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의 에비타, 아르헨티나 국가 부도 막을까

[한경 머니 기고=이장훈 국제문제 애널리스트 | 사진 한국경제DB] 아르헨티나의 퍼스트레이디(영부인)였던 에바 페론의 별명이었던 ‘에비타’. ‘빈민의 성녀’라는 말까지 들었던 그녀의 각종 정책들은 ‘포퓰리즘 페론주의’로 불린다.

최근 알베르토 페르난데스 후보의 러닝메이트로 출마해 부통령에 당선된 크리스티나 전 대통령을 보고 ‘에비타의 귀환’이라고 부르고 있는 상황. 과연 그는 최악의 경제 상황인 아르헨티나의 국가 부도를 막아낼 수 있을까.

“Don’t cry for me Argentina. The truth is I never left you(나를 위해 울지 말아요, 아르헨티나. 나는 그대를 떠나지 않아요).” 이는 1978년 초연된 뮤지컬 <에비타>에 나오는 가사의 한 대목이다. 뮤지컬 <에비타>의 실제 인물은 아르헨티나의 퍼스트레이디였던 에바 페론이다. 에비타는 ‘작은 에바’라는 뜻이다.

1919년 빈민가에서 태어난 에바는 모델, 나이트클럽 무명 댄서, 라디오 DJ 등을 거쳐 배우가 됐다. 에바는 1945년 24세 연상의 육군 대령 후안 도밍고 페론과 결혼했다. 후안은 1943년 쿠데타를 주도했고, 1944년 군사정권에서 부통령을 지냈으며, 1946년 대통령으로 선출됐다.

에바는 남편을 도와 노동자와 서민들을 위한 각종 포퓰리즘 정책을 적극 추진해 ‘빈민의 성녀’라는 말까지 들었다. 1952년 7월 암으로 세상을 떠난 에바는 부통령 물망에 오르기도 했다. 후안이 집권하던 1946~1955년, 1973~1974년의 포퓰리즘을 페론주의라고 부른다. 페론주의는 외국 자본 배제, 산업 국유화, 복지 확대, 임금 인상을 통한 노동자 소득 증대 등 좌파 대중영합주의 정책을 말한다.

후안과 에바는 자유시장경제였던 국가 시스템을 사회주의로 바꾸고, 외국 자본을 몰아내는가 하면 철도, 전화, 가스, 전기 등 기간산업을 국유화했으며, 노동자들의 임금을 매년 25%나 올리는 등 말 그대로 현금을 살포했다. 이들의 정책은 빈부 격차를 일시적으로 줄이는 데는 성공했지만, 아르헨티나 경제는 지나친 재정 지출 등으로 서서히 침몰했다. 이 때문에 페론주의는 현대 좌파 포퓰리즘의 원조라는 평가를 받아 왔다.

아르헨티나는 1930년대 초 1인당 국민소득 세계 6위, 교역량 10위의 선진국이었다. 팜파스라 불리는 비옥한 초원에서 생산되는 대두(콩)와 밀, 옥수수, 쇠고기 등을 수출해 국부를 축적했다. 당시 아르헨티나 경제가 얼마나 풍족했는지를 보여주는 작품이 동화 <엄마 찾아 삼만리>다. 이 동화는 이탈리아 소년 마르코가 외국에 돈을 벌러 간 엄마를 찾아가는 여정을 다룬다. 여기에서 마르코 엄마가 가정부로 일하던 곳이 아르헨티나였다. 하지만 아르헨티나는 페론주의 덕분에 철저하게 몰락했다.

노벨 경제학상을 받은 경제발전론의 대가 사이먼 쿠즈네츠(1901~1985년)가 “전 세계에는 선진국(developed)과 후진국(underdeveloped), 일본, 아르헨티나 등 4가지 유형의 국가가 있다”고 지적했듯이, 한 세기 안에 선진국에 진입한 유일한 국가가 일본이었고, 그 반대가 아르헨티나다. 영국 경제 전문 주간지 이코노미스트도 “공산주의권 국가들의 몰락을 제외하고 20세기 경제의 최대 실패 사례는 아르헨티나다”라고 평가했다.

4년 전 낙선했던 크리스티나 페르난데스 데 키르치네르 전 대통령(사진 왼쪽)은 알베르토 페르난데스 후보(오른쪽)의 러닝메이트로 출마해 부통령에 당선됐다.
4년 전 낙선했던 크리스티나 페르난데스 데 키르치네르 전 대통령(사진 왼쪽)은 알베르토 페르난데스 후보(오른쪽)의 러닝메이트로 출마해 부통령에 당선됐다.

◆만성 외환위기 아르헨티나의 미래는

페론주의가 아르헨티나에서 다시 부활했다. 중도좌파연합인 ‘모두의 전선’의 알베르토 페르난데스 후보가 10월 27일 실시된 대선에서 중도우파연합인 ‘변화를 위해 함께’의 마우리시오 마크리 대통령을 물리치고 대통령에 당선됐다. 이로써 아르헨티나는 2015년 크리스티나 페르난데스 데 키르치네르 전 대통령(이하 크리스티나)이 마크리 대통령에게 정권을 내준 지 4년 만에 다시 중도좌파로 정권이 교체됐다.

4년 전 낙선했던 크리스티나 전 대통령은 페르난데스 후보의 러닝메이트로 출마해 부통령에 당선됐다. 페르난데스와 크리스티나는 12월 10일 임기 4년의 대통령과 부통령에 각각 취임한다. 아르헨티나 언론들은 크리스티나가 부통령이 되자 ‘에비타의 귀환’이라고 부르고 있다.

국제사회에선 대통령인 페르난데스보다 부통령인 크리스티나가 앞으로 실권을 행사할 것으로 보고 있다. 크리스티나는 남편인 네스토르 키르치네르 전 대통령이 집권했던 2003년부터 2007년까지 영부인으로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했고, 2007년 남편을 대신해 출마해 대통령에 당선됐다. 선거로 뽑힌 아르헨티나 첫 여성 대통령이었다. 크리스티나는 2010년 남편이 사망한 후 2011년 연임에 도전해 성공했다.

페르난데스는 키르치네르 전 대통령과 크리스티나의 집권 시절인 2003년부터 2008년까지 국무실장(총리)을 지냈던 인물이다. 당초 크리스티나는 직접 대선에 출마하려다가 부정부패 혐의 등으로 재판을 받고 있다는 점을 고려해 남편과 자신이 집권할 때 집사 격이었던 페르난데스를 내세웠다. 두 사람은 성은 같지만 친척관계는 아니다.

키르치네르와 크리스티나는 집권 12년간 후안과 에바 페론의 페론주의를 철저하게 추종했다. 키르치네르는 외국 자본으로부터 자립하는 경제를 만들겠다며 취임 첫해인 2003년 민간 기업이 운영하던 우체국 서비스를 국영화했다. 2004년 철도, 2006년 상·하수도, 2008년 항공사까지 국영화에 박차를 가했다.

키르치네르의 재임 4년간 민간 산업은 활력을 잃고, 공기업만 비대해졌다. 남편 뒤를 이어 8년간 대통령을 한 크리스티나는 페론주의 정책을 더욱 강화했다. 공무원 수를 약 2배로 늘렸고, 연금 지급 조건을 완화해 2005년 360만 명이던 연금 수급자가 크리스티나 퇴임 해인 2015년에 800만 명으로 늘어났다. 공립학교 학생들에게 500만 대의 노트북을 공짜로 나눠주었고. 축구광이 많은 국민을 의식해 TV 축구 방송 중계료 지원에 세금을 사용했다.

특히 부족한 재원을 충당하려 페소화를 마구 찍는 바람에 물가가 매년 30% 이상 치솟았다. 이름만 걸어 놓고 월급을 타 가는 유령 공무원 급여로 매년 200억 달러가 새 나갈 정도였다. 실정(失政)의 압권은 수출세였다. 부족한 재원을 마련하기 위해 콩과 밀, 쇠고기 등 농축산품 수출에 최고 35%의 세금을 부과한 것이다. 수출 장려를 위해 세금을 깎아주는 글로벌 추세에 역행한 정책이 제대로 작동할 리 없었다.

제2의 에비타, 아르헨티나 국가 부도 막을까

수출이 줄면서 경상수지 적자 폭이 확대됐고, 아르헨티나는 만성적인 외환위기의 늪에 빠졌다. 아르헨티나 국내총생산(GDP) 대비 재정적자 비율은 2009년 1.5%에서 2015년 5.4%, 2018년에는 7%로 올랐다. 아르헨티나의 국가부채는 2011년 2054억 달러에서 2016년 2955억 달러로 대폭 늘어났다. 과다한 복지 재원 지출의 역효과는 금세 드러나 국가경제는 속절없이 무너졌다. 여기에 장기 집권에 따른 부정부패까지 발목을 잡았다. 크리스티나는 지금도 11건의 부패 소송에 연루돼 재판을 받고 있다.

파탄 상태인 경제를 물려받은 마크리는 경제 살리기에 나섰지만 결국 실패하고 말았다. GDP 대비 4%에 이르던 에너지·교통 보조금을 2.5%대로 줄이자 서민 살림살이는 팍팍해졌고, 소비는 둔화했다. 성장은 멎었다. 규제 폐지, 외자 유치 활성화, 연금 개혁 등을 앞세웠지만 오히려 페소화 가치 폭락, 공공요금 폭등 등 인플레이션, 대량 정리해고에 따른 실업률 상승 등으로 경제난을 겪었다.

마크리는 지난해 10월 디폴트(채무불이행)를 피하기 위한 국제통화기금(IMF)과의 협상에서 560억 달러(66조 원) 규모의 구제금융을 받는 조건으로 재정적자 절반의 축소를 약속했다. 이에 따라 마크리 대통령은 복지 지출 축소와 보조금 삭감 등 더욱 강력한 긴축정책을 추진했다.

아르헨티나 통계청(INDEC)에 따르면 2018년 하반기 빈곤율은 32%로, 국민의 3분의 1 정도가 병원비와 전기료도 제대로 못 내는 상황에 빠졌다. 먹고사는 것조차 힘든 절대 빈곤율은 6.7%에 달했다. 올해 실업률은 10.1%로 국민 10명 중 1명이 실업자다. 이 때문에 아르헨티나 국민들은 마크리에게 등을 돌렸다. 아르헨티나 역사상 현직 대통령이 재선에서 낙선한 것은 마크리가 처음이었다.

루이스 토넬리 부에노스아이레스대 정치학과 교수는 “마크리 대통령이 집권할 당시 아르헨티나 경제는 이미 길거리에서 피 흘리는 환자였다”며 “진단할 시간은커녕 긴급 수혈이 필요했는데 제대로 된 정책을 쓰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마크리도 자신의 경제정책의 실책을 시인하며 지나친 긴축정책이 아르헨티나 국민에겐 남미 최고봉인 아콩카과산을 오르라고 하는 것만큼이나 어려웠을 것이라고 표현하기도 했다.

생활고에 시달려 온 아르헨티나 국민들은 복지의 달콤한 기억을 잊지 못하고 또다시 페론주의를 선택했다. 한 번 포퓰리즘의 맛을 본 국민들이 이를 쉽게 끊지 못하는 것은 마약 중독과 같이 고통을 잊게 해주기 때문이다. 페론주의자인 페르난데스도 임금 인상과 금리 인하, 복지 확대 등의 포퓰리즘 공약을 제시했다. 그런데 페르난데스도 마크리와 마찬가지로 파산 직전의 경제를 물려받았다.

미국 싱크탱크인 우드로윌슨센터의 아르헨티나 전문가인 벤저민 게단은 “페르난데스가 당선된 이유는 아르헨티나 국민들이 경제난을 해소할 것이라는 기대 때문이었다”면서 “하지만 포퓰리즘은 자금이 없으면 불가능하다”고 지적했다. 페르난데스가 자신의 공약을 이행하려면 IMF로부터 구제금융을 추가로 지원받아야 한다.

IMF는 지난해 약속한 구제금융 가운데 440억 달러를 이미 지급했지만 나머지 금액의 지출을 미루고 있다. 따라서 페르난데스는 기존의 부채를 상환하고 추가 지원을 받으려면 IMF의 강력한 긴축 정책 요구를 수용해야만 한다. 이는 페르난데스가 내걸었던 공약과 배치된다. 페르난데스는 IMF에 재협상을 요구할 것이라고 큰소리를 치고 있지만 국제사회는 공허한 주장이라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 IMF는 페르난데스가 긴축정책을 추진하지 않는다면 더 이상 지원해주기 어렵다는 입장이다. 크리스탈리나 게오르기에바 IMF 총재는 “페르난데스가 일단 긴축정책 등으로 정부 부채 비율을 낮춰야 협상이 가능하다”고 밝혔다.

아르헨티나의 총 외채는 2800억 달러(328조 원)에 달한다. 마크리 전 대통령은 지난 8월 이 가운데 1010억 달러의 상환을 미루겠다고 일방적으로 발표한 바 있다. 아르헨티나 경제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지금까지 70년 넘게 추락만 거듭했다. 국가 부도 선언만 8차례나 했으며, IMF로부터 구제금융을 받은 횟수는 30차례에 달한다.

주요 공직 출마 경험이 없는 페르난데스는 학자와 행정가라는 수식어가 보다 어울리는 인물이다. 부에노스아이레스대 법학교수를 지냈으며 경제 문제에 대해선 사실상 문외한이다. 따라서 꼭두각시인 페르난데스를 원격 조정하고 있는 크리스티나가 국가 부도 위기를 극복해야만 한다. 하지만 크리스티나도 별 뾰족한 방법이 없는 것으로 보인다.

워싱턴포스트(WP)는 “아르헨티나 국민들은 최선이 아닌 차악을 택했을 뿐”이라며 “아르헨티나의 새 대통령인 페르난데스는 물론 부통령인 크리스티나도 언제든지 쫓겨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아르헨티나 경제는 포퓰리즘→재정난·페소화 가치 추락→국가 부도 위기→긴축재정→삼중고(고물가, 실업률, 환율)→포퓰리즘 부활이라는 악순환을 거듭해 왔다. 아르헨티나 현대사는 이처럼 포퓰리즘과 국가 부도로 점철돼 왔다.

아르헨티나가 9번째 국가 부도를 선언할 경우 세계적인 경제 위기의 도화선이 될 수도 있다. 또 신흥 국가들도 상당한 피해를 입을 것이 분명하다. 누리엘 루비니 미국 뉴욕대 경제학과 교수는 “아르헨티나가 국가 부도 상태에 빠지면 터키, 파키스탄, 레바논 같은 신흥 시장에서도 자금이 이탈하는 속도가 빨라질 것이다”라고 지적했다. 과연 누가 국가 부도 위기에 직면한 아르헨티나를 위해 눈물을 흘릴 것인가.

이장훈 국제문제 애널리스트

[본 기사는 한경머니 제 175호(2019년 12월)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