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자신은 훌륭한 경영자라는 것을 아직 입증하지 못했으나 아버지는 훌륭한 경영자임이 증명돼 기쁩니다.”
최태원 SK그룹 회장이 지난 8월 선친인 고(故) 최종현 회장 20주기 추모 행사에서 언급했던 대목이다. 하지만 올해 한경 머니가 실시한 ‘2018 오너리스크 설문조사’(10월 29일~11월
5일)에는 SK를 바라보는 전문가들의 긍정적 시각이 온전히 반영됐다. 지난해까지 3~5위를 오르내렸던 ‘오너메리트’ 순위도 올해는 삼성에 이어 2위(4.21, 100점 환산 84.3)까지 올라섰다.
이는 SK가 경쟁사들보다 정치·사회적 논란에서 빨리 벗어난 것도 영향을 미쳤지만, 2015년 경영 복귀 이후 최 회장이 직접 일군 성과가 밑바탕이 됐다는 평가가 나온다. 특히 최 회장이 진두지휘해 온 반도체 부문의 성과는 ‘최태원의 매직(magic)’이라는 세평이 나올 정도다.
이런 이유로 SK는 ‘경영 전문성과 자질 평가’ 항목에서 삼성에 비견될 정도로 높은 점수를 받았다. 특히 대기업 오너의 리더십이 전적으로 반영되는 비전 제시(4.68) 항목은 삼성(4.56)을 제치고 최고점을 기록했다. 그동안 최 회장은 ‘사회적 가치 창출’이라는 SK의 중장기 비전을 제시하고 공유 인프라 확대 등 실천 방안 마련에도 적극 나서 왔다. 그 외에 위기관리 능력(4.43)과 수익창출 능력(4.47) 항목에서도 삼성의 뒤를 바짝 추격했다.
지배구조의 투명성과 책임성 평가에서도 하위 항목 모두 고른 점수를 나타냈는데 내부거래의 투명성과 공정성(3.86) 부문만 전 항목 통틀어 4점대를 밑돌았다. 이는 주요 대기업 가운데 SK의 그룹 내부거래 비중이 30%에 육박할 정도로 가장 높다는 점이 감안된 것으로 풀이된다. 윤리경영 평가의 경우 하위 항목인 준법경영(4.08), 주주와 채권자 보호(4.01), CSR(4.22) 모두 최상위 수준을 나타냈다. 재계 3위로 ‘껑충’…수출 기업으로 탈바꿈
최근 몇 년간 삼성(이재용), 현대자동차(정의선), LG(구광모) 등 오너 3·4세들이 경영 전면에 등장하면서 새로운 리더십에 대한 관심도 덩달아 높아지고 있다. 이들 모두 4050세대 특유의 유연한 사고와 원활한 소통 능력으로 차세대 리더십에 적합하다는 평가도 나오지만, 선친의 후광이 아닌 자신만의 경영 성과를 도출해야 하는 숙제를 안고 있다.
반면 최 회장은 38세의 젊은 나이에 취임해 무려 20년간 SK그룹을 이끌어 왔다. 물론 이 과정에서 횡령·배임, 부적절한 개인사 등 부적절한 이슈에 휘말리기도 했지만 경영 성과 측면에서는 ‘젊은 리더’의 롤모델로 자리매김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실제 SK그룹은 최 회장 취임 이후 자산은 6배, 매출액은 5배 가까이 커졌고 자산 기준 재계 순위도 5위에서 3위로 뛰어올랐다. 특히 그룹의 캐시카우로 등극한 SK하이닉스 덕에 내수 기업이라는 꼬리표까지 떼며 수출 기업으로서의 면모도 과시하고 있다.
‘사회적 가치 창출’ 담론 주도
하지만 최 회장은 “변화하지 않는 기업은 도태된다”며 더 큰 변화와 혁신을 강조하며 ‘딥 체인지(Deep Change)’를 경영철학의 중심축으로 제시해 왔다. 이와 함께 또 다른 축으로 ‘더블 보텀 라인(Double Bottom Line)’을 제시하며 ‘사회적 가치 창출’이라는 사회적 담론도 주도하고 있다.
그는 지난 6월 진행된 확대경영회의에서 “우리 사회가 단기간에 이뤄낸 고도성장 속에서 의도치 않았던 양극화가 발생했고 점점 심각해지고 있다”며 “SK는 대기업으로서 무거운 책임감을 느끼며 사회문제 해결에 나설 것이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사회적 기업의 가치 창출에 비례해 인센티브를 제공하는 ‘사회성과인센티브(SPC)’를 도입하고, 지난해 말 130억 원 규모의 사회적 기업 전용 펀드를 조성한 것도 같은 맥락에서다. 또 그룹 내부적으로 전국 3600여 개 SK주유소를 온·오프라인(O2O) 서비스 플랫폼으로 활용해 ‘물류 허브’를 구축한다는 계획이며, SK하이닉스는 공유 인프라 포털을 만들어 반도체 산업의 생태계 육성을 적극 지원한다는 방침이다. [본 기사는 한경머니 제 163호(2018년 12월)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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