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디터 노트]나를 탈출하라
8월호의 빈 페이지를 채워 나갔던 7월 중하순경은 연일 낮 기온 영상 35도 전후의 찜통더위가 기승을 부렸습니다. 실내 에어컨과 야외의 무더운 바람을 번갈아 쐬어서 그런지 몸은 축축 늘어지기 일쑤였고요.

이럴 때는 어디론가 훌쩍 떠나고 싶다거나 평상시 용기를 내지 못한 일들을 해보는 일탈의 충동을 느끼곤 합니다. 여기서 말하는 일탈은 적어도 탈선과는 다를 테지요. 건강한 긴장감을 유지한 채 무료함을 훌훌 벗어 버리고 지극히 규범적인 자신으로부터의 탈출일 겁니다.

최근에는 일탈이 상품이 되기도 합니다. 바로 제한 시간 안에 그릇이나 소형 가전제품 등을 방망이나 골프채로 깨부수는 스트레스 해소방 ‘레이지룸’입니다. 사실 레이지룸은 캐나다 토론토에서 생겨나 한국으로 왔다고 하는데, 이에 앞서 이와 유사하게 그릇 깨기나 가전제품 부수기를 할 수 있었던 분노방이 외환위기 직후 대학가를 중심으로 생겨난 적이 있었다고 하네요.

자우림의 1집 앨범에 ‘일탈’이라는 노래가 있습니다. 가사를 보면 ‘매일 똑같이 굴러가는 하루/ 지루해 난 하품이나 해/ 뭐 화끈한 일 뭐 신나는 일 없을까/ 할 일이 쌓였을 때 훌쩍 여행을/ 아파트 옥상에서 번지점프를/ 신도림역 안에서 스트립쇼를...’이라고 외치고 있죠. 자우림의 노래 가사가 아니더라도 나를 탈출하는 쾌감, 가끔씩 꿈을 꿔본 적 없으신가요.

그렇다면 왜 사람들은 일탈을 꿈꿀까요. 상당수 사람들은 시간과 돈으로 행복을 만들어 갈 수 있을 것이라고 믿고 있죠. 앞만 보고 열심히만 달려가면 그 목표 지점에 도달할 것이라고 말이죠. 하지만 곰곰이 생각해보면 시간과 돈은 유한하지만, 그에 반해 행복은 결코 가득 채워질 수 없는 무한한 욕망입니다. 그 때문이었을까요. 중년 남성들은 풍족해질수록 더욱 빈곤해지는 듯한 요상한 마음의 병을 앓기도 합니다.

일탈은 어쩌면 그동안 풍족했다고 착각해 온 자신의 결핍을 채우는 시간인지도 모릅니다. 마치 재무제표의 공란을 채워 가듯 숨 가쁘게 달려왔지만 자신이 어디에 있는지 알 수 없는 순간 멀찍이 떨어져 자신의 결핍을 확인할 수 있는 그런 시간 말이죠.

열대야로 잠 못 드는 밤, 더 늦기 전에 ‘한여름 밤의 꿈’ 같을지 모를 일탈을 꿈꿔보는 것은 어떨까요. 농구 황제 마이클 조던이 최전성기에 갑작스럽게 은퇴를 선언한 뒤 생뚱맞게 마이너리그에서 야구선수 생활을 하며 ‘에어 조던’이 아닌 ‘에러 조던’으로 불렸던 파격은 아니더라도 말이죠. 단, 일탈에 대한 손익을 계산기로 두들겨보지만 않으면 됩니다. 그런 계산을 하는 순간부터 일탈은 또 다른 구속이 될 수 있습니다.

한번쯤은 무모해도 좋지 않을까요. 한번쯤은 쳇바퀴를 돌고 있는 자신을 탈출해 도대체 인생의 어디쯤을 가고 있는지 멀찍이서 확인해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테니까요.

[본 기사는 한경머니 제 159호(2018년 08월)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