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승철 무인도섬테마연구소장
[한경 머니 = 이동찬 기자] 섬에 여행 가고, 섬을 사랑하고, 이제는 섬으로 살아가는 남자. 윤승철 무인도섬테마연구소장은 섬이 인생의 과제이자, 자신이 사는 이유라고 말한다. 그는 섬에서 쉼을 넘어 어떤 가치를 찾았을까. 소설 <로빈슨 크루소> 때문인지, 아니면 SBS 예능 <정글의 법칙> 때문인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누구나 한 번쯤 무인도에 가는 꿈을 꾼다. 누군가는 망망대해, 야자수 하나 덩그러니 놓인 외딴 모래섬에서 혼자만의 시간을 보내는 상상, 또 누군가는 지상낙원 같은 섬에서 열대과일을 따 먹으면서 실컷 휴식을 취하는 상상. 어찌됐건 무인도를 찾게 된다는 건 생존의 고통을 느끼기보다는 진정한 나를 돌아보고 싶다는 욕구의 반영일지도 모르겠다. 여기, 그런 단계를 넘어 섬을 숙명처럼 받아들인 이가 있다. 윤승철 무인도섬테마연구소장이다. 문예창작과를 전공하고, 2012년에는 세계 최연소 극지마라톤 그랜드슬래머에 등극한 그가 왜 하필 책이나 사막이 아닌 섬에 꽂혔는지 궁금해졌다.무인도섬테마연구소라는 이름이 참 흥미로운데요. 무엇을 하는 곳인가요.
“무인도를 한 달에 한 번씩 방문해 체험하고 교육하는 프로그램들을 운영하고 있어요. 개별 참가자가 오기도 하고, 가족이나 친구, 청소년 등 단체 혹은 회사 워크숍 형태로 참가하기도 해요. 1박 2일에서 2박 3일 일정으로 가고, 국내뿐만 아니라 해외 무인도에 가기도 해요. 또 틈틈이 제가 방문했던 우리나라 섬이나 무인도에 관한 기록들을 남기고 있습니다.”
섬에 대한 기록이라. 주로 어떤 걸 기록하나요.
“내용은 주로 마을 사람들 사이에서 구전돼 온 이야기나 우리가 몰랐던 역사적인 가치들, 문헌들을 정리하고 있어요. 섬과 무인도 관련 책을 2권 정도 냈는데. <무인도에 갈 때 당신이 가져가야 할 것>이 있고, 경남 통영에 위치한 만지도라는 섬을 기록한 <마음을 만지도>라는 책자도 있어요. 지금은 제주도에서 배를 타고 15분 정도 가면 도착하는 비양도에 대해 기록하고 있어요.”
다른 활동도 활발히 하는 것 같아요.
“저를 포함해 5명이서 해양문화교육협동조합(Ocean Culture Education Union, OCEU)을 꾸려서 활동도 하고 있습니다. 구성원은 제주도 바다에서 떠내려 온 쓰레기로 업사이클링 작품을 만드는 작가, 인천에서 환경을 훼손하지 않으면서 지역주민들에게 도움이 되는 친환경적인 섬 투어를 기획하는 기획자, 그린피스 아시아 최초 항해사, 그리고 수중 잠수와 촬영 및 해양 교육 전문가로 구성돼 있어요. 최근에는 비양도에 있는 폐가를 몇 년 동안 임대해 리모델링한 다음 제주시 예산을 받아 비양도를 방문하는 사람들에게 업사이클링 교육을 하기도 하고, 사진전을 열기도 했어요.”
이쯤 되니, 비양도라는 섬이 궁금해지는데요.
“비양도는 한바퀴 도는 데 50분 정도 걸리는 작은 섬이지만, ‘제주도의 축소판’이라고 여겨질 만큼 지질공원으로 등록된, 가치 있는 섬이에요. 특히 섬 안에 우리나라 유일의 염습지인 펄랑못이라는 호수가 있는 것도 재밌는 요소 중 하나죠. 사람들이 이 아름다운 섬에 대해 정보를 얻거나 가치를 발견하지 못하고 시간만 때우다 가는 게 아쉬웠어요. 마을 주민들의 적극성 또한 달랐어요. 사실 섬 프로젝트를 진행할 때는 그 마을 주민들의 동의와 협력이 무엇보다 필요한데 텃세가 심한 섬도 있거든요. 이장님을 비롯한 마을 주민들에게 의견을 말했을 때 공감해주시고 프로젝트를 할 수 있도록 이해해주신 편이었죠.”
사실 섬사람들이 텃세가 심하다는 편견이 있어요.
“저도 섬에 많이 다니다 보니, 왜 섬사람들이 배타적이고 무뚝뚝할까 생각해봤어요. 섬은 오후 4시가 되면 조용해져요. 마지막 배가 오후 4~5시에 출항하거든요. 섬에는 1박을 하는 사람들이 별로 없어요. 저도 마지막 배를 떠나보내면 그 적적함이 이루 말할 수 없더라고요. 기본적으로 섬사람들은 방문객에게 정을 줘도 어차피 떠날 사람이라는 생각이 강하지만, 상처를 받은 적도 있다고 해요. 전복 양식을 많이 하는 섬으로 봉사활동을 갔었는데, 이전에 한 종교단체에서 봉사라는 이름하에 잠입취재를 한 거예요. 섬사람들은 고마운 마음에 이것저것 챙겨줬는데, 그들은 소형 카메라로 외국인 노동자를 몰래 촬영해서 악의적으로 편집해 방송에 내보냈더라고요.”
섬으로 봉사활동도 떠난다고 들었어요.
“한 달에 한 번 섬으로 봉사활동을 가고 있어요. 이건 저와 마음 맞는 친구 3명이 이왕 한 달에 한 번 보는 거, 조금 더 재밌고 의미 있게 할 수 있는 일이 있지 않을까 해서 시작한 거예요. 제가 섬을 자주 다니다 보니 도움이 필요한 곳이 많더라고요. 바다에 떠밀려 온 쓰레기도 많고, 몸이 불편한데 의료 혜택을 받지 못하시는 어르신들도 계시고요. 2016년 7월부터 한 달에 한 번, 셋째 주 주말에 매달 섬을 바꿔 가며 봉사활동을 가고 있습니다.”
주로 섬에서 어떤 봉사활동을 하나요.
“섬에 가기 전에 이장님이나 청년회장, 부녀회장님에게 여쭤봐요. 그런데 정말 하나같이 다 달라요. 계절에 따라 다르고, 섬에 따라 다르고, 지역에 따라 다르고요. 내일은 경남 거제에 위치한 지심도를 방문해 벽화를 그리고 쓰레기를 치우고 대합실에 작은 도서관을 만들 예정입니다. 친구 중 한 명이 한의사라서 한방 진료도 같이하고 있어요. 저희와 참가자들은 섬이라는 새로운 공간에서 다양한 경험과 보람을 얻고, 지역주민들은 일손을 덜면서 민박과 음식을 제공하니 소득이 증대되고, 지방자치단체는 관광과 홍보에 도움이 되니 모두에게 좋은 일이죠.”
무인도와 섬에 관심을 가지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요.
“제가 사하라·아타카마·고비사막 등을 경주하는 극지마라톤을 했었어요. 사막은 사람도, 스마트폰도, TV도 없으니 생각도 많이 하고, 진정한 휴식을 할 수 있다는 걸 알게 됐습니다. 그전에는 이렇게 멍 때리는 시간이 중요한지 몰랐죠. 섬도 사막과 많이 닮아 있더라고요. 생각을 정리할 수 있는 시간을 주는 공간이었어요. 또 섬마다 다양한 이야기가 있는 게 재밌기도 했습니다. 지질학적으로 흥미로운 곳도 있었고, 섬마을 사람들만이 간직한 스토리가 있는 곳도 있었죠.”
뭔가 섬에 대한 사명감이 있다는 느낌이 들어요.
“섬에 살던 이들이 불편함 때문에 뭍으로 올라오면, 그 섬만이 가진 이야기 또한 사라지게 돼요. 유인도가 무인도가 되는 거죠. 섬을 다니다 보니 누군가 기록하지 않으면 없어지는 가치들에 대한 사명감이 생긴 것 같아요. 또 섬사람들에게는 교통과 의료, 교육환경이 열악해요. 이런 상황들을 알게 되니 봉사활동에 필요성을 느꼈죠. 영토나 자원의 측면에서도 섬은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나라는 전 세계에서 섬이 네 번째로 많은 나라로 최남단, 최서단, 최동단에 섬이 있음으로써 그 주변의 해양 자원이 우리의 것이 되거든요. 제가 긍정적으로 보는 건, 국가도 섬과 바다의 가치를 점점 더 높게 본다는 점이에요. 올해부터 8월 8일이 국가가 기념하는 ‘섬의 날’로 제정됐고, 청년들이 기차를 저렴하게 탈 수 있는 ‘내일로’처럼 지난 6월 1일부터 만 34세 이하에게 배 값을 할인해주는 ‘바다로’도 생겼죠. 해양수산부에서도 매달 ‘이달의 무인도’를 선정해 어떤 가치와 역사가 있는지 설명해주기 시작했습니다.”
섬들을 다니면서 재밌는 에피소드도 있었겠죠.
“인천 옹진군에 있는 상공경도를 방문한 적이 있어요. 텅스텐 광산이 있는 동굴이 있다고 해서 찾아갔죠. 입구는 몸을 숙여서 들어갈 정도로 작은데, 그 안에는 깊고 넓은 굴이 끝도 없이 펼쳐져 있더라고요. 조그마한 입구에 그런 어마어마한 동굴이 있었다니, 신기할 따름이었죠. 또 한 번은 경남 통영에 위치한 가왕도라는 무인도에 갔는데, 한때 사람이 살았던 섬이었어요. 새벽에 낚시하러 가는 배를 얻어 타고, 평평한 곳에 텐트를 치고 자려고 했죠. 강아지를 한 마리 데려갔는데, 이상하게 이 녀석이 잠을 못 자는 거예요. 아침에 보니 제가 묘지 위에다가 텐트를 쳤던 거죠.”
무인도에서 위험했던 적은 없었나요.
“무인도에 가기 전에 다큐멘터리나 책을 보고 준비하기 때문에 생명이 위독했던 적은 없었어요. 현지인의 도움도 많이 받았고요. 대신 아찔했던 순간은 있었죠. 물을 쉽게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하고 많이 가져가지 않은 거예요. 나중에 목이 말라서 보고 배운 대로 열심히 바닷물을 증발시키고, 이슬도 모아봤는데 한 모금 정도밖에 나오질 않더라고요. 바닷물을 마셨다가 더 심한 갈증이 오기에 결국엔 두려움을 무릅쓰고 코코넛 나무에 올라갔죠. 그 뒤로는 비상식량과 물은 많이 챙겨 가요.”
그럼에도 무인도를 자주 찾는 이유가 있을 것 같아요.
“무인도가 주는 매력이 있어요. 앞서 말씀드린 사막처럼, 그 공간은 세계가 종말하고 나 혼자 살아남았을 때의 느낌을 받을 수 있어요. 철저하게 외로움이 느껴짐과 동시에 나 혼자 생각할 수 있는 시간이 주어지죠. 그동안 고맙다고 말하지 못했던 사람들, 한 번 해야겠다고 생각하고 못했던 것들, 사 놓고 읽지 못한 책들, 바쁘다고 챙기지 못했던 것들에 대해서요. 아무것도 안 하고 멍하니 있다가 다시 세상으로 돌아오면 정리가 된 느낌이 들어요. 마치 컴퓨터를 포맷한 것처럼요.”
무인도 탐사에 지원했던 사람들은 왜 무인도에 가길 원했는지 궁금합니다.
“첫 해외여행을 무인도로 선택한 분이 있었어요. 그분에게 그 이유를 물어봤더니, 살면서 무인도를 한 번쯤은 가고 싶었다고 대답하시더라고요. 동행했던 다른 분들에게도 물어봤어요. 이유야 다양했지만 공통적으로 평생 한 번은 무인도에 가보고 싶었다고 말씀하시더라고요. 그분들을 보며 나만 이상한 사람이 아니구나를 느낌과 동시에 로망을 이룰 수 있는 용기와 자신감이 느껴졌어요. 좀 재밌었던 분은, 딸과 함께 신청한 아버지였는데, <정글의 법칙>을 보고 아버지께서 더 잘할 수 있다고 말씀하시니 딸이 아버지와 함께 신청한 거예요. 하필 딸은 일이 있어서 참석을 못하고, 아버지만 오셨는데 정말 달인급으로 잘하셨죠.”
섬이 소장님에게 중요한 의미가 있는 것 같아요.
“저에게 있어 일생의 숙명, 혹은 과제 같다는 느낌이 들어요. 지금은 삶의 이유처럼 된 것 같고요. 그 어떤 사람에게도 가치 있는 일을 한다는 건 중요한 일이죠. 제가 섬과 무인도를 가면 누군가는 여행이라고도 하고 누군가는 탐험이라고도 해요. 제 나름대로는, 여행은 내가 좋아서 가고 즐거운 기억이 남는 것이고, 여행했던 곳을 기록해 내 기억과 경험을 공유하는 그 순간부터는 탐험이라고 정의를 내렸어요. 저는 그런 면에서 탐험이 더 가치 있다고 생각해요. 누군가 하지 않은 일들, 내가 탐험해 알림으로써 다른 사람들이 실제 체험하지 않아도 정보를 얻고 공유할 수 있다면 그 자체로도 의미가 있는 거죠.”
국내에 꼭 한 번 가봐야 할 섬 혹은 독특한 특징이 있는 섬이 있다면 추천해주세요.
“인천 옹진군의 문갑도는 너무 평화로운 곳이에요. 마을 뒤로 넘어가면 작은 해변이 있는데, 고즈넉하니 세상에 나밖에 없다는 느낌이 들 거예요. 경남 거제의 지심도는 볼거리들이 많아요. 포대가 있던 진지가 있고, 그 근처에는 마을의 역사나 문화들이 잘 정리가 돼 있죠. 한려해상국립공원의 수려한 경관도 감상할 수 있고요. 경기 화성시의 국화도는 마을 주민들이 너무 열정적이고, 방문객들을 잘 챙겨주세요. 서울에서 1시간 내로 갈 수 있는 거리라 접근성도 좋고요.”
궁극적으로 꿈꾸는 섬의 모습도 있을 거 같아요.
“일본 세토우치해 근처의 섬들에서는 3년마다 세토우치 국제예술제가 열려요. 안도 타다오의 건축물과 쿠사마 야요이의 호박 조형물을 감상할 수 있는 나오시마섬도 이 섬들 중 하나죠. 매년 축제가 열린다면, 섬사람들이 생업을 포기했을 텐데, 3년에 한 번 개최되기 때문에 지역주민과의 의견 조율도 잘 이루어진 사례라고 생각해요. 또한 플라스틱제로 섬들도 대안적 모델을 제시한다고 봅니다. 섬은 작고 좁기 때문에 마을 사람 몇 명이 동의하고 가치를 느끼면 변화를 빨리 일으킬 수 있는, ‘사회의 축소판’이거든요. 만약 섬에서 하나의 프로젝트가 성공을 하면 사회 전체에서의 성공 가능성을 제시할 수 있어요. 국내에는 울릉도가 플라스틱제로 섬이 될 예정입니다. 이렇게 섬은 하나의 대안 공간으로서 그 역할을 수행하고 있어요. 이런 사례들을 기반으로 다양한 프로젝트를 해보고 싶어요.”
사진 김기남 기자·무인도섬테마연구소 제공
[본 기사는 한경머니 제 170호(2019년 07월)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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