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 머니=정채희 기자 | 사진 김기남 기자] 컴퓨터 수리 가게 아저씨가 35만 구독자를 이끄는 브이로거로 변신했다. 전혀 특별하지도, 모자라지도 않은 평범한 일상을 보여주는 그의 콘텐츠는 신선한 메시지를 던진다. 지금 이 글을 읽는 당신도 ‘브이로거’가 될 수 있다는 명료한 사실을 말이다.
브이로거 '허수아비', IMF 세대 아저씨의 평범한 일상에 열광
서울 마포구 상암DMC에 위치한 컴퓨터 수리 전문 업체 ‘허수아비 컴퓨터’. 33.0㎡가 채 안 되는 소형 점포에 쉴 새 없이 손님들이 밀려든다. 손님들은 대기명단에 이름을 올리고, 번호가 불리길 기다린다. 손님이 지나치게 많다는 점을 제외하면 동네마다 있는 여타 컴퓨터 수리 전문점과 별반 다를 바가 없다.

하지만 이 가게에는 뭔가 특별한 것이 있다. 허수아비 컴퓨터의 사장, 서영환(47) 씨다. 그에겐 ‘서 사장’보다 더 익숙한 호칭이 있으니 바로 브이로거 ‘허수아비’다.

서 씨는 유튜브에 컴퓨터를 수리하고 조립하는 영상을 올린다. 특별할 것 없는 그의 일상에 독자들은 열광한다. 유튜브라는 플랫폼을 이용해 수리 과정을 정직하게 보여주고 누구나 쉽게 컴퓨터 수리를 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는 이유에서다.

유튜브를 개설한 지 2년 6개월 차. 컴퓨터 수리점에서 일어난 일상을 기록해 올린 영상은 이제 35만 구독자들이 즐겨 찾는 ‘핫 클립’이 됐다. 가게 한쪽 벽면에는 10만 구독자를 달성한 후 유튜브로부터 받은 ‘실버버튼’이 걸려 있다. 2019년 1월 기준 그의 구독자 수는 35만185명이다. 일상의 영상화로 제2의 인생을 사는 브이로거 서영환 씨를 만났다.

-유튜브는 어떻게 시작하게 됐나요.

“시작은 귀찮아서였어요. ‘SSD(반도체를 이용해 정보를 저장하는 장치)가 뭐냐’, ‘무한 프린터가 무엇이냐’, ‘왜 속도가 더 빠르냐’, ‘파란 화면이 왜 뜨냐’ 등 매장에서 일하느라 바쁜데 손님들의 질문에 일일이 응대하려니 너무 힘들고 또 같은 질문이 반복되니 귀찮은 거예요. 그래서 스마트폰으로 손님들이 자주 묻는 질문들을 영상으로 찍어 가게에 틀어 놓았어요. 손님들이 물어보면 영상을 보라고 말씀드렸죠. 그랬더니 웬걸, 반응이 좋은 거예요. 집에서도 볼 수 있도록 링크를 달라고 해서 유튜브를 시작하게 됐죠.”

-일상을 공유한다는 점이 특별하게 느껴집니다.

“처음부터 일상을 올리려고 한 것은 아니에요. 제 영상의 대부분이 가게 안에서 이루어지다 보니 꾸며진 모습이 아닌 원래의 모습대로 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영상을 보는 100명 중 1명은 매장에서 본 모습을 알고 있을 테니까요. 일상에서 만나기 어려운 다른 유튜버들과 달리 저는 가게로만 찾아오면 언제든 만날 수 있으니까 영상과 현실의 괴리감이 있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어요. 의외로 진정성 있게 봐주는 분들이 많아서 감사드려요.”

-30만 구독자를 유치할 만큼 인기몰이를 할 줄 알았나요.

“이렇게까지 될 거라고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어요. 처음에는 한 달에 30만 원만 벌어도 노년에 부수입이 되겠다는 생각에서 시작했거든요. 저희 아내도, 우리 애도 모두 그래요. ‘컴퓨터 고치는 걸 왜 볼까? 나는 이해를 못 하겠어’라고요. (웃음)”

-40대 유튜버라는 점이 이색적인데요.

“1971년생, 90학번이에요. 100만 출생아의 마지막 세대로 엄청난 경쟁을 하며 살아왔고, 군대를 정상적으로 다녀왔다면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를 직격타로 맞은 세대이기도 합니다. 저는 방위를 다녀온 덕분에 운 좋게도 1~2년 일찍 사회에 나와 취업에 성공했지만, 학창시절 저보다 공부도 잘하고 유능했던 친구들은 적절한 직장을 구하지 못해 쉰을 바라보는 지금까지 그 여파가 이어지고 있어요. 회사를 다니는 동기들도 서서히 퇴직 압박을 받으면서 대기업 프랜차이즈 개점을 고민하고 있고요. 굉장히 불쌍한 세대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이런 그들에게도 기회가 생겼어요. 1인 크리에이터는 각자도생해 살아남아야 하는 일반인들의 약점을 어느 정도 극복할 수 있게 해주는 도구라고 생각하거든요. 제 또래들과 대화를 해보면 보수적인 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유튜브를 경계하는 분들이 많아요. 유튜브는 모두에게 열린 공짜 플랫폼인데도 불구하고요.

이 플랫폼을 통해 일곱 살이든, 쉰이든, 여든 넘은 할아버지든 남녀노소 모두가 얼마든지 자기가 하고 있는 사업이나 장사, 콘텐츠와 브랜드를 홍보할 수 있는 기회를 얻을 수 있어요. 경제적 보상도 따르고요. 방법을 모르고, 방향을 찾지 못하고 있는 이 시대의 아버지들에게 방향을 제시하고 싶어요.”

-허수아비님처럼 전문성이 뒷받침해야 하는 것 아닌가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요. 전문적인 것을 보고 싶다면 유튜브가 아닌 다른 플랫폼을 봐야지요. TV만 틀어도 얼마나 많은 전문가들이 나오나요. 사람들이 유튜브를 통해 보고 싶은 것은 전문가나 연예인들의 화려한 모습이 아니라고 생각해요. 일상의 사람들이 부족한 것을 메꾸며 발전하는 것을 보고 싶어 하는 것이지요. 짧은 영상을 보더라도 대단한 영상보다 실수하는 모습들이 흥미를 돋우는 것처럼.

저 역시 마찬가지예요. 컴퓨터 수리를 잘해서가 아니에요. 실력이 뛰어난 컴퓨터 유튜버를 보고 싶었다면 제 영상을 찾지 않았을 거예요. 블로그나 유튜브만 봐도 저보다 컴퓨터 지식을 더 많이 알고 기술이 좋은 사람들이 많습니다. 하다못해 제 영상에 댓글을 다는 분들만 봐도 저보다 훨씬 실력이 뛰어난 분들이 많고요.

전문적인 기술이 없다고 고민하는 분들이 많은데 평생 부인이 해주는 요리만 먹고 살았던 중년의 아저씨가 요리에 도전하는 것도 콘텐츠가 될 수 있어요. 못하는 것을 연습하고, 숙련돼 가는 과정을 좋아하는 거니까요. 또 퇴직을 앞두고 있다면 새로운 먹거리를 위해 준비하는 과정도 하나의 콘텐츠가 될 거예요. 경제적 부수입도 생기니 은퇴 후 새로운 삶의 동기가 될 수도 있고요. ‘난 할 줄 몰라’라고 너무 어렵게 생각해서 도전하지 못하는 게 아쉬운 거죠.”

-브이로거의 삶, 행복한가요.


“저는 정말 한눈팔지 않고 열심히 살았다고 자부해요. 그런데 사람이 열심히 사는 것과 성공하는 것, 그리고 잘 사는 것은 다르더라고요. 고민을 했죠. 내가 이렇게 열심히 살았는데 나중에 사그라지고 없어지면 누가 나를 기억해줄까. 그때 유튜브가 생각났어요. 유튜브에 남긴 영상들이 내가 생을 다했을 때에도 남아 흔적이 되겠구나. 개인의 역사가 될 수도 있겠구나. 그런 생각을 하면 굉장히 행복해요.”
브이로거 '허수아비', IMF 세대 아저씨의 평범한 일상에 열광

-힘든 점은 없었나요.


“지금 제 눈이 어떻게 보이나요. 2017년 말 오른쪽 눈에 구안와사(안면 근육을 움직이는 안면신경 기능에 장애가 발생하는 증상)가 왔어요. 유튜브를 하면서 신체적, 정신적으로 스트레스를 받아 생긴 병이에요. 단순히 영상을 찍어 올린다고 쉽게 생각하기에는 물리적으로 힘든 부분들이 있어요.

특히 편집 작업이 그렇죠. 유튜버 모임에 나가보면 젊은 친구들이 대화를 하다가 막 펑펑 울기도 해요. 영상을 찍는 것도, 악성댓글이 달리는 것도 다 괜찮은데 편집이 너무 힘들다는 거예요. 보통 10분짜리 영상을 하나 올리려면 편집만으로 3~6시간 이상을 써야 하거든요.”

-그럼에도 그만둘 수 없는, 원동력 같은 게 있나요.

“일차적인 이유는 단연 경제적인 만족도죠. 크게 보면 세 가지 측면에서 수입이 발생하는데, 첫째는 플랫폼 자체 광고비예요. 또 찾아오는 손님이 전보다 3배 이상 늘면서 가게 영업에도 도움을 주고 있어요. 마지막으로 컴퓨터부품 업체들의 협찬도 있고요.

정확한 수입을 공개하기는 어렵지만 지난해 대전에서 서울로 거주지를 옮겼어요. 대출을 많이 끼기는 했지만.(웃음) 유튜브를 하지 않았더라면 언감생심 꿈도 꾸지 못했을 일이에요.

목표도 생겼어요. 거창한 이야기일 수 있지만, 유튜브를 통해 개인도 기업과 대등한 힘을 가질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어요. 저만 해도 거래처(대기업 등)와의 관계에서 갑(甲)의 입장에서 어느 정도의 요청을 할 수 있게 됐거든요. ‘동네 컴퓨터 가게 아저씨도 했는데, 나라고 못할 게 뭐 있어.’ 그런 본보기가 될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아예 생업을 그만두고 브이로거에 매달리는 이들도 많아지고 있는데요.

“절대로 반대해요. 직업을 버리고 유튜브에 도전하는 길은 너무 위험해요. 제가 어떤 콘텐츠를 올린다고 생각하나요. 컴퓨터 수리 작업을 올린다고 생각하지만, 따지고 보면 그냥 제 일이에요. 일상이지요. 일상을 올리려면 소재가 필요한 데 그게 바로 직업입니다. 소재를 버리고 유튜브에 매진했을 때 어떤 콘텐츠를 만들어낼 수 있을까요.

<삼국지>에서는 ‘배수의 진’을 치면 성공 확률이 높다고 하지만 2000년 전 이야기예요. 지금 배수의 진을 치고 실패했다간 다시 일어서는 게 너무 힘듭니다. 전 지금 30만 구독자를 보유하고 있지만 직업을 갖고 있어요. 40만, 100만 구독자를 얻게 돼도 본업을 갖고 있어야 합니다.”

-브이로거를 망설이는 이들이게 해주고 싶은 이야기가 있나요.

“제가 유튜브를 더 본격적으로 하게 된 계기가 있어요. 어느 날 TV를 보다가 어떤 유튜버가 나와 인터뷰를 하는데, 수입을 묻자 월 3000만 원을 번다고 대답했어요. 질문을 한 기자도 깜짝 놀랐죠. 그때 그 유튜버가 ‘대도서관’이에요. 제가 만약 돈을 벌 마음의 준비가 안 돼 있었다면 ‘무슨 방구석에 앉아서 3000만 원을 번다고, 이슈화하고 싶어서 거짓말 하네’라고 생각했을 거예요.

그런데 그때 다행스럽게도 받아들일 준비가 돼 있었어요. ‘어라, 내가 모르는 세상이 있네.’ 더 깊게 공부를 시작한 거죠. 지금도 이런 얘길 하면 제 친구들도 잘 받아들이지 못해요.

‘유튜브, 그게 뭔데? 나가서 돈을 벌어야지’, ‘얼마나 가겠어? 곧 없어질 거야’ 마음의 문을 열어야 돈에 가까이 다가갈 수 있는 길도 열려요. 이 귀한 기회의 문을 열어보지도 않고 버리는 사람들이 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본 기사는 한경머니 제 165호(2019년 02월) 기사입니다.]

[본 기사는 한경머니 제 165호(2019년 02월)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