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피가로의 흥겨움도, 돈 후안의 감언이설도, 피델리오의 간절함도, 그리고 카르멘의 도발도 세비야는 편안하게 품고 있다. 오페라의 매력을 입에 물고 오래된 거리를 걸으며 흥얼거리는 아리아의 멜로디 하나쯤, 세비야에서는 괜찮다. 바삭하고 달콤한 추로스(churros) 가게를 찾아 진한 초콜릿에 푹 담가 먹어봐도 좋겠다. 그렇게 세비야에 흠뻑 빠져 있을 때쯤 남국의 정열이 내 미소에 가득한 것을 깨달으면 된다.
오페라의 도시 세비야를 걷다
[세비야에서 가장 높은 곳인 히랄다탑에서 바라본 세비야의 전경.]
오페라의 도시 세비야를 걷다
[세비야 대성당은 12세기 후반까지 이슬람의 모스크가 있던 자리에 세워졌다. 1402년부터 120년에 걸쳐 건축됐다.]

[한경 머니 기고=이석원 여행전문기자] 거리 여기저기 탐스럽게 매달린 오렌지들. 짙은 오렌지 향기가 깨어날 무렵 길을 나선다. 느지막이 일상을 시작하는 에스파냐 사람들이 아직 채 거리에 나서지 않는 시간, 하지만 마음 급한 여행자들은 이미 오렌지 가로수가 줄줄이 서 있는 세비야 대성당 앞길인 콘스티투시온 거리를 채운다. 성급히 여행자들의 주머니에 관심을 보이는 관광용 마차의 마부도 빈속에 담배 연기를 밀어 넣고 있다.

에스파냐에서도 가장 에스파냐다운 도시라는 세비야(Sevilla). 에스파냐 남부 안달루시아 지방의 주도인 세비야는 남국의 태양, 플라멩코, 투우로 대변되는 에스파냐 정열의 상징이다. 고대 로마에서 시작된 도시의 역사는 이슬람의 지배기를 거쳐 기독교가 다시 도시를 지배한 후엔 신대륙 발견의 전초 기지 역할을 했다.

세비야의 랜드마크라고 할 수 있는 세비야 대성당(Catedral de Sevilla). 바티칸의 산 피에트로 대성당과 런던의 세인트 폴 대성당에 이어 세계에서 셋째로 크다는데, 실제 보니 그 크기가 가늠이 안 된다. 이슬람 지배 시절 모스크 자리에 다시 세운 대성당은 콜럼버스가 발견한 아메리카 대륙에서 가져온 금과 은으로 치장해 화려함의 극치를 이룬다. 무려 20톤의 금을 입힌 세계 최대의 황금 제단은 압도적이다. 그리고 그 황금 제단이 가능하게 했던 콜럼버스의 묘. 이사벨라 여왕 사후 자신을 외면한 에스파냐에 실망한 나머지 ‘다시는 에스파냐 땅을 밟지 않겠다’는 유언 때문이었을까? 그의 관은 에스파냐의 왕 네 명에 의해 공중에 들려 있다. 그 모양새가 대성당의 위용만큼이나 압도적이다.
오페라의 도시 세비야를 걷다
[세비야 대성당 안 황금 제단 맞은편에 있는 성가대석. 약 120명의 성가대원이 앉을 수 있다. 또한 미사를 준비하는 사제들의 공간이기도 하다.]

◆ 오페라 <피가로의 결혼>의 무대
그런데 세비야는 오페라의 도시이기도 하다. 세상에서 가장 유명한 오페라 다섯 편이 세비야를 배경으로 삼고 있다. 모차르트의 <피가로의 결혼>, <돈 조반니>를 비롯해 베토벤 유일의 오페라인 <피델리오>와 로시니의 <세비야의 이발사>, 비제의 <카르멘>이 세비야를 무대로 하는 오페라들이다.

그래서일까? 세비야의 거리를 걷다 보면 여기저기서 오페라의 주인공들이 모습을 드러내는 듯한 착각에 빠진다. 오늘밤은 또 어떤 여인을 유혹해 하룻밤의 즐거움으로 삼을까? 대성당의 정문 ‘승천의 문’ 옆을 지나면서 돈 후안(이탈리아어로는 돈 조반니)은 가만히 성호를 긋는다. 마치 오늘도 저지를 자신의 추악한 죄를 미리 용서받기라도 하려는 듯.

대성당의 오른쪽을 돌아 알카사르(Alcazar) 옆 골목을 거쳐 산타크루스(Barrio de Santa Cruz) 거리에 접어든 돈 후안은 한 술집에서 고급 드레스를 입고 외로움에 지친 표정의 여성을 바라본다. 그리고 그 여성이 돈 후안을 따라 산타크루스 골목 안 로스 베네라블레스 광장 5번지로 들어가는 데는 채 15분도 걸리지 않는다.
오페라의 도시 세비야를 걷다
[지금은 세비야 대성당의 종탑 역할을 하는 히랄다탑. 예전에는 이슬람 모스크의 탑이었다. 유럽 대부분의 종탑들과는 달리 계단이 아닌 평평한 경사면으로 돼 있다. 이슬람의 술탄들이 말을 타고 탑 꼭대기에 오르기 위해 넓고 평평한 경사면으로 만든 것이다.
바르톨로메 무리요의 그림 <성모수태>가 전시된 대성당의 회의실. 순백이 주를 이루는 돔 천장 중간 부분에 걸려 있는 그림은 역사상 성모 마리아의 그림 중 가장 아름답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세비야 대성당에는 미사가 이뤄지는 제대가 있다. 성경 이야기가 세심하게 조각돼 있다.]

예전에는 유대인들의 거주지였고, 17세기에는 세비야 귀족들이 모여 살던 산타크루스 거리. 골목의 이름들도 상서롭다. ‘Vida(목숨)’, ‘Agua(물)’, ‘Muerta(죽음)’, ‘Pimienta(후추)’…. 이 골목들을 어슬렁거리다 보면 로스 베네라블레스 광장 5번지, 지금은 라우렐이라는 이름의 호텔(Hostería Del Laurel)인 돈 후안의 집이 나타난다.

필자가 아는 바로는, 모차르트는 세비야에 온 적이 없다. 그래서 그는 세비야의 찬란한 태양도, 대성당의 엄청난 위용도, 또 희대의 바람둥이 망나니 돈 후안의 집이 있는 산타크루스 거리를 본 적도 없을 것이다. 하지만 그의 오페라 <돈 조반니> (Don Giovanni: 1787년 10월 29일 체코 프라하 국립극장 초연)는 바로 이 산타크루스 거리를 배경으로 만들어졌다.

세비야가 가장 에스파냐다운 도시라면, 산타크루스 거리는 가장 세비야다운 동네다. 좁디좁은 골목이 미로처럼 이어져 때로는 자그마한 광장이 나올 때도 있고, 또 싱그러운 분수가 길을 막기도 한다. 자동차와 트램이 공간을 공유하는 대성당 앞길을 걷다 보면 어디선가 오페라 <세비야의 이발사> 중 피가로의 아리아 ‘나는 거리의 만물박사(Largo al factotum)’의 흥겨우면서도 우렁찬 바리톤이 들린다.

‘비켜라, 이 몸은 거리의 만능 일꾼/ 서둘러 가게로/ 벌써 날이 밝았으니/ 면도칼에 빗, 수술용 칼에 가위는/ 언제나 쓸 수 있게/ 모두 여기 있다’ 19세기 낭만파 희가극의 최고봉이라고 할 수 있는 로시니의 대표적인 오페라 <세비야의 이발사(Il Barbiere di Siviglia)>가 이탈리아 로마의 아르젠티나 극장에서 초연하던 1812년 2월 20일, 세비야는 이미 유럽에서 가장 유명한 도시였다. 로시니 전에 이미 모차르트가 세비야를 유럽에서 가장 관심이 가는 도시로 만들었기 때문이다.
오페라의 도시 세비야를 걷다
[오페라 <카르멘>의 무대였던 담배공장 자리. 지금은 세비야대 법학대학 건물이다.]
오페라의 도시 세비야를 걷다
[반원형인 에스파냐 광장은 세비야 시민들이 휴식 장소로 가장 좋아하는 곳이다. 반원을 그리며 타일로 만들어진 벽에는 에스파냐의 주요 도시들이 그려져 있다. 연인들의 데이트 장소로 유명하다.]

추측컨대, 로시니는 세비야에 와봤을 것이다. 이탈리아와 거리도 멀지 않으니 세비야 정열의 태양을 좇아 지극히 낭만적인 로시니가 한 번쯤 와봤을 것이라고 상상해본다. 로시니는 대성당과 알카사르를 따라 흥겨운 태양을 즐겼을지도 모르고, 유람선을 타고 과달키비르(Guadalquivir)강을 유유자적했을 수도 있다. 대성당의 종탑인 히랄다(La Giralda)탑 꼭대기에서 도시를 멀리 내다보며 오페라를 구상했을지도 모른다. 순전히 상상이지만.

그런데 <세비야의 이발사>는 모차르트의 <피가로의 결혼>(Le Nozze di Figaro: 1786년 5월 1일 오스트리아 빈 부르크 극장 초연)보다 스토리는 앞서지만, 작곡은 한참 뒤다. 말하자면 <세비야의 이발사>는 <피가로의 결혼>의 프리퀄이다. 로시니는 <피가로의 결혼>을 보고 모차르트에 대한 경외심으로 <세비야의 이발사>를 작곡했다고도 한다.

◆ <카르멘>의 열정, 그리고 바로크 미술의 유혹
대성당과 트리운포 광장을 공유하는 알카사르는 숀 코너리와 캔디스 버겐이 주연한 영화 <바람과 라이온>(1975년)의 무대였던 이슬람의 성채다. 기독교와 이슬람의 문화가 공존하는 세비야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건축물이다. 이슬람의 모스크를 다 부수고 대성당을 지었던 기독교의 국왕들이 히랄다탑과 오렌지 정원 말고 남겨 놓은 또 하나의 예술품이다.

14세기 페트로 1세가 이곳을 너무 사랑한 나머지 여러 곳에 손을 대 이슬람의 전통 위에 기독교의 정신을 얹어서 지금의 아름다운 궁전으로 승화시켰다고 하니 ‘명불허전’이다. 조금 경솔한 여행자는 “세비야 알카사르를 봤으면 굳이 그라나다의 알함브라는 볼 필요가 없다”고 할 정도다.

알카사르의 수려한 담벼락을 따라 남쪽으로 조금 더 걷다 보면, 세비야에서 가장 넓고 시원한 도로가 나온다. 그리고 거기서 건너다보이는 세비야대. 그중 1750년에 지어져 세비야대 법학대학 건물로 쓰이는 건물 정원에서 뜨거운 정열의 집시 카르멘이 뇌쇄적인 아름다움을 한껏 뿜어내며 손바닥에는 캐스터네츠를 쥐고 플라멩코를 춘다.
오페라의 도시 세비야를 걷다
[알카사르는 이슬람 성채를 개축한 것이지만, 결국에는 기독교 왕의 궁전이다. 대사의 방을 비롯해 소녀의 정원, 인형의 정원 등이 유명하다.]

‘사랑은 제멋대로인 한 마리 새, 누구도 길들일 수 없어/ 스스로 다가오지 않는 한 불러봐도 소용없지/ 협박도 애원도 소용없는 일’
세상에서 가장 뜨거운 피를 가진 여인 카르멘이 ‘하바네라(Habanera)’를 부르며 꽃을 던져주면 돈 호세는 단박에 영혼을 뺏기고 만다. 그래, 예전에는 여기가 세비야의 담배공장이었다. 그리고 비제는 이 담배공장 노동자인 카르멘을 만들어냈다.

카르멘과 바스크 출신 군인 돈 호세, 그리고 최고 인기 투우사인 에스카미요. 아주 오래전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에서 연주된 오페라 <카르멘>(Carmen: 1875년 3월 3일 프랑스 파리 오페라 코미크 극장 초연)을 보면서 덩달아 일탈의 뜨거운 피가 솟구쳤던 경험은 오히려 현장을 보면서 차갑게 식는다. 그 파격의 공간이 차가운 이성으로 무장한 법학대학 건물이 됐다니.

카르멘의 정열을 뒤로 하고 조금 더 과달키비르강을 따라 남쪽으로 내려오면 에스파냐 광장(Plaza de Espana)이다. 광장을 반원으로 두르고 있는 개울물에서는 작은 나무배들을 띄우고 젊은이들이 한가로이 온몸으로 태양을 받는다. 1929년 열린 에스파냐·아메리카 만국박람회를 위해 건축가 아니발 곤살레스가 지었다.
오페라의 도시 세비야를 걷다
[세비야에서도 가장 매력적인 동네인 산타크루스 거리의 골목들은 무척 좁다. 두 사람이 교행하기에도 어려운 곳도 있다. 중세시대부터 있었던 이 골목들이 세비야를 가장 아름답게 만드는 요소이기도 하다.
세비야는 지난 2014년 tvN에서 방영된 <꽃보다 할배-스페인 편>을 통해 더 유명해졌다. 당시 그들이 세비야에서 묵었던 숙소는 지금도 한국의 여행자들에게 가장 인기 있는 숙소이기도 하다.]

하지만 그런 것은 그리 중요하지 않다. 이 공간에서는 카르멘보다 더 사랑스러운, 하지만 이제는 한 사람의 사랑으로도 충분한 여인 김태희가 오버랩 된다. 세비야보다 더 먼저 한국인들에게 유명해진, 김태희가 카르멘에 빙의된 듯 뇌쇄적인 드레스를 입고 플라멩코를 추던 그 장면이 화인처럼 찍혀 있는 곳이다.

세비야 감옥을 배경으로 한 베토벤의 오페라 <피델리오>(Fidelio: 1805년 11월 20일 오스트리아 빈 안 데어 빈 초연)까지 세비야 여행은 그야말로 오페라 여행이다. 하지만 세비야는 에스파냐 바로크 미술 여행이기도 하다.

세비야는 17세기 에스파냐 바로크 미술의 세계를 연 디에고 벨라스케스(Diego Rodríguez de Silva y Velázquez, 1599 ~1660년)의 고향이다. 그리고 바르톨로메 무리요(Bartolomé Esteban Murillo, 1617~1682년)를 품고 있다. 세비야 대성당에 있는 무리요의 <성모수태>는 성모 마리아의 그림 중 가장 아름답다는 찬사를 받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