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적인 예지만, 사랑을 경제학적인 관점에서 다루는 게 의의가 있는 이유다. 사랑이라는 숭고한 가치를 세속적인 경제적 관념으로 파악하는 것이 어쩌면 어불성설일 수 있겠다. 하지만 우리네 현실은 낭만과 이상으로 가득 차 있지 않고 오히려 이수일과 심순애가 사랑을 나누고 헤어졌던 그 시대보다 더 차갑고 냉소적이다. 오죽하면 연애와 결혼, 출산을 포기한 삼포세대를 넘어 집과 경력, 취미 등 여러 가지를 포기하는 엔(N)포세대라는 신조어가 나왔으니 말이다.
다이아몬드 반지, 수요와 공급
김중배가 건넸던 다이아몬드 반지는 전통적인 의미의 사랑과 결혼을 경제학적인 관점에서 설명할 수 있는 가장 확실하고 중요한 요소다. 본격적으로 다이아몬드 반지가 신부의 손에 끼워졌던 때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에서였다. 당시 다이아몬드의 가격이 하락했으며, 동시에 결혼적령기의 남자들의 수입이 증가하면서 수요가 확연히 늘어났기 때문이다. 1930년대에 주얼리 브랜드 드비어스가 다이아몬드 약혼반지에 대한 광고를 대대적으로 한 것도 기여했다.
사실 당시의 다이아몬드 반지는 일종의 보험이었다. 결혼을 약속한 남자가 여자를 ‘갖고 놀다가’(?) 달아나 버리는 불상사를 막기 위한 것. 실제로 1930년대 미국에서는 결혼 약속을 어겼을 시, 기만당한 약혼자가 약혼을 파기한 당사자에게 소송을 걸어 배상을 요구할 수 있었다고. 당시 여성들에게는 결혼이 생계를 보장하는 가장 중요한 수단이었기 때문에 약혼이 파기된다면 엄청난 경제적 손실을 입었다. 뿐만 아니라 ‘파혼당한 여자’ 혹은 ‘순결을 잃은 여자’라는 낙인이 찍혀 추후 결혼에도 지장이 생길 수 있었다. 하지만 다이아몬드 반지의 보험으로서의 역할은 그리 오래가지 않는다. 1960년대 들어 여성들이 점점 일자리에 뛰어들기 시작하면서 결혼이 유일한 생계유지의 수단이 되지 않았고, 혼전순결에 대한 강박관념이 느슨해져 파혼한 여성도 결혼 시장에서 경쟁력을 지닐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저 다이아몬드가 값비싸고 귀하며 아름답기 때문에 반지는 진심 혹은 정성을 드러내기 위한 상징적인 오브제로만 남게 된 것이다.
여기서 한 가지 알 수 있는 점은, 전통적인 관념에서 결혼 상대를 고를 때 남성은 ‘데리고 살 여자’를, 여성은 ‘자신의 생계를 책임질 수 있는 남자’를 선택한다는 것이다. 결혼정보 회사 듀오에서 커플 매니저로 일하다가 연애코치로 활동하는 이명길 미팅파티 브라더스 대표는 이에 대해 덧붙여 설명한다. “진화심리학점 관점에서 여자는 자신의 파트너를 고를 때 더 신중하고 복잡합니다. 잘못된 상대와 결혼했을 경우, 남자에 비해 여자가 위험성이 더 크기 때문이죠. 여성의 결혼 이전의 삶은 과거에 비해 확연히 달라졌지만 안타깝게도 결혼 이후 삶은 과거와 크게 달라진 게 없습니다. 결혼할 때 남자의 학력과 연봉, 직업 등을 세세하게 따지는 이유죠.” 김중배를 선택한 김순애가 이해되는 대목이다.
결혼정보 회사에서 데이팅 앱까지
남성은 여성의 어떤 점을 볼까. 물론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외모가 차지하는 비중이 여자에 비해 큰 것은 사실이다. 이 대표는 이에 대해 남성이 자신의 파트너를 고를 때 인생을 함께할 동반자가 아닌 ‘데리고 살 사람’이라고 인식하는 데서 비롯됐다고 설명한다. “하지만 지금의 남자는 확연히 많이 달라졌어요. 조금 더 영리해졌다고 할까요. 남자들이 여자의 조건 즉, 직업과 경제력을 많이 보기 시작했습니다. 옛날에는 ‘처갓집과 화장실은 멀수록 좋다’는 우스갯소리가 있었는데요, 요즘에는 ‘처갓집 근처에 살아야 혜택이 많다’는 소리가 나올 정도죠.”
이어 이 대표는 스마트폰이 발달함에 따라 남자도 더 ‘스마트’해졌다고 설명한다. “연애나 결혼을 함에 있어 조금 더 효율성을 따지는 경향을 보입니다. 과거에는 남자가 마음에 드는 여자를 미친 듯이 쫓아다니면서 구애했다면 지금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나 메신저, 데이팅 애플리케이션(이하 데이팅 앱) 등을 많이 사용하고 있어요. 손쉽게 상대방의 의사를 확인할 수 있고, 상대방이 거절할 경우 바로 다음 사람에게로 넘어갈 수 있기 때문이죠. 시간과 자원을 투자해 구애하는 방식이 점점 뒤처지고 있어요.”
실제로 데이팅 앱 시장은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있는 추세다. 지난해 말, 한 업체의 발표에 따르면, 데이팅 앱 시장규모는 2000억 원을 넘어섰다고 한다. 앞으로 더 큰 규모로 성장할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의견. 이는 구글 안드로이드 마켓이나 애플 앱 스토어의 앱 매출 상위 10위권 안에 데이팅 앱이 5개나 차지하는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아무리 현재의 N포세대가 생존을 위해 여러 가지를 포기했다 하지만 연애만큼은 포기하지 않았음을 반증하는 수치죠.” 이 대표의 설명이다. 하지만 데이팅 앱은 성비가 불균형을 이루고 있고, 진입장벽이 낮다. 짝을 찾으려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가입할 수 있기 때문에 신원이 확실하지 않고, 심지어 연인이 있거나 기혼인 사람들도 이용할 수 있기 때문에 사회적 문제가 되기도 한다. 이에 따라 남자의 학력과 연봉, 직업 등을 기재해야 하는 앱이 출시됐지만, 대부분 남성에게만 요구한다는 점에서 사회적 불평등이 지적되며 면대면으로 서류를 제출해 확인하는 것이 아니라 앱을 통해서만 학력이나 회사를 인증하기 때문에 신원 또한 100% 보장되지 않는다.
이런 면에서 전통적으로 커플을 이어주는 결혼정보 회사는 주민등록등본이나 졸업증명서, 재직증명서 등 자신과 관련된 다양한 서류들을 직접 제출하기 때문에 신원만큼은 확실히 보장된다. 따라서 결혼정보 회사에는 오히려 여성의 수가 많고, 여성들이 더 많은 비용을 지불한다고. 이에 대해 이 대표는 다음과 같이 덧붙였다.
“1000억 원에서 1500억 원대를 형성하던 결혼정보 회사 시장규모가 점점 위축되고 있어요. 비용은 많이 들지만, 그에 비해 결혼으로 성사되는 비율은 소비자들의 기대치에 비해 낮은 편이거든요. 이런 고비용·저효율의 문제도 있지만, 결혼을 꼭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의 수도 현격하게 줄어들고 있고, 사랑을 찾는 데도 효율성을 추구하는 젊은 사람들이 많아진다는 점이 주요한 요인 중 하나입니다.”
기업과 기업 간의 만남을 주선하는 미팅파티는 결혼정보 회사와 데이팅 앱의 단점을 극복할 수 있는 대안책으로 떠오르고 있다. 예를 들면, 삼성전자의 남자 직원들과 LVMH 산하 베네피트의 여자 직원들을 연결시켜주는 형식이다. 기업 간 싱글 남녀뿐만 아니라 관공서나 지방자치단체 간의 만남도 이뤄진다. 상대방이 누가 나올지 모르는, 신원이 불확실한 데이팅 앱과 비용이 부담스러운 결혼정보 회사와는 달리 비슷한 수준의 직장을 다니는 사람들이 한데 어울리는 자리이기 때문에 분위기가 좋다고. 국내에도 파티 문화가 점점 정착하는 단계이기 때문에 미팅파티는 더 규모가 커질 것으로 예상된다.
“어쩌면 미팅파티는 저출산 시대의 해결의 단추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결혼을 하기 위해서는 누군가를 만나야 하고 이는 투자가 필요한 일이죠. 미팅파티의 경우, 기업 혹은 공공기관의 미혼인 남녀가 만나는 것이기 때문에 회사의 경비처리로 이뤄집니다. 회사의 입장에서는 미혼인 직원이 연애와 결혼까지 성공한다면 조직에 대한 충성도가 높아져 이직률이 낮아지기 때문에 충분히 투자할 만한 가치가 있는 일이고, 개인의 입장에서는 투자비용이 줄어드니 양쪽 모두에게 이득이 되는 일이죠.” 이 대표의 설명이다.
경제학적으로 설명되지 않는 사랑
다시 이수일과 심순애의 이야기로 넘어가서, 결국에는 이수일이 고리대금업자의 유산을 물려받아 부를 축적하게 되고 과오를 뉘우친 심순애와 우여곡절 끝에 결합하며 끝난다. 그 당시에도 사랑을 할 때 경제력이 크게 작용했던 모양이다. 지금은 두말할 것도 없이, 경제적인 요소가 다른 요소들을 모두 커버할 수 있을 정도로 커졌다. “이성의 경제력과 집안이 연애와 결혼을 결정짓는 요소는 아니지만, 그 영향력이 현저하게 증가하고 있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과거에 비해 자수성가할 수 있는 확률이 줄어들었기 때문에, 요즘은 20대에도 집안을 따져가며 사랑을 찾는다고 해요. 사랑에 대한 판타지가 점점 줄어들고 있는 현실이죠.”
하지만 경제학적으로 수지타산에 맞지 않는 사랑도 존재한다. 남녀 간의 헌신적인 사랑뿐만 아니라 입양과 봉사, 반려동물, 유기동물 보호 등 범인류적, 나아가 인류를 초월한 존재까지 보듬는 사랑이다. 일부 경제학자들은 이 보살핌이라는 동기 역시 돈이 뒷받침돼야 더 강력해진다고 믿는다. 사랑에 대한 낭만이 깨지는 소리처럼 들리지만, 유기 동물을 무분별하게 안락사시키고 후원금을 투명하지 못하게 사용했다고 의심받는 동물보호단체 ‘케어’의 박소연 대표에 대한 기사를 보면 수긍할 수밖에 없는 말이다.
하지만 여전히, 우리는 대가 없는 사랑의 존재를 믿는다. 이를 대표적으로 보여주는 것이 영국의 사회정책학자인 리처드 티트머스가 영국과 미국의 혈액 공급을 놓고 수행한 비교연구 결과다. 자발적으로 기증자들이 헌혈했던 영국과 유료 기증자까지 합세한 미국의 혈액의 질을 비교했는데, 미국이 영국보다 더 높은 비용에 질 낮은 혈액을 공급받은 것으로 드러났다. 헌혈이라는 보살핌의 가치가 상업적으로 시장이 형성되자 자발적인 의지를 감소시켰다는 결론이다. 즉, 돈과 경제의 원리로 설명할 수 없는 사랑은 분명히 존재한다고 볼 수 있다.
이러한 사랑이 차갑고 냉소적인 현실을 버틸 수 있게 하는 힘이다. 사랑에 돈이 꼭 필요한가라는 질문에 대해 이 대표의 대답을 들어보면 절로 고개를 끄덕이게 될 것이다. “돈만 보고 결혼하는 것만큼 어리석은 것도 없고, 사랑만 보고 결혼하는 것만큼 미련한 것도 없어요. 물론 사랑해야 결혼을 하지만, 돈이 없으면 가정에 불화가 생기고 가족에 대한 사랑에도 문제가 생기게 되죠. 하지만 결국 살면서 힘들고 아프고, 지친 것을 극복하도록 만드는 것이 바로 사랑입니다.”
도움말 이명길 미팅파티 브라더스 대표 | 참고 서적 <사랑의 경제학>(하노 벡 지음)·<사랑과 돈의 경제학>(줄리 넬슨 지음)
[본 기사는 한경머니 제 165호(2019년 02월)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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