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40년 프랑스 파리에서 태어난 모네는 다섯 살 때 프랑스 북부 르 아브르(Le Havre)로 이사했다. 어린 시절을 노르망디 바닷가에서 빛과 색에 대한 관찰로 보낸 그는 열아홉 살에 다시 파리로 와서 본격적인 그림 작업을 시작한다. 그러다가 군대에 징집돼 알제리에서 1년간 복무한 후 다시 파리로 돌아온 모네는 자신의 모델이었던 카미유 동시외(Camille Doncieux)와 결혼한 후 보불(프로이센-프랑스)전쟁을 피해 영국 런던에서 산다.
1년 후 다시 프랑스로 돌아온 모네는 파리 근교 아르장퇴유(Argenteuil)에 자리를 잡는다. 그곳은 인상주의 탄생의 모태가 된 곳이다. 하지만 그곳에서 그는 아내 카미유를 떠나보냈고, 북적이고 복잡한 파리가 싫어졌다. 모네는 파리에서 북서쪽으로 70여 km 떨어진 시골의 작은 마을 지베르니(Giverny)로 옮긴 후 그곳에서 알리스 오세데(Alice Hoschedé)와 재혼한다. 그리고 1926년 숨을 거둘 때까지 지베르니에서 산다.
정원을 직접 가꾸었다고 한다.]
고민은, 파리에서 모네의 <수련>을 보고 지베르니를 가는 게 좋을지, 아니면 인상주의 미술의 본거지가 된 지베르니에서 모네를 먼저 만난 후 <수련>을 보는 게 좋을지였다. 결국 모네의 집과 그의 삶을 먼저 느끼고 <수련>을 맞는 것이 순서일 듯했다. 게다가 지베르니의 집은 바로 모네 인생의 마지막 역작인 <수련>이 탄생한 곳이 아니던가? 모네는 자기 집 연못에 핀 수련을 어떤 ‘신의 눈’으로 봤을지가 더 궁금해졌다.
파리의 생 라자르역에서 로엔이나 르 아브르행 기차를 타고 50분 정도를 달려 베농역에서 내리면 모네를 만나러 가는 여행이 시작된다. 역 바로 앞에는 장난감 같은 꼬마 열차가 모네를 만나러 갈 사람들을 기다린다. 20여 분쯤 후 주변에는 푸른 밀밭과 나무와 들판만이 있는 작은 동네가 나온다. 싱그러운 소리를 내며 흐르는 작은 개울을 건너 접어든 동네는 전형적인 목가적이면서도 예술의 향기가 폴폴 나는 그런 곳이다.
또 이 마을에서는 순전히 모네의 흔적을 따라온 미국의 인상파 화가들도 만날 수 있다. 클로드 모네거리(Rue Claude Monet)를 따라 걷다가 미술관인지 카페인지 구분이 안 가는 곳을 잠시 기웃거려보면 그곳에는 지베르니 인상파 미술관(Musée des Impressionnismes Giverny)이 있다. 모네의 그림에 영향을 받은 미국의 화가들이 차린 곳이다.
종합예술공간, 모네의 집
모네가 살고, 그림 그리고, 가족과 함께 하고, 또 그렇게 죽음을 맞이하기까지 했던 집으로 가기 위해서는 먼저 널따란 정원과 만나야 한다. 짙푸른 녹음으로 가득한 정원에는 계절에 따라 서로 다른 꽃들이 항상 피어 있다. 지금이야 모네재단에서 고용한 전문 조경사들이 수많은 관광객들의 눈길에도 아랑곳 않고 정원을 가꾸지만, 모네가 살던 시절에는 지금보다 더 아름다운 정원이었다고 사람들은 말한다. 모네는 인상파 화가의 ‘보스’이자 프랑스 전체에서도 알아주는 조경 예술가이기도 했기 때문이다.
물론 11월과 12월 그의 정원은 꽃들도 없었을 것이고, 짙푸른 녹음도 아니었을 것이다. 앙상한 나무들과 꽃을 잃은 풀들이 모네의 정원을 초라하게 꾸미고 있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모네는 백내장으로 거의 시력을 잃은 눈으로도 자신의 인생을, 그리고 내세의 오랜 세월까지도 비출 빛과 색을 봤을지도 모른다. 지금 이 사람들이 바라보고 있는 화려한 꽃의 정원을 죽음을 앞두고 눈까지 멀어 버린 모네는 그 순간에도 보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신의 눈으로 본 ‘수련’
모네의 집이 유명한 것은 그의 마지막 연작으로 알려진 <수련> 때문이다. 그 수련이 바로 이 모네의 집 또 다른 정원인 물의 정원에서 탄생했기 때문이다. 모네가 직접 가꾸고 꾸민 물의 정원은 흡사 깊은 자연 속 습지 같은 느낌이다. 온갖 버드나무와 수풀들로 좁아진 시야 속에 들어온 것은, 모네가 신의 눈으로 바라보며 빛과 색의 변화에 따라 달라진 수려한 수련들이었을 것이다. 비록 방문했을 당시는 수련이 필 시기가 아니라 꽃은 없고 연잎만 볼 수 있었지만 아름다운 자연으로 곱게 치장한 연못과 그 위에 더 있는 연잎으로도 모네가 보았던 그 수련들이 떠오른다.
사실 이 모네의 집은 모네 사망 후 아무렇게나 버려지다시피 했다. 이 아름다운 꽃의 정원은 잡초와 벌레들로 가득했고, 물의 정원은 아무렇게나 자란 수초들로 지저분해졌다. 그러던 것을 1966년 모네의 아들이 이 집과 가구 등 유품을 지베르니시에 기증한다. 지베르니시는 모네가 쓰던 가구와 물건들을 곱게 복원했고, 그래서 지금도 모네의 집은 19세기 말 프랑스의 가정집을 그대로 유지한 채 수많은 사람들의 눈을 행복하게 해주고 있는 것이다.
1층 모네 전시실 외에도 지하에는 세잔, 르느와르, 모딜리아니, 마티스, 피카소 등 프랑스
최대 미술품 컬렉터인 폴 기욤(Paul Guillaume)과 장 발터(Jean Walter)의 인상주의 회화 컬렉션]
모네의 집에서 수련을 볼 수 없었던 탓에 더 조급해지 마음은 모네가 그린 <수련>으로 향하게 한다. 세잔이 얘기한 ‘신의 눈’의 실체는 결국 그의 그림에서 찾을 수밖에 없으니. 그렇게 해서 결국 모네가 가진 ‘신의 눈’을 확인하는 길은 다시 파리에서 찾아야 한다.
루브르 궁전(Palais du Louvre)을 향해 샹젤리제 거리를 2.3km 정도 곧장 걷다 보면 나오는 튈르리 정원 한쪽에 있는 오랑주리 미술관(Musée de lʼOrangerie). 원래 루브르 궁전의 오렌지 온실이었던 이곳에는 모네의 <수련> 연작이 특수하게 전시돼 있다. 모네는 파리시에 <수련> 연작 중 일부를 기증하면서 “이 그림은 자연 채광의 흰 벽에 전시됐으면 좋겠다”고 했고, 파리시는 모네의 희망을 그대로 수용했다. 게다가 너비가 긴 <수련>을 효과적으로 감상할 수 있도록 타원형으로 특별히 설계된 것으로 유명하다.
오랑주리에 들어서서 만나게 되는 <수련>은 마치 다른 공간으로의 순간 이동을 한 느낌이다. 넓은 창으로 쏟아져 들어오는 햇빛을 받은 <수련>들은 지베르니의 그 정원에 있을 때처럼 고스란히 빛났다. 계절에 따라, 햇빛에 따라 달리 색칠된 각각의 그림들을 보면 아주 어렴풋이나마 세잔이 왜 모네에게 ‘신의 눈’을 가졌다고 ‘신성 모독’을 감행했는지 이해가 된다. 마치 하느님이 세상을 창조하실 때 연못 위의 수련을 봤다면 이런 빛깔과 모양이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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