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간당하길 원하는 사람은 없다

[한경 머니 기고=배정원 행복한성문화센터 대표·성전문가·보건학 박사·유튜브 ‘배정원TV’]그동안 우리 사회는 강간을 당했음에도 가해자의 악한 의도보다는 피해자가 ‘정조’를 지키지 못했음에 더 방점을 찍어 왔던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강간을 당하길 원하는 사람은 없다. 성폭력에 대한 비난과 책임은 온전히 가해자의 몫이어야 한다.

지난 11월 13일 서울 여의도 국회의원회관에서는 ‘성폭력 판단 기준, 폭행과 협박이 아닌 동의 여부로!’를 주제로 한 토론회가 열렸다. 우리나라는 1994년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이하 성폭력 특별법)’을 제정해 그간 우리 사회에서 성폭력에 함의돼 왔던 ‘정조 개념’을 제거했다. 그동안은 강간을 당했음에도 가해자의 악한 의도보다는 피해자가 ‘정조’를 지키지 못했음에 더 방점이 찍혀 왔다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필자 역시 성폭행을 피해 빌딩의 옥상에서 떨어져 자살을 택한 한 여학생의 소식을 전하며 공중파 방송의 기자가 ‘정조를 지키기 위해’라고 공공연히 말을 이어가던 뉴스를 기억한다. 그래서 성폭력을 당하고도 ‘쉬쉬’ 하며 알리지 못하거나 피해자임에도 비난과 조롱의 대상이 되는 경우가 많았지만, 이 법 제정 이후 ‘피해자는 보호되고, 가해자는 처벌돼야 한다’는 상식이 확산됐다.

하지만 이 성폭력 특별법이 제정된 지 이미 20년이 넘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 사회에서 여전히 성폭력 피해자는 스스로 자신을 지키려는 노력을 인정받지 않으면 그 피해에 대한 인정과 보상을 받을 수 없다.

왜냐하면 우리나라 형법 제297조 강간죄는 ‘폭행 또는 협박으로 사람을 강간한 자’에 대한 처벌을 명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법에 의하면 피해자의 반항을 불가능하게 하거나 현저하게 곤란하게 할 정도의 폭행과 협박이 있어야 강간이 인정된다.

현실의 법집행은 사법부 판사 개개인의 ‘성인지 감수성’과 ‘협박과 폭력’에 대한 인지 정도에 따라 그 판결이 달라졌기에 성폭력 피해자들과 그들을 돕는 사람들을 무력하게 했던 것도 사실이다.

여성가족부의 통계에 의하면 2018년 한 해에만 24만1363건의 성폭력 상담이 이루어졌고, 2017년 한 해 동안 성폭력 사건이 3만2824건이 고소되고, 검찰에 의해 이 중 46%만 기소됐다(대검찰청, 2018년 범죄분석자료). 불기소의 이유는 대개 ‘혐의 없음’이었다고 한다.

이는 성폭력이 없었다는 것이 아니라 그만큼 심한 폭행과 협박이 인정되지 않기에 불기소 되는 경우가 많았다. 강간을 당할 상황에서 가해자에게 목숨을 걸고 반항하지 않으면 ‘강간’이 아니라 ‘좀 거친 성관계’가 되고 피해자는 2차 피해를 입거나 ‘무고’로 역고소 되는 것이 현실이다. 결국 우리 사회가 강간을 바라보는 시각은 여전히 피해자가 얼마나 목숨을 걸고 정조를 지키려 노력했는가에 머물러 있다.

강간당하길 원하는 사람은 없다

◆강간의 위법 기준은 피해자의 동의
이미 외국의 이에 대한 경향은 ‘no means no’에서 ‘yes means yes’로 향하고 있다. 이는 강간의 위법 기준을 ‘가해자의 의도나 행동’이 아니라 ‘피해자의 의도와 동의’에 맞추고 있다는 것이다. ‘no means no’가 상대방의 제안을 거부하는 것이라면 ‘yes means yes’는 나의 명백한 동의가 없으면 다 no라는, 훨씬 개인의 주도성을 강조하는 것이다.

유엔은 이미 2010년에 강간의 구성 요건으로 ‘폭행의 행사’가 아닌 ‘명백하고 자발적인 동의’ 여부를 기준으로 삼을 것을 권고했으며, 2018년 3월에는 우리나라 정부에 형법 제297조를 개정해서 ‘피해자의 자유로운 동의 부족’을 중심으로 강간을 정의할 것을 권고하기도 했다.

성평등지수가 높은 나라인 스웨덴에서는 2017·2018년에 성범죄의 구성 요건을 ‘자발적으로 성행위에 참여하지 않는 경우’로 변경하면서 ‘주도성과 자발성’, 즉 개인의 성적자기결정권 보호에 방점을 찍는 법 개정을 마련했다.

무엇보다 성폭력 판결에서 가장 중요하게 고려돼야 할 기준은 ‘사람의 성적자기결정권을 침해하는 행위’였느냐는 것이다. 성적자기결정권이란 각 사람이 몸과 마음으로 규정되는 자신의 온전한 몸과 성적 가치, 태도, 행동에 대한 결정권을 의미한다. 즉, 성관계를 할 것인가 말 것인가를 결정하는 것을 포함해 머리 스타일을 어떻게 할 것인가, 어떤 옷을 입을 것인가, 피어싱을 할 것인가, 타인과 손을 잡을 것인가, 키스를 할 것인가, 포옹을 할 것인가 하는 모든 성적 행동에 대한 결정권을 의미한다. 그런데 우리 사회는 이런 성적자기결정권의 의미를 너무 축소해 생각한다. 바로 ‘성기 중심주의’다.

몇 년 전 한 여성이 직장에서 휴식시간에 대화를 하다가 함께 있던 남성이 자꾸 자신의 쇄골 부위를 건드리며 이야기를 하자 사과를 요구했다. 그런데 남성은 성적 의도가 없었음을 주장하며 사과하지 않았고, 결국 성희롱으로 고소했지만 사법부는 남성의 손을 들어주었다. ‘여성의 쇄골은 여성의 성적 부위가 아니기 때문에 성적 수치심을 유발했다는 말이 지나치다’는 논리였던 걸로 기억한다.

최근에는 한 여성의 레깅스 착용 부위를 몰래 찍은 한 남성에 대해 ‘일상복인 레깅스를 입은 부위를 촬영했다는 것이 성적 수치심을 유발했다고 보이지 않는다’는 판례가 나와 또 한 번 시끄러웠다. 하지만 다시 생각해보면 내 딸이 몸매가 드러나지 않는 두툼한 모피코트를 입었다 하더라도 그 모습을 다른 사람이 자기 마음대로 찍어서 가지고 있다면 기분이 좋을 것인가를 생각해야 한다.

성적 수치심은 성기 주변에 한정돼 일어나는 감정이 아니다. 그것은 나의 몸에 대한 결정권을 나의 동의 없이 침해한 것에 대한 혐오와 수치의 감정이다. 보통 사람들은 이런 판결 논의에 대해 수긍하기도 하지만, 그 피해자가 나와 관계있는 사람이 된다면 대개 생각은 달라진다.
레깅스를 입은 여성이 나와 관계없는 사람일 때 느꼈던 감정과 나의 누이나 여자친구, 아내, 딸 심지어 아들일 경우조차 느낌은 달라지는 것이다. 바로 성인지 감수성이 더 예민해지는 순간인 것이다. 결국 상대에 대해 인격을 부여하면 훨씬 성인지 감수성은 높아진다. 2020년 새해부터는 가해자가 아닌 피해자의 입장에서 성폭력을 바라볼 수 있길 바란다.

‘강간당하길 원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약한 피해자를 이용하거나 피해자의 신뢰를 배신해 성폭력을 저지른 것에 대한 비난과 책임은 온전히 가해자의 몫이어야 한다.’ _2016년, 캐나다 온타리오 법원

배정원 행복한성문화센터 대표·성전문가·보건학 박사·유튜브 ‘배정원TV’


[본 기사는 한경머니 제 175호(2019년 12월)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