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 머니 = 김수정 기자]철학자 장 폴 사르트르는 “인생은 B(birth, 삶)와 D(death, 죽음) 사이의 C(choice, 선택)다”라고 했다. 그의 말처럼 우리의 삶은 늘 불확실의 연속이며, 어떤 선택을 하느냐에 따라 삶의 방향은 달라지곤 한다. 신탁이 세상에 뿌리내린 계기도 아마 이러한 ‘불확실성’ 때문일지 모른다. 참고 문헌 <블랙스완>(나심 니콜라스 탈레브 지음)
[big story]미래 불확실성, ‘신탁’으로 푼다
서구인이 호주 대륙을 발견하기 전까지 구세계 사람들에게 백조(swan)는 흰 새였다. 그러던 어느 날 수천 년간 다져진 이 통념이 한순간에 무너진 사건이 발생했다. 이제껏 보지 못했던 ‘검은 백조(black swan)’가 호주에 나타난 것. 인간의 지식이 얼마나 허약한지를 극명하게 보여주는 사례다.

인간의 예측 능력을 비웃는 ‘검은 백조’는 우리 삶 곳곳에서 출현한다. 히틀러의 등장과 그에 이은 또 한 차례의 세계대전을 누가 예상할 수 있었는가. 사회주의권의 급속한 붕괴나 9·11 테러도 예상치 못했던 건 마찬가지다. 세계를 엄습했던 미국발 금융위기야말로 ‘검은 백조’의 전형이었다.

아마도 지금 우리 사회를 관통하는 수많은 ‘검은 백조’ 징후 중 하나는 단연 ‘고령화사회’일 것이다. 우리는 고령화사회를 늘 남 일처럼 여겨 왔다. 하지만 고령화사회는 대한민국에서 더 이상 미래가 아닌 현재가 됐다.

우리나라는 이미 지난해 65세 이상의 노인들이 전체 인구의 14.2%를 차지하며 고령사회에 접어들었다. 2000년 고령화사회가 된 이후 불과 17년 만이다. 이 같은 추세라면 머지않아 초고령사회로 접어드는 것도 시간문제일 것으로 보인다. 그럼에도 여전히 우리는 미루는 것에 익숙하다. 고령화 시대니까, 더 오래 사니까 되레 더 아무렇지 않게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대비를 미뤄버린다.

그러나 이미 위기의 징후는 시작됐다. ‘100세 시대’라는 청사진과 달리 정년퇴임의 시기는 점점 빨라지고, 마냥 남의 일 같던 치매 사례도 그 수가 가파르게 증가하고 있다. 중앙치매센터가 발간한 ‘2017 연차보고서’에 따르면 우리나라 치매 환자 수는 약 70만 명으로 만 65세 이상 노인 10명 중 1명에 달하는 숫자다.

매년 그 수가 급속도로 증가해 2024년에는 100만 명, 2041년에는 200만 명에 육박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여기에 인구절벽과 저금리 기조까지 더해지는 상황에서 노후 관리는 미뤄도 될 과제가 아닌 지금 당장 준비해야 할 의무가 돼 버렸다.

그렇다면 과연 어떻게 이 불확실성을 이겨 나가야 할까. 이 난제의 해결책 중 하나로 한경 머니는 ‘신탁’에 주목했다. 계약 조건에 따라 다양한 옵션으로 생전은 물론 사후까지 본인의 재산을 관리해주고, 가족에 대한 케어까지 가능한 신탁의 확장성을 높이 평가한 것이다.

신탁의 출발, 그리고 발전
서양에서는 ‘신탁(trust, 信託)’이라는 말의 어원은 13세기경 영국에서 교회를 위해 탄생한 유스(use) 제도에서 파생됐다고 보고 있다. 당시 영국에서 사람이 죽으면, 그의 토지는 교회에 기증하는 관행이 있었는데, 영주들이 이를 막기 위해 토지의 기증을 금지하는 법률을 제정했다.

토지 소유자들이 그 대항수단으로 생각해낸 것이, 제3자인 수탁자에게 토지를 양도하고 그로부터 발생하는 수익을 교회(수익자)에 지급토록 하는 것이었다. 이 구조를 ‘유스’라 불렀는데, 이것이 일반화되고 시대적 변천에 따라 근대적인 신탁 제도로 발전됐고, 위탁자와 수탁자 간에 신임관계에 기초를 둔 데에서 현재는 신탁이라 부르고 있다.

신탁업이 탄생한 곳은 영국이지만 본격적으로 번영한 곳은 미국이다. 다양한 나라의 이민자들로 구성된 미국은 개인 간 신뢰가 약했고, 수탁자 또는 유언집행자로서 법인인 신탁 회사를 선호했기 때문에 사업화된 영리 신탁이 부흥했다. 다시 말해 사회 구성원 간 신뢰의 가교로 신탁이 제 역할을 하게 된 셈이다.

우리나라는 근대적 신탁의 효시를 약 100여 년 전으로 보고 있다. 하나금융경영연구소는 ‘신탁업 활성화 방안’이라는 보고서를 통해 국내 신탁업의 효시를 1910년 영업을 개시한 일본계 등본합자회사로 봤다. 이후 신탁전업사와 신탁겸영사가 80개가 넘게 난립했고, 1931년에는 조선신탁업령이 제정되기도 했다.

지금까지 국내 신탁 관련 법령은 2번의 큰 변화를 겪었다. 첫 번째는 1960년대 경제개발계획 추진 과정에서 장기 저축성 자금의 동원 수단으로 신탁업을 육성할 필요성이 제기돼 1961년 ‘신탁법’과 ‘신탁업법’이 제정된 것이다. 고객이 현금을 금융사(수탁자)에 맡기는 금전신탁을 중심으로 발달한 일본식 신탁 제도를 본떠 만들었기 때문에 이후 국내 금융시장에서도 금전신탁을 중심으로 거래가 이뤄졌다.

초기에는 신탁 업무를 전담하는 한국신탁은행을 설립해 다른 시중은행들로 하여금 신탁업을 취급할 수 없게 했지만, 1984년 ‘은행법’상 모든 은행이 신탁업을 겸영할 수 있게 됐다. 이후 2005년 9개 증권사가 처음으로 겸영 인가를 받았고 이어 2007년 보험사도 신탁 시장에 진입했다.

초창기 은행은 특정금전신탁 외에 불특정금전신탁도 판매했지만, 2004년 펀드와 비슷한 형태로 운용됨에도 투자자 보호 장치가 부족하다는 이유로 불특정금전신탁이 폐지됐다. 이후 2008년 금융위기를 겪으며 신탁 자산 규모가 반 토막이 날 만큼 사업이 위축됐다.

2009년 ‘자본시장과 금융투자업에 관한 법률(이하 자본시장법)’이 시행되면서 신탁업자에 대한 규율을 담은 ‘신탁업법’이 없어지고 통합 ‘자본시장법’에 흡수됐다. 이후 2012년에는 ‘신탁법’이 50여 년 만에 전면 개정돼 유언대용신탁과 수익자연속신탁 개념이 도입됐다. 유언대용신탁은 위탁자가 생전에 사망 시를 대비해 사후 수익자를 신탁계약으로 정해서 상속할 수 있도록 한 것이고, 수익자연속신탁은 위탁자가 사망한 이후에 자신이 원하는 대로 수익자를 순차적으로 지정할 수 있는 신탁이다.
[big story]미래 불확실성, ‘신탁’으로 푼다
‘팔색조 신탁’ 제대로 활용되려면
신탁 시장의 외연도 넓어지고 있다. 국내 신탁 시장의 규모는 지난 2013년 154조 원에서 지난 2016년 710조 원으로 불과 4년여 만에 5배 가까운 성장을 보였다. 특히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공모펀드 손실 위험이 커지고, 국내에 저금리 기조가 가시화되면서 신탁이 종합적인 재산관리 도구(tool)로써 인식되고 있다.

최근에는 고령화 시대와 맞물려 신탁은 투자 기능뿐만 아니라 재산관리의 고유 기능을 활용해 생존신탁(가족을 수익자로 지정해 생존 시 파산, 질병 등의 위험으로부터 가족의 생활비 등을 보호)이나 유언신탁(사망 시를 대비해 상속재산 처분 계획을 미리 설정), 사회안전망 역할을 담당할 후견신탁이나 복지신탁 등 다양한 변주를 시도 중이다.

하지만 신탁업을 둘러싼 은행과 증권사 간 영업권 갈등, ‘신탁업법’ 제정에 대한 금융위원회와 정부의 지지부진한 태도로 인해 국내에서는 아직 신탁이 제 기능을 오롯이 활용하지 못하고 있다는 비판이 끊임없이 지적되고 있다.

금융권 한 관계자는 “국내 신탁 시장의 경우, 신탁업을 100% 활용하기엔 여전히 규제도 심하고, 업권 간 문턱이 너무 높다”며 “배타적인 경쟁보다는 상호보완적인 신탁 시장 생태계가 만들어져야 한다. 그래야 소비자들에게 더 다양하고, 양질의 신탁 상품을 양산할 수 있을 것이다”라고 지적했다.

배인구 법무법인 로고스 변호사도 “신탁은 결코 부자들만의 이야기가 아니다”라며 “우리나라도 외국처럼 신탁을 통해 종합자산관리는 물론, 공익적 목적을 위한 일종의 ‘집합신탁’ 제도에 대해서도 논의하는 사회적 분위기와 법률 제정이 필요해 보인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