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문득 지갑을 열었는데, 현금이 하나도 없어 당황한 적이 있는가?
겨우 5000원짜리 밥을 먹으려고 했는데, 5000원이 없어 밥을 못 먹게 됐다면?
물론 카드를 사용하면 된다. 그런데 카드는 빚이다. 지금 내 수중에 있는 돈이 아니다. 카드사에서 빌려 먼저 쓰는 돈일 뿐이다.
밥 한 끼 이상을 생각해보자. 자녀의 대학 등록금을 내야 한다. 그런데 현금이 없다. 그러면 학자금 대출을 받는다. 카드로 내기도 한다. 이것 역시 빚이다. 갚아야 한다. 자녀들의 결혼자금은 어떤가? 부모나 결혼할 자녀가 모아 놓은 현금이 없으면 또 빚을 낸다. 그리고 살면서 갚아 나간다. 그나마 일을 할 수 있고 직업이 있다면 견딜 만하다. 그런데 나이 들어 직업도 없이 병이 들면? 보험 혜택을 받을 수 있다면 다행이지만 그렇지 않으면 제대로 된 치료는 꿈도 꾸지 못한다. 더 이상 대출을 해주는 곳도 없고, 빚을 갚지도 못하고 있으니 카드를 쓸 수도 없게 된다.
현재 우리 사회는 거대한 패러다임의 변화에 직면하고 있다. 이것은 경제 위기에 직면해 있다는 뜻이다. 고공행진을 계속하던 서울 강남3구의 전셋값은 점점 하락하고 있고, 전국적으로 아파트 매매와 전세 가격의 하락이 지속되고 있다. 또한 희망퇴직, 권고사직 등 예상치 못한 조기 은퇴 또한 사회의 심각한 문제로 제기되고 있다.
여기에 미국의 금리 인상 예정, 브렉시트(영국의 EU 탈퇴) 등 국제적인 문제까지 더해져 금융시장 또한 알 수 없게 됐다. 이렇게 불확실한 현실에서는 투자보다 안전자산 보유가 더 중요하다. 현금을 준비하기 위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재무 설계 전문가로서 4가지 의견을 말해보겠다.
첫째, 대표적인 위험자산을 정리하라
위험자산은 어떤 사건이 발생하면 그에 반응해 가격 변동성이 커지는 자산을 말한다. 긍정적인 사건에는 가격이 크게 오르고, 부정적인 사건이 발생하면 가격이 크게 하락하는 자산이 위험자산이다. 주식·부동산·선물 등 파생상품, 금을 포함한 원자재가 대표적인 위험자산이다.
미국의 기준금리 인상은 미국과 우리나라의 금리 차이 축소로 외국 투자자들의 자금 이탈을 유발할 수 있기 때문에 이를 막기 위해 우리나라 기준금리 역시 상승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 기준금리 상승은 1300조 원에 달하는 가계부채와 중소기업 및 자영업자 대출까지 합하면 1500조 원 이상의 대출에 대한 이자 부담을 증가시킨다.
이는 자칫 잘못하면 가계의 파산을 야기할 수도 있어 경제 성장에도 악영향을 줄 수 있고, 주택 가격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다. 또한 대출이자 부담의 증가는 가처분소득을 감소시켜 소비를 위축시키고, 이는 내수기업의 매출 감소로 이어지면서 경제의 악순환이 계속될 것이다.
우리나라 경제가 어려워지면 우리나라 돈의 가치도 더욱 하락할 수 있다. 즉 환율이 오른다는 의미다. 여러 측면에서 볼 때 앞으로 우리나라 주식, 부동산 등 투자자산의 비중을 줄이는 것이 좋다. 지금은 투자자산의 비중을 줄이고 현금자산을 보유하고 있다가 투자자산의 가치가 급격하게 하락하면 그때 다시 투자자산에 투자하는 전략을 가져야 한다.
이처럼 불확실하고 불안한 경제 환경에서는 위험을 최소화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위험을 최소화하는 방법으로는 안전자산을 보유하는 것이 상책이다. 안전자산으로는 예금 같은 현금성 자산, 머니마켓펀드(MMF)나 종합자산관리계좌(CMA) 같은 초단기 투자자산, 만기가 짧은 국공채 등을 들 수 있다.
둘째, 아파트를 포함한 부동산자산의 비중을 줄여라
앞으로 집값은 떨어진다. 경제 위기가 오면 집값은 폭락할 수 있고 오지 않더라도 집값은 하락할 것이다. 지금 당장은 떨어지지 않을지 몰라도 15년 뒤부터는 반드시 떨어진다. 이 시기에는 사망 인구가 약 60만~80만 명에 이르는 반면, 2000년 이후에 태어난 인구는 1년에 약 40만 명이 되기 때문에 공급이 수요를 초과하게 된다. 15년 뒤가 아니어도 2~3년 뒤에 신규 주택 공급이 늘어나는 시기에 집값은 큰 조정을 받을 수 있다.
설령 집값이 떨어지지 않는다 해도 베이비부머가 퇴직하고 나면 금융자산이 없어서 어쩔 수 없이 집을 처분해야 하는 상황이 온다. 2015년 7월에 한국FP학회에서 발표한 <한국 가계의 파이낸셜 피트니스(Financial Fitness)> 자료에 따르면 우리나라 중간소득 계층(소득 5분위 중 2분위, 3분위, 4분위. 1분위가 소득이 가장 낮은 계층이고 5분위가 가장 높은 계층임) 대표 가계의 재무 상태는 오른쪽 위의 그림과 같다.
이 통계 자료는 우리나라 대표 가계의 상황이다. 대표 가계라 하면 가장의 나이가 약 45세다. 우리나라 경제적 정년이 약 52세이므로 평균적으로 은퇴가 7년 정도 남았다. 자녀는 보통 2명이고 초등학교 또는 중학교에 다닌다. 앞으로 이 가장이 지출해야 할 돈은 고등학교와 대학교 교육비, 자녀들 결혼 비용, 본인의 은퇴 비용, 노후의 각종 의료비 등이다. 여행이나 취미에 드는 비용은 제외하겠다.
자, 이제 숫자에 의미를 담아 해석하고 생각해보자. ‘어떻게 되겠지’라고 막연하게 생각해서는 안 된다. 금융자산이 6752만 원이고 금융부채가 7046만 원이다. 대한민국 대표 가계의 가장이 퇴직을 했다고 가정하자. 매달 지출해야 할 대출이자, 주택 관리비, 자녀 학자금, 생활비, 통신비 등을 무엇으로 지불해야 할까. 퇴직을 했으니 소득이 없다. 금융자산으로 지출해야 한다.
대한민국 대표 가계의 월 고정지출 77만8779원 중 소득이 중단되면 내지 않아도 되는 공적연금 등을 제외하면 약 60만 원이 지출될 것이고, 변동지출로 약 337만 원이 지출되므로 고정지출과 변동지출을 합하면 월 소비지출액은 약 400만 원이다. 금융자산 6752만 원에서 매달 400만 원을 쓰면 약 17개월 뒤에는 현금이 떨어지게 된다.
대한민국 대표 가계는 현금이 바닥났다. 이제부터 무엇으로 살아갈까. 가족 모두가 쫄쫄 굶어야 하나. 가지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생각할 것이다. 가지고 있는 것은 집(아파트)밖에 없다.
취직을 하면 해결되는데 어디 취직이 그리 쉬운가. 집을 팔지 않으면 답이 없다. 이렇게 소득절벽에 처한 사람들이 무려 80만 명이나 된다. 80만 명이 집을 팔려고 하는데 집을 살 사람은 40만 명밖에 없다면 집값은 어떻게 될까. 집값은 떨어진다. 아니 어쩌면 팔지 못할 수도 있다. 셋째, 삶 전반을 다운사이징하라
삶의 방식 중 강제로 다운사이징을 당하는 것은 소득과 사회생활이다. 직장에서의 퇴직이 바로 그것이다. 문제는 소득과 사회생활은 강제로 다운사이징이 되는데 소비는 그대로 유지한다는 데 있다. 소비는 본인이 예견해 스스로 다운사이징을 해야 한다. 당신은 어떤 소비 항목을 먼저 줄여야 할까.
소비를 줄이는 가장 좋은 방법은 넓은 집(지금 살고 있는 집)을 팔아 좁은 집으로 이사하는 것이다. 주택 건축물의 면적이 줄어들면 여러 지출도 자동적으로 줄게 된다.
첫째, 유형자산의 크기가 줄어든다. 우선 냉장고, TV, 자동차, 가구 등의 크기가 줄어들 것이다.
둘째, 주택 관련 각종 비용이 줄어든다. 주택 관련 세금, 주택 관리비, 품위 유지비 등의 비용이 줄어든다.
셋째, 각종 사회적 비용이 줄어든다. 친구들이나 사회단체에서 집을 줄여서 이사하는 사람에게 밥을 사라고 하겠는가, 술을 사라고 하겠는가, 기부금을 내라고 하겠는가. 부모에 대한 자녀들의 기대 또한 줄어든다. 부모가 165.2㎡대의 큰 집에서 살면서 자녀들에게 아껴 쓰고 절약하라고 말하는 것과 56.1㎡짜리 집에 살면서 검소하게 살라고 말하는 것 중 어느 경우에 더 부모의 말을 귀담아들을까.
미국 금리 인상, 신규 주택 공급의 증가, 원유 가격 하락, 건설 경기 둔화, 중국의 원자재 재고 증가 및 경제 성장 둔화, 일본의 엔저 정책 지속 등의 경제 환경이 우리나라 투자자들에게 어려움을 주고 있다. 우리는 외환위기, 카드 대란, 글로벌 금융위기 시기에 닥친 위험을 과소평가한 경험이 있다.
물론 그 위기를 겪고 나면 다시 경기가 회복돼 투자자들에게 원금 이상의 수익을 가져다주기도 했다. 하지만 그 어두운 터널을 무사히 빠져나온 사람은 그다지 많지 않다. 지뢰가 매설돼 있다고 하면 피해서 다닐 것이 아니라 그 지역에는 아예 가지 않는 것이 현명한 행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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