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서도 즐거운 발리의 ‘무한 매력’
[한경 머니 기고=글·사진 양보라 여행전문기자] 인도네시아는 무려 1만8200개의 섬으로 이루어진 나라다. 이 중에서 가장 유명한 섬이 발리(Bali)다. 우리나라 여행객 사이에서는 허니문 여행지로 알려진 바로 그 섬이다. 발리를 걷고 또 걸으며 섬의 무한 매력을 탐닉했다.

1970년대부터 인도네시아 정부가 고급 여행지로 개발한 덕분에 발리에는 허니무너를 겨냥한 풀빌라가 차고 넘친다. 하지만 그것만이 발리의 매력이라고 한다면 발리 주민의 절대다수가 믿는 힌두교의 신들이 벌떡 일어나 따질지도 모르겠다. 제주도보다 3배나 큰 발리에는 정글이 있고, 뜨거운 증기를 뿜고 있는 활화산까지 있다.

예술가와 히피가 반한 동네
1980년대 제주도가 그랬을 것이고, 요즘에 와서는 하와이가 그 지위를 대체했을 것이다. 허니문 여행에 특화된 섬 말이다. 발리 역시 마찬가지다. 유명 연예인의 비밀스러운 신혼여행 행선지로 언론에 자주 등장하는 바로 그 섬이다. 그래서 주변에 발리로 혼자 여행을 떠난다는 계획을 들려주면 “도대체 왜?”라는 반문을 수없이 듣곤 했다.
혼자서도 즐거운 발리의 ‘무한 매력’
혼자서도 재밌게 발리를 즐기겠노라고 옹골차게 다짐했지만, 인천국제공항에서 발리 덴파사르공항으로 향하는 비행기를 타자마자 마음이 흔들렸다. 정녕 발리는 ‘커플천국’인 것인지, 기내에 커플티를 입은 수십 쌍이 앉아 있었다. 크리스마스이브 명동 거리에 외따로 남겨지면 딱 이런 기분일 거라 생각했다.

장장 7시간의 비행 끝에, 발리에 내려 공항을 빠져나오자마자 혼자라는 우울감은 딱 던져 버리기로 마음먹었다. 한국에는 늦여름 끝에 찾아온 가을장마로 축축한 계절을 보냈는데, 건기가 한창인 발리의 공기는 뽀송뽀송했고 볕은 따사로웠으며 야자수에 이름 모를 꽃나무에 온 세상이 싱그러웠다. 즐기지 못하면 억울할 것만 같은 완벽한 날씨에 절로 기분이 좋아졌다.
신혼여행이 목적이었다면 리조트가 몰려 있는 누사두아(Nusa Dua)나 짐바란(Jimbaran)을 목적지로 삼았겠지만, 가장 발리다운 매력을 품고 있는 지역으로 향하고 싶었다. 그래서 선택한 동네가 발리섬 배꼽께 자리 잡고 있는 우붓(Ubud)이었다.

공항에서 1시간 30분 택시를 타고 우붓에 발을 들이자마자 상상했던 발리와 퍽 다른 모습을 봤다. 역시나 허니문 여행지라는 이미지가 강해서인지, 발리라 하면 어디에서든 인도양 바다가 보이고 세련된 리조트가 있겠거니 했지만, 우붓은 정글 속 마을이었다. 최대 1년 삼모작까지 가능하다는 계단식 논이 즐비할 뿐이었다.
혼자서도 즐거운 발리의 ‘무한 매력’
작고 수수한 시골 동네일 뿐인데 왜 발리를 여행한 사람마다 우붓을 성스럽고 아름다운 마을로 꼽는지 아직 궁금증은 풀리지 않았다. 우붓을 향한 갸우뚱한 의문을 풀기 위해 산책을 나섰다. 우붓의 입구에는 울창한 열대 숲에 300여 마리의 원숭이가 뛰노는 원숭이사원이 있다. 이곳에서 왕궁으로 이어지는 도로가 우붓에서 가장 번화한 골목이다. 어깨를 잇댄 작은 가게들이 문을 열기 전 조용한 거리를 걸었다.

나보다 부지런한 여인들이 인도네시아 전통 의상인 사롱(Sarong)을 곱게 차려입고 거리에 등장했다. 아침부터 무엇을 하고 있을까 호기심에 다가갔더니, 여인들은 야자수 잎으로 만든 접시에 공양물(차낭)을 사원의 신에게 바치고 있었다. 힌두교를 믿는 발리의 여인들이 아침마다 빠뜨리지 않는 의식이다.

차낭에는 꽃과 음식을 담기도 하고 때로 담배를 올려 두기도 한다. 배고픈 자는 누구든 차낭의 음식을 먹을 수 있고 떠돌이 개나 원숭이도 차낭의 공양물로 배를 채운다. 우붓의 거리에서 길목마다 힌두사원이 세워져 있고, 사원 아래 어김없이 차낭 바구니가 놓였다. 다른 생명체에게 베풀 줄 아는 마음이 가득한 우붓은 여행자에게도 낙낙한 품을 내준다.
혼자서도 즐거운 발리의 ‘무한 매력’
이슬람 신도가 대부분인 인도네시아에서 발리만이 유일하게 주민의 80% 이상이 힌두교를 믿고 있다. 15세기경 자바섬에서 이슬람교 세력이 커지자 힌두교를 따르던 마자파히트 왕조가 발리로 피신하면서 힌두교를 전파했다. 발리의 힌두교는 토착신앙과 불교가 섞여 발전했다. 이 섬엔 4600여 개의 사원이 있어 1년의 절반가량은 종교 행사가 열린다. 발리에서는 힌두교가 삶의 일부인 것이다. ‘신(神)들의 섬’, ‘지상 최후의 낙원’, ‘세계의 아침’. 발리에 붙는 수식어가 괜히 탄생한 게 아니구나 싶었다.

이 평화롭고 한적한 우붓의 매력을 먼저 알아본 이들은 예술가였다. 발리 현지 예술가를 비롯해 유럽의 화가들이 우붓에 작업실을 마련했다. 그래서 우붓의 골목골목은 대형 프랜차이즈 커피숍이나 옷가게가 들어서기 전, 홍대 거리와 비슷한 분위기가 났다. 상점가를 걷다 보면 자신의 조각이나 그림을 파는 작은 화랑을 숱하게 마주칠 수 있다. 우붓엔 네카·블랑코·아르마 미술관 등 대형 미술관을 비롯해 50곳이 넘는 갤러리가 있다. 여행자에게 활짝 문이 열린 문턱 낮은 갤러리에서 마음껏 그림을 감상했다.

예술가들이 모이는 따뜻한 열대의 여행지에 히피가 유입된 것은 자연스러운 수순이었다. 예술과 자연을 사랑하는 서구의 히피 여행자가 모여들게 되면서 그들이 사랑해 마지않는 요가 문화를 우붓에 이식했다. 요가복을 입고 여행자로 벅적벅적한 거리를 활보해도 아무 거리낌이 없을 만큼 우붓은 요기(yogi, 요가 수행자)의 천국이다.

그래서 요가는 우붓에서 꼭 해봐야 할 체험 거리로 꼽힌다. 요가반, 요가하우스 등 우붓의 유명 요가원은 여행자가 참여할 수 있는 1일 체험 티켓을 우리 돈 1만 원 언저리에서 판매한다. 우붓의 요가원은 하나같이 그림 같은 풍경을 벗하고 있어 그 자체로 힐링 스폿이었다. 비와 햇볕을 가릴 수 있는 지붕만 있고 사방이 뻥 뚫린 수행장에서 근육을 하나하나 깨우는 연습을 했다. 몸을 움직이면서 계단식 논 전망을 즐기기도 하고, 계곡물이 졸졸 흐르는 소리에 집중해보고 뺨에 닿는 부드러운 바람을 느끼며 마음이 차분해졌다.

그렇게 우붓에서의 시간은 천천히 흘렀다. 아침에는 산책이나 요가를 하고, 대낮의 태양이 뜨거우면 작은 카페에 앉아 인도네시아산 커피를 홀짝거렸다. 예술가들이 만든 독특한 소품을 쇼핑하고 복작복작한 우붓시장에서 향긋한 열대과일을 샀다. 우붓은 느릿한 박자에 평온한 멜로디가 흐르는 여행지였다. 우붓에서 헤어 나오지 못해 한 달이고 두 달이고 눌러앉은 장기 여행자가 왜 그토록 많은지 어렴풋하게 이유를 알 것 같았다.
혼자서도 즐거운 발리의 ‘무한 매력’
활화산에서 뜨거운 아침을
느긋한 여행자의 동네, 우붓에 머물면서 딱 하루 서둘렀던 때가 있다. 발리 북부에 있는 바투르산(Mt. Batur, 1717m)으로 향하는 날이었다. 새벽 3시, 숙소 앞으로 찾아온 투어 차량에 올라 컴컴한 어둠을 뚫고 바투르산으로 출발했다. 졸린 눈을 비비며 기꺼이 수고로움을 감수했던 까닭은 발리 최고 높이를 자랑하는 산으로, 발리인이 신성해 마지않는 산, 아궁산(Mt. Agung, 3142m)을 만나기 위해서였다.

행선지를 아궁산으로 잡지 않고 아궁산 옆의 바투르산으로 삼는 데 의아할 수도 있다. 한라산은 분화를 멈춘 지 오래지만, 아궁산은 지금도 용암이 꿈틀대며 언제 터질지 모르는 활화산이기 때문에 그렇다. 이태 전 발리에 발이 묶인 우리 국민을 구조하기 위해 정부에서 발리행 전세기를 띄운 사건의 주범도 바로 아궁산이었다. 2017년 11월 21일에 아궁산이 분화하자 6000m 높이의 연기 기둥이 치솟았고, 항공편이 모조리 결항됐다. 2017년 대분화 이후로 아궁산 입산 금지령은 아직 유효한 상태다.

아궁산에 오르지 못하는 아쉬움을 풀 수 있는 적격한 방법이 바로 바투르산 트레킹이다. 바투르산 정상에 오르면 정면에 마주하고 있는 아궁산의 능선을 오롯이 감상할 수 있다. 게다가 대형 화산인 아궁산의 동생 격이긴 하지만 바투르산 자체도 활화산이다. 바투르산 트레킹 상품은 대부분 한밤중에 출발해 밤길을 헤쳐 산 정상에 오른 뒤 아궁산을 벗해 솟아오르는 태양을 맞는 일정으로 짜였다. 그래서 바투루산 트레킹은 활화산 트레킹, 일출 트레킹, 밤중 산행으로 한국에서 쉽게 경험할 수 없는 트레킹의 요소가 모조리 집결된 여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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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어 차량에 오르니 이미 여행객 여럿이 타고 있었다. 모조리 유럽에서 건너온 여행객들이었다. 새벽인 데도 에너지가 넘치는 스페인의 젊은 아가씨 비올레타와 이야기를 나눴다. 필자는 오랜만의 산행이라 긴장하면서 잠을 설쳤는데, 이 아가씨는 어차피 못 잘 거, 새벽까지 클럽에서 춤을 추자고 결심했단다. 바투르산으로 나서기 직전까지 음악에 몸을 흔들던 그녀는 진한 화장도 지우지 못한 채 왔다.

차에서 내려 드디어 등산로 입구에 내렸다. 인공조명이라곤 찾아볼 수 없는 산중에 암흑 같은 밤의 기세가 대단했다. 열일곱 살 먹은 소년 가이드 바릭이 이 어둑한 세상의 생존 수단이 돼줄 손전등을 나눠줬다.
“난 아마 중도에 포기할 거야. 잘 다녀와.”
막상 산길에 나설 때가 되자 비올레타는 겁을 잔뜩 먹었다. 바릭이 “2시간만 산을 오르면 된다”고 용기를 북돋워줬다. 산행은 1000m 부근에서 시작했는데, 다행히 첫 구간은 평탄한 길이었다. 손전등 불빛에 의지해 발을 뗐다.

발밑을 신경 쓰느라 여력이 없었는데 생각보다 길이 순탄해 주위를 둘러볼 여유가 생겼다. 문득 정수리 위를 올려다봤을 때 감탄하지 않을 수 없는 광경이 빚어졌다. 원시의 밤하늘에 주먹만 한 별이 총총히 박힌 채 산에 오르는 등산객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밤중 산행이 가진 매력의 절반은,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저 별에 있는 거라 생각했다.
혼자서도 즐거운 발리의 ‘무한 매력’
30분을 즐겁게 걷고 나서 바릭은 지금부터 조심히 나가야 한다고 일렀다. 앞을 보니 여행자들이 손에 든 손전등 불빛이 각도가 위로 꺾여 있었다. 오르막을 오르고 있다는 뜻이었다.
“용암이 굳은 땅이라 작은 돌멩이들이 가득해. 발바닥에 힘을 꽉 줘.”
별안간 등장한 오르막도 버거운데 바릭은 미끄러운 바닥을 조심하라고 경고했다. 그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넘어지는 등산객이 속출했다. 등산로는 계단이나 밧줄이 없이 날것 그대로여서 조심스럽게 걷는 수밖에 없었다. 가파르고 미끄러운 등산로에서 걷는 속도가 줄어드니 좁은 등산로가 퇴근길 강변북로처럼 밀렸다. 이날 바투르산 입장객은 600명이었다는데, 모든 등산객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천천히 산을 오르는 광경이 빚어졌다.

자박자박 발소리가 고요한 새벽을 가르는 새 고릿한 유황 냄새가 풍겼다.
“바투르산은 1917년에 큰 폭발이 났고 마지막 분화는 2000년이었어. 날이 밝으면 땅속에서 나오는 수증기도 볼 수 있을 거야.”
화산은 분화 전에 징조를 보이기 때문에 지금은 걱정할 것이 없다는 바릭의 말을 믿고, 아직 꿈틀거리고 있는 바투르산을 한 발 한 발 올랐다. 고산지대여서 기온이 영상 10도까지 떨어졌는데도 이마에 비지땀이 송골송골 맺혔다.

등 뒤에서 서서히 검은 장막이 갈라지고 볕이 튀어나올 채비를 했다. 그 순간 하늘은 보랏빛, 주황빛, 분홍빛 등 세상의 모든 색을 담고 있는 거대한 캔버스였다. 정상에 다다라 따뜻한 코코아 한 잔을 마시며 해가 온전히 나타나기를 기다렸다. 점점 하늘이 밝아지면서 산 중턱에 걸린 운무를 뚫고 우뚝 솟아오른 아궁산의 자태가 드러났다. 그리고 아궁산과 바투르산을 훤히 비추는 태양이 솟아올랐다. 활화산 정상에서 건강한 땀을 흘린 보답을 충분히 누렸다.

양보라 여행전문기자는…
단연코 여행의 재미는 소비에 있으며 온갖 살 것이 넘치는 메트로폴리탄이야말로 궁극의 여행지라고 믿어 왔다. 인생의 분기점을 넘은 것인지, 자연으로 파고드는 여정이 즐거워졌다. 이제 막 걷기 여행의 매력에 눈을 뜬 초보 트레커다. 걸어보지 않고는 못 배길 국내외 아름다운 트레킹 코스를 소개할 예정이다. 중앙일보와 월간지 트래비 여행 기자로 글을 써 왔다.


[본 기사는 한경머니 제 173호(2019년 10월)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