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인스타그램에 ‘수면(#sleep)’이라는 해시태그를 검색해보면 관련 사진이 2160만 장에 육박하고, ‘졸린(#sleepy)’이라는 해시태그는 1979만 장, ‘피곤한(#tired)’이라는 해시태그는 2877만 장이 넘는다. 구글에서는 수면(sleep)을 검색하면 무려 8억9000만 개가 넘는 결과가 나오고, 수면 어려움(sleep difficulty)과 수면장애(sleep disorder)는 각각 3690만 개, 2540만 개 이상의 결과물이 쏟아진다.
사람들에게 잠을 잔다는 것은 단순히 우리의 잠재의식 속에 묻혀 있지 않다. 수면은 우리 머릿속에, 일상 속에 매 순간 작용하고 있는 셈이다. 이 같은 현상의 실체는 각종 통계에서도 고스란히 드러난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조사에 따르면 한국인의 하루 평균 수면시간은 6시간 48분으로 OECD 국가 중 최하위(평균 8시간 22분)인 것으로 나타났다.
국민건강보험공단이 최근 5년간(2012~2016년) 건강보험 적용 대상자 중 ‘불면증(F510, G470)’ 질환으로 요양기관을 이용한 진료 현황을 분석한 결과, 밤에도 제대로 잠들지 못하는 불면증 환자가 5년간 40만3417명에서 54만1958명으로 34.3% 증가했다. 환자가 급격히 증가하면서 한국인 100명 중 1명은 불면증을 앓고 있다.
성별로는 남성이 2012년 15만2603명에서 2016년 20만9530명으로 37.3%, 여성은 2012년 25만814명에서 2016년 33만2428명으로 32.5% 늘어났다. 무엇보다 2016년 기준 연령대별 진료 현황을 보면 중장년층 환자 비율이 높은 것으로 집계됐다. 불면증 전체 진료 인원 10명 중 약 6명꼴인 59.2%(32만869명)는 50~70대로, 50대 11만4777명(21.2%), 60대 10만7585명(19.9%), 70대 9만8507명(18.2%) 순으로 진료 인원이 많았다.
이정석 국민건강보험 일산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불면증은 젊은 사람보다 노인에게서 더 많이 발생하는데, 인구 고령화로 노인 인구가 급증하면서 불면증 진료 인원도 늘어난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수면장애, 원인도 치료도 천차만별
또 다른 요인으로는 나이가 들수록 노화 과정의 일환으로 수면량이 적어지는 데다가 우울증, 불안증과 같은 정신적 문제도 늘어나기 십상이다. 여기에 잦은 스마트폰 사용은 물론, 카페인과 알코올 과다 섭취도 수면을 방해하는 이유로 꼽히고 있다.
실제로 수면장애를 일으키는 원인은 이보다 더 다양하고(공식적으로 88가지 서로 다른 장애가 있다) 증상별로 해결책도 판이하다. 수면장애의 종류에는 잠에 들지 못하는 ‘불면증’, 다리에 불편하고 불쾌한 느낌이 동반되는 ‘하지불안증후군’, 심한 졸음과 함께 무기력증, 가위눌림, 탈력발작 등의 증상이 동반되는 ‘기면증’, 수면 중 호흡이 중단되는 ‘수면무호흡증’ 등이 있다.
단순히 잠을 자지 못하는 것뿐만 아니라 피로감을 느끼고, 잠이 많이 오거나 수면의 질이 좋지 못한 경우에도 수면장애에 포함된다고 할 수 있다. 이처럼 수면장애의 종류도 다양한 만큼 그 원인을 제대로 진단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아 말한다.
윤호경 고대안산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수면장애의 종류는 매우 다양하고 그 치료도 까다로운 경우가 많다”며 “수면무호흡증이나 기면증, 하지불안증후군, 렘수면행동장애 등과 같은 질환의 경우, 치료가 어렵지만 원인이 비교적 명확하고, 효과적인 치료법들이 나와 있어 정확한 검사와 진단만 내려진다면 잘 치료할 수 있지만, 되레 사람들이 가장 많이 알고 있는 불면증은 치료에 잘 반응하지 않고, 까다로운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만성 수면장애, 전문의 진단 필수
30년 가까이 수면장애를 앓고 있는 사업가 김 모(61) 씨는 지난해부터 잠자리 들기가 더 힘들어졌다고 했다. 근 1년 동안 개운하게 자고 일어난 적이 거의 없을뿐더러 올 초부터는 집 근처 내과에서 처방받은 수면제나 저녁에 술을 복용하지 않으면 아예 잠을 못 이룬다고 토로했다.
그렇다고 전문적인 수면센터를 찾기는 뭔가 석연치 않았다.
비용 문제는 차치하더라도 수면센터에 가도 이렇다 할 해결책을 얻지 못할 거란 선입견이 더 컸다. 하지만 수면장애 증세가 점점 심해지자 자식들의 권유로 A대학교 소속 수면센터에서 진료를 받기 시작했다. 전문의와의 심층적인 대화를 비롯해 수면다원검사도 받았다. 수면다원검사는 병원에서 하루 수면을 취하면서 환자 뇌파, 근전도, 심전도, 호흡운동, 산소포화도 등 생체신호를 종합적으로 평가하는 검사를 지칭한다.
무호흡이 없는 단순 코골이인지, 수면무호흡과 저호흡이 있는지, 있다면 그 정도가 심한지, 수면호흡장애 중증도에 따라 발생하는 합병증 위험도를 예측하고 수술적 치료에 대한 건강보험 혜택을 받을 수 있는지 판단할 수 있는 검사다. 또 수면무호흡의 원인이 중추성인지 폐쇄성인지 또는 복합형인지 감별할 수 있다.
검사 결과 김 씨의 수면장애의 가장 큰 원인은 과도한 알코올 섭취와 간헐적인 무호흡증으로 나타났다. 이후 김 씨는 전문의의 처방대로 지난 두 달간 커피는 일절 끊고, 최대한 낮잠과 술을 줄이기 시작했다. 아직 밤에 잠을 이루기 위해서는 처방받은 수면제의 도움이 필요하고, 드라마틱한 치료 효과를 본 것은 아니지만 다행히 점점 상태가 호전되고 있다고 한다. 실제로 김 씨처럼 불면증을 앓고 있으면서도 병원 방문을 꺼려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고 한다.
윤호경 교수는 불면증은 단기간의 치료보다 환자 본인의 적극적인 협조가 중요하다고 설명했다.
“아직도 많은 분들이 불면증을 치료받아야 할 병이라고 인식하지 못하거나 불면증 치료가 힘들 것이란 선입견에 병원 치료를 망설입니다. 대개 불면증을 가진 분들이 잘못된 수면 관련 습관을 가지고 계시거나 술을 수면제 삼아 마시는 분도 많아 점점 불면증이 심각한 단계에 이르는 겁니다. 전문의의 진단과 치료가 필요한 이유죠. 다만, 간혹 병원에 오시는 분들 중에 ‘병원에 가서 가만히 앉아 상담만 받으면 금방 뚝딱 고쳐주겠지’ 하는 막연한 바람을 가지고 오시는 분도 있는데, 노력 없이 손쉽게 단기간에 고쳐줄 거란 기대보다는 의료진과 환자 본인이 함께 시간과 노력을 투자한다면 분명히 개선 효과를 얻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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