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날 초콜릿이 밸런타인데이 선물로 자리 잡게 된 계기는 일본 메이지사가 ‘재고 처리’를 위해 마케팅을 한 것이 시작이었다고 한다. 그러나 밸런타인데이와 초콜릿의 연결이 마냥 뜬금없지만은 않은 이유는, 초콜릿과 사랑의 감정이 과학적으로 어느 정도 상관관계가 있기 때문이다.
초콜릿에 들어 있는 각종 화학물질 중 페닐에틸아민이라는 성분은 중추신경을 자극하는 효과가 있으며 도파민을 분비시킨다. 도파민이 분비되면 맥박이 빨라지므로 마치 사랑에 빠진 듯한 느낌을 갖게 된다. 페닐에틸아민은 실제로 사람이 성적으로 흥분할 때 뇌에서 분비되는 물질이기도 하다. 또 오피오이드와 아나다마이드라는 물질은 기분을 좋게 하며 고통을 줄여주는 역할을 하고, ‘행복의 호르몬’이라고 불리는 엔도르핀과 세로토닌의 분비를 촉진시키는 것도 초콜릿의 다양한 효과 중 하나다.
카카오의 원산지인 아즈텍인들도 초콜릿에 정력을 증진시키고 사랑을 샘솟게 하는 물질이 들어 있다고 믿었다. 그 때문에 이들은 후추열매와 바닐라, 고추 등으로 향을 낸 초콜릿을 ‘신의 음식’으로 떠받들며 화폐 대용으로까지 삼았다. 그리고 수많은 문학이나 예술작품에서 초콜릿은 ‘사랑의 묘약’으로 자주 등장하고 있다. 세계사에서 초콜릿과 관련된 유명 인사로는 어떤 사람들이 있을까?
카사노바, ‘작업용’으로 초콜릿을 이용하다
바람둥이의 대명사로 불리는 카사노바는 여인들을 꾀어낼 때 초콜릿을 먹였다는 일화가 있다. 의학과 수학, 화학 등에 정통했다고 알려진 그는 여성의 성감을 돋우고 유혹하는 이른바 ‘사랑의 묘약’에 대한 지식도 상당했다고 한다. 카사노바가 정력을 높이기 위해 굴을 많이 먹었다는 것은 익히 알려진 이야기이지만 사랑을 나누기 전, 여성들에게 그 당시 유럽에서 귀한 음료였던 초콜릿을 대접했다는 일화는 상대적으로 아는 이들이 적다. 달콤하고도 쌉싸래한 초콜릿을 마신 카사노바의 여인들은 페닐에틸아민의 작용에 의한 붕 뜨는 기분에 몸을 맡겼을 것이다. 지금도 이탈리아 베네치아에는 카사노바가 생전에 즐겨 찾았다는 초콜릿 카페가 있다.
에르난 코르테스, 세계 최초로 초콜릿을 유럽에 전하다
수차례의 항해로 생을 보낸 스페인의 탐험가 에르난 코르테스는 1540년, 카카오 열매를 가지고 고국으로 돌아왔다. 아메리카에 발을 디딘 최초의 유럽인인 콜럼버스도 외면했다던 열매의 가치를 처음으로 알아본 사람은 바로 그였다고 전해진다. 그도 그럴 것이 당시의 초콜릿은 시커먼 빛깔에 기름이 둥둥 떠 있는 음료 형태였던 데다 맛도 쓰디썼기 때문이다. 초콜릿의 어원인 ‘쇼콜라틀(xocolatl)’
역시 ‘쓰다’를 뜻하는 아메리카 원주민 나우아틀족의 언어에서 나왔다. 이탈리아의 탐험가 지롤라모 벤조니는 신대륙에서 발견한 초콜릿을 두고 ‘돼지들이 먹는 음료’에 비유하기까지 했다. 그러나 이 낯선 음료를 마시고 피로가 싹 가시는 효과를 경험한 탐험가들은 이를 유럽에 전한다. 후일 유럽인들은 이 쓴 열매에 설탕과 우유를 섞어 입맛에 맞게 가공하기 시작했다. 괴테, ‘롯데’의 어원이 되다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으로 유명한 괴테 역시 알아주는 초콜릿 마니아였다. 초콜릿이 비쌌던 시절, 유복한 집안에서 자라난 괴테는 다양한 음식을 즐기는 미식가였는데, 특히 초콜릿을 사랑했다고 전해진다. <파우스트>와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등 수많은 작품에서 자신의 실제 연인을 모델로 등장시킨 그는 여성에게 사랑을 고백할 때 꽃과 함께 초콜릿을 보냈다고 한다. 어린 시절 문학 소년이었다던 신격호 롯데그룹 회장이 기업 이름을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의 여주인공, ‘샬롯테’에서 땄다는 것은 이미 알려진 사실. 따지고 보면 롯데 초콜릿의 어원도 괴테에게서 비롯된 셈이다. 괴테는 여행 중 아내에게 자신이 좋아하던 라이프치히의 리크베트 초콜릿을 보내 달라고 편지를 쓰기도 했으며, 심지어 초콜릿 향이 진한 독일산 흑맥주 쾨스트리처의 별명은 ‘괴테의 맥주’다.
사드 후작, 달콤한 성애(性愛)를 꿈꾸다
‘사디즘’의 어원이 된 사드 후작은 초콜릿을 좋아하는 것을 넘어 중독에 가까울 정도였다고 한다. 필화 사건으로 수십 년간 감옥살이를 해야 했던 그는 연인들에게 수시로 편지를 보내 코코아 가루와 초콜릿 크림, 초콜릿이 들어간 캔디와 비스킷, 케이크 등을 요구했다. 사드 후작은 여기에 그치지 않고 성애의 대가답게 초콜릿과 관련된 엄청난 스캔들을 일으켰다. 때는 1772년 6월, 프랑스 마르세유에서 무도회를 열었던 사드 후작은 곤충의 독으로 만든 최음제인 칸타리스를 알약 모양의 초콜릿에 섞어 손님들에게 먹였다. 파티에 초대된 사람들은 영문도 모른 채 욕정에 불타올라 무도회는 음탕한 향연으로 바뀌었고, 사드는 감옥에 가게 된다. 마리 앙투아네트, 초콜릿으로 약의 쓴맛을 달래다
루이 15세의 연인이었던 퐁파두르·뒤바리 부인도 귀한 향료인 용연향을 초콜릿에 넣어 마셨다고 한다. 철없는 14세 소녀로 낯선 베르사유에 발을 들여놓은 마리 앙투아네트 역시 초콜릿을 ‘약’처럼 먹었다고 한다. 쓰고 강한 약을 먹기에는 아직 어렸던 그녀는 달콤한 핫 초콜릿과 약을 함께 먹고 싶어 했다. 그러나 뜨거운 차와 약을 함께 먹으면 좋지 않다는 인식이 그 당시에도 있었고, 왕실 약제사 쉴피스 드보브는 가루약을 고체 형태의 초콜릿 안에 넣는 방법을 고안했다. 이렇게 탄생한 것이 바로 왕비의 초콜릿으로 불리는 ‘피스톨’이다. 얇은 원형의 피스톨은 드보브가 1800년 파리에 문을 연 가게, ‘드보브 에 갈레’에서 지금도 맛볼 수 있다.
프란츠 요제프 1세, 비운의 황제 초콜릿 케이크를 사랑하다
독일의 뮤지컬 <엘리자벳>으로 잘 알려진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왕비 시씨와 비운의 황제로 불리는 프란츠 요제프 1세는 자허토르테를 즐겨 먹었다고 한다. 초콜릿 스펀지케이크에 살구잼을 바른 후 진한 초콜릿으로 코팅한 자허토르테는 1832년 프란츠 자허라는 인물이 오스트리아 외교관이었던 메테르니히 공이 빈 회의에 대접할 디저트를 주문하려던 때에 앓아누운 담당 요리사를 대신해 만들었다. 뜻밖에도 이 케이크가 극찬을 받으며 유명해졌다.
오드리 헵번, 초콜릿으로 목숨을 구하다
이슬만 먹고 살았을 것 같은 할리우드 배우 오드리 헵번도 뜻밖에 초콜릿 마니아였다고 전해진다. 빼빼 마른 몸매 때문에 그녀는 한때 거식증에 걸렸다는 루머에 시달리기도 했지만, 의외로 보통 여자들처럼 파스타나 달콤한 간식을 좋아했다고 한다. 평생 꾸준한 운동과 다이어트로 몸매를 관리했던 헵번의 마음을 약하게 했던 몇 안 되는 음식이 바로 초콜릿이다. 헵번의 아들 루카 도티는 “어머니는 초콜릿이라면 죽고 못 사는 분이라 항상 거실 서랍장에 초콜릿을 보관해 두었다”고 회고했다. 헵번의 초콜릿 사랑에는 슬픈 사연이 숨어 있는데 제2차 세계대전 당시 기근으로 굶어 죽기 직전이었다가 한 네덜란드 병사가 건네준 초콜릿을 먹고 목숨을 건졌다는 것이다. 다이어트 중에도 초콜릿만은 포기할 수 없었던 그녀는 대신 다른 간식을 조절하는 식으로 타협을 보았다고 한다.
© 매거진한경,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