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 머니 기고 = 김상훈 법무법인 바른 변호사·법학박사]유언자가 유언장을 작성해 소지하고 있었다는 점은 입증됐지만 유언장 자체는 발견되지 않은 경우에도 과연 유언자가 유언을 철회한 것으로 추정될까.
사라진 유언장, 유언 철회 여부는
유언자는 기존 유언장에 대해 철회를 위한 의도적인 행위(문서의 훼손 또는 폐기 등)를 함으로써 유언을 철회할 수 있다. 이에 관해 미국의 ‘통일상속법(UPC)’은 “유언자가 유언을 철회할 의도와 목적을 가지고 유언장을 불태우거나 찢거나 취소하거나 지우거나 폐기한 경우 그 유언장 또는 그 일부는 철회된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처럼 유언자의 의식적 현존상태(conscious presence)하에서 유언자의 지시에 따라 다른 사람이 이러한 행위를 한 경우에도 동일한 효과를 인정하고 있다.

유언자가 생존해 있는 동안 자신이 유언장을 소지하고 있었고 그가 사망한 후 그 유언장이 훼손된 상태로 발견된 경우, 유언자가 철회 의사를 가지고 그 유언장을 훼손했을 것이라고 추정된다.
예컨대 박하우스의 유산사건(In re Estate of Bakhaus)에서는 유언자가 유언장을 배타적으로 소지하고 있었는데 그 유언장에서 유언자의 서명이 삭제됐다. 이러한 경우에는 유언자가 유언을 철회할 의사로 그와 같은 행위를 한 것으로 추정된다(1951년 일리노이주 대법원).

그리고 앨라배마대 의사회 대 칼훈 사건(Board of Trustees of University of Alabama v. Calhoun)에서는 유언자가 유언장을 소지하고 있었는데 유언자의 서명이 기재된 페이지가 사라졌다. 이 경우에도 유언을 철회할 의도로 유언자에 의해 폐기된 것으로 추정된다(1987년 앨라배마주 대법원).

유언자의 유언 철회 추정은
그렇다면 유언자가 유언장을 작성해 소지하고 있었다는 점은 입증됐지만 유언장 자체는 발견되지 않은 경우에도 유언자가 유언을 철회한 것으로 추정될까. 많은 법원들이 이러한 경우에도 유언자가 철회할 의사로 유언장을 제거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그러한 대표적인 판례가 해리슨 대 버드 사건(Harrison v. Bird)이다.

이 사건에서 데이지 스피어(Daisy Speer)는 1989년에 유언장을 작성하면서 캐서린 해리슨(Katherine Harrison)을 주요 수익자로 지정했다. 유언장 원본은 스피어의 변호사가 가지고 있었고, 해리슨이 그 사본을 가지고 있었다. 스피어는 1991년에 전화로 자신의 변호사에게 유언을 철회하고 싶다고 말했다.

그러자 스피어의 변호사는 그 유언장 원본을 네 조각으로 찢은 후 유언이 철회됐다는 내용의 편지와 함께 조각난 유언장 원본을 그녀에게 보냈다. 스피어가 사망한 후 그녀의 개인 물품들 속에서 변호사로부터 받은 편지가 발견됐다. 그러나 조각난 유언장 원본은 발견되지 않았다.

유언검인법원은 스피어가 유언 없이 사망했다고 보아 무유언상속법에 따라 상속재산을 분배하기 위해 스피어의 사촌인 매 버드(Mae Bird)에게 상속재산관리장(letters of administration)을 발부해줬다. 그러자 해리슨은 유언장 사본에 대한 유언검인을 요구하면서 이 문서가 스피어의 유언장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스피어의 유언장 원본은 스피어의 변호사가 스피어도 없는 상태에서 찢은 것이기 때문에 적법하게 철회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법원은 다음과 같이 판결했다.

“스피어의 유언장은 스피어가 없는 상태에서 그녀의 변호사에 의해 찢어졌기 때문에 그것이 비록 그녀의 지시와 의사에 따라 이루어진 것이라 하더라도 유언이 적법하게 철회되지 않았다는 주장은 옳다(1975년 앨라배마법). 그러나 그 찢어진 유언장 조각이 스피어의 집으로 배달됐고 그녀가 사망한 후 그 조각이 발견되지 않았다는 점에 비추어볼 때, 스피어가 나중에 그 유언장 조각을 스스로 폐기함으로써 자신의 유언을 철회한 것으로 추정된다.

스피어가 자신의 수중에 있지도 않은 유언장 사본을 폐기하지 않았다는 사실이 이러한 추정을 복멸시키는 증거가 될 수는 없다. 해리슨이 검인을 요구하며 제출한 유언장 사본은 검인의 대상이 되는 유언장이라고 볼 수 없다. 따라서 스피어의 상속재산은 무유언상속법에 따라 분배돼야 한다(1993년 앨라배마주 대법원).”
사라진 유언장, 유언 철회 여부는
이와 같이 법원이 유언자의 행위에 의한 철회를 추정해줌으로써 스피어의 변호사는 스피어의 상속인들로부터 위법행위(malpractice)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할 위기에서 가까스로 빠져 나왔다.

물론 이러한 추정도 반증에 의해 복멸될 수 있으나, 그 입증 책임은 유언검인 신청인에게 있다. 예컨대 메이의 유산 사건(Estate of May)에서는 한 장의 자필 유언장이 노트에서 찢겨져 나갔고 왼쪽 여백에 있는 글자가 지워졌다. 이러한 경우 유언의 철회가 추정되지만 유언자가 사망하기 사흘 전에 자신이 유언장을 가지고 있다고 진술한 경우 그 추정은 복멸된다(1974년 사우스다코타주 대법원).

[본 기사는 한경머니 제 159호(2018년 08월)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