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망증, 마음이 지쳤다는 메시지
Enjoy [한경 머니 = 윤대현 서울대학교병원 강남센터 정신의학과 교수]

중년을 넘어서면 건망증이 느껴질 때 치매가 아닌가 걱정되는 것은 이해가 된다. 어르신들이 제일 두려워하는 병은 암이 아닌 치매다. 나를 잊게 되고 간병하는 가족들에게 큰 고통을 주기 때문이다. 그런데 간혹 20~30대들도 치매가 걱정된다며 찾아온다. 세대 불문, 건망증의 세상에 살고 있는 듯하다.

어떤 직장인은 영업을 할 때 어떤 말을 해야 하는지 떠오르지 않는다는 호소를 하기도 한다. 심지어 청소년 모임에 가서 기억력이 떨어진 사람, 건망증이 느껴지는 사람 손을 들라고 하면 과반수가 손을 드는 경우도 있다.

치매는 뇌의 노화 속도가 빨라 뇌 세포가 부셔지면서 뇌 기능이 떨어지는 퇴행성 질환이다. 그런데 청소년까지 느끼는 건망증은 무엇일까. 치매가 찾아오면 당연히 건망증이 생기지만 뇌가 퇴행성 변화 없이 멀쩡해도 뇌가 지치게 되면 집중력이 떨어지면서 건망증이 찾아온다. 기억을 하려면 집중을 해서 새로운 정보를 뇌에 저장하고 필요할 때 다시 집중해서 꺼내야 하는데 피곤한 뇌는 집중력이 떨어지면서 새로운 것을 학습해 저장하는 기능에 저하가 온다. 계좌이체를 해 놓고도 까먹어 놀랐다는 사연도 있는데 충분히 일어날 수 있다.

뇌가 피로할 때 대표적으로 찾아오는 현상 중 하나가 건망증인 것이다. 마음 입장에서 생각해보면 마음의 주인인 자신이 너무 놀아주지도 않고 달리기만 하니 재미없는 세상 기억하고 싶지 않아 집중력을 떨어트려 건망증을 만들어 버리지 않나 싶다. 결국 스트레스로 인한 건망증의 솔루션은 뇌를 즐겁게 해주는 것이다. 내 마음이 좋아하는 것이 무엇인지 생각해 꾸준히 내 감성을 즐겁게 해주다 보면 집중력이 살아나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집중력을 키우겠다고 뇌를 더 못살게 굴면 건망증이 더 심해질 수도 있다.

정보피로증후군 증가

정보가 중요한 자원이 된 현대 사회에서 산업구조도 정보 산업, 두뇌 산업 중심으로 변화해 가고 있어 각 기업마다 정보화를 강조하고 있다. 그러다 보니 인터넷, 전자우편 등 컴퓨터를 통한 정보 업무 처리량이 폭증하고 있고 그 결과로 직장인들이 심리적 스트레스와 피로감에 시달리고 있는데, 이를 ‘정보피로증후군’이라 부른다. 주요 증상은 업무 처리 능력 저하, 불안감, 자기 회의감 증가, 그리고 기능이 떨어지다 보니 책임을 주변에 전가하는 경향, 즉 남의 탓을 하는 일이 많아지는 현상들이 나타난다.

정보피로증후군에 관련한 한 연구가 흥미롭다. 영국 직장인들을 대상으로 일상생활에서 일어날 수 있는 예기치 못한 각종 상황에 대해 인식시킨 후 최면을 유도해 마치 실제인 양 느끼도록 하고 심장 박동, 피부 저항 등 신체에 표현되는 스트레스 정도를 측정했다. 그런데 결과를 보니 휴일 문자메시지 등 스마트폰에 찍히는 상사의 전화번호가 고공 번지점프나 자동차 사고보다 더 두렵다는 결과가 나왔다. 연구자는 “직장에서 별 생각 없이 보낸 메시지도 앞에 상사, 업무라는 꼭지가 붙어 오면 사람들이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는 것으로 확인됐다”고 이야기했는데, 우리 마음은 타인과의 연결도 원하지만 혼자만의 자유를 또한 느끼지 못하면 힘들어 한다.

디지털 디톡스

대표적 정보기술(IT) 회사인 구글의 슈미트 회장은 디지털 디톡스의 필요성을 강조했다는데, 미국 한 대학의 졸업식 축사에서 “인생은 모니터 속에서 이루어질 수 없다. 하루 1시간이라도 휴대전화와 컴퓨터를 끄고 사랑하는 이의 눈을 보고 대화하라”고 강조했다 한다. 사람 얼굴보다 컴퓨터 화면이나 스마트폰을 더 들여다보고 있는 것이 우리의 요즘 모습 같다. 오랜만에 부부가 저녁식사를 해도 서로 스마트폰만 쳐다보는 게 흔한 일이다. 한 기업가 모임은 모임을 하는 동안 스마트폰을 수거해 서로에게 집중할 수 있도록 노력한다고 하는데 의미 있는 일이라 생각한다.

혹시 이런 현상을 경험하고 있는지. 내가 소셜미디어에 올린 글에 누가 어떤 댓글을 달았는지 궁금해 미치겠다, 댓글이 적으면 우울하다, 아침에 눈을 뜨면 스마트폰부터 찾는다, 지하철이나 화장실에서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체크하다 보니 피곤하다 등등. 이런 것들이 정보피로증후군의 증상들이다.

이럴 때 디지털 디톡스가 필요하다. 디지털 휴일을 만들어주는 것이 중요하다. 일주일에 한 번 또는 한 달에 한 번이라도 스마트폰, 인터넷과 잠시 이별하는 시간을 보내는 것이다. 하루가 어렵다면 몇 시간이라도 효과는 있다. 스마트폰이나 인터넷을 통해 들어오는 과도한 정보가 잠시 끊기면 우리 뇌의 분석 시스템은 잠시 꺼지고 내면의 창조, 충전 시스템이 가동된다. 우리 뇌는 정보가 들어오면 자동으로 분석을 시작한다. 의미 있는 정보인지 그중에 나에게 절실한 생존과 관련된 정보는 있는지 등으로. 그러나 불필요한 정보까지 너무 많이 쏟아지면 장난 전화가 빗발치는 119 콜센터가 돼 정말 중요한 정보에 대처하는 것이 오히려 늦어질 수 있다. 그리고 외부 정보만 응대하다 보니 내면의 창조 시스템이 잘 작동되지 않아 업무에 있어서도 기발함과 참신함이 사라질 수 있다.

쉰다는 것이 어떤 것일까. 아무것도 안 하고 가만히 있는 것이 쉬는 것일까. 아니면 시간을 내어 무언가를 열심히 해주어야 하는 것일까. 현대 사회를 ‘피로사회’라고 하는 것은 너무 일하는 뇌만 돌아가게 만들어 버려 현대인의 뇌가 지치고 지쳐 무기력감에 빠져 버리고 있다는 것이다. 일을 많이 하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쉬는 법을 잊어버리고 있는 것이 더 큰 문제다. 일을 하지 않아도 뇌가 쉬지 못하기 때문이다. 우리 마음은 좋은 사람, 자연, 문화와 만날 때 여유를 느끼며 행복 충전이 일어난다고 한다. 건망증이 찾아왔다면 열심히 산 증거라 일단 자신을 위로해주고 마음을 나눌 수 있는 친구와 문화와 자연을 즐기는 시간을 가져보자. 혼자 즐기는 것도 좋다.

[본 기사는 한경머니 제 169호(2019년 06월)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