 해내는 다이어트라는 것이 상당한 심리적 스트레스란 이야기다.
물론 몸에 지방이 많다고 해서 마음이 행복해지는 것은 아니다. 과거 즐거운 지방 이론, 영어로 ‘jolly fat theory’라고 해서 ‘퉁퉁한 사람이 더 행복하다’는 이론도 있었지만, 비만은 우울의 위험 요인이기도 하다. 체중이 증가해서 더 행복한 것은 아니지만 지나친 다이어트도 정신적으론 해롭다는 이야기다.


체중 감량에 대한 다이어트 강박에서 벗어나야 한다. 배가 좀 나왔다면 삶의 여유라 생각하며 예쁘게 봐주자. 자기 체중을 너무 미워하며 체중 감량에 대한 의지가 너무 강하다 보면 그것 자체도 스트레스가 되고 또 감량에 실패하게 되면 반작용으로 의지가 제로 상태가 되면서 더 먹고 운동도 전혀 안 하는 행동이 나오게 된다.


몸무게가 오르든 말든 꾸준히 건강 행동을 하는 것이 정답이다. 다이어트 강박에 사로 잡혀 너무 거칠게 나를 몰아세우는 것보다는 좀 통통해도 꾸준히 운동하고 균형 잡힌 식이를 하는 것이 몸과 마음을 더 건강하게 유지시켜줄 수 있다.




[본 기사는 한경머니 제 175호(2019년 12월)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