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 머니=정채희 기자] ‘브이로그(V-log, 영상블로그)’의 인기가 심상치 않다. 연예인의 관찰 예능이 유튜브란 쉬운 플랫폼을 통해 일반 대중에게까지 확산된 것이다. 브이로거는 기존 유명 유튜버처럼 화려한 변신이 필요 없다. 그저 자신의 일상을 담아내며 경제적 수익까지 올린다. 자발적 ‘트루먼’들의 세상, 브이로그로 당신을 초대한다.
일상이 돈이 된다고? 브이로거 세상
1998년 전 세계를 흥분으로 몰아넣은 영화 한 편이 등장한다. 자신의 모든 삶이 24시간 생중계된다는 사실을 오직 자신만 모르고 있었던 트루먼의 일대기를 담은 영화 <트루먼 쇼>다. 이 영화는 폭력적인 매스미디어의 본질에 질문하는 동시에 리얼리티 쇼의 범람에 물음표를 던지며 당시 시대상을 비판한다.

20년 후, 트루먼이 다시 돌아왔다. 전과 달라진 게 있다면 자발적이고 주체적이라는 점이다. 트루먼의 후손들은 스스로 카메라를 들었다. 감독도 연출도 주연도 모두 자기 자신이다.

6시간 공부 영상에 80만 열광


이들은 자신의 24시간을 영상으로 기록하며 모두가 나를 봐주기를 희망한다. 직장에서 만난 동료 A처럼, 마을 어귀에서 만난 동네 사람 B처럼 특별할 것 없는 평범한 삶을 산다. 영상이 돌아가는 내내 공부만 하는 모습을 찍거나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 직장인의 일과를 담기도 한다.

이들의 이름은 ‘브이로거’. ‘비디오’와 ‘블로거’의 합성어로, 자신의 일상을 블로그가 아닌 영상으로 촬영해 영상 플랫폼에 올리는 사람들이란 뜻이다.

“이제 일어나서 씻고 준비를 하겠습니다. (AM 09:00 출근) 타닥타닥(타자 치는 소리). 뭐야, 형식 바뀌었네, 왜 이래? (중략) 점심시간이어서 이제 식사를 하러 갑니다. 제가 어제 몸무게를 재보니까 2kg이 쪘더라고요. 이따 퇴근하고 또다시 카메라를 켤게요.”

브이로거 ‘슬기’가 유튜브에 올린 ‘직장인의 리얼! 24시간 일상 브이로그, 아침부터 저녁까지’란 제목의 영상 내용이다. 슬기의 일상은 흔한 직장인의 모습과 다를 바가 없다. 아침 일찍 일어나 출근을 하고, 사무실에 앉아 모니터를 응시한다. 영상 속에는 타닥타닥 타자 치는 소리만 들리지만 이 영상의 조회 수는 70만 건(이하 2019년 1월 17일 기준)을 넘는다.

더 극적인 브이로거도 있다. ‘노잼봇’이란 닉네임을 가진 브이로거는 ‘같이 공부해요’라는 제목의 영상들을 올리는데 영상의 길이만 평균 2시간, 최장 6시간이다. 영상에 등장하는 이는 노잼봇 한 명. 배경은 그의 책상으로 스탠드만 켜진 채 밑줄을 그으며 공부하는 모습이 6시간 내내 상영된다. 공부를 해야 하니 카메라를 응시하지도 않는다. 들리는 소리도 없다. 줄긋는 소리, 종이 넘기는 소리가 이 영상에서 발생되는 소음의 전부다. 이 ‘지겨운’ 영상의 조회 수는 80만 건에 달한다.
일상이 돈이 된다고? 브이로거 세상
브이로거들은 크게 보면 플랫폼에 영상을 올리는 소위 ‘유튜버(유튜브에 영상을 올리는 창작자)’다. 하지만 ‘먹방(먹는 방송)’이나 ‘뷰티’, ‘IT’, ‘게임’ 등의 특정 주제를 다루는 전문 창작자(크리에이터)들과 달리 평범한 일상을 영상에 담아낸다.

콘텐츠는 특별한 재능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일상이 곧 콘텐츠 소재가 되다 보니 주제도, 소재도 천차만별이다.

육아를 하는 전업주부의 일상을 올리는 육아 브이로그, 공부를 하는 학생이나 공무원시험 준비생들의 공부 브이로그, 직장에서의 일과를 올리는 직장인 브이로그 등이 대표적이다. 이전에는 단순 사무직의 모습을 영상으로 올리는 이들이 많았다면 최근에는 자신의 직업을 구체적으로 밝힌 이들도 등장하고 있다.

컴퓨터 수리기사 허수아비(구독자 35만 명), 치과의사 다욜(구독자 비공개), 바리스타 ASMR E_YOU(구독자 8만 명), 변호사 킴변(구독자 7만 명) 등이다.

경제적 보상에 너도나도 브이로거

대중이 브이로그에 열광하는 이유는 ‘공감’과 ‘대리만족’에 있다. 화려한 연예인의 삶이 아닌 자신과 비슷하게 사는 타인의 모습을 통해 현실에 대한 위로를 얻고 있다는 것이다. 실제 공부 브이로그를 보는 이들의 대부분은 그들의 영상을 틀어 놓고 함께 공부를 하는 방식으로 영상을 활용한다. 브이로거들이 가장 많이 활동하는 플랫폼인 유튜브의 분석도 이와 동일하다.

김민지 유튜브 파트너십 매니저는 “최근 유튜브에서는 ‘공감’이란 요소가 특히 더 중요해지면서 전통적인 게임, 뷰티, 먹방 및 장난감 콘텐츠 이외에 유튜브를 통해 자신의 소소한 일상이나 감정을 나누는 크리에이터가 많아졌다”며 “브이로그나 대화형 콘텐츠들이 인기를 끌고 있다”고 말했다.

브이로그의 인기는 단순 시청에서 끝나지 않는다. 누구나 브이로그를 올릴 수 있기 때문에 너도나도 브이로거에 도전하기를 희망한다. 가장 큰 이유는 ‘경제적 보상’이다. 인터넷에 브이로그를 검색해보면 ‘브이로그로 돈 벌기’에 관한 이야기들이 쏟아져 나올 만큼 브이로그에 대한 관심은 곧 ‘수입(돈)’으로 연결된다.

브이로그의 주된 수입원은 단연 광고다. 유튜브 같은 플랫폼에 본인이 제작한 영상을 올리면 해당 콘텐츠의 클릭 수에 따라 광고가 저절로 붙는 구조다.

유튜브의 건당 광고 수익은 조회 수와 방문자의 광고 시청 횟수, 체류 시간 등에 따라 달라진다. 일정 수준 이상의 구독자를 확보하면 경제적 수입을 보장받을 수 있기 때문에 일반인들의 겸업 대상으로 각광받고 있다. 구독자가 많을수록 영상 스트리밍 광고 수익에 기업의 협찬 광고 수익까지 따라붙기 때문에 경제적 보상은 더욱 커진다.

브이로그의 열풍은 한동안 지속될 전망이다. 통계청이 발표한 2018년 고용 동향을 보면 지난해 ‘시간 관련 추가 취업 가능자’는 62만9000명으로 1년 전보다 10.3% 늘었다. 시간 관련 추가 취업 가능자란 근로시간이 주당 36시간 미만이면서 추가 취업을 원하는 ‘투잡(two job) 희망자’를 말한다.

일자리가 아닌 ‘일거리’가 중요한 100세 시대, 본업과 동시에 겸업이 가능한 브이로그의 길로 자본과 사람이 몰리고 있다.

[본 기사는 한경머니 제 165호(2019년 02월) 기사입니다.]
[본 기사는 한경머니 제 165호(2019년 02월)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